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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서울 VC에게 콜드메일 보내기의 반복

밤 11시, 서울 VC에게 콜드메일 보내기의 반복

밤 11시, 노트북을 켠다 아이를 재웠다. 아내도 거실 소파에서 졸고 있다. 나는 서재 책상 앞에 앉는다. 노트북을 켠다. VC 리스트 엑셀을 연다. 90개 회사. 초록색은 메일 보냄. 노란색은 답 옴. 빨간색은 거절. 흰색이 오늘 할 일이다. 오늘은 7개를 보낼 예정이다. 월요일엔 10개, 화요일엔 5개. 이렇게 매일 밤 11시부터 12시 반까지가 내 VC 타임이다.커피를 한 잔 더 탄다. 믹스커피. 세 번째다. 메일 템플릿은 20가지 처음엔 한 통 쓰는데 2시간 걸렸다. 지금은 20분이면 쓴다. 템플릿이 20개쯤 있다. "제조업 B2B SaaS", "스마트팩토리", "대전 기반", "삼성전자 출신". 이 키워드 조합으로 20가지 버전을 만들었다. VC마다 포커스가 다르니까. 어떤 곳은 제조업 강조, 어떤 곳은 기술 강조, 어떤 곳은 팀 강조. 크런치베이스에서 그 VC가 어디에 투자했는지 본다. 비슷한 회사 있으면 메일 서두에 쓴다. "귀사가 투자하신 OO와 유사한..." 이런 식으로. 개인화가 중요하다고들 하니까. 실제로 답장률이 5%에서 8%로 올랐다. 3%p가 큰 거다.오늘 첫 번째는 판교에 있는 곳이다. 제조업 포트폴리오가 3개. 시드 중심. 우리랑 맞다. 제목: "[스마트팩토리 SaaS] 삼성전자 출신 창업가, 시드 투자 문의" 본문 400자. 더 길면 안 읽는다는 걸 배웠다. 회신율 8%, 미팅율 1.2% 지난 3개월간 보낸 메일이 127통이다. 회신은 10통. 8%. 그 중 실제 미팅까지 간 건 2건. 1.5%. 한 곳은 15분 줌 미팅 후 "타이밍이 안 맞네요". 다른 한 곳은 IR 자료 요청 후 소식 없음. 근데 나는 계속한다. 왜냐면 이게 유일한 방법이니까. 엑셀러레이터 추천? 우리는 이미 정부 과제로 밸류 50억 잡혔다. 액셀 들어가면 지분 또 내야 한다. 우리 같은 제조업은 엑싯까지 7년 걸린다. 지분 계산이 안 맞는다. 지인 소개? 대전엔 VC 아는 사람이 없다. 서울 친구들은 스타트업 안 한다. 삼성 동기들은 다 본사 갔다. IR 데모데이? 1년에 2번 있다. 근데 그것도 결국 선발이다. 200팀 지원해서 20팀 뽑힌다. 확률 10%. 그럼 콜드메일이 답이다. 무한 시도가 가능하니까. 127통 보내는 데 드는 건 시간뿐이다. 밤 11시부터 12시 반. 나한테 남는 시간이다. "지방 스타트업"이라는 장벽 가끔 답장이 온다. 그럼 기분이 좋다. "IR 자료 보내주세요." 이 한 줄만 와도 좋다. 근데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본사가 대전이시군요. 서울 이전 계획은요?" 이게 3번 중 2번은 나온다. 나는 준비된 답을 한다. "대전은 제조업 인프라가 좋습니다. 고객사들도 충청권에 많고요. 영업 거점은 판교에 있습니다." 실제로 맞는 말이다. 우리 고객 7곳 중 5곳이 대전/청주/천안이다. 공장이 여기 많으니까. 근데 VC들은 고개를 젓는다. "개발자 채용은요?" "후속 투자는요?" "엑싯 시나리오는요?"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서울로 오세요." 나도 안다. 판교 가면 개발자 구하기 쉽다. 네트워킹 이벤트 매주 있다. VC 미팅 잡기 쉽다. 후속 투자 확률 높아진다. 근데 우리 아내는 대전 공무원이다. 6년차. 사표 쓰면 안 된다. 양가 부모님 다 대전이다. 아이 봐주는 분들이다. 어린이집도 여기다. 나 혼자 서울 가서 주말부부? 생각해봤다. 아이가 2살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아빠 없는 주말이 2년 계속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대전에 있다. 매주 화요일 서울 출장 간다. KTX 정기권 끊었다. 한 달 48만원. 회사 돈이다. 오늘도 7통을 보낸다 시계를 본다. 11시 47분. 7통 다 보냈다. 평소보다 빨리 끝났다. 발송함을 확인한다. 134통이 됐다. 127에서 7 더했으니까. 답장이 올까? 모른다. 확률상 0.56통. 한 통도 안 올 확률이 높다. 근데 내일 밤에도 할 거다. 모레도, 다음 주도. 왜냐면 1.5% 미팅율이라도 있으니까. 100통 보내면 1.5번 미팅이다. 200통 보내면 3번이다. 3번 중에 1번은 2차 미팅 갈 수 있다. 통계적으로. 2차 미팅 3번 중에 1번은 투자 검토가 들어간다. 경험상. 그러면 600통 보내야 한 건 성사다. 지금 134통. 466통 남았다. 466을 7로 나누면 66.5일. 2개월 좀 넘는다. 그럼 2월 말에는 한 건 나온다는 계산이다. 물론 확률일 뿐이다. 안 될 수도 있다. 근데 이렇게 계산하면 버틴다. 숫자로 보면 희망이 생긴다. VC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안다 메일 127통 보내고 답장 10통 받으면서 배운 게 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스토리"다. 숫자보다. "삼성전자 기흥 라인에서 불량률 데이터를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 한 줄이 "월 매출 600만원"보다 효과적이다. "대전 제조업 밀집 지역에서 고객을 직접 만나며 제품을 만듭니다." 이게 "MAU 1200명"보다 먹힌다. 그래서 요즘은 숫자를 줄이고 스토리를 늘렸다. 메일 400자 중 150자는 창업 배경이다. 효과가 있다. 회신율이 8%까지 올랐다. 3개월 전엔 5%였다. 근데 미팅율은 안 올랐다. 여전히 1.5%. 왜일까 생각해봤다. 결국 "대전"이 문제다. 아무리 스토리가 좋아도 "본사 어디세요?" 물으면 끝이다. 지방 창업 지원 사업 전문 VC도 있다. 거기도 메일 보냈다. 답 안 온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정부 과제 2억 받았으니까. 그쪽은 초기 중심이다. 결국 일반 VC를 뚫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전이어도 괜찮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어떻게? 실적으로. 지금 대기업 PoC가 2건 진행 중이다. 한 곳은 현대차 협력사. 다른 한 곳은 LG 2차 벤더. 이거 하나라도 계약 전환되면 달라진다. 연 매출 5000만원짜리 고객 하나 잡히면 이야기가 바뀐다. 그럼 메일 서두가 바뀐다. "현대차 협력사 A사에 공급 중인..."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 그때까지 버티는 거다. 밤 11시 메일 보내기로. 엔젤은 6개월 만에 소진 작년 6월에 엔젤 투자 1억 받았다. 지인 소개로. 대전에서 제조업 하시는 분. 우리 제품 써보시고 투자하셨다. 그 돈이 지난달에 떨어졌다. 6개월 만이다. 직원 6명 월급이 1300만원. 사무실 관리비 150만원. 서버비 200만원. 합치면 1650만원. 6개월이면 9900만원. 거의 딱 떨어졌다. 정부 과제 2억은 있다. 근데 이건 R&D 비용이다. 인건비 일부만 쓸 수 있다. 월 300만원 정도. 그래서 지금은 매출로 버틴다. 월 600만원. 모자란 750만원은 어디서 나오냐면, 내 통장이다. 삼성 다닐 때 모은 돈. 퇴직금 포함 1억 2천. 거기서 회사에 넣은 게 5천. 남은 게 7천. 지금 3천 남았다. 4개월 버틸 수 있다. 그 안에 투자 받거나 매출 늘리거나. 그래서 밤 11시가 중요하다. VC 메일이 중요하다. "왜 서울 안 가세요?" 지난주 판교 미팅에서 들은 말이다. 2차 미팅까지 갔다. 드물게. IR 발표 30분 하고 질의응답 20분 했다. 마지막에 파트너가 물었다. "팀이 왜 대전에 있죠? 개발자 채용 어렵지 않나요?" 준비한 답을 했다. "제조업 도메인 특성상 현장이 중요합니다. 고객사 대부분이 충청권입니다. 개발자는 원격으로도 협업 가능하고요." 파트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표정은 아니었다. "원격 개발자 구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시니어 개발자는 다 판교에 있고. 솔직히 서울 오시는 게 회사한테 유리한 거 아닌가요?" 나는 대답 못 했다. 맞는 말이니까. 미팅은 거기서 끝났다. "검토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2주 지났는데 연락 없다. 집에 오는 KTX 안에서 생각했다. '내가 틀렸나?' 아내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여보, 우리 서울 가는 거 어때?" 아내가 바로 답했다. "싫어. 나 여기 6년 다녔어. 승진 2년 남았어. 지금 그만두면 퇴직금 반토막이야." 그러면서 덧붙였다. "당신 회사가 잘 안 돼서 내가 먹여 살릴 수도 있어. 그럴 때 공무원이 중요한 거야." 맞는 말이다. 냉정하게 맞는 말이다. 그날 밤에도 VC 메일을 보냈다. 5통. 평소보다 적게. 콜드메일의 유일한 장점 이게 공짜라는 거다. IR 대행사? 계약금 500만원. 성공 수수료 투자금의 5%. 엑셀러레이터? 지분 5~10%. 소개 수수료? 투자금의 3%. 우리한테는 다 부담이다. 근데 콜드메일은 공짜다. 시간만 든다. 밤 11시부터 12시 반. 하루 1시간 반. 1시간 반이면 710통 보낸다. 한 달이면 210300통이다. 물론 효율은 떨어진다. 회신율 8%. 미팅율 1.5%. 근데 모수를 늘리면 된다. 300통 보내면 미팅 4.5건. 반올림하면 5건. 5건 미팅하면 1건은 2차 간다. 경험상. 2차 3번 하면 1번은 투자 검토 들어간다. 이것도 경험상. 그러면 900통 보내야 한 건 나온다는 계산이다. 900통. 한 달에 250통 쓴다면 3.6개월. 4개월이다. 지금이 12월. 그럼 4월에는 한 건 나온다. 내 통장 3천만원. 4개월 버틴다. 딱 맞다. 이렇게 계산하면 잠이 온다. 어제 답장 한 통 왔다 어제 밤 11시에 메일 확인했다. 답장 한 통 있었다. "IR 자료 주시면 검토해보겠습니다." 강남에 있는 시드 VC다. 제조업 포트폴리오 2개 있다. 나는 바로 답장 보냈다. IR 자료 첨부하고 "감사합니다. 대면 미팅 가능하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썼다. 오늘 오후에 답 왔다. "다음 주 화요일 2시 어떠세요?" KTX 표를 끊었다. 아침 7시 20분. 판교역 9시 도착. 강남까지 30분. 여유 있게 도착한다. 미팅 준비를 시작했다. IR 자료 업데이트. 최근 PoC 현황 반영. 대기업 파트너십 강조. 숫자보다 스토리. 135번째 메일에서 나온 미팅이다. 확률대로다. 이번엔 2차까지 가고 싶다. 그러려면 "대전"을 장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저희는 대전에서 현장 중심으로 일합니다. 고객사 공장까지 차로 20분입니다. 서울은 영업 거점만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프레이밍하기로 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되겠지. 아니면 다음 기회. 136통째 보내면 된다. 오늘도 노트북을 켠다 지금 11시 3분이다. 아이 재웠다. 아내는 방에 들어갔다. 나는 서재에 앉았다. 노트북 켠다. VC 리스트 엑셀. 135통 보냈다. 오늘 7통 더. 첫 번째는 여의도 VC다. 정부 과제 많이 하는 곳. 우리랑 맞을 수 있다. 제목: "[제조업 SaaS] 정부 R&D 2억 운영 중, 시드 투자 문의" 본문 400자. 창업 배경 150자, 트랙션 150자, 미팅 요청 100자. 발송. 두 번째는 판교 초기 전문. 제조업 포트폴리오는 없는데 딥테크 투자한다. 제목 조금 바꾼다. "[스마트팩토리 AI] 삼성전자 출신, 현장 데이터 기반 SaaS" 발송. 이렇게 7통. 11시 58분에 끝났다. 발송함 142통. 내일은 143통부터. 모레는 150통. 다음 주면 160통. 200통 넘으면 미팅이 하나 더 나온다. 통계적으로. 그때까지 버티면 된다.142통째 메일 보냈다. 466통 남았다. 2개월 더.

판교 스타트업 채용공고를 볼 때의 그 기분

판교 스타트업 채용공고를 볼 때의 그 기분

판교 스타트업 채용공고를 볼 때의 그 기분 토요일 밤 11시 아이 재운 뒤 노트북을 켰다. 습관이다. 링크드인 타임라인에 또 올라왔다. 판교 핀테크 스타트업. 시리즈 B 유치 후 대규모 채용. 백엔드 개발자 연봉 8000만원부터 시작. "경력 3년 이상". 우리 회사 시니어 개발자 연봉이 5800만원이다. 스크롤을 내렸다. 더 있다. AI 스타트업. 연봉 7500만원. 스톡옵션 별도. 점심 제공. 도서 구매비 무제한. 경력 2년이면 지원 가능. 우리 회사는 점심 식대 6000원 지원한다. 근처 백반집이 7500원이라 본인 부담 1500원. 창을 닫았다. 다시 켰다. 자꾸 보게 된다.월요일 오전, 개발자 채용 회의 "이력서 5개 들어왔습니다." 인사 담당이 보고했다. 한 달간 올린 공고였다. 5개. 판교 같은 회사는 하루에 50개씩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한 달에 5개. 그것도 경력 미달이 3개. "연봉 협상 가능한가요?" 남은 2명 중 괜찮은 후보가 물었다. 전 카카오 개발자. 경력 4년. 희망 연봉 7200만원. "...최대 6000까지 가능합니다." 전화는 끊겼다. 정중한 거절 문자가 왔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뻔하다. 다른 곳 갔다. 당연히 더 주는 곳으로. 회의실 창밖으로 유성구 풍경이 보인다. 빌딩이 낮다. 하늘이 넓다. 판교는 빌딩이 빽빽하다. 스타트업이 빽빽하다. 돈이 빽빽하다. "다시 공고 올릴까요?" "...네. 올리세요."우리 개발자가 받는 제안 화요일 점심시간. 리드 개발자 민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잠깐 얘기 좀..." 식당 밖에서 섰다. 예상은 했다. "헤드헌터한테 연락 왔어요. 서울 쪽 회사. 연봉 8500 제시하더라고요." 민수 현재 연봉 5800만원. 우리 회사 최고다. 차이가 2700만원. 한 달에 225만원. 세후 150만원 정도 차이. "...어떻게 하실 건데요?" "아직 모르겠어요. 고민 중이에요. 대전 눌러살고 싶긴 한데... 차이가 너무 크네요." "최대한 맞춰보겠습니다." "아뇨, 대표님. 현실적으로 어려운 거 알아요. 저도 회사 사정 아니까." 민수는 창업 멤버다. 3년을 함께했다. 밤샘 개발도 함께했다. PoC 따낼 때 같이 울었다. 서울 회사는 민수를 3개월 알았다. 이력서로. "시간 드릴게요. 천천히 생각하세요." "죄송해요, 대표님." 사과할 일이 아닌데 사과한다. 내가 더 미안하다.숫자로 보는 격차 회사로 돌아와 엑셀을 켰다. 계산해봤다. 우리 회사 전체 인건비: 월 2800만원 (6명) 판교 평균 스타트업 개발자 1명: 월 650만원 우리는 6명 월급이 판교 개발자 4.3명분. 시리즈 A 유치 평균 금액: 서울: 35억원 지방: 8억원 4배 차이. VC 미팅 한 번 잡는 시간: 서울: 3일 대전: 3주 KTX 왕복 비용: 59,800원 한 달 서울 출장 8회: 478,400원 연간: 5,740,800원 이게 교통비만. 숙박비는 별도. 시간은 계산 불가. 엑셀을 닫았다. 숫자를 봐도 답은 없다. 수요일 밤, VC 콜드메일 투자 유치를 위해 메일을 쓴다. "안녕하세요. 대전 기반 제조업 SaaS 스타트업..." '대전 기반'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움찔한다. 설명이 필요한 단어. 핑계처럼 들리는 단어. "현재 대기업 PoC 진행 중이며..." "팀 구성은 삼성전자 출신..." "대전에서도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으며..." 마지막 문장이 거짓말 같다. 훌륭한 인재는 서울로 간다. 연봉이 다르니까. 당연하다. 메일을 20개 보냈다. 답장 올 확률 15%. 그중 실제 미팅까지 가는 확률 30%. 투자로 이어질 확률 5%. 서울 스타트업은? 같은 빌딩에 VC가 있다. 커피 한잔 하자고 한다.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는 KTX를 탄다. 새벽 6시 첫차. 미팅은 오후 2시. 8시간을 이동과 대기에 쓴다. 목요일, 채용 공고 수정 인사 담당이 물었다. "연봉 범위 좀 올릴까요? 6000까지 써놓으면..." "안 됩니다. 없는 돈 쓸 수 없어요." "그럼 다른 복지는요? 도서비라던가..."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요?" "월 10만원...?" 판교는 무제한이다. 우리는 월 10만원이 고민이다. "스톡옵션은 어떻게 어필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시리즈 A도 못 받은 회사 스톡옵션이 얼마나 매력적일까요?" 침묵. 현실을 인정하는 게 먼저다. 우리는 돈으로 이길 수 없다. "대신 이걸 강조하세요. 창업 멤버급 경험. 빠른 성장. 적은 인원이라 모든 걸 다 해볼 수 있다. 대전 생활비는 서울의 70%." "...네." 설득력 있나? 모르겠다. 안 통할 수도 있다. 그래도 쓸 수밖에. 금요일 저녁, 민수의 결정 민수가 말했다. "대표님, 결정했어요." 심장이 빨랐다. "남을게요." "...네?" "제안은 거절했어요. 생각해보니까, 돈만이 다는 아니더라고요. 서울 가면 출퇴근 2시간. 집값은 두 배. 애 어린이집도 다시 알아봐야 하고. 부모님도 여기 계시고." "민수씨..." "대신 조건 있어요. 연봉은 지금 그대로 받을게요. 근데 시리즈 A 받으면, 그때 스톡옵션 좀 더 주세요. 그리고 이번 연도 매출 목표 달성하면 인센티브." "당연히 해드리죠. 고맙습니다." "저도요. 여기서 더 해보고 싶어요. 솔직히." 악수했다. 손에 땀이 났다. 민수가 남은 이유를 분석했다. 가족. 생활비. 부모님. 합리적 이유들. 근데 진짜 이유는 다를 수도 있다. 정. 의리. 함께한 시간. 숫자로 환산 안 되는 것들. 판교 회사는 절대 이해 못 한다. 우리만 아는 가치. 토요일 오후, 가족과 시간 아들과 놀이터에 갔다. 미끄럼틀을 탄다. 웃는다. "아빠, 또!" 다시 태워준다. 10번째. 아내가 옆에 앉았다. "이번 주도 힘들었어?" "응. 민수가 서울 제안 받았었어." "그래? 어떻게 됐는데?" "남기로 했대." "...다행이다. 당신도 좀 쉬어.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쉬운 일이 아니야. 서울 애들은 돈이 쏟아지는데, 우린..." "근데 당신, 서울 가고 싶어?" "...아니. 솔직히 여기가 좋아. 근데 열등감이 들어. 같은 일 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나 싶고." "차이 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서울이 더 크잖아. 대신 우리는 이게 있잖아." 놀이터를 가리켰다. 한산하다. 서울은 대기 30분이라던데. "주말에 부모님도 자주 보고. 출퇴근도 20분이고. 저녁에 애 보고. 이런 거." 맞다. 맞는데. "그래도 가끔은..." "알아. 나도 가끔 서울 공무원 연봉 찾아봐. 300만원 더 받더라. 근데 안 가잖아. 이유가 있으니까." 아들이 뛰어왔다. "아빠! 그네!" 그네를 밀어줬다. 높이 올라간다. 웃음소리. 이게 연봉으로 환산되나. 안 된다. 일요일 밤, 다시 노트북 앞 내일은 월요일. 출근이다. 링크드인을 또 켰다. 습관이다. 판교 스타트업 채용 공고. 연봉 9000만원. 시리즈 C. 유니콘 꿈꾸는 회사. 부럽다. 솔직히. 엄청. 근데 우리도 간다. 더디지만. 다른 방식으로. 대전에서. 적은 돈으로. 그래도 가능한 방식으로. 채용 공고를 하나 더 올렸다. 연봉 5500만원. 솔직하게 썼다. "적은 돈입니다. 서울보다 못합니다. 대신 이런 게 있습니다. 빠른 성장. 핵심 경험. 창업 멤버급 대우. 대전에서의 삶." 올렸다. 누가 볼까. 모른다. 근데 해야 한다. 내일도 출근한다. KTX 정기권 끊었다. 다음 주 서울 VC 미팅 3개. 판교 연봉은 못 준다. 대신 다른 걸 준다. 뭘 주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근데 민수는 남았다. 이유가 있다. 그걸 믿는다.내일도 출근이다. 판교는 여전히 멀다. 연봉 격차는 여전하다. 근데 여기서 한다. 할 수 있다.

지방 창업 지원 사업은 다 신청한다

지방 창업 지원 사업은 다 신청한다

월요일 아침, 또 공고가 떴다 출근하자마자 카톡이 왔다. 대전시 창업 지원 사업 공고. 올해 세 번째다. 커피 마시면서 공고문을 읽는다. 지원 대상, 지원 내용, 제출 서류. 다 똑같다. 사업계획서, 재무제표, 대표자 이력서. 작년에 쓴 거 복붙하면 된다. "또 신청하세요?" 부장이 물었다. "당연하지." 작년에 5개 신청해서 2개 붙었다. 올해는 7개 신청했다. 지금 3개 붙었고, 2개 대기, 2개 탈락. 확률 게임이다.대전시, 충남도, 중기부 내가 노리는 건 크게 세 갈래다. 대전시 사업은 규모가 작다. 3000만원~5000만원. 근데 붙기 쉽다. 대전 소재 기업이면 가점이 크다. 작년에 '대전형 스마트공장 실증' 5000만원 받았다. 충남도 사업은 중간이다. 5000만원~1억. 충남 제조업 특화 사업이 많다. 우리 같은 B2B SaaS는 딱이다. 올해 '충남 제조혁신 바우처' 8000만원 받았다. 중기부 사업은 크다. 1억~3억. 근데 전국 경쟁이라 어렵다. 서류 탈락이 대부분이다. 작년에 '딥테크 예비창업' 지원했다가 1차 탈락. 올해는 '창업도약패키지' 지원했다. 결과 대기 중이다. 셋 다 신청한다. 겹쳐도 상관없다. 어차피 협약 단계에서 조율하면 된다.서류는 다 비슷하다 사업계획서는 템플릿이 있다.사업 개요 (500자) 기술 및 제품 소개 (1000자) 시장 분석 (800자) 추진 계획 (1200자) 재무 계획 (표)작년 거 복사해서 쓴다. 숫자만 바꾼다. 매출 목표, 고용 인원, 투자 유치 계획. "이번엔 뭐가 다른데요?" 부장이 물었다. "글쎄. 사업명이 다르지." 진짜로 그렇다. '스마트공장 실증'이나 '제조혁신 바우처'나 '디지털전환 지원'이나 다 똑같다. 우리 솔루션 설치해주고, 데이터 모니터링하고, 리포트 뽑아주는 거다. 근데 이름이 다르다. 그래서 다 신청한다. 재무제표는 회계사무소에 맡긴다. 월 10만원. 작년부터 고정 비용이다. 사업 신청할 때마다 최신 버전 받는다. 대표자 이력서는 한 번 쓰면 끝이다. 삼성전자 8년, 창업 3년. 숫자만 업데이트한다. 추천서는 교수님한테 받는다. KAIST 산학협력 교수님. 작년에 한 번 부탁드렸더니 "앞으로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하셨다. 감사하다. 행정 업무가 늘어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신청하면 끝이 아니다. 발표 자료 만들어야 하고, 인터뷰 가야 하고, 현장 실사 받아야 한다. 작년에 5개 신청하니까 2개월 동안 발표만 4번 했다. 대전시청, 충남도청, 테크노파크, 창조경제혁신센터. 발표 자료도 다 다르다. 대전시는 15페이지 이내. 충남도는 20페이지 이내. 중기부는 30페이지. 템플릿도 다 달라서 매번 새로 만든다. "대표님, 이번 주 목요일 발표래요." 부장이 말했다. "어디?" "천안. 충남도 사업." "몇 시?" "오후 2시." KTX 표를 끊는다. 대전→천안. 40분. 1시 출발하면 된다. 목요일 아침엔 서울 미팅이 있다. 9시. 끝나고 천안 가면 딱이다. 이게 일상이다.붙으면 일이 더 많다 탈락하면 편하다. 이메일 한 통 오고 끝이다. "귀사의 사업계획서는 아쉽게도..." 복붙 문장. 붙으면 진짜 시작이다. 협약서 쓰고, 통장 만들고, 월별 보고서 쓰고, 정산 자료 제출하고. 1년 내내 한다. 작년에 받은 충남도 8000만원. 매달 보고서 쓴다. A4 5페이지. 이번 달 실적, 다음 달 계획, 예산 집행 내역. 매월 10일까지 제출. 대전시 5000만원은 분기별 보고다. 분기마다 현장 실사 온다. 담당자 2명. 사무실 둘러보고, 직원 인터뷰하고, 장비 확인하고. 2시간. 중기부 과제는 더 세다. 중간 점검, 최종 점검, 추적 점검. 3년 동안 계속 본다. 작년 과제가 올해도 점검 온다. "귀찮지 않아요?" 서울 투자사 대표가 물었다. "귀찮지." "그럼 왜 해요?" "돈 필요하니까." 현실이 그렇다. 우리 같은 초기 스타트업은 정부 과제 없으면 못 버틴다. 월 매출 600만원으로 직원 6명 월급 못 준다. 혹시 모를 기회 올해 신청한 사업 중에 '창업도약패키지'가 있다. 중기부 사업. 3억. 솔직히 기대 안 했다. 서울 쪽 유명한 스타트업들 다 지원한다. 우리 같은 지방 B2B는 경쟁력 없다. 근데 1차 통과했다. 40개 중에 10개. 우리가 들어갔다. "와, 진짜요?" 부장이 놀랐다. "응." 2차는 발표 심사다. 다음 달. 서울 가야 한다. 3억이면 개발자 2명 1년 데이터 분석 인력 1명. 제대로 된 제품 만들 수 있다. 대기업 PoC 넘어서 상용화 가능하다.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다. 만약 올해 신청 안 했으면? 이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다 신청한다. 귀찮아도. 확률이 낮아도. 혹시 모른다. 지방 스타트업의 자구책 서울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는다. 판교 지인은 작년에 시드 10억 받았다. 엔젤 투자자 소개받고, VC 미팅 잡고, 텀싯 받고. 3개월 만에 끝났다. 우리는? 1년 동안 VC 50군데 이메일 보냈다. 미팅 잡힌 곳 5군데. 2차까지 간 곳 1군데. 결과는 패스. "B2B 제조업은 저희 포트폴리오랑 안 맞아요." "지방 소재는 좀..." "팀이 대전에 있으면 관리가 어려워서요." 다 들었다. 그래서 정부 과제를 한다. 지방 기업에게는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 투자 못 받으면 정부 지원금. 매출 안 나오면 R&D 과제. 직원 못 뽑으면 고용 장려금. 창피한가? 아니다. 생존이다. 올해 들어온 돈 총 3억 2000만원. 정부 과제 2억 8000만원. 엔젤 투자 1억. 매출 4000만원. 정부 지원금 없으면 우리는 지금 없다. 월요일 점심, 공고 확인 점심 먹으면서 핸드폰을 본다. 대전시 공식 홈페이지. 충남도 창업 지원 센터. 중소벤처기업부 공고 페이지. 즐겨찾기 해놨다. 새 공고 2개 떴다. '대전형 AI 융합 지원 사업' 5000만원. '충남 수출 바우처' 1억. AI 융합은 우리랑 맞다. 수출 바우처는 애매하다. 근데 일단 저장한다. 오늘 저녁에 공고문 읽어본다. 내일 아침에 신청 여부 결정한다. 되면 이번 주 안에 서류 준비한다. 루틴이다. "또 신청하세요?" 부장이 웃으면서 물었다. "당연하지. 안 하면 바보지." 백반을 먹는다. 7000원. 이 동네는 밥값이 싸다. 서울은 1만 2000원 한다더라. 그것도 지방의 장점이다. 적어도 밥은 싸게 먹는다. 저녁 9시, 공고문 읽는 중 퇴근하고 집에 왔다. 아들이 자고 있다. 아내는 드라마 본다. 나는 노트북을 켠다. '대전형 AI 융합 지원 사업' 공고문. PDF 15페이지. 천천히 읽는다. 지원 대상: 대전 소재 3년 이내 스타트업. 우리 딱 3년차다. 지원 내용: AI 기술 융합 R&D 지원금 5000만원. 6개월 과제. 제출 서류: 사업계획서, 재무제표, 기술 설명서, 추진 일정. 신청 기간: 이번 주 금요일까지. "할 만한데." 혼잣말이 나온다. 기술 설명서만 새로 쓰면 된다. 우리 솔루션에 AI 모델 적용하는 계획. 이미 머릿속에 있다. 내일 오전에 2시간 쓰면 된다. 추진 일정은 템플릿 있다. 1개월 기획, 2개월 개발, 2개월 테스트, 1개월 정리. 복붙한다. 금요일까지 4일. 충분하다. 신청서를 저장한다. 폴더명은 '2025_대전AI융합_지원사업'. 작년 폴더 옆에 놓는다. 올해 12번째 신청이다.지방에서 스타트업 한다는 건 이런 거다. 투자 대신 과제, 네트워크 대신 공고. 귀찮아도 다 신청한다. 혹시 모르니까.

엔젤 투자 1억, 그 돈이 바닥나기까지

엔젤 투자 1억, 그 돈이 바닥나기까지

엔젤 투자 1억, 그 돈이 바닥나기까지 1억이 통장에 들어온 날 2년 전이다. 엔젤 투자금 1억. 통장에 찍힌 숫자 보고 멍했다. 9자리가 내 통장에. 처음이었다. 아내한테 캡처 보냈다. "왔어." 답장은 빨랐다. "축하해. 근데 조심해." 그날 밤 혼자 맥주 한 캔 마셨다. 계획 세웠다. 노트북에 엑셀 켜고 항목 적었다. 개발자 2명, 월 500만원씩. 1년이면 1억 2천. 안 된다. 다시 계산했다. 새벽 2시까지 숫자 만졌다. 결론은 명확했다. "1년 반이 한계다."쓰기 시작하면 빠르다 첫 달에 3천만원 나갔다. 개발자 2명 계약금. 각 500만원. 정부 과제 매칭금 1천만원. 사무실 보증금 600만원. 법인카드 만들고, 회계사무실 계약하고. "이게 맞나?" 생각했다. 근데 멈출 수 없었다. 두 번째 달. 급여 1천만원. 서버비 120만원. AWS 요금이 생각보다 높다. 개발 외주 300만원. UI/UX 디자이너 프리랜서. 세 번째 달. 전시회 부스비 400만원. 명함 못 뿌렸다. 관람객이 제조업 쪽이 아니었다. 마케팅 대행사 계약 500만원. 효과는 모르겠다. 통장 잔액 5,200만원. 6개월도 안 됐다.정부 과제가 숨통이다 R&D 과제 2억 받은 게 다행이다. 근데 이것도 장난 아니다. 매칭금 내야 하고, 정산 빡세고, 인건비 인정 비율 제한 있고. 개발자들 급여 일부만 과제비로 처리된다. 나머지는 자체 부담. 엔젤 투자금으로 메꾼다. 과제 담당자 전화 올 때마다 긴장한다. "서류 보완 필요합니다." 또 야근이다. 아내가 물었다. "정부 과제 없으면 어쩔 거야?" 대답 못 했다. 솔직히 모른다.서울 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KTX 정기권 끊었다. 한 달 35만원. 서울 미팅은 주 2회. VC 만나고, 잠재 고객 만나고, 네트워킹 행사 가고. 점심값, 커피값. 한 번 가면 10만원은 쓴다. 한 달이면 80만원. 판교 영업 거점 직원 한 명. 월급 350만원. 숙소 지원 50만원. 한 달 400만원이다. "서울 안 가면 안 되냐?" 스스로 물어봤다. 안 된다. 투자도, 고객도, 다 서울이다. 대전에서 버티는 게 비용 절감 맞나 싶다. 근데 서울 가면 사무실비가 3배다. 계산기 두드리다 머리 아프다. 개발자 뽑는 데 실패한 돈 채용 공고 3개월 돌렸다. 원티드, 점핏, 로켓펀치. 지원자 2명. 둘 다 최종 면접에서 거절했다. "서울 회사 제안 받았어요." "연봉 차이가 좀..." 할 말 없었다. 헤드헌터 써봤다. 수수료 연봉의 20%. 계약금 300만원 먼저 냈다. 결과는 제로. "대전은 풀이 없어요." 헤드헌터 말이다. 알고 있다. 결국 서울 개발자 주 3일 원격으로 계약했다. 월 600만원. 대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다. 채용 실패에 쓴 돈만 500만원 넘는다. 시간은 계산 안 했다. 매출은 더디고 지출은 빠르다 월 매출 600만원. 고정비는 1,800만원. 개발자 4명 급여 1,500만원. 사무실비 120만원. 서버비 100만원. 기타 100만원. 매달 1,200만원 마이너스다. 엔젤 투자금으로 메꾼다. "언제 손익분기 맞춰요?" IR 때마다 받는 질문이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내년 3분기 목표입니다." 근데 내년 3분기까지 돈이 남아있을까. 엑셀 열어서 런웨이 계산했다. 지금 속도면 8개월이다. 8개월 후면 제로. 대기업 PoC 계약 성사되면 3천만원 들어온다. 그럼 10개월로 늘어난다. 그게 답일까. 아끼려 해도 아낄 데가 없다 사무실 옮길까 생각했다. 지금 보증금 600만원에 월 120만원. 작은 곳 찾아봤다. 80만원짜리. 근데 이사비 200만원. 인터넷 재설치 50만원. 명함 새로 찍어야 하고. 계산하면 6개월 손해다. 개발자 줄일까. 4명을 3명으로. 프로젝트 속도 느려진다. PoC 못 맞추면 3천만원 날린다. 못 줄인다. AWS 비용 줄일까. 서버 최적화 해봤다. 한 달에 10만원 아꼈다. 의미 없다. 내 급여는 이미 제로다. 아내 월급으로 산다. 미안하다. 점심값 아끼려고 도시락 싸온다. 한 달에 15만원 절약. 이게 무슨 의미냐. VC들은 관심이 없다 콜드메일 50통 보냈다. 답장 3통. 미팅 1건. "지방 스타트업은 좀..." 대놓고 말하진 않는다. 분위기로 안다. "대전에서도 잘하시네요." 칭찬 아니다. 놀라는 거다. IR 자료 100번 고쳤다. 투자 제안서 버전 15까지 갔다. 결과는 똑같다.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액셀러레이터 3곳 지원했다. 다 떨어졌다. "제조업 도메인 전문성이 부족해서요." 피드백이다. 정부 과제 성과로는 투자 못 받는다. "매출 트랙션 보여주세요." VC들 말이다. 트랙션 만들려면 돈 필요한데. 돈 받으려면 트랙션 필요하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통장 보는 게 무섭다 요즘 통장 잔액 확인 자주 한다. 하루에 5번. 3,200만원. 어제보다 80만원 줄었다. 급여일도 아닌데. AWS 자동결제였다. 계산기 두드린다. 3,200만원 나누기 1,200만원. 2.6개월. 석 달도 안 남았다. 새벽에 깬다. 통장 생각하면서. 아내는 모른다. 얘기 안 했다. 대기업 PoC 결과 나오는 게 다음 달 말이다. 성사되면 3천만원. 그럼 5개월 더 버틴다. 안 되면? 생각 안 하려고 한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다른 일 찾아볼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한다. 입 밖으로 안 냈다. 아직. 1억이 이렇게 없어지는구나 2년 전 통장에 9자리 찍혔을 때가 기억난다. "이 돈으로 3년은 버틴다."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쓰기 시작하면 빠르다. 급여, 서버비, 출장비, 채용 실패, 마케팅 실패, 전시회 실패. 실패에 쓴 돈이 제일 아깝다. 근데 안 쓸 수도 없었다. 뭐가 먹힐지 모르니까. 엔젤 투자자한테 연락 왔다. "진행 어때요?" 좋다고 했다. PoC 진행 중이라고. 거짓말은 아니다. "추가 투자 생각 있으세요?" 물어볼 뻔했다. 참았다. 아직 성과가 없다. 성과 내야 한다. 석 달 안에.런웨이가 보인다. 끝이 보인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삼성전자 엔지니어에서 지방 스타트업 대표로: 신분상승인가 하락인가

삼성전자 엔지니어에서 지방 스타트업 대표로: 신분상승인가 하락인가

명함 두 개 명함을 두 개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공정기술팀 책임연구원". 2014년부터 2021년까지. 7년. 다른 하나는 "㈜스마트링크 대표이사". 202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3년 2개월. KTX에서 노트북 열고 작업하다가 옆자리 사람이 물어본다. "무슨 일 하세요?" "스타트업 합니다." "어디 다니셨어요?" "삼성전자요." 그 순간 표정이 달라진다. "아, 그래서 창업하셨구나." 근데 속으로는 생각한다. '퇴사한 거지, 창업한 게 아니라.'기흥 7년 기흥 공장 3년 근무하면 반도체 공정 전체가 보인다고 했다. 나는 7년 했다. 클린룸 들어가는 날이 1년에 200일. 방진복 입고 8시간. 에어샤워 지나가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라인 멈추면 억대 손실. 그걸 막는 게 내 일이었다. 밤 11시에 전화 오면 15분 안에 공장 도착. 새벽 2시에 라인 살리고 새벽 4시에 집 도착. 연봉은 1년차 4800만원. 7년차 8500만원. 보너스 포함하면 억 가까이. 대전 아파트 전세 2억 5천. 여유 있었다. 아내도 공무원이라 안정적이었다. 근데 40살까지 이렇게 살 수 없었다. 라인 문제 해결하는 건 잘했다. 근데 내 문제는 못 풀었다. "이게 내 일인가." 3년째 같은 질문. 7년째도 답은 없었다.창업 아닌 퇴사 2021년 9월. 사표 냈다. 팀장이 물었다. "뭐 하려고?" "스타트업 차릴 생각입니다." "아이템은?" "제조업 쪽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요." 팀장은 한숨 쉬었다. "시장 좁아. 삼성 나와서 삼성 상대로 장사하려고?" 맞는 말이었다. 근데 7년 동안 현장에서 본 게 있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MES도 제대로 못 쓴다. 엑셀로 생산 관리한다. 2021년에. 시장은 있다고 생각했다. 정부 R&D 과제 2억 받았다. 엔젤 투자 1억. 총 3억으로 시작. 대전 유성구 테크노파크에 사무실 얻었다. 월세 150만원. 평수는 기흥 사무실의 1/10. 직원은 나 포함 3명. 개발자 2명은 대전대 후배. 연봉 4천. 첫날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 대표다." 근데 실감이 안 났다. 신분상승의 환상 주변에서는 축하했다. "대표님 되셨네요!" "창업가시는구나!" "멋있다, 형!" 근데 통장에는 월급이 안 들어온다. 삼성 다닐 땐 25일이면 700만원. 칼같이. 지금은 내가 월급 주는 사람. 근데 나는 못 받는다. 첫 6개월은 저축한 돈으로 버텼다. 아내 월급으로 생활비. 내 통장은 회사 운영비. 명함에는 "대표이사"라고 적혀있다. 근데 실제로 하는 일은:개발자 출퇴근 관리 정부 과제 보고서 작성 VC 콜드메일 보내기 대기업 구매팀 문의 전화 홈페이지 오타 수정 사무실 청소삼성에서는 라인 한 줄 건드리면 수백억 매출에 영향 갔다. 지금은 홈페이지 오타 하나 고치는데 개발자 불러야 한다. 이게 신분상승인가.삼성 출신이라는 무기 PoC 미팅 갈 때마다 소개한다. "삼성전자 기흥 7년 근무했습니다." 분위기가 바뀐다. "아, 그러시면 현장을 아시겠네요." "반도체 공정 경험이 있으시면 우리 라인도 이해 빠르시겠어요." "삼성 출신이면 믿을 만하죠." 대기업 구매팀 담당자들은 삼성 출신을 좋아한다. 검증됐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PoC 3건 중 2건은 "삼성 출신"이라는 말로 문 열었다. 투자자 미팅도 마찬가지. "팀 백그라운드 보니까 대표님 삼성 출신이시네요?" "네, 7년 있었습니다." "도메인 전문성 있으시겠어요. 좋습니다." 명함 한 줄이 브랜드가 된다. 삼성전자. 4글자. 근데 이게 무기인지 족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족쇄가 되는 순간 대기업 PoC 진행 중이다. 상대는 구매팀 과장. 나이 비슷해 보인다. "최 대표님, 그래서 단가가 얼마예요?" "연 6500만원입니다." "아, 그 정도면... 우리가 쓰는 외산 솔루션이 연 8천인데." "네, 그래서 20% 저렴합니다." "근데 레퍼런스가..." 말을 흐린다. "저희 현재 5개사 운영 중입니다." "중소기업들이죠?" "네." "대기업 레퍼런스는?" "첫 케이스가 되실 겁니다." 과장이 웃는다. "첫 케이스요? 저희가요?" 그 웃음에 다 담겨있다. '네가 삼성 나왔으면 삼성 레퍼런스 가지고 나오지.' '지방 스타트업이 우리한테 팔려고?' 'PoC는 해주는데, 본계약은 글쎄.' 미팅 끝나고 KTX 타고 대전 돌아온다. 기흥역 지나간다. 예전 출근하던 역. 저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밖에서 보면 저렇게 높은 벽인지. 연봉 8500에서 0으로 삼성 마지막 해 연봉이 8500만원이었다. 퇴사하던 날 인사팀에서 정산 받았다. 퇴직금 포함 1억 3천. 그게 3년 만에 바닥났다. 창업 1년차: 정부 과제로 버팀. 월급 300만원 꼬박꼬박. 창업 2년차: 매출 발생. 월 400만원. 근데 비용이 월 800만원. 창업 3년차: 매출 600만원. 비용 900만원. 적자 300만원. 지금 내 월급은 0원이다. 직원 6명 월급은 나간다. 4천만원. 사무실 월세. 150만원. AWS 서버비. 80만원. 마케팅비. 50만원. 기타 경비. 120만원. 총 지출 월 4400만원. 매출 600만원. 적자 3800만원. 정부 과제 남은 돈으로 버틴다. 6개월 치. 6개월 안에 대기업 계약 따내거나, 투자 받거나, 접거나. 아내는 모른다. 내 월급이 0원인 걸. 통장에 5천만원 남았다고 했다. 실제로는 2천만원. 밤에 노트북 켜고 VC 메일 쓴다. "안녕하세요, 스마트링크 대표 최지방입니다. 삼성전자 기흥 7년 근무..." 삼성 출신이라는 말 꺼내는 내가 초라하다. 판교와 유성구 주 1회 서울 출장. 판교 스타트업캠퍼스 가면 20대 대표들이 보인다. "저희 시리즈A 30억 받았어요." "개발자 15명 채용 중이에요." "다음 달 판교 더샵 입주합니다." 사무실은 넓고 깨끗하다. 간식은 풍족하다. 직원들은 젊고 밝다. 나는 대전 유성구. 테크노파크 건물은 1990년대 지어졌다. 엘리베이터는 느리다. 사무실 창밖은 산. 근처에는 편의점 하나. 직원 평균 나이 35세. 다들 조용하다. 간식은 커피믹스. 판교 스타트업 채용 공고 보면 부럽다. "시리즈B 투자 유치 완료, 적극 채용 중" "연봉 상한선 없음, 스톡옵션 제공" "판교역 5분 거리, 최신 사무환경" 우리 채용 공고는: "정부 과제 수행 중, 개발자 1명 채용" "연봉 4천~4500만원" "대전 유성구 근무, 주차 가능" 지원자 3명. 2명은 면접 불참. 판교는 넘친다. 대전은 모자란다. 근데 나는 대전을 떠날 수 없다. 아내가 공무원이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닌다. 부모님이 근처 산다. 판교 가면 이 모든 게 무너진다. '지방 스타트업'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그래도 대표는 대표 동창회 갔다. 고등학교 동창. 20년 만에 보는 얼굴들. "야, 최지방이다!" "너 삼성 다닌다며?" "퇴사했어. 창업했어." "헐, 대박. 뭐 해?" "제조업 쪽 SaaS." "...응?" 설명해도 모른다. 그냥 웃는다. 옆에서 친구가 끼어든다. "그러니까 대표라는 거지? 사장?" "뭐, 그렇지." "오, 사장님 됐네!" 분위기가 달라진다. 술 따라준다. 명함 달라고 한다. 사진 찍자고 한다. 근데 속으로는 안다. 이들은 내가 월급 0원인 걸 모른다. 이들은 내가 3800만원 적자인 걸 모른다. 이들은 내가 6개월 안에 투자 못 받으면 접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른다. 그냥 "대표"라는 단어만 듣는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묻는다. "동창들 어땠어?" "그냥 그랬어." "대표 됐다고 부러워하더라?" "...응." 거짓말은 아니다. 부러워하긴 했다. 근데 뭘 부러워하는지 모르고 부러워한다. 신분 같은 건 없다 결론은 없다. 신분상승도 아니고 하락도 아니다. 그냥 다른 삶이다. 삼성 다닐 때:안정적 월급 명확한 업무 큰 조직의 부품 40년 후 퇴직금스타트업 대표:불안정한 수입 모호한 업무 작은 조직의 전부 6개월 후 미래어느 게 나은지 모르겠다. 삼성 다닐 때는 이게 싫어서 나왔다. 지금은 가끔 그때가 그립다. 근데 돌아갈 수는 없다. 명함에 "전 삼성전자" 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삼성 사람이 아니다. PoC 미팅에서 구매팀 과장이 웃을 때, 나는 외부인이다. 판교 스타트업 보면서 부러워할 때, 나는 지방 사람이다. 그래도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한다. 직원들 얼굴 보면 책임감이 생긴다. 대기업 계약서에 사인 받는 날을 상상한다. 시리즈A 투자 받는 날을 꿈꾼다. 그날이 오면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는 힘들었지.' 지금은 그냥 버틴다. 신분상승인지 하락인지 판단은 10년 후에.KTX 안에서 쓴다. 서울 가는 길. 오늘도 미팅 3개.

KTX 정기권이 나의 사무실이 된 지 1년

KTX 정기권이 나의 사무실이 된 지 1년

KTX 정기권이 나의 사무실이 된 지 1년 알람이 울린다. 월요일 아침 6시 47분. KTX 첫 차 타려면 6시 50분까지 역에 도착해야 한다. 25분밖에 없다. 집에서 대전역까지 15분. 계산이 안 맞는다. 어제부터 이미 짐을 다 챙겨뒀다. 양치질하고 옷만 입으면 된다. 아내는 아직 자고 있다. 2살 아들도. "가고 와." 문자로만 남기고 나간다. 문구점 가 듯이. 차에 올라탄다. KTX 타기 전에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와 계란말이를 산다. 이게 아침 식사다. 밥을 먹을 시간이 없다. 역에서 뛰어간다. 어제도, 그저께도, 지난 일 년도 이렇게 뛰었다.6시 58분, 승차 승차 벨이 울린다. "다음 정거장은 서울." 정기권을 찍고 들어간다. 같은 차량, 같은 자리. 2-C. 창가 자리. 창문 옆에 콘센트가 있다. 이게 내 자리다. 1년 동안 여기서만 일한다. 노트북을 켠다. 시동이 걸릴 때까지 커피를 마신다. 화면이 켜진다. 시간이 벌써 7시 3분. 서울 도착은 9시 정도. 105분의 업무 시간이 생겼다. 슬랙 확인. 메시지 7개. 대전 본사 팀원들 밤 10시에 보낸 것들. "CEO님, 삼성 담당자가 자료 요청했어요" "내일 VC 콜 시간 확인 가능할까요?" "개발 진행 상황 보고 있습니다"105분. 이 시간 안에 회신하고, 피칭 자료 업데이트하고, 발표 연습도 해야 한다. 할 것들을 메모한다.삼성 자료 수정 (15분) 원스톱 펀딩 VC 피치덱 V7 → V8 (40분) 대전 팀 슬랙 회신 (10분) 오후 미팅 체크리스트 정리 (20분)계산이 안 맞는다. 105분에 85분을 넣으려고 한다. 근데 매주 이렇게 한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춘다. 익숙하다. KTX 흔들림 속에서 일하기도 이제 습관이다. 맞춤법 틀려도 나중에 수정하면 된다. 일단 빨리. 빨리 해야 한다. 옆 좌석엔 할머니가 앉아 있다. 종로 갈라고. 처음 3개월은 신경 썼다. 내가 노트북하고 있으니까 자기도 괜찮나 싶고.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본다. 할머니도 내 노트북을 안 본다. 이게 예의다. 대전을 떠나고 2시간 50분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할 일의 60%는 끝난다. "이거 왜 기차에서 보내요?" 판교 VC 담당자가 물었다. 메일 타임스탬프를 봤나 본다. 아침 7시 45분. KTX 안에서 보낸 거다. "이동 중입니다." 이렇게만 썼다. 더 이상 설명하기 싫다. 설명해도 이해 못 할 것 같다. 그 담당자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판교에서 일한다. 대전이 어디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대전공. 농구팀 아니냐고. 농구팀도 있긴 하다. KTX에서 일하는 게 낭만적으로 들릴 줄 알았다. "오, 기차에서도 일하시네요. 멋있네요." 이렇게 말해줄 줄 알았다. 현실은 다르다. "기차에서 일하신다니까 좀 불안정하지 않나요?" 그 말이 더 자주 나온다. 회사가 불안정해 보인다는 뜻이다. 그게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마이너스다. 이미.대전 같은 곳에선 이게 정상이다 처음 사람들한테 설명했을 때 반응이 이랬다. "KTX요? 왜?" "대전에서 일할 수 없으니까요." "아, 서울이 손해가 되지 않나요?" KTX 정기권이 월 26만 원이다. 아메리카노와 계란말이가 6천 원. 일 년에 312만 원의 정기권. 52주 × 2회. 104일을 KTX에서 산다. 하루 3시간. 총 312시간. 연간 312시간을 기차 안에서 일한다. 임차료로 계산하면 시간당 1만 원이다. 그런데 정기권을 안 끊으면 어쩌나. VC들은 서울에만 있다. 우리 고객도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다. 제조업 기업들이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다. 팩토리는 지방에 있어도. 대전에서 일하려고 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개발자 없나요?" 대전에는 없다. 진짜로. 우리가 필요한 임베디드 리눅스 엔지니어 구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 연봉 6500만 원, 대전으로 와서 5000만 원 받겠어? 아무도 안 온다. "사무실 없나요?" 판교 스타트업 오피스. 월 200만 원 정도. 대전 일반 사무실. 월 100만 원. 근데 스타트업들은 판교로 간다. 생태계가 있으니까. 대전엔 뭐가 있나. 정부 과제 설명회. 이게 다다. 그래서 나는 KTX를 탄다. "이 정도면 충청권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요." 지난달 충청권 창업 연합회에서 누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가장 슬펐다. 열심히 한다는 건 정상이어야 한다는 뜻이니까. 105분의 루틴 월요일. 오전 회차. 7시 정기권 체크. 07:03 노트북 ON. 07:15 삼성 자료 수정 완료. 07:55 VC 피치덱 수정 버전 저장. 08:22 팀 회신 완료. 08:45 오후 미팅 프레임 정리. 매주 반복이다. 수요일. 오후 회차. 16시 대전역 탑승. 16:05 메일 체크. 16:20 고객 보고서 작성 시작. 17:10 슬라이드 정렬. 17:45 코드 리뷰 (개발팀이 보낸 영상). 18:10 내일 미팅 주요 포인트 정리. 105분씩 두 번. 주 210분. 한 달 840분. 일 년 10080분. 그 시간에 뭘 했나.피치덱: V1 → V9 (8번 수정) VC 미팅: 17곳 (3곳 2차, 1곳 3차) 고객 제안서: 12개 회사 팀 온보딩: 개발자 3명 (근데 2명 떠남. 원격 근무는 아니었고, 연봉이었다) 정부 과제 지원서: 4개 (2개 통과)생산성이 높나. 그냥 바쁜 거 아닌가. 구분 못 한다.아내의 침묵 "또 간다고?" 아내가 몇 달 전에 물었다. 월요일 아침. "응. 미팅이 3개 있어." "한두 번도 아니고, 매주?" "응." "아이 많이 봐." 이 말이 전부다. 아내는 대전에서 공무원이다. 월급이 나온다. 계획이 있다. 휴가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나는 매주 두 번 사라진다. "엄마는 어디 가?" 2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 말고 아빠 말이다. 엄마가 말해줘. "아빠는 서울." "아빠 일?" "응. 아빠 일이 서울에 있어." 이제 아들은 물어보지 않는다. 나가는 게 정상이 됐다. 아빠는 월요일과 수요일에 없는 엄마, 할머니 품에 있는 아이다. 이게 정상인가. 모르겠다. 아내는 주말에 "충전"이라는 말을 쓴다. "주말에 충전할 시간이 있어?" "일이 있으니까." "일이 항상 있지. 아들 봐." 주말에도 노트북을 켜고 앉는다. 정부 과제 보고서. IR 자료. 다음 주 미팅 준비. 아들이 노트북 화면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다. 자유로운 선. 마우스 커서 같은 선. "아, 저장 안 했는데." 다시 켜기 귀찮다. 그냥 남겨둔다. 1년이 끝나고 정기권을 또 샀다. 계약 기간이 끝나서 새로 사는 거다. 26만 원. 카드를 긋는다. 익숙하다. 마치 월급 내는 것처럼. 얼마 전 투자 미팅이 있었다. 판교의 한 VC. "왜 대전에 있어요?" 또 이 질문이다. "제조업 고객이 충청권이 중심이고. 개발팀도 여기 있습니다." "근데 불편하지 않나요?" "KTX 정기권 있잖아요." "아." 그 이후로 투자 회신이 없다. 메일로 답장이 왔다. "현재로선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맞지 않는다. 우리가 아니라 상황이. 아니, 우리가. 둘 다 맞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도 KTX를 탄다. 월요일 아침 6시 50분. 또 뛸 것 같다. "가고 와." 아내에게 문자를 쓴다. 아들은 아직 자고 있을 것이다. KTX 정기권을 떼기 전에, 뭔가 바뀔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탈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