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Jan, 2026
대전도 괜찮아요: 자주 외치는 말
오늘도 그 말을 했다 판교에서 미팅 끝나고 나왔다. VC 파트너가 물었다. "왜 서울로 안 오세요?" 나는 자동으로 답했다. "대전도 괜찮아요. 제조업은 현장이 중요하거든요." KTX 타고 돌아오는데 생각났다. 이게 몇 번째 하는 말인가. 작년 IR 피칭 6번. 엔젤 투자자 미팅 12번. 정부 과제 발표 4번. 매번 같은 질문, 매번 같은 대답. "대전에서도 충분히 사업할 수 있습니다." 입에서 자동으로 나온다. 준비한 것도 아닌데.준비된 논리 이젠 논리가 체계화됐다. 머릿속에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처럼 정리돼 있다. "첫째, 제조업 도메인입니다. 고객사 공장이 충청권에 많아요. 현장 대응이 빠릅니다." "둘째, 인건비 효율입니다. 서울 시니어 개발자 연봉으로 대전에선 두 명 뽑습니다." "셋째, 정부 지원 사업입니다. 대전은 R&D 예산 따기 유리해요." "넷째, 삶의 질입니다. 출퇴근 30분, 주거비 절반, 아이 키우기 좋죠." IR 덱에도 넣어놨다. '왜 대전인가' 슬라이드. 투자자들 질문 나오기 전에 먼저 설명한다. 근데 이상하다. 설명하면 할수록 변명처럼 들린다. 실제로 괜찮은가 솔직히 따져보자. 제조업 현장 대응? 우리 고객사 절반은 경기도다. 대전에서 2시간 걸린다. 판교 사무실 있으면 30분이다. 인건비 효율? 시니어 개발자를 못 구한다. 대전 개발자 커뮤니티가 작다. 결국 서울 연봉 맞춰줘야 오는데, 그럼 의미 없다. 정부 과제? 맞다. R&D 예산은 잘 딴다. 근데 그게 전부다. VC 투자는 서울 가야 받는다. 대전에서 만난 투자자 0명. 삶의 질? 이건 맞다. 출퇴근 편하다. 아내 직장 안정적이다. 부모님 가깝다. 근데 사업과 무슨 상관인가. 결론: 반만 진실이다.진짜 이유 왜 대전에 있나. 진짜 이유. 아내가 공무원이다. 대전시청 7년차. 연봉 4500만원. 우리 회사보다 안정적이다. 서울 가면 그만둬야 한다. 부모님이 대전이다. 아들 어린이집 데려다주신다. 주말에 봐주신다. 서울 가면 육아 다 우리가 한다. 나도 솔직히 편하다. 출근 20분. 점심 단골집 있다. 헬스장 5분 거리. 서울 가면 출퇴근 2시간이다. 그리고 무섭다. 서울 가면 경쟁이 보인다. 판교 스타트업들 채용 공고 본다. 우리보다 두 배 빠르다. 투자 규모가 다르다. 대전에 있으면 비교 대상이 적다. '충청권 스타트업 중에선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게 진짜 이유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미팅에서 "왜 서울 안 가세요?" 질문 나온다. 0.5초 안에 느낀다. '아, 이 사람 우리 별로 관심 없구나.' 서울 VC들은 안다. 지방 스타트업의 한계를. 개발자 채용 어렵다. 네트워크 약하다. 스케일 안 된다. "대전도 괜찮아요" 말하는 순간, 나는 변명하고 있다. IR 끝나고 나온다. 파트너가 명함 주면서 말한다. "서울 오시면 연락 주세요." 투자 안 한다는 뜻이다. KTX 타고 돌아온다. 노트북 켠다. 메일 쓴다. "오늘 미팅 감사했습니다. 대전에서도 충분히 성장 가능한 모델입니다." 보내놓고 생각한다. 누구를 설득하려는 건가. 상대방인가, 나 자신인가.창업 커뮤니티에서 대전 스타트업 모임 간다. 월 1회. 참석자 15명 정도. 다들 비슷하다. 제조업, 바이오, 정부 과제. 매출 10억 이하. 직원 10명 이하. 술 한잔 하면 나온다. "서울 갈까 말까" 고민. 다들 한 번씩 했다. 누군가 말한다. "대전도 괜찮지 않아요? 여기도 인재 있고." 다들 고개 끄덕인다. 근데 눈빛은 다르다. 작년에 서울 간 팀 있다. 6개월 만에 시리즈A 50억 받았다. 우리 모임에서 제일 잘나갔던 팀. 이제 그 팀 얘기 안 한다. 비교되니까.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다들 말한다. 근데 카톡방은 조용하다. 숫자로 보면 냉정하게 보자. 대전 스타트업 VC 투자 유치: 작년 3건. 서울: 547건. 대전 스타트업 시리즈A 이상: 12개사. 서울: 600개사 이상. 대전 테크 스타트업 개발자 채용 공고: 평균 지원자 2.3명. 서울: 평균 15.7명. 대전 스타트업 네트워킹 행사: 월 23회. 판교: 주 56회.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대전도 괜찮다"는 말, 숫자로는 안 괜찮다. 작년 이맘때 작년 11월. 서울 VC 파트너가 말했다. "본사 서울로 옮기면 투자 검토하겠습니다." 밤새 고민했다. 아내랑 이야기했다. "서울 가볼까?" 아내가 물었다. "당신 정말 가고 싶어?" 나는 대답 못 했다. 회사 가고 싶다. 사업 키우고 싶다. 근데 서울 가고 싶지 않다. 모순이다. 결국 안 갔다. VC한테 메일 보냈다. "저희는 대전에서 계속하겠습니다. 제조업 특성상 현장 밀착이 중요해서요." 답장 안 왔다. 3개월 뒤 다른 VC 미팅 갔다. 또 같은 질문. "왜 서울 안 가세요?" 또 같은 대답. "대전도 괜찮아요." 진심과 자기최면 이 말이 진심인가. 50%는 진심이다. 대전도 장점 있다. 생활비 싸다. 출퇴근 편하다. 정부 지원 받기 좋다. 50%는 자기최면이다. '여기서도 된다' 믿어야 버틴다. 안 믿으면 불안하다. IR 때마다 외친다. "대전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외치다 보면 믿게 된다.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뭐가 되나. 서울 가야 한다. 근데 못 간다. 그럼 포기해야 한다. 포기 안 하려면 믿어야 한다. 그래서 외친다. "대전도 괜찮아요." 대표는 영업이다 창업하고 배웠다. 대표는 영업맨이다. 투자자한테 회사 판다. 직원한테 비전 판다. 고객한테 솔루션 판다. 나 자신한테도 판다. "여기서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연습한다. 거울 보고 말한다. "대전도 괜찮아요." 표정 연습한다. 자신감 있게. 미팅 전날 밤. 예상 질문 적는다. "왜 서울 안 가세요?" 답변 쓴다. 외운다. KTX에서 리허설한다. 속으로 말한다. "대전에서도 충분히 사업할 수 있습니다." 미팅장 들어간다. 웃는다. 말한다. 집에 온다. 거울 본다. 피곤하다. 어제 판교에서 어제 미팅. 스타트업 대표 만났다. 나랑 비슷한 업종. 작년에 시리즈A 받았다. 점심 먹으면서 물었다. "힘든 거 없으세요?" 그가 말했다. "개발자 채용이요. 지원자는 많은데 다 주니어예요. 시니어는 네이버 카카오 가죠." 나는 말했다. "저희는 지원자가 없어요." 그가 웃었다. "대전이시잖아요." 나도 웃었다. "네, 대전도 괜찮긴 한데요." 그는 안 물었다. '뭐가 괜찮은데요?' 안 물어서 다행이다. 대답 준비 안 했다. 아내가 아는 것 아내는 안다. 내가 불안한 거. 주말에 노트북 켜놓으면 안다. 또 서울 스타트업 채용 공고 보는 거. VC 메일 쓰고 있으면 안다. 또 '대전도 괜찮다' 문장 넣는 거. 말은 안 한다. 그냥 커피 타준다. 한 번 물었다. "서울 가고 싶어?" 나는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 아내가 말했다. "거짓말." 나는 웃었다. "반만 거짓말." 아내도 웃었다. "어느 반?" 대답 못 했다. 나도 모르겠다. 다음 주 IR 다음 주 또 서울 간다. 액셀러레이터 IR. 20개 팀 피칭. 자료 준비했다. '왜 대전인가' 슬라이드 넣었다. 4가지 이유 적었다. 리허설했다. 타이머 켰다. 3분 30초. 딱 맞다. 거울 보고 연습했다. "대전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목소리 자신감 있게. 준비 끝났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저번 IR 때 투자자 표정. 내가 "대전도" 말하는 순간 미묘하게 바뀌는 눈빛. '아, 이 팀은 아니구나' 하는 표정. 다음 주도 볼 것 같다. 그 표정. 그래도 말할 것이다. "대전도 괜찮아요." 안 말하면 뭐라고 하나. 솔직히 말할까. "서울 가고 싶은데 못 가요. 집안 사정이요." 그럼 더 안 될 것 같다. 커피 내리면서 사무실 커피 내린다. 직원들 출근 전. 조용하다. 창밖 본다. 대덕연구단지 보인다. KAIST 보인다. 멀리 계룡산 보인다. 여기도 나쁘지 않다. 진짜로. 공기 좋다. 출퇴근 편하다. 단골집 있다. 익숙하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판교 카페에서 본 풍경. 스타트업 대표들 모여 있던 거. 다들 자연스럽게 네트워킹하던 거. 대전엔 그런 카페 없다. 커피 마신다. 쓰다. 노트북 연다. 메일함 본다. "왜 서울 안 오세요?" 질문 들어간 메일 3개. 답장 쓴다. 복붙한다. "대전도 괜찮습니다" 문장. 보낸다. 창밖 다시 본다.매번 외치는 말. "대전도 괜찮아요." 반은 진심, 반은 자기최면. 근데 외치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오늘도 연습한다. 다음 주 IR 자료에 또 넣는다. '왜 대전인가' 슬라이드. 언젠가 진짜 믿게 될까. 아니면 계속 외치기만 할까. 모르겠다. 일단 오늘도 출근한다. 여기서.
- 28 Dec, 2025
제조업 현장을 아는 것: 강점이자 고민
기흥 공장 7년 삼성전자 기흥 라인에서 7년 일했다.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 24시간 돌아가는 현장. 설비 하나 멈추면 시간당 몇천만원 날아간다. 그때는 몰랐다. 그 7년이 나중에 무기가 될 줄. 창업하고 나서 알았다. 현장을 아는 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우리 솔루션 데모할 때마다 느낀다. 고객사 공장장님들 눈빛이 달라진다. "이거 현장 아시는 분이 만드셨네요." 그 한마디가 계약으로 이어진다. 기술보다 신뢰다.경쟁사는 모른다 경쟁 PT 들어가면 안다. 소프트웨어 회사들. 대부분 현장을 몰라. "저희 AI가 불량률 30% 줄입니다." "어떤 공정에서요?" "...모든 공정에서 가능합니다." 말이 안 된다. 사출이랑 프레스가 같을 리 없다. 현장 사람들은 안다. 저런 말 하는 순간 끝이다. 우리는 다르게 접근한다. "사출 공정이시죠? 금형 온도 센서 몇 개 달려있나요?" "6개요." "그럼 우리 솔루션으로 8개로 늘리고, 온도 편차 실시간 모니터링하면 불량률 12% 정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구체적이다. 현실적이다. 고객이 고개를 끄덕인다. 경쟁사 IR 자료 보면 웃긴다. 공장 사진은 게티이미지에서 다운받은 것. 용어는 인터넷에서 긁어온 것. 현장 사람들은 한 번에 안다. 우리는 기흥에서 찍은 내 사진을 쓴다. 허락받고. 실제 라인 사진. 그게 신뢰다.현장의 언어 지난주 충주 공장 미팅. 생산관리 부장님. "CT가 지금 85초인데요." "목표는요?" "75초로 줄이고 싶은데 병목이 3공정이에요." CT. Cycle Time. 생산 사이클 시간. 현장 용어다. 설명 안 해도 안다. 3공정 병목. 바로 이해한다. 경쟁사였으면 물어봤을 것이다. "CT가 뭐죠?" 그 순간 끝이다. 현장 사람들은 설명하기 귀찮아한다. 모르면 그냥 다른 업체 부른다. 우리 개발자들한테도 가르친다. 현장 용어. 공정 흐름. 설비 구조. 코드 짜기 전에 먼저 배운다. "이거 왜 배워야 하나요? 개발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처음엔 다들 그렇게 묻는다. 한 달 지나면 안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이해하려면 현장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걸. 하지만 문제도 있다 현장을 너무 안다는 게 독이 될 때가 있다. 투자자 미팅. 판교 VC 파트너님. "시장 규모가 얼마나 되나요?" "국내 제조업체 중 직원 100명 이상이 약 3500곳이고요." "그게 TAM인가요?" "실제로는 그 중 자동화 여력 있는 곳이 30% 정도라서..." 파트너님 표정이 굳는다. "왜 30%만 되는데요? 다 필요한 거 아닌가요?" 설명한다. 현장 이야기를. 영세 공장은 투자 여력이 없다는 것. 수작업이 더 싸다는 것. 사장님이 IT 자체를 안 믿는다는 것. "그럼 시장이 너무 작은데요." 현실이 그렇다. 근데 투자자는 큰 숫자를 원한다. 현장을 아니까 솔직하게 말한다. 그게 마이너스가 된다. 서울 스타트업들 IR 보면 다르다. TAM 10조. SAM 3조. 근사하게 뻥튀기한다. 투자 받는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말한다. 투자 안 받는다. 이게 맞는 건가. 가끔 모르겠다.제품 개발의 딜레마 우리 솔루션은 현실적이다. 과하지 않다. 딱 필요한 기능만 있다. "AI 예측 정확도가 왜 82%인가요? 95% 이상 만들어야죠." 현장에서는 82%면 충분하다. 95%는 과적합이다. 실제 라인에서는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안다. 기흥에서 겪었다. 근데 고객은 95%를 원한다. 숫자만 본다. 경쟁사는 95%라고 쓴다. 데모 환경에서만 돌아간다. 실제 현장 가면 70%도 안 나온다. 근데 계약은 따낸다. 우리는 정직하게 82%라고 쓴다. 실제 현장에서 82% 나온다. 근데 계약 못 따낸다. 이게 맞나. 현장을 아는 게 맞나. 모르는 척하고 뻥치는 게 나을까. 밤마다 고민한다. 개발팀장 민수가 말했다. "대표님, 우리도 그냥 95%라고 쓰면 안 돼요? 어차피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화가 났다. 근데 뭐라 말 못 했다. 민수 말도 틀린 건 아니니까. 채용의 어려움 현장 경험자를 뽑고 싶다. 제조업 경력 있는 개발자. 근데 없다. 대전에는. 서울은 다르다. 제조업 출신 개발자들이 많다. 스타트업도 많다. 선택지가 많다. 대전은 그냥 없다. 있어도 대기업 붙잡고 있다. 연봉 맞춰줄 수도 없다. 그래서 현장 모르는 개발자를 뽑는다. 가르친다. 3개월 걸린다. 그 사이 다른 스타트업으로 간다. 서울로. "죄송합니다 대표님. 더 좋은 기회가 와서요." 다시 뽑는다. 다시 가르친다. 반복한다. 현장을 아는 게 강점이라면서. 그걸 전파할 사람이 없다. 아이러니다. 혼자 알고 있으면 뭐하나. 회사가 커지려면 팀이 알아야 하는데. 고객이 아는 것 그래도 고객은 안다. 우리가 진짜라는 걸. 천안 자동차 부품 공장. 두 달 전 PoC 끝났다. 어제 전화 왔다. "최 대표님, 우리 본계약 하려고요." "감사합니다. 금액은..." "조달청 가격 그대로 하죠. 대신 다른 라인도 해주세요." 2500만원. 3개 라인 확장. 연 매출 1억 고객 되는 거다. "경쟁사 3곳 더 봤는데요. 최 대표님이 제일 현장을 아시더라고요. 믿고 갑니다." 그 말 듣는 순간. 기흥 7년이 떠올랐다. 야근하던 날들. 설비 앞에서 모니터 보던 시간들. 헛되지 않았다. 지금 쓰인다. 투자자는 모른다. 이 가치를. 현장을 아는 게 얼마나 큰 해자인지. 천천히 간다. 우리 속도로. 고객이 알아주는 속도로. 제조업의 미래 요즘 뉴스 보면 AI다 뭐다 시끄럽다. 제조업은 망한다고 한다. 다 로봇이 대체한다고. 웃긴다. 현장 가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다. 제조업은 안 없어진다. 방법이 바뀔 뿐이다. 더 스마트해질 뿐이다. 그 중간에 우리가 있다. 현장과 기술을 연결하는. 현장 없는 기술은 뜬다. 기술 없는 현장은 죽는다. 둘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 사람이다. 기흥에서 배웠다. 창업해서 실천한다. 느리다. 맞다. 서울 스타트업들보다 느리다. 덜 화려하다. 근데 우리는 진짜다. 현장이 증명한다. 고객이 증명한다.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은. KTX 안에서 다음 주 또 서울 간다. VC 2곳 미팅. 정부 과제 발표. 저녁에는 제조 스타트업 모임. KTX 시간표 확인했다. 6시 반 첫차. 8시 반 도착. 미팅 9시. 노트북 챙긴다. 가는 길에 IR 자료 고친다. 어떻게 설명할까. 현장의 가치를. TAM 숫자 말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공장들이 보인다. 평택. 천안. 저기도 우리 고객될 곳들이다. 숫자로 설명 못 하는 시장. 현장 가봐야 아는 니즈. 그게 우리 강점이다. 투자자가 모르면 어쩔 수 없다. 고객은 안다. 그걸로 버틴다. 기흥 7년. 창업 3년. 앞으로 얼마나 더 갈까. 모른다. 근데 계속 간다. 현장을 아니까. 그게 내 무기니까.현장 아는 게 답이다. 느려도.
- 27 Dec, 2025
'지방 스타트업'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
오늘도 '대전의' IR 자료 검토 메일이 왔다. "대전의 스마트팩토리 스타트업 지방의..." 다시 왔다. 이 단어. 커피를 마셨다. 세 번째다. 창밖을 봤다. 유성구 테크노밸리. 나쁘지 않은데. 그런데 소개될 때마다 '대전'이 먼저 붙는다.작년 겨울 컨퍼런스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였다. "다음은 대전에서 오신 최지방 대표님입니다." 박수. 그리고 시선. '아, 지방에서 왔구나.' 피칭 10분. 기술력 설명 8분. 질의응답에서 첫 질문. "대전에 있으면 개발자 채용이 힘들지 않나요?" 기술 질문은 없었다. 솔루션 아키텍처는 안 궁금한 거다. 지역이 궁금한 거다. 대전이 문제인 거다. 숙소로 돌아오는 KTX 안. 노트북을 펼쳤다. 피칭 자료를 다시 봤다. 어디가 부족했나. 기술 설명이 약했나. 아니다. 기술은 괜찮았다. 문제는 첫 소개였다. '대전에서 온.'서울 VC 미팅 4개월 기록 1월. 강남역 VC. "지방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우리는 일반 트랙 지원했다. 2월. 판교 액셀러레이터. "대전에 계시면 네트워킹이..." 우리 고객사는 전국구다. 3월. 여의도 투자사. "서울 오실 계획은요?" 본사 이전 얘기가 아니었다. 4월. 을지로 VC. "지방 제조 스타트업 포트폴리오가..." 제조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방이 문제였다. 투자 제안은 없었다. 4개월간 하나도. KTX 정기권 48만원어치를 썼다. 미팅은 16번 했다. 결과는 0건이다. 집에 와서 아내한테 말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닌가 봐." 아내가 물었다. "그럼 뭐가 문제야?" 말하지 않았다. 대전이라고.실제 차이 개발자 채용 공고를 냈다. 3주간. 지원자 2명. 둘 다 경력 1년 미만. 같은 시기 판교 스타트업 공고. 우리보다 작은 회사. 지원자 47명. 경력 3년 이상 23명. 연봉 제시했다. 5500만원. "서울은 7000 받았는데요." 우리 자금은 3억이다. 7000 주면 월 운영비가 터진다. 결국 채용 실패. 대표가 개발했다. 나. 밤 11시까지 코딩. 주말도 코딩. 엔지니어 출신이라 가능했다. 근데 이게 맞나. 아침 8시 출근. 영업. 미팅. IR. 저녁 7시부터 개발. 밤 11시 퇴근. 집에 와서 씻고 누우면 12시. 아들이 자는 모습을 봤다. 이번 주도 같이 못 놀았다. 기술력은 있다. 고객사 만족도 높다. 그런데 성장은 느리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이 없다. 왜 없나. 서울이 아니라서. 정부 과제의 역설 대전에 있으면 좋은 게 하나 있다. 정부 과제. 대덕연구단지 덕분이다. 과제가 많다. 작년 과기부 R&D 2억. 올해 중기부 1.5억 신청 중. 매출 600만원. 과제 의존도 70%. 이게 건강한가. VC들이 본다. "정부 과제 비중이 높네요." 변명한다. "민간 매출 늘리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과제 없으면 문 닫는다. 대전이라서 과제를 받는다. 과제 받으니까 VC가 안 본다. VC 안 보니까 과제로 버틴다. 순환이다. 벗어날 수 없는. 동기가 물었다. 서울에서 SaaS 하는 친구. "Series A 받았다고?" "응. 50억." "매출은?" "월 3천." 우리보다 5배다. 근데 투자는 25배 받았다. 기술력 차이는 없다. 확신한다. 차이는 주소다. 서울 강남구. 우리는 대전 유성구. 꼬리표를 떼려는 시도들 회사 소개서를 바꿨다. Before: "대전 기반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After: "제조 데이터 인텔리전스 플랫폼" 지역을 뺐다. LinkedIn 프로필도 바꿨다. "Location: Daejeon" → "Location: South Korea" 넓게 썼다. IR 자료 첫 장. 회사 사진을 뺐다. 대전 건물이 보여서. 대신 고객사 로고를 넣었다. 서울 본사들. 효과는 미미했다. 어차피 미팅에서 묻는다. "본사가 어디세요?" "대전입니다." "아..." 이 "아..."에 모든 게 담겨 있다. 연민. 걱정. 그리고 거리두기. 기술력으로 말하기 고객사가 늘었다. 천천히. 경기도 화성 공장. 충남 아산 공장. 전북 군산 공장. 우리 솔루션 도입 후 불량률 23% 감소.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시간 75% 단축. 이게 실력이다. PoC 미팅. 대기업 스마트팩토리 담당 상무. "솔루션 괜찮네요. 근데 대전에 계시면..." 또 나왔다. 참았다가 말했다. "저희 기술팀 역량 보셔야죠. 지역이 중요한가요?" 상무가 웃었다. "그래도 서울이 가깝긴 해야죠." PoC는 통과했다. 그런데 본계약은 보류.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무엇을. 기술을 더 봐야 하나. 아니다. 우리가 버티는지 보는 거다. 지방 스타트업이 망하는 걸 많이 봤으니까. 신뢰의 문제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밤에 개발하면서 생각했다. 언제쯤 '대전의'를 떼고 소개될까. 언제쯤 기술로만 평가받을까. 서울 가지 않기로 결심 아내와 얘기했다. 3시간. "서울 가면 투자 받기 쉬울까?" "모르겠어. 근데 우리 삶은 힘들어지겠지." "그렇긴 해." 아내 공무원 경력 8년. 그만두면 다시 못 들어간다. 부모님 여기 계신다. 처가도 여기다. 아이 어린이집도 적응했다. 우리 삶의 뿌리가 여기 있다. 그걸 뽑고 서울 가면 뭐가 달라질까. 투자 확률 20% 올라간다 치자. 대신 삶의 질은 50% 떨어진다. 출퇴근 2시간. 집값 2배. 육아 도움 0. 계산이 안 맞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여기서 한다. 대전에서. '대전의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스타트업'으로 끝낸다. 지역 빼는 게 목표다. 실제로 가능한가 솔직히 모르겠다. 국내 유니콘 23개. 서울 21개. 경기 2개. 대전은 0개다. 충청권 전체가 0개. 통계가 말한다. 가능성 낮다고. 그런데 해외는 다르다. Zoom. 산호세. Atlassian. 시드니에서 시작. Shopify. 캐나다 오타와. 기술 기업이 꼭 실리콘밸리에만 있나. 아니다. 그럼 한국도 가능해야 맞다. 왜 안 되는가. 생태계 때문이다. 투자. 인재. 네트워크. 다 서울에 있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 혼자서는. 그럼 어떻게 하나. 버티는 거다. 실력으로. 기술로 증명하는 거다. 고객사 늘리고. 매출 올리고. 이익 내고. 그러면 꼬리표는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대전의'가 아니라 '수익성 좋은'. '지방의'가 아니라 '기술력 있는'. 시간 문제다. 그렇게 믿는다. 오늘의 선택 아침 8시. 출근. 팀원들이 모였다. 6명. 대전 토박이 4명. 세종 1명. 청주 1명. 다들 서울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 있다. 이유가 있어서. 개발자 김 대리. 전 네이버. "서울 출퇴근 2시간이 싫었어요." 영업 박 과장. 전 삼성. "애 키우기는 여기가 낫죠." 이들도 안다. 여기 있으면 연봉이 적다는 걸. 커리어 성장이 느리다는 걸. 그래도 남았다. 다른 가치가 있어서. 회의 시작. "이번 달 목표. 신규 고객 3곳. 가능하죠?" "해봅시다." 창밖을 봤다. 유성구 아침. 나쁘지 않다. 여기. 점심은 백반집. 7000원. 서울이면 만원이다. 작지만 실질적인 차이. 이런 게 쌓이면 버틸 수 있다. 언젠가 5년 후를 상상했다. IR 자료 첫 장. "제조 데이터 인텔리전스 선도 기업" 지역 언급 없다. 매출 100억. 영업이익 20억. 투자 안 받아도 된다. 자생 가능. 소개받는다. "스마트팩토리 분야 대표 스타트업 지방입니다." '대전의'가 없다. 필요 없으니까. 실력이 증명됐으니까. 이게 목표다. 현실적인가. 모르겠다. 가능한가. 해봐야 안다. 포기할 건가. 아니다. 여기서 한다. 끝까지. '지방 스타트업' 꼬리표. 떼는 방법은 하나다. 계속하는 것.KTX 안. 서울 가는 길. 오늘도 미팅이다. 그런데 다음 주부터는 고객사가 우리 사무실로 온다. 처음이다. 꼬리표가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다.
- 26 Dec, 2025
주말인데 노트북은 항상 켜져 있다
주말인데 노트북은 항상 켜져 있다 토요일 오전 10시 아들이 블록을 쌓는다. 나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본다. "여보, 오늘 안 쉬어?" 아내가 묻는다. 세 번째다. 이번 달만. "응, 잠깐만 볼게." 거짓말이다. 잠깐이 아니다. 슬랙 알림 7개. 이메일 23개. 카톡 단톡방 99+. 금요일 밤 10시에 끊었다. 12시간 만에 이렇게 쌓인다.개발팀장 메시지. "대표님, 주말이지만 급한 게 있어서요." 영업팀. "월요일 미팅 전에 자료 검토 부탁드립니다." 투자사 메일. "IR 자료 보완 요청 드립니다." 다 급하다. 다 중요하다. 근데 다 주말에 온다. 언제부터였나 창업 초기엔 안 그랬다. 직원 2명일 때. 주말엔 진짜 쉬었다. 지금은 6명. 정부 과제 돌아간다. PoC 진행 중이다. 쉴 수 없다. 정확히는 쉬면 불안하다. "대표가 주말에 답 안 해요." 한 번 들었다. 직원한테. 그 뒤로 답한다. 주말에도. 악순환이다. 알지만 못 끊는다.아내는 공무원이다. 주말은 칼퇴다. 업무 연락 없다. 부럽다. 솔직히. "그냥 주말엔 꺼버려." 아내가 말한다. "그게 안 돼." "왜?" 설명할 수 없다. 스타트업은 원래 그렇다는 말은 핑계 같다. 온전한 주말 작년 설날. 3일간 노트북 안 켰다. 처가에 놀러 갔다. 시골이라 와이파이도 약했다. 처음엔 불안했다. 손이 떨렸다. 둘째 날엔 괜찮았다. 아들이랑 놀았다. 셋째 날엔 편했다. 이게 쉬는 거구나.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 노트북 켰다. 슬랙 201개. 이메일 89개. 3일치가 한꺼번에 밀려왔다.그날 밤 9시까지 답했다. "휴가 갔다 왔더니 일이 산더미네요 ㅎㅎ" 직원이 농담했다. 웃기지 않았다. 그 뒤론 설연휴에도 노트북 챙긴다. 서울 스타트업 대표들 판교 간다. 월 2회. 카페에서 다른 대표들 본다. 다들 노트북 켜놓고 있다. 주중인데도. "주말에도 일해요?" 물어봤다. 한 대표한테. "당연하죠. 주말이 더 집중 잘 돼요." 시리즈 A 받은 회사다. 부럽지 않았다. 똑같구나 싶었다. 대전이든 서울이든. 스타트업은 다 비슷하다. 주말은 없다. 정확히는 주말도 일한다. 직원들한테는 쉬라고 한다. 본인은 못 쉰다. 대표니까. 아내와의 대화 지난주 토요일 밤. "우리 다음 주 어디 갈까?" 아내가 물었다. "어디?" "여행. 아들 데리고." "음... 일정 봐야 할 것 같은데." "토요일이잖아." "응, 근데 PoC 마감이 그 주라서." 침묵. "매주 그래. 항상 일정 있어."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니까. "미안해. 조금만 더 참아줘." "언제까지?" "시리즈 A 받으면..." 또 핑계다. 시리즈 A 받으면? 그땐 더 바쁠 거다. 아내도 안다. 나도 안다. 근데 다른 말을 못 하겠다. 월요일 아침 KTX 첫차. 대전역 새벽 5시 40분. 서울 미팅 3개 잡혔다. 주말에 메일 왔다. 일정 조율했다. 토요일 오후에. 아들이랑 놀이터 가면서. "아빠, 그네!" "응, 아빠 전화 좀만." "아빠!" "알았어, 전화 끊을게." VC 담당자였다. 미팅 잡혔다. 좋은 일이다. 근데 기쁘지 않다. 기차 안에서 자료 본다. 옆자리 아저씨도 노트북 친다. 다들 바쁘다. 주말도 일한다. 이게 정상인가. 정상이 뭔가. 답은 없다 온전한 주말. 언제 가능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엑싯하면? 그것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바쁠 수도 있다. 근데 확실한 건 있다. 지금 이 순간. 아들은 자란다. 주말마다 노트북 보는 아빠. 그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빠는 왜 항상 일해?" 언젠가 물을 것이다. 뭐라고 답할까. "아빠가 회사 대표라서." "대표는 쉬면 안 돼?" 할 말이 없다. 이번 주말 노트북을 끈다. 진짜로.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밤까지. 슬랙도 끈다. 이메일도 안 본다.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근데 해봐야 한다. 안 그러면 이대로다. 계속.주말이 주말이려면, 노트북을 꺼야 한다. 알지만 못 한다. 이번 주는 해본다.
- 25 Dec, 2025
밤 11시, 서울 VC에게 콜드메일 보내기의 반복
밤 11시, 노트북을 켠다 아이를 재웠다. 아내도 거실 소파에서 졸고 있다. 나는 서재 책상 앞에 앉는다. 노트북을 켠다. VC 리스트 엑셀을 연다. 90개 회사. 초록색은 메일 보냄. 노란색은 답 옴. 빨간색은 거절. 흰색이 오늘 할 일이다. 오늘은 7개를 보낼 예정이다. 월요일엔 10개, 화요일엔 5개. 이렇게 매일 밤 11시부터 12시 반까지가 내 VC 타임이다.커피를 한 잔 더 탄다. 믹스커피. 세 번째다. 메일 템플릿은 20가지 처음엔 한 통 쓰는데 2시간 걸렸다. 지금은 20분이면 쓴다. 템플릿이 20개쯤 있다. "제조업 B2B SaaS", "스마트팩토리", "대전 기반", "삼성전자 출신". 이 키워드 조합으로 20가지 버전을 만들었다. VC마다 포커스가 다르니까. 어떤 곳은 제조업 강조, 어떤 곳은 기술 강조, 어떤 곳은 팀 강조. 크런치베이스에서 그 VC가 어디에 투자했는지 본다. 비슷한 회사 있으면 메일 서두에 쓴다. "귀사가 투자하신 OO와 유사한..." 이런 식으로. 개인화가 중요하다고들 하니까. 실제로 답장률이 5%에서 8%로 올랐다. 3%p가 큰 거다.오늘 첫 번째는 판교에 있는 곳이다. 제조업 포트폴리오가 3개. 시드 중심. 우리랑 맞다. 제목: "[스마트팩토리 SaaS] 삼성전자 출신 창업가, 시드 투자 문의" 본문 400자. 더 길면 안 읽는다는 걸 배웠다. 회신율 8%, 미팅율 1.2% 지난 3개월간 보낸 메일이 127통이다. 회신은 10통. 8%. 그 중 실제 미팅까지 간 건 2건. 1.5%. 한 곳은 15분 줌 미팅 후 "타이밍이 안 맞네요". 다른 한 곳은 IR 자료 요청 후 소식 없음. 근데 나는 계속한다. 왜냐면 이게 유일한 방법이니까. 엑셀러레이터 추천? 우리는 이미 정부 과제로 밸류 50억 잡혔다. 액셀 들어가면 지분 또 내야 한다. 우리 같은 제조업은 엑싯까지 7년 걸린다. 지분 계산이 안 맞는다. 지인 소개? 대전엔 VC 아는 사람이 없다. 서울 친구들은 스타트업 안 한다. 삼성 동기들은 다 본사 갔다. IR 데모데이? 1년에 2번 있다. 근데 그것도 결국 선발이다. 200팀 지원해서 20팀 뽑힌다. 확률 10%. 그럼 콜드메일이 답이다. 무한 시도가 가능하니까. 127통 보내는 데 드는 건 시간뿐이다. 밤 11시부터 12시 반. 나한테 남는 시간이다. "지방 스타트업"이라는 장벽 가끔 답장이 온다. 그럼 기분이 좋다. "IR 자료 보내주세요." 이 한 줄만 와도 좋다. 근데 꼭 나오는 질문이 있다. "본사가 대전이시군요. 서울 이전 계획은요?" 이게 3번 중 2번은 나온다. 나는 준비된 답을 한다. "대전은 제조업 인프라가 좋습니다. 고객사들도 충청권에 많고요. 영업 거점은 판교에 있습니다." 실제로 맞는 말이다. 우리 고객 7곳 중 5곳이 대전/청주/천안이다. 공장이 여기 많으니까. 근데 VC들은 고개를 젓는다. "개발자 채용은요?" "후속 투자는요?" "엑싯 시나리오는요?"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서울로 오세요." 나도 안다. 판교 가면 개발자 구하기 쉽다. 네트워킹 이벤트 매주 있다. VC 미팅 잡기 쉽다. 후속 투자 확률 높아진다. 근데 우리 아내는 대전 공무원이다. 6년차. 사표 쓰면 안 된다. 양가 부모님 다 대전이다. 아이 봐주는 분들이다. 어린이집도 여기다. 나 혼자 서울 가서 주말부부? 생각해봤다. 아이가 2살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아빠 없는 주말이 2년 계속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대전에 있다. 매주 화요일 서울 출장 간다. KTX 정기권 끊었다. 한 달 48만원. 회사 돈이다. 오늘도 7통을 보낸다 시계를 본다. 11시 47분. 7통 다 보냈다. 평소보다 빨리 끝났다. 발송함을 확인한다. 134통이 됐다. 127에서 7 더했으니까. 답장이 올까? 모른다. 확률상 0.56통. 한 통도 안 올 확률이 높다. 근데 내일 밤에도 할 거다. 모레도, 다음 주도. 왜냐면 1.5% 미팅율이라도 있으니까. 100통 보내면 1.5번 미팅이다. 200통 보내면 3번이다. 3번 중에 1번은 2차 미팅 갈 수 있다. 통계적으로. 2차 미팅 3번 중에 1번은 투자 검토가 들어간다. 경험상. 그러면 600통 보내야 한 건 성사다. 지금 134통. 466통 남았다. 466을 7로 나누면 66.5일. 2개월 좀 넘는다. 그럼 2월 말에는 한 건 나온다는 계산이다. 물론 확률일 뿐이다. 안 될 수도 있다. 근데 이렇게 계산하면 버틴다. 숫자로 보면 희망이 생긴다. VC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안다 메일 127통 보내고 답장 10통 받으면서 배운 게 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스토리"다. 숫자보다. "삼성전자 기흥 라인에서 불량률 데이터를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 한 줄이 "월 매출 600만원"보다 효과적이다. "대전 제조업 밀집 지역에서 고객을 직접 만나며 제품을 만듭니다." 이게 "MAU 1200명"보다 먹힌다. 그래서 요즘은 숫자를 줄이고 스토리를 늘렸다. 메일 400자 중 150자는 창업 배경이다. 효과가 있다. 회신율이 8%까지 올랐다. 3개월 전엔 5%였다. 근데 미팅율은 안 올랐다. 여전히 1.5%. 왜일까 생각해봤다. 결국 "대전"이 문제다. 아무리 스토리가 좋아도 "본사 어디세요?" 물으면 끝이다. 지방 창업 지원 사업 전문 VC도 있다. 거기도 메일 보냈다. 답 안 온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정부 과제 2억 받았으니까. 그쪽은 초기 중심이다. 결국 일반 VC를 뚫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전이어도 괜찮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어떻게? 실적으로. 지금 대기업 PoC가 2건 진행 중이다. 한 곳은 현대차 협력사. 다른 한 곳은 LG 2차 벤더. 이거 하나라도 계약 전환되면 달라진다. 연 매출 5000만원짜리 고객 하나 잡히면 이야기가 바뀐다. 그럼 메일 서두가 바뀐다. "현대차 협력사 A사에 공급 중인..."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 그때까지 버티는 거다. 밤 11시 메일 보내기로. 엔젤은 6개월 만에 소진 작년 6월에 엔젤 투자 1억 받았다. 지인 소개로. 대전에서 제조업 하시는 분. 우리 제품 써보시고 투자하셨다. 그 돈이 지난달에 떨어졌다. 6개월 만이다. 직원 6명 월급이 1300만원. 사무실 관리비 150만원. 서버비 200만원. 합치면 1650만원. 6개월이면 9900만원. 거의 딱 떨어졌다. 정부 과제 2억은 있다. 근데 이건 R&D 비용이다. 인건비 일부만 쓸 수 있다. 월 300만원 정도. 그래서 지금은 매출로 버틴다. 월 600만원. 모자란 750만원은 어디서 나오냐면, 내 통장이다. 삼성 다닐 때 모은 돈. 퇴직금 포함 1억 2천. 거기서 회사에 넣은 게 5천. 남은 게 7천. 지금 3천 남았다. 4개월 버틸 수 있다. 그 안에 투자 받거나 매출 늘리거나. 그래서 밤 11시가 중요하다. VC 메일이 중요하다. "왜 서울 안 가세요?" 지난주 판교 미팅에서 들은 말이다. 2차 미팅까지 갔다. 드물게. IR 발표 30분 하고 질의응답 20분 했다. 마지막에 파트너가 물었다. "팀이 왜 대전에 있죠? 개발자 채용 어렵지 않나요?" 준비한 답을 했다. "제조업 도메인 특성상 현장이 중요합니다. 고객사 대부분이 충청권입니다. 개발자는 원격으로도 협업 가능하고요." 파트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표정은 아니었다. "원격 개발자 구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시니어 개발자는 다 판교에 있고. 솔직히 서울 오시는 게 회사한테 유리한 거 아닌가요?" 나는 대답 못 했다. 맞는 말이니까. 미팅은 거기서 끝났다. "검토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2주 지났는데 연락 없다. 집에 오는 KTX 안에서 생각했다. '내가 틀렸나?' 아내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여보, 우리 서울 가는 거 어때?" 아내가 바로 답했다. "싫어. 나 여기 6년 다녔어. 승진 2년 남았어. 지금 그만두면 퇴직금 반토막이야." 그러면서 덧붙였다. "당신 회사가 잘 안 돼서 내가 먹여 살릴 수도 있어. 그럴 때 공무원이 중요한 거야." 맞는 말이다. 냉정하게 맞는 말이다. 그날 밤에도 VC 메일을 보냈다. 5통. 평소보다 적게. 콜드메일의 유일한 장점 이게 공짜라는 거다. IR 대행사? 계약금 500만원. 성공 수수료 투자금의 5%. 엑셀러레이터? 지분 5~10%. 소개 수수료? 투자금의 3%. 우리한테는 다 부담이다. 근데 콜드메일은 공짜다. 시간만 든다. 밤 11시부터 12시 반. 하루 1시간 반. 1시간 반이면 710통 보낸다. 한 달이면 210300통이다. 물론 효율은 떨어진다. 회신율 8%. 미팅율 1.5%. 근데 모수를 늘리면 된다. 300통 보내면 미팅 4.5건. 반올림하면 5건. 5건 미팅하면 1건은 2차 간다. 경험상. 2차 3번 하면 1번은 투자 검토 들어간다. 이것도 경험상. 그러면 900통 보내야 한 건 나온다는 계산이다. 900통. 한 달에 250통 쓴다면 3.6개월. 4개월이다. 지금이 12월. 그럼 4월에는 한 건 나온다. 내 통장 3천만원. 4개월 버틴다. 딱 맞다. 이렇게 계산하면 잠이 온다. 어제 답장 한 통 왔다 어제 밤 11시에 메일 확인했다. 답장 한 통 있었다. "IR 자료 주시면 검토해보겠습니다." 강남에 있는 시드 VC다. 제조업 포트폴리오 2개 있다. 나는 바로 답장 보냈다. IR 자료 첨부하고 "감사합니다. 대면 미팅 가능하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썼다. 오늘 오후에 답 왔다. "다음 주 화요일 2시 어떠세요?" KTX 표를 끊었다. 아침 7시 20분. 판교역 9시 도착. 강남까지 30분. 여유 있게 도착한다. 미팅 준비를 시작했다. IR 자료 업데이트. 최근 PoC 현황 반영. 대기업 파트너십 강조. 숫자보다 스토리. 135번째 메일에서 나온 미팅이다. 확률대로다. 이번엔 2차까지 가고 싶다. 그러려면 "대전"을 장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저희는 대전에서 현장 중심으로 일합니다. 고객사 공장까지 차로 20분입니다. 서울은 영업 거점만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프레이밍하기로 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되겠지. 아니면 다음 기회. 136통째 보내면 된다. 오늘도 노트북을 켠다 지금 11시 3분이다. 아이 재웠다. 아내는 방에 들어갔다. 나는 서재에 앉았다. 노트북 켠다. VC 리스트 엑셀. 135통 보냈다. 오늘 7통 더. 첫 번째는 여의도 VC다. 정부 과제 많이 하는 곳. 우리랑 맞을 수 있다. 제목: "[제조업 SaaS] 정부 R&D 2억 운영 중, 시드 투자 문의" 본문 400자. 창업 배경 150자, 트랙션 150자, 미팅 요청 100자. 발송. 두 번째는 판교 초기 전문. 제조업 포트폴리오는 없는데 딥테크 투자한다. 제목 조금 바꾼다. "[스마트팩토리 AI] 삼성전자 출신, 현장 데이터 기반 SaaS" 발송. 이렇게 7통. 11시 58분에 끝났다. 발송함 142통. 내일은 143통부터. 모레는 150통. 다음 주면 160통. 200통 넘으면 미팅이 하나 더 나온다. 통계적으로. 그때까지 버티면 된다.142통째 메일 보냈다. 466통 남았다. 2개월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