- 08 Dec, 2025
점심은 사무실 근처 백반집, 저녁은 또 백반집
점심 메뉴는 아주머니가 정한다 점심시간이다. 11시 50분. "오늘 뭐 먹어요?" 개발팀 김 대리가 묻는다. "백반집." 내가 답한다. "어제도 백반이었는데요." "그럼 어디 가?" 침묵. 선택지가 없다.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음식점이 딱 세 곳 있다. 백반집, 김밥천국, 중국집. 백반집 빼면 선택권이 없다. 김밥천국은 회계팀 박 과장이 질렸다고 했고, 중국집은 기름이 너무 많다. 결국 백반집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주머니가 우릴 본다. "어, 또 왔어요?" "네." "오늘은 고등어조림이에요. 어제 제육 먹었으니까."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아주머니가 정한다. 직원 여섯 명 식사를 일주일 단위로 관리하신다. 월요일 제육, 화요일 고등어, 수요일 김치찌개, 목요일 생선구이, 금요일 불고기. 루틴이다. 회사 운영보다 정확하다. 7500원의 행복 백반 한 끼가 7500원이다. 반찬은 여섯 가지. 김치, 콩나물, 시금치, 멸치볶음, 계란찜, 그리고 메인 반찬. 밥은 무한리필. 된장찌개도 무한. "이거 사실 가성비 좋긴 해요." 영업팀 이 사원이 말한다. 맞다.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만한 반찬 못 먹는다. 판교 출장 갈 때마다 느낀다. 샐러드 한 그릇이 만 원이다.근데 질린다. 매일 먹으면 질린다. "사장님, 우리 내일은 다른 데 가요." 개발팀 최 대리가 말한다. "어디?" "몰라요. 근데 백반 말고요." 그래서 차 몰고 10분 거리 식당 찾으러 갔다. 파스타집이 있다. 만 오천 원. 직원 여섯 명이면 구만 원. 회사 카드 결제했다. 월 식비 예산이 팀당 20만 원인데 이러면 넘친다. 다음날 또 백반집 갔다. 서울은 뭐 먹지 서울 출장 날이다. KTX 타고 올라간다. 판교에서 미팅이 셋 있다. 오전 10시, 오후 2시, 저녁 6시. 점심은 중간에 어디서든 먹어야 한다. 첫 번째 미팅. 여의도 VC 대표님. "점심 같이 하시죠." 대표님이 말한다. "네, 좋습니다." 강남역 근처 비스트로 갔다. 파스타 2만 원. 샐러드 세트 추가하면 2만 8천 원. 커피까지 3만 원. "요즘 창업 어때요?" 대표님이 묻는다. "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답한다. 파스타를 먹는다. 맛있다. 근데 밥이 없다. 한국 사람이라 밥이 있어야 배가 찬다.두 번째 미팅. 판교 스타트업 대표. "우리 회사 구내식당 가시죠." 구내식당이다. 메뉴가 열 개다. 한식, 양식, 일식, 분식. 선택권이 있다. 가격은 무료다. 회사가 낸다. "부럽네요." 내가 말한다. "뭐가요?" "구내식당이요." "아, 이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연하지 않다. 우리 회사는 직원 여섯 명이다. 구내식당은 꿈도 못 꾼다. 밥을 먹는다. 제육볶음이다. 우리 동네 백반집 제육이랑 비슷하다. 근데 여기는 샐러드바가 있다. 저녁도 백반 저녁 7시. KTX 타고 내려온다. 사무실 도착. 8시 반. 배고프다. 직원들이 아직 남아있다. "사장님, 저녁 뭐 먹어요?" "백반집?" "문 닫았어요." 그럼 배달이다. 치킨 아니면 중국집. 짜장면 여섯 개 시켰다. 한 그릇에 6천 원. 총 3만 6천 원. 회사 카드 또 긁었다. "내일은 칼퇴합시다." 내가 말한다. "무슨 일 있어요?" 김 대리가 묻는다. "없어. 그냥 집에 일찍 가자." 근데 다음날도 야근했다. 고객사 미팅 준비. 저녁은 또 짜장면. 일주일에 백반을 아홉 번 먹는다. 점심 다섯 번, 저녁 네 번. 아내가 묻는다. "오늘 저녁 뭐 먹었어?" "백반." "어제도 백반이었잖아." "회사 근처가 그래." 아내가 웃는다. "서울 가면 달라져?" "거기도 비슷할걸. 바쁘면 다 똑같아." 판교 스타트업의 점심 인스타그램을 본다. 판교 스타트업 대표들 피드다. 한 대표는 회사 근처 브런치 카페 인증샷. 아보카도 토스트에 아메리카노. 만 오천 원. 다른 대표는 구내식당 메뉴판. "오늘 점심 고민 중~ 스테이크 vs 연어덮밥." 또 다른 대표는 팀 회식. 고깃집. 한 명당 5만 원. "우리 팀 고생 많았어요 🥩" 스크롤을 내린다. 우리 회사 마지막 포스팅은 한 달 전이다. 정부 과제 선정 소식. 음식 사진은 없다. 올릴 게 없다. 백반집은 인스타 감성이 아니다. "사장님, 우리도 팀 회식 해요." 최 대리가 말한다. "그래, 하자. 언제?" "이번 주 금요일이요." 금요일 저녁. 회식 장소는 백반집 옆 고깃집이다. 한 명당 3만 원. 여섯 명이면 18만 원. 회사 카드로 결제. 고기를 굽는다. 직원들 표정이 밝다. 소주 한 잔씩 돈다. "사장님, 다음 달에 또 해요." 이 사원이 말한다. "매달은 좀..." "분기에 한 번?" "그래, 분기에 한 번." 계산한다. 분기에 한 번이면 연 네 번. 한 번에 20만 원이면 연 80만 원. 가능하다. 백반의 맛 다음날 점심. 또 백반집이다. 아주머니가 우릴 본다. "어제 회식했지?" "네, 어떻게 아세요?" "얼굴 봐. 다들 피곤해 보여. 오늘은 북어국 끓였어." 해장국이다. 아주머니가 우리 스케줄을 안다. 국을 먹는다. 맛있다. 서울 비스트로 파스타보다 맛있다. 3만 원짜리 브런치보다 든든하다. "사장님, 이거 사실 괜찮은 거 아니에요?" 김 대리가 말한다. "뭐가?" "매일 백반. 건강하잖아요. 서울 애들 샌드위치 먹을 때 우린 반찬 여섯 개." 맞는 말이다. 건강하다. 가성비도 좋다. 아주머니도 좋은 분이다. 근데 질린다. 일주일에 아홉 번은 많다. "다음 주에 파스타 먹으러 가자." 내가 말한다. "예산 괜찮아요?" "한 번 정도는." 직원들이 웃는다. 한 번만. 다음 달에 또 한 번. 그렇게 버틴다. 오늘도 백반 퇴근 전이다. 8시 반. "사장님, 저녁 어떡해요?" 박 과장이 묻는다. "백반집 문 닫았지?" "네." "그럼 편의점." 편의점 도시락이다. 4500원. 여섯 명이면 2만 7천 원. 회사 카드로 끊었다. 사무실에서 먹는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도시락. 반찬은 두 개. 김치랑 단무지. "내일은 일찍 퇴근하자." 내가 말한다. "네." 직원들이 답한다. 근데 내일도 야근할 것 같다. 대기업 PoC 발표 준비가 남았다. 핸드폰을 본다. 아내 카톡. "저녁 먹었어?" "응. 편의점 도시락." "...내일은 집에서 먹어." "알았어. 일찍 갈게." 거짓말이다. 내일도 늦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본다. 판교 스타트업 대표 포스팅. "팀 회식 2차 🍺 생맥주 한잔의 여유~" 스크롤을 넘긴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까. 구내식당 생기고 팀 회식 매달 하고 브런치 카페 가고. 모르겠다. 지금은 백반이다. 내일도 백반. 모레도 백반. 다음 주도 백반. 그래도 괜찮은 이유 점심시간이다. 금요일. "오늘은 뭐예요?" 김 대리가 묻는다. "불고기래." 내가 답한다. "어떻게 알아요?" "금요일은 항상 불고기잖아." 백반집 문을 연다. 아주머니가 웃는다. "다들 왔네. 오늘 불고기 맛있어. 어제 고기 좋은 거 샀어." 자리에 앉는다. 물 떠온다. 반찬 나온다. 김치, 콩나물, 시금치, 멸치, 계란찜, 불고기. 밥을 먹는다. 맛있다. "사장님, 이거 서울 가면 못 먹죠?" 최 대리가 묻는다. "응. 이 가격에 이만한 백반은 없어." "그럼 우린 괜찮은 거네요."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매일 똑같은 메뉴. 선택권 없는 점심. 7500원짜리 행복. 근데 나쁘진 않다. 서울 스타트업들은 구내식당 있고 브런치 카페 가고 팀 회식 자주 한다. 부럽다. 우리는 백반집 아주머니가 반찬 정해주고 일주일에 아홉 번 백반 먹고 가끔 편의점 도시락 먹는다. 그게 지방 스타트업이다. 다음 주 월요일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다. 11시 50분. 점심시간. "오늘 뭐 먹어요?" 김 대리가 묻는다. "백반집." 내가 답한다. "메뉴 뭐예요?" "월요일이니까 제육." 직원들이 웃는다. 이제 우리도 안다. 월요일은 제육, 화요일은 고등어, 수요일은 김치찌개. 백반집 문을 연다. 아주머니가 손을 흔든다. "어, 왔어? 오늘 제육이야." "알아요." 우리가 답한다. 자리에 앉는다. 밥이 나온다. 반찬 여섯 개. 된장찌개. 숟가락을 든다. "맛있게 드세요." 아주머니가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가 답한다. 밥을 먹는다. 제육이 맵다. 김치가 시원하다. 콩나물이 아삭하다. 직원들이 이야기한다. 주말 얘기. 프로젝트 얘기. 대기업 PoC 결과 발표 준비. 웃음소리가 난다. 서울은 멀다. 판교는 더 멀다. 구내식당도 브런치 카페도 없다. 우리는 백반집이 있다. 7500원짜리 점심. 아주머니가 정해주는 반찬. 그게 우리 일상이다. 질리지만 익숙하다. 불만이지만 감사하다. 부럽지만 괜찮다. 내일도 백반이다. 모레도 백반이다. 그래도 계속한다.오늘도 백반집 간다. 화요일이니까 고등어다.
- 07 Dec, 2025
'왜 서울 안 가세요?' - IR할 때마다 받는 질문
또 물어본다 강남 VC 사무실. 15층. 유리창 너머 테헤란로가 보인다. "제품 괜찮네요. 근데 왜 대전이세요?" 세 번째 질문이다. 오늘만. IR 자료 23페이지에 있다. '본사 위치 전략'. 준비했다. 외웠다. "제조업 고객사가 수도권보다 충청권에 많습니다." 파트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또 묻는다. "그래도 서울 나오시면 채용이 쉽지 않을까요?" 준비한 답변 2번. "대전도 카이스트, 충남대 인재풀이 있습니다." "음..." 하고 넘어간다. 넘어간 게 아니다. 마음속에 남는다. '지방 스타트업'이라는 꼬리표. KTX 타고 왔다. 새벽 5시 40분. 8시 미팅 맞추려고. 2시간 30분. 노트북 켜고 IR 자료 수정했다. 근데 질문은 또 같다. "서울 안 가세요?"준비한 답변들 A4 용지 한 장. 프린트했다. 'FAQ - 본사 위치 관련'.제조업 B2B는 고객사 접근성이 중요. 충청권 중소 제조업체 밀집. 서울 대비 운영비 30% 절감. R&D 집중 가능. 정부 지역 균형 발전 과제 혜택. 올해 2억 받음. 대전 인재 풀 충분. 카이스트, 충남대, ETRI 출신들. 판교 영업 거점 있음. 김 대리 상주.다 맞는 말이다. 거짓 없다. 그런데 설명하면서도 알 수 있다. 상대방 표정이. '아, 그냥 못 가는구나.' 아니다. 안 가는 거다. 차이가 있다. 아내가 대전 공무원이다. 7급. 9년차. 서울 가면 퇴사다. 우리 집 안정적 월급이 없어진다. 아들 2살. 어린이집 적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준다. 서울 가면 다 없어진다. 본사 이전 비용. 보증금, 이삿비, 직원 이동 수당. 계산했다. 5천만원. 지금 통장에 없다. 이걸 IR 자료에 쓸 수 없다. '가족 때문에', '돈 없어서'. VC들은 이해 못 한다. 그래서 포장한다. '전략적 선택'이라고.서울 출장 루틴 월요일 아침. 미팅 3개 잡았다. 8시 VC. 11시 파트너사. 2시 대기업 구매팀. 대전역 5시 40분 출발. 서울역 8시 10분 도착. 지하철 20분. 딱 맞다. 어제 저녁 짐 쌌다. 노트북, 충전기, IR 자료 인쇄본, 명함 50장, 휴대폰 보조배터리. 아내가 물었다. "몇 시에 와?" "7시쯤?" "저녁은?" "서울서 먹고." 아들이 안 놔준다. 가방 잡고 논다. 안아줬다. 30초. "아빠 가야 해." 택시 탔다. 대전역까지 15분. 6500원. KTX 정기권 끊었다. 월 48만원. 주 2회 왕복하면 이득이다. 지금 주 1.5회 타는 중. 손해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서울 미팅은 무조건 서울서 한다. VC들 대전 안 온다. 한 번도 없다. "혹시 저희 쪽으로 오실 수 있으세요?" 물어봤다. 예전에. "아, 저희가 미팅이 많아서요. 서울로 오시는 게..." 알았다. 안 온다는 거. 그래서 내가 간다. 새벽에.VC 사무실 풍경 강남. 테헤란로. 역삼. 선릉. 다 비슷하다. 15층 이상. 통유리. 커피 머신. 젊은 애널리스트들. 들어가면 프런트가 웃는다. "예약하셨어요?" "네, 8시에 최지방입니다." "잠시만요." 대기한다. 소파 앉는다. 커피 마신다. 이미 세 번째다. KTX에서 두 번. 파트너 나온다. 악수한다.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괜찮습니다." 회의실 들어간다. 빔 연결한다. 노트북 화면 띄운다. "시작하겠습니다." 15분 발표. 10분 질문. 5분 잡담. 질문은 정해져 있다. "MRR이 얼마나 되세요?" "고객사 몇 곳이에요?" "엔지니어는 몇 분이세요?" "시리즈 A 계획은?" 그리고 마지막. "왜 대전이세요?" 또. "제조업 특성상..." 설명한다. 또. 파트너 고개 끄덕인다. 근데 눈빛이 다르다. '흠...' 하는 눈빛. 끝나고 나온다. 엘리베이터 탄다. 1층 내린다. 결과 나올 때까지 2주. 메일 온다. "검토 결과, 이번 라운드는..." 탈락. 다음 VC 찾는다. 강남. 테헤란로. 역삼. 선릉. 반복. 판교 부러움 김 대리가 보낸다. 카톡. "대표님, 여기 개발자 채용 공고 미쳤어요." 판교 스타트업. 시리즈 B. 3년차 개발자 연봉 7천. 우리는 4500 준다. 한도다. "그러게요." 답장 이게 다다. 김 대리 말 맞다. 판교는 다르다. 점심시간에 개발자들 우글우글. 카페 자리 없다. 네트워킹 자연스럽다. "어느 회사세요?" "저희 뭐하는 덴데..." 명함 주고받는다. 나중에 연락된다. 이직 제안, 협업 제안, 투자 소개. 우리는 그게 없다. 대전 유성구. 점심시간 백반집. "뭐 드릴까요?" "제육 하나요." 개발자 만날 일 없다. 다들 대기업이나 연구소 다닌다. 스타트업 안 한다. 채용 공고 올렸다. 3주 됐다. 지원자 2명. 경력 안 맞다. 판교였으면 20명 왔다. 알고 있다. 서울 연봉 못 준다. 스톡옵션으로 때운다. "저희 성장 가능성이..." 누가 믿냐. 지방 스타트업 스톡옵션. 안 믿는다. 본인도. 대전의 장점 있다. 진짜로. 출퇴근 30분. 서울은 1시간 30분. 점심값 7천원. 서울은 1만 2천원. 사무실 보증금 3천. 서울은 1억. 주차 공짜. 서울은 월 20만원. 저녁 9시 퇴근해도 집 9시 30분 도착. 서울은 11시. 아들 보는 시간 더 많다. 주말에 처가 가기 쉽다. 부모님 자주 본다. 다 좋다. IR 자료에 쓴다. "운영비 효율성", "워라밸 가능", "지역 거점 전략". VC들 고개 끄덕인다. 근데 투자 안 한다. 알고 있다. 장점 아니라는 거. 핑계다. 서울 못 가는 이유를 정당화하는. 솔직히 말하면 이거다. '서울 가면 좋은데, 못 간다.' 근데 IR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대전이 전략적으로 유리합니다.' 거짓말 아니다. 반은 진짜다. 반만. 정부 과제 의존 올해 R&D 과제 2억 받았다. '지역 특화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 없으면 망했다. 직원 월급 못 줬다. 정부 과제는 지방이 유리하다. 진짜다. 지역 균형 발전. 가점 있다. 서울보다 붙기 쉽다. 그래서 또 신청한다. 내년 과제. '중소 제조업체 AI 품질관리 시스템' 3억 신청. 2억은 받을 것 같다. 근데 불안하다. 정부 과제로만 버티는 거. 스타트업 아니다. 연구소다. 매출 늘려야 한다. 월 600만원. 목표는 3천만원. 고객사 늘려야 한다. 지금 8곳. 목표는 30곳. 근데 영업이 안 된다. 대기업 PoC 3개월째. 결과 안 나온다. "검토 중입니다." 기다린다. 또. 서울이었으면 다를까?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아내의 한마디 저녁 9시 30분 도착. 아들 잤다. 아내가 TV 본다. "어땠어?" "그냥." "투자 될 것 같아?" "글쎄." 앉았다. 피곤하다. 아내가 말한다. "서울 가고 싶어?" "..." "솔직히 말해봐." "모르겠어." 진짜 모르겠다. 서울 가면 기회 많다. 안다. VC 가깝다. 인재 많다. 네트워크 있다. 근데 잃는 것도 많다. 아내 월급 없어진다. 300만원. 우리 집 안전판. 아이 돌봐줄 사람 없다. 어린이집비 두 배. 집값 비싸다. 전세 3억 더 필요. 출퇴근 3시간. 아들 얼굴 못 본다. 계산하면 서울 가는 게 손해다. 지금은. 근데 IR할 때는 확신 없다. '대전이 맞을까?' 아내가 말했다. 예전에. "우리는 서울 안 가도 돼. 여기서도 할 수 있어."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다. 근데 VC들 눈빛 보면 흔들린다. '서울 가야 하나?' 답 없다. IR 끝나고 회의 끝났다. 악수했다. "검토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탔다. 1층 내렸다. 시계 봤다. 10시 30분. 다음 미팅 11시. 30분 남았다. 스타벅스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주문. 네 번째다. 앉았다. 노트북 켰다. IR 자료 수정한다. 또. 23페이지. '본사 위치 전략'. 지운다. 다시 쓴다. "대전 본사 유지의 3가지 이유"제조업 고객사 접근성 운영비 효율화 지역 특화 지원 사업 활용저장한다. 근데 안다. 다음 미팅 가면 또 물어본다. "왜 서울 안 가세요?" 답한다. 또. 외운 대로.서울행 KTX는 주 2회. 질문은 매번 같다. 답변도 같다. 근데 확신은 매번 흔들린다.
- 06 Dec, 2025
아들 2살,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서울 출장 가기
새벽 6시 40분 알람 끄고 일어났다. 아들 방 문 살짝 열어봤다. 아직 자고 있다. 오늘 서울 출장이다. KTX 8시 20분 타야 한다. 판교에서 VC 2곳, 잠재 고객사 1곳. 미팅 3개 몰아서 잡았다. 아내가 부엌에서 커피 내린다. "오늘 늦게 들어와?" 물어본다. "저녁 7시 KTX 타면 9시쯤 도착해." 대답했다. 아내는 고개 끄덕인다. 말은 안 하지만 안다. 힘들다는 거.7시 15분, 아들 깨우기 "민준아, 일어나야지." 아들 볼 쿨쿨 잔다. 2살 애가 뭘 알겠냐. 천천히 눈 뜬다. "아빠?" 한다. "어린이집 가야지." 말하면서 옷 갈아입힌다. 아들이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내가 오늘 저녁에나 온다는 걸 모른다. 아침에 헤어지면 저녁에 본다고 생각한다. 가방 챙기면서 생각했다. 민준이가 초등학생 되면 기억이나 할까. 아빠가 매일 아침 어린이집 데려다줬던 거. 아내가 민준이 밥 먹인다. 나는 노트북 가방에 충전기 넣는다. 오늘 IR 자료 다시 봐야 한다. KTX에서.7시 50분, 어린이집 가는 길 민준이 손 잡고 걷는다. 어린이집까지 5분 거리다. "아빠 어디 가?" 민준이가 묻는다. "아빠 일하러 가." 대답한다. "언제 와?" "저녁에 와." 민준이는 이해 못 한다. 그냥 고개 끄덕인다.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다. 선생님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민준이!" 밝게 인사한다. 민준이 내려놓고 가방 건넨다. "아빠 가봐야 해. 잘 있어." 머리 쓰다듬는다. 민준이가 "응" 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뒤도 안 돌아본다. 다행이다. 울면 마음 아프니까.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나왔다. 시계 본다. 7시 58분. KTX역까지 20분. 딱 맞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맞나. KTX 안 8시 20분 KTX 탔다. 자리 앉자마자 노트북 켰다. 오늘 첫 미팅은 10시 30분. 판교 VC. 시리즈 A 투자 타진하는 자리다. 2억 목표다. IR 자료 다시 본다. 매출 그래프, 고객사 리스트, 제품 로드맵. 매번 보는 건데 또 본다. 옆자리 사람도 노트북 켜고 있다. 뭐 하는지 몰라. 다들 바쁘다. 창밖 본다. 논밭 지나간다. 대전 떠나서 서울 가는 중이다. 이 길을 일주일에 2번 왔다갔다한다. 문득 민준이 생각난다. 지금쯤 간식 먹을 시간이다. 바나나 좋아한다. 다시 화면 본다. 집중해야 한다. 오늘 미팅 잘 풀려야 한다.서울 미팅들 첫 번째 VC. 판교역 근처 빌딩 12층. IR 발표 30분 했다. 질문 20분 받았다. "지방에서 개발자 채용은 어떻게 하시나요?" "대전에 계속 계실 건가요?" "서울 거점 확대 계획은?" 예상한 질문들이다. 준비한 답 했다. "대전은 제조업 도메인 전문가 많습니다. 충청권 제조사 접근성 좋습니다. 서울 영업 거점은 확대할 계획입니다." 표정은 모르겠다. "검토해보겠습니다" 한다. 늘 듣는 말이다. 두 번째는 점심 미팅. 잠재 고객사 구매팀장. 삼성역 근처 일식집. "솔루션 좋습니다. 근데 레퍼런스가 좀..." 한다. 알아듣는다. 대기업 레퍼런스 없다는 얘기다. "지금 PoC 진행 중인 곳이 2곳 있습니다." 설명한다. "결과 나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명함 받는다. 세 번째 VC. 강남역 근처. 3시 미팅. 여기는 좀 달랐다. 대표님이 충남 출신이다. "저도 대전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한다. 이야기가 잘 풀렸다. 제조업 시장 이해도가 높다. "다음 주에 대전 사무실 한 번 방문하겠습니다." 약속 잡았다. 미팅 끝나고 나왔다. 5시 30분. 7시 KTX 타야 한다. 집에 가는 길 KTX 안이다. 7시 기차. 피곤하다. 오늘 성과 정리한다. VC 2곳 긍정적, 1곳은 글쎄. 고객사 1곳은 보류. 나쁘지 않다. 근데 확실한 건 없다. 늘 그렇다. 폰 본다. 아내한테 카톡 왔다. "민준이 저녁 잘 먹었어. 아빠 찾네." 가슴이 뜬다. 미안하다. "곧 도착해. 30분 후면 돼." 답장 보낸다. 창밖 본다. 어둡다. 불빛들만 보인다. 이게 맞나. 또 생각한다. 대전으로 내려온 게 맞나. 서울에 있었으면 이렇게 왔다갔다 안 해도 되는데. 근데 대전 떠날 수 없다. 아내 직장 여기 있다. 부모님도 여기다. 집도 샀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대전 좋다. 사무실 월세 싸다. 직원들 이직 안 한다. 출퇴근 30분이다. 서울은 모든 게 빠르고 크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다. 밤 9시 15분, 집 도착 현관문 열었다. "아빠!" 민준이가 뛰어온다. 안아 올렸다. "민준아, 보고 싶었어." 진심이다. 아내가 거실에서 웃는다. "저녁 먹었어?" 묻는다. "판교에서 먹었어." 대답한다. 민준이 내려놓는다. "아빠 놀아줘!" 한다. 장난감 기차 가져온다. 가방 내려놓고 바닥에 앉는다. 민준이랑 기차 놀이 한다. 10분 정도. 근데 자꾸 폰이 신경 쓰인다. 오늘 미팅 정리 메일 보내야 한다. VC한테 팔로업 해야 한다. "민준아, 아빠 잠깐만." 한다. 노트북 꺼낸다. 아내가 민준이 데리고 간다. "씻자, 민준아." 한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 켠다. 이메일 쓴다. 토요일 오후 주말이다. 민준이가 낮잠 잔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다. 노트북 켜 있다. 다음 주 미팅 자료 준비한다. 아내가 옆에 앉는다. "또 일해?" 묻는다. 비난하는 톤은 아니다. 그냥 확인한다. "응. 다음 주에 VC 대전 온다고 해서." 대답한다. 아내가 한숨 쉰다. "민준이 깨면 놀아줘. 약속해." 한다. "응. 그럴게." 약속한다. 근데 안다. 민준이 깨도 나는 노트북 계속 볼 거다. 일하는 척하면서. 아내도 안다. 말 안 하지만. 민준이 방에서 소리 난다. 깼다. 노트북 덮는다. 일어난다. 민준이 방으로 간다. "아빠!" 민준이가 웃는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안아 올린다. "잘 잤어?" 묻는다. "응!" 대답한다. 거실로 나온다. 블록 놀이 시작한다. 민준이가 탑 쌓는다. 나는 옆에서 본다. 근데 머릿속은 다른 생각이다. 다음 주 미팅. IR 자료. 개발자 채용 공고. 민준이가 "아빠, 봐!" 한다. 탑 무너뜨린다. 웃는다. "우와, 잘했다!" 박수친다. 민준이가 또 쌓는다. 나는 본다. 이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월요일 아침 또 새벽이다. 6시 40분. 민준이 깨운다. 옷 입힌다. 어린이집 간다. "아빠 오늘도 가?" 민준이가 묻는다. "응. 일하러 가." 대답한다. 민준이는 이제 익숙하다. "응" 하고 대답한다. 어린이집 앞. 민준이 내려놓는다. "잘 있어." 머리 쓰다듬는다. 민준이가 들어간다. 손 흔들지 않는다. 나는 돌아선다. KTX역으로 간다. 오늘도 서울이다. 오늘도 미팅이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럴까. 시리즈 A 받으면 나아질까. 매출 1억 넘으면 달라질까. 모르겠다. 그냥 걷는다. 역으로.민준이가 나를 기억이나 할까. 이 시간들을.
- 05 Dec, 2025
KTX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보내기: 성공률은 몇 프로?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쓴다 오늘도 KTX다. 판교 미팅 3개. 새벽 6시 첫차. 카페카에 자리 잡았다. 노트북 켰다. 와이파이 연결 기다린다. 터널 지나가면 끊긴다. 대전-서울 구간은 터널이 많다. 메일함 열었다. 어젯밤 보낸 VC 콜드메일 15통. 회신 0건. 당연하다.50통 보내면 1통 온다 작년부터 계산했다. 콜드메일 성공률 2%. 50통 보내면 1통 회신 온다. 그중에 미팅으로 이어지는 건 10통 중 1통. 결국 500통 보내야 미팅 1개다. 투자까지 가려면? 아직 모른다. 미팅은 20번 했는데 투자는 안 받았다. 지방 스타트업이라고 말하면 표정이 변한다. "오, 대전이시군요." 그 다음은 정부 과제 얘기. "R&D 많이 받으셨나요?" 받았다. 2억. 그게 뭐 어쨌다고. 어제 본 강남 VC는 이렇게 말했다. "팀이 서울로 오실 계획은요?" 계획 없다고 했다. 아내가 공무원이라고. 아들이 어린이집 다닌다고. "아, 그러시면 조금..." 끝까지 안 했다. 어려울 거라는 말.밤 11시 콜드메일 루틴 집에 왔다. 아들 재웠다. 아내는 TV 본다. 노트북 켰다. 11시 30분. 콜드메일 쓸 시간이다. 크런치베이스 열었다. 국내 VC 리스트. 파트너 이름 찾는다. 링크드인 확인. 메일 주소 추정한다. firstname@vcfirm.com firstname.lastname@vcfirm.comf.lastname@vcfirm.com 3개 다 cc로 넣는다. 하나는 걸린다. 제목은 매번 바꾼다. "대전 제조 SaaS, 미팅 요청드립니다" "스마트팩토리 B2B, 30분만 시간 주십시오" "지방 제조업 시장, 기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본문은 템플릿이다. 4문단.인사 + 우리 소개 (2줄) 트랙션 숫자 (3줄) 시장 기회 (3줄) 미팅 요청 (1줄)총 200단어 안쪽. 길면 안 읽는다. "저희는 대전에서..." 이 문장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지금은 넣는다. 어차피 미팅 가면 알게 된다. 투명하게 가는 게 낫다. 발송. 15통. 오늘 할당량 끝. 내일 아침에 확인한다. 기대는 안 한다. 그래도 확인한다. 회신이 올 때 2주 전이었다. 아침에 메일 열었다. 회신 1건. 심장이 뛰었다. "관심 있습니다. 다음 주 가능하신가요?" 판교 VC였다. 시리즈 A 전문. 제조 쪽 투자 몇 건 있었다. 그날 하루 기분이 좋았다. 팀한테도 말했다. "VC 미팅 잡혔어." 다들 좋아했다. "서울이요?" "판교요?" "응. KTX 타고 간다." 미팅은 1시간이었다. 파트너랑 애널리스트. 질문 많이 받았다. "제조업 고객사는 몇 곳이세요?" "7곳이요. 대기업 PoC 1곳 포함이요." "MRR은요?" "600이요. 이번 분기 목표는 1500." "팀은요?" "6명. 개발 3, 영업 2, 디자인 1." "다 대전이세요?" "네. 판교에 영업 1명 있어요." "음..." 그 '음...'을 안다. 지방 팀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개발자 채용은 어떻게 하세요?" "로컬 위주요. 충남대, 한밭대 출신들." "서울 경력직은요?" "연봉 못 맞춰요. 대전 물가로는 7천이 한계거든요." "아..." 미팅 끝나고 계단 내려오는데 알았다. 안 될 거다. 일주일 뒤 회신 왔다. "좋은 팀이시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괜찮다. 익숙하다.2% 확률에 매일 건다 오늘도 카페카다. 대전으로 돌아간다. 노트북 켰다. 콜드메일 10통 더 보낸다. 저녁에 15통 더 보낼 거다. 50통 보내면 1통 온다. 500통 보내면 미팅 1개다. 5000통 보내면? 투자 1건 받을까? 모른다. 그래도 보낸다. 아내한테 말했다. "서울 VC들한테 매일 메일 보낸다." "받아?" "가끔." "힘들겠다."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 대전에서 스타트업 한다는 건 이런 거다. 서울 가는 KTX에서 와이파이 잡으면서 메일 쓴다. 터널 지나가면 작성 중이던 문장 날아간다. 다시 쓴다. 성공률 2%. 나쁘지 않다. 보험 영업 성공률보다 높다. 그리고 나는 매일 보낸다. 보험 영업보다 많이 보낸다. 언젠가는 된다. 확률의 문제다. 50통이 안 되면 100통. 100통이 안 되면 500통. 회사 망하기 전까지는 보낸다.KTX 도착 10분 전. 노트북 정리했다. 오늘 보낸 메일 25통. 내일 아침에 확인한다.
- 04 Dec, 2025
삼성전자 엔지니어에서 지방 스타트업 대표로: 신분상승인가 하락인가
명함 두 개 명함을 두 개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공정기술팀 책임연구원". 2014년부터 2021년까지. 7년. 다른 하나는 "㈜스마트링크 대표이사". 202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3년 2개월. KTX에서 노트북 열고 작업하다가 옆자리 사람이 물어본다. "무슨 일 하세요?" "스타트업 합니다." "어디 다니셨어요?" "삼성전자요." 그 순간 표정이 달라진다. "아, 그래서 창업하셨구나." 근데 속으로는 생각한다. '퇴사한 거지, 창업한 게 아니라.'기흥 7년 기흥 공장 3년 근무하면 반도체 공정 전체가 보인다고 했다. 나는 7년 했다. 클린룸 들어가는 날이 1년에 200일. 방진복 입고 8시간. 에어샤워 지나가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라인 멈추면 억대 손실. 그걸 막는 게 내 일이었다. 밤 11시에 전화 오면 15분 안에 공장 도착. 새벽 2시에 라인 살리고 새벽 4시에 집 도착. 연봉은 1년차 4800만원. 7년차 8500만원. 보너스 포함하면 억 가까이. 대전 아파트 전세 2억 5천. 여유 있었다. 아내도 공무원이라 안정적이었다. 근데 40살까지 이렇게 살 수 없었다. 라인 문제 해결하는 건 잘했다. 근데 내 문제는 못 풀었다. "이게 내 일인가." 3년째 같은 질문. 7년째도 답은 없었다.창업 아닌 퇴사 2021년 9월. 사표 냈다. 팀장이 물었다. "뭐 하려고?" "스타트업 차릴 생각입니다." "아이템은?" "제조업 쪽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요." 팀장은 한숨 쉬었다. "시장 좁아. 삼성 나와서 삼성 상대로 장사하려고?" 맞는 말이었다. 근데 7년 동안 현장에서 본 게 있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MES도 제대로 못 쓴다. 엑셀로 생산 관리한다. 2021년에. 시장은 있다고 생각했다. 정부 R&D 과제 2억 받았다. 엔젤 투자 1억. 총 3억으로 시작. 대전 유성구 테크노파크에 사무실 얻었다. 월세 150만원. 평수는 기흥 사무실의 1/10. 직원은 나 포함 3명. 개발자 2명은 대전대 후배. 연봉 4천. 첫날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 대표다." 근데 실감이 안 났다. 신분상승의 환상 주변에서는 축하했다. "대표님 되셨네요!" "창업가시는구나!" "멋있다, 형!" 근데 통장에는 월급이 안 들어온다. 삼성 다닐 땐 25일이면 700만원. 칼같이. 지금은 내가 월급 주는 사람. 근데 나는 못 받는다. 첫 6개월은 저축한 돈으로 버텼다. 아내 월급으로 생활비. 내 통장은 회사 운영비. 명함에는 "대표이사"라고 적혀있다. 근데 실제로 하는 일은:개발자 출퇴근 관리 정부 과제 보고서 작성 VC 콜드메일 보내기 대기업 구매팀 문의 전화 홈페이지 오타 수정 사무실 청소삼성에서는 라인 한 줄 건드리면 수백억 매출에 영향 갔다. 지금은 홈페이지 오타 하나 고치는데 개발자 불러야 한다. 이게 신분상승인가.삼성 출신이라는 무기 PoC 미팅 갈 때마다 소개한다. "삼성전자 기흥 7년 근무했습니다." 분위기가 바뀐다. "아, 그러시면 현장을 아시겠네요." "반도체 공정 경험이 있으시면 우리 라인도 이해 빠르시겠어요." "삼성 출신이면 믿을 만하죠." 대기업 구매팀 담당자들은 삼성 출신을 좋아한다. 검증됐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PoC 3건 중 2건은 "삼성 출신"이라는 말로 문 열었다. 투자자 미팅도 마찬가지. "팀 백그라운드 보니까 대표님 삼성 출신이시네요?" "네, 7년 있었습니다." "도메인 전문성 있으시겠어요. 좋습니다." 명함 한 줄이 브랜드가 된다. 삼성전자. 4글자. 근데 이게 무기인지 족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족쇄가 되는 순간 대기업 PoC 진행 중이다. 상대는 구매팀 과장. 나이 비슷해 보인다. "최 대표님, 그래서 단가가 얼마예요?" "연 6500만원입니다." "아, 그 정도면... 우리가 쓰는 외산 솔루션이 연 8천인데." "네, 그래서 20% 저렴합니다." "근데 레퍼런스가..." 말을 흐린다. "저희 현재 5개사 운영 중입니다." "중소기업들이죠?" "네." "대기업 레퍼런스는?" "첫 케이스가 되실 겁니다." 과장이 웃는다. "첫 케이스요? 저희가요?" 그 웃음에 다 담겨있다. '네가 삼성 나왔으면 삼성 레퍼런스 가지고 나오지.' '지방 스타트업이 우리한테 팔려고?' 'PoC는 해주는데, 본계약은 글쎄.' 미팅 끝나고 KTX 타고 대전 돌아온다. 기흥역 지나간다. 예전 출근하던 역. 저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밖에서 보면 저렇게 높은 벽인지. 연봉 8500에서 0으로 삼성 마지막 해 연봉이 8500만원이었다. 퇴사하던 날 인사팀에서 정산 받았다. 퇴직금 포함 1억 3천. 그게 3년 만에 바닥났다. 창업 1년차: 정부 과제로 버팀. 월급 300만원 꼬박꼬박. 창업 2년차: 매출 발생. 월 400만원. 근데 비용이 월 800만원. 창업 3년차: 매출 600만원. 비용 900만원. 적자 300만원. 지금 내 월급은 0원이다. 직원 6명 월급은 나간다. 4천만원. 사무실 월세. 150만원. AWS 서버비. 80만원. 마케팅비. 50만원. 기타 경비. 120만원. 총 지출 월 4400만원. 매출 600만원. 적자 3800만원. 정부 과제 남은 돈으로 버틴다. 6개월 치. 6개월 안에 대기업 계약 따내거나, 투자 받거나, 접거나. 아내는 모른다. 내 월급이 0원인 걸. 통장에 5천만원 남았다고 했다. 실제로는 2천만원. 밤에 노트북 켜고 VC 메일 쓴다. "안녕하세요, 스마트링크 대표 최지방입니다. 삼성전자 기흥 7년 근무..." 삼성 출신이라는 말 꺼내는 내가 초라하다. 판교와 유성구 주 1회 서울 출장. 판교 스타트업캠퍼스 가면 20대 대표들이 보인다. "저희 시리즈A 30억 받았어요." "개발자 15명 채용 중이에요." "다음 달 판교 더샵 입주합니다." 사무실은 넓고 깨끗하다. 간식은 풍족하다. 직원들은 젊고 밝다. 나는 대전 유성구. 테크노파크 건물은 1990년대 지어졌다. 엘리베이터는 느리다. 사무실 창밖은 산. 근처에는 편의점 하나. 직원 평균 나이 35세. 다들 조용하다. 간식은 커피믹스. 판교 스타트업 채용 공고 보면 부럽다. "시리즈B 투자 유치 완료, 적극 채용 중" "연봉 상한선 없음, 스톡옵션 제공" "판교역 5분 거리, 최신 사무환경" 우리 채용 공고는: "정부 과제 수행 중, 개발자 1명 채용" "연봉 4천~4500만원" "대전 유성구 근무, 주차 가능" 지원자 3명. 2명은 면접 불참. 판교는 넘친다. 대전은 모자란다. 근데 나는 대전을 떠날 수 없다. 아내가 공무원이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닌다. 부모님이 근처 산다. 판교 가면 이 모든 게 무너진다. '지방 스타트업'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그래도 대표는 대표 동창회 갔다. 고등학교 동창. 20년 만에 보는 얼굴들. "야, 최지방이다!" "너 삼성 다닌다며?" "퇴사했어. 창업했어." "헐, 대박. 뭐 해?" "제조업 쪽 SaaS." "...응?" 설명해도 모른다. 그냥 웃는다. 옆에서 친구가 끼어든다. "그러니까 대표라는 거지? 사장?" "뭐, 그렇지." "오, 사장님 됐네!" 분위기가 달라진다. 술 따라준다. 명함 달라고 한다. 사진 찍자고 한다. 근데 속으로는 안다. 이들은 내가 월급 0원인 걸 모른다. 이들은 내가 3800만원 적자인 걸 모른다. 이들은 내가 6개월 안에 투자 못 받으면 접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른다. 그냥 "대표"라는 단어만 듣는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묻는다. "동창들 어땠어?" "그냥 그랬어." "대표 됐다고 부러워하더라?" "...응." 거짓말은 아니다. 부러워하긴 했다. 근데 뭘 부러워하는지 모르고 부러워한다. 신분 같은 건 없다 결론은 없다. 신분상승도 아니고 하락도 아니다. 그냥 다른 삶이다. 삼성 다닐 때:안정적 월급 명확한 업무 큰 조직의 부품 40년 후 퇴직금스타트업 대표:불안정한 수입 모호한 업무 작은 조직의 전부 6개월 후 미래어느 게 나은지 모르겠다. 삼성 다닐 때는 이게 싫어서 나왔다. 지금은 가끔 그때가 그립다. 근데 돌아갈 수는 없다. 명함에 "전 삼성전자" 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삼성 사람이 아니다. PoC 미팅에서 구매팀 과장이 웃을 때, 나는 외부인이다. 판교 스타트업 보면서 부러워할 때, 나는 지방 사람이다. 그래도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한다. 직원들 얼굴 보면 책임감이 생긴다. 대기업 계약서에 사인 받는 날을 상상한다. 시리즈A 투자 받는 날을 꿈꾼다. 그날이 오면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는 힘들었지.' 지금은 그냥 버틴다. 신분상승인지 하락인지 판단은 10년 후에.KTX 안에서 쓴다. 서울 가는 길. 오늘도 미팅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