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2살,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서울 출장 가기

아들 2살,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서울 출장 가기

새벽 6시 40분 알람 끄고 일어났다. 아들 방 문 살짝 열어봤다. 아직 자고 있다. 오늘 서울 출장이다. KTX 8시 20분 타야 한다. 판교에서 VC 2곳, 잠재 고객사 1곳. 미팅 3개 몰아서 잡았다. 아내가 부엌에서 커피 내린다. "오늘 늦게 들어와?" 물어본다. "저녁 7시 KTX 타면 9시쯤 도착해." 대답했다. 아내는 고개 끄덕인다. 말은 안 하지만 안다. 힘들다는 거.7시 15분, 아들 깨우기 "민준아, 일어나야지." 아들 볼 쿨쿨 잔다. 2살 애가 뭘 알겠냐. 천천히 눈 뜬다. "아빠?" 한다. "어린이집 가야지." 말하면서 옷 갈아입힌다. 아들이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내가 오늘 저녁에나 온다는 걸 모른다. 아침에 헤어지면 저녁에 본다고 생각한다. 가방 챙기면서 생각했다. 민준이가 초등학생 되면 기억이나 할까. 아빠가 매일 아침 어린이집 데려다줬던 거. 아내가 민준이 밥 먹인다. 나는 노트북 가방에 충전기 넣는다. 오늘 IR 자료 다시 봐야 한다. KTX에서.7시 50분, 어린이집 가는 길 민준이 손 잡고 걷는다. 어린이집까지 5분 거리다. "아빠 어디 가?" 민준이가 묻는다. "아빠 일하러 가." 대답한다. "언제 와?" "저녁에 와." 민준이는 이해 못 한다. 그냥 고개 끄덕인다.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다. 선생님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민준이!" 밝게 인사한다. 민준이 내려놓고 가방 건넨다. "아빠 가봐야 해. 잘 있어." 머리 쓰다듬는다. 민준이가 "응" 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뒤도 안 돌아본다. 다행이다. 울면 마음 아프니까.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나왔다. 시계 본다. 7시 58분. KTX역까지 20분. 딱 맞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맞나. KTX 안 8시 20분 KTX 탔다. 자리 앉자마자 노트북 켰다. 오늘 첫 미팅은 10시 30분. 판교 VC. 시리즈 A 투자 타진하는 자리다. 2억 목표다. IR 자료 다시 본다. 매출 그래프, 고객사 리스트, 제품 로드맵. 매번 보는 건데 또 본다. 옆자리 사람도 노트북 켜고 있다. 뭐 하는지 몰라. 다들 바쁘다. 창밖 본다. 논밭 지나간다. 대전 떠나서 서울 가는 중이다. 이 길을 일주일에 2번 왔다갔다한다. 문득 민준이 생각난다. 지금쯤 간식 먹을 시간이다. 바나나 좋아한다. 다시 화면 본다. 집중해야 한다. 오늘 미팅 잘 풀려야 한다.서울 미팅들 첫 번째 VC. 판교역 근처 빌딩 12층. IR 발표 30분 했다. 질문 20분 받았다. "지방에서 개발자 채용은 어떻게 하시나요?" "대전에 계속 계실 건가요?" "서울 거점 확대 계획은?" 예상한 질문들이다. 준비한 답 했다. "대전은 제조업 도메인 전문가 많습니다. 충청권 제조사 접근성 좋습니다. 서울 영업 거점은 확대할 계획입니다." 표정은 모르겠다. "검토해보겠습니다" 한다. 늘 듣는 말이다. 두 번째는 점심 미팅. 잠재 고객사 구매팀장. 삼성역 근처 일식집. "솔루션 좋습니다. 근데 레퍼런스가 좀..." 한다. 알아듣는다. 대기업 레퍼런스 없다는 얘기다. "지금 PoC 진행 중인 곳이 2곳 있습니다." 설명한다. "결과 나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명함 받는다. 세 번째 VC. 강남역 근처. 3시 미팅. 여기는 좀 달랐다. 대표님이 충남 출신이다. "저도 대전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한다. 이야기가 잘 풀렸다. 제조업 시장 이해도가 높다. "다음 주에 대전 사무실 한 번 방문하겠습니다." 약속 잡았다. 미팅 끝나고 나왔다. 5시 30분. 7시 KTX 타야 한다. 집에 가는 길 KTX 안이다. 7시 기차. 피곤하다. 오늘 성과 정리한다. VC 2곳 긍정적, 1곳은 글쎄. 고객사 1곳은 보류. 나쁘지 않다. 근데 확실한 건 없다. 늘 그렇다. 폰 본다. 아내한테 카톡 왔다. "민준이 저녁 잘 먹었어. 아빠 찾네." 가슴이 뜬다. 미안하다. "곧 도착해. 30분 후면 돼." 답장 보낸다. 창밖 본다. 어둡다. 불빛들만 보인다. 이게 맞나. 또 생각한다. 대전으로 내려온 게 맞나. 서울에 있었으면 이렇게 왔다갔다 안 해도 되는데. 근데 대전 떠날 수 없다. 아내 직장 여기 있다. 부모님도 여기다. 집도 샀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대전 좋다. 사무실 월세 싸다. 직원들 이직 안 한다. 출퇴근 30분이다. 서울은 모든 게 빠르고 크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다. 밤 9시 15분, 집 도착 현관문 열었다. "아빠!" 민준이가 뛰어온다. 안아 올렸다. "민준아, 보고 싶었어." 진심이다. 아내가 거실에서 웃는다. "저녁 먹었어?" 묻는다. "판교에서 먹었어." 대답한다. 민준이 내려놓는다. "아빠 놀아줘!" 한다. 장난감 기차 가져온다. 가방 내려놓고 바닥에 앉는다. 민준이랑 기차 놀이 한다. 10분 정도. 근데 자꾸 폰이 신경 쓰인다. 오늘 미팅 정리 메일 보내야 한다. VC한테 팔로업 해야 한다. "민준아, 아빠 잠깐만." 한다. 노트북 꺼낸다. 아내가 민준이 데리고 간다. "씻자, 민준아." 한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 켠다. 이메일 쓴다. 토요일 오후 주말이다. 민준이가 낮잠 잔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다. 노트북 켜 있다. 다음 주 미팅 자료 준비한다. 아내가 옆에 앉는다. "또 일해?" 묻는다. 비난하는 톤은 아니다. 그냥 확인한다. "응. 다음 주에 VC 대전 온다고 해서." 대답한다. 아내가 한숨 쉰다. "민준이 깨면 놀아줘. 약속해." 한다. "응. 그럴게." 약속한다. 근데 안다. 민준이 깨도 나는 노트북 계속 볼 거다. 일하는 척하면서. 아내도 안다. 말 안 하지만. 민준이 방에서 소리 난다. 깼다. 노트북 덮는다. 일어난다. 민준이 방으로 간다. "아빠!" 민준이가 웃는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안아 올린다. "잘 잤어?" 묻는다. "응!" 대답한다. 거실로 나온다. 블록 놀이 시작한다. 민준이가 탑 쌓는다. 나는 옆에서 본다. 근데 머릿속은 다른 생각이다. 다음 주 미팅. IR 자료. 개발자 채용 공고. 민준이가 "아빠, 봐!" 한다. 탑 무너뜨린다. 웃는다. "우와, 잘했다!" 박수친다. 민준이가 또 쌓는다. 나는 본다. 이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월요일 아침 또 새벽이다. 6시 40분. 민준이 깨운다. 옷 입힌다. 어린이집 간다. "아빠 오늘도 가?" 민준이가 묻는다. "응. 일하러 가." 대답한다. 민준이는 이제 익숙하다. "응" 하고 대답한다. 어린이집 앞. 민준이 내려놓는다. "잘 있어." 머리 쓰다듬는다. 민준이가 들어간다. 손 흔들지 않는다. 나는 돌아선다. KTX역으로 간다. 오늘도 서울이다. 오늘도 미팅이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럴까. 시리즈 A 받으면 나아질까. 매출 1억 넘으면 달라질까. 모르겠다. 그냥 걷는다. 역으로.민준이가 나를 기억이나 할까. 이 시간들을.

KTX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보내기: 성공률은 몇 프로?

KTX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보내기: 성공률은 몇 프로?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쓴다 오늘도 KTX다. 판교 미팅 3개. 새벽 6시 첫차. 카페카에 자리 잡았다. 노트북 켰다. 와이파이 연결 기다린다. 터널 지나가면 끊긴다. 대전-서울 구간은 터널이 많다. 메일함 열었다. 어젯밤 보낸 VC 콜드메일 15통. 회신 0건. 당연하다.50통 보내면 1통 온다 작년부터 계산했다. 콜드메일 성공률 2%. 50통 보내면 1통 회신 온다. 그중에 미팅으로 이어지는 건 10통 중 1통. 결국 500통 보내야 미팅 1개다. 투자까지 가려면? 아직 모른다. 미팅은 20번 했는데 투자는 안 받았다. 지방 스타트업이라고 말하면 표정이 변한다. "오, 대전이시군요." 그 다음은 정부 과제 얘기. "R&D 많이 받으셨나요?" 받았다. 2억. 그게 뭐 어쨌다고. 어제 본 강남 VC는 이렇게 말했다. "팀이 서울로 오실 계획은요?" 계획 없다고 했다. 아내가 공무원이라고. 아들이 어린이집 다닌다고. "아, 그러시면 조금..." 끝까지 안 했다. 어려울 거라는 말.밤 11시 콜드메일 루틴 집에 왔다. 아들 재웠다. 아내는 TV 본다. 노트북 켰다. 11시 30분. 콜드메일 쓸 시간이다. 크런치베이스 열었다. 국내 VC 리스트. 파트너 이름 찾는다. 링크드인 확인. 메일 주소 추정한다. firstname@vcfirm.com firstname.lastname@vcfirm.comf.lastname@vcfirm.com 3개 다 cc로 넣는다. 하나는 걸린다. 제목은 매번 바꾼다. "대전 제조 SaaS, 미팅 요청드립니다" "스마트팩토리 B2B, 30분만 시간 주십시오" "지방 제조업 시장, 기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본문은 템플릿이다. 4문단.인사 + 우리 소개 (2줄) 트랙션 숫자 (3줄) 시장 기회 (3줄) 미팅 요청 (1줄)총 200단어 안쪽. 길면 안 읽는다. "저희는 대전에서..." 이 문장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지금은 넣는다. 어차피 미팅 가면 알게 된다. 투명하게 가는 게 낫다. 발송. 15통. 오늘 할당량 끝. 내일 아침에 확인한다. 기대는 안 한다. 그래도 확인한다. 회신이 올 때 2주 전이었다. 아침에 메일 열었다. 회신 1건. 심장이 뛰었다. "관심 있습니다. 다음 주 가능하신가요?" 판교 VC였다. 시리즈 A 전문. 제조 쪽 투자 몇 건 있었다. 그날 하루 기분이 좋았다. 팀한테도 말했다. "VC 미팅 잡혔어." 다들 좋아했다. "서울이요?" "판교요?" "응. KTX 타고 간다." 미팅은 1시간이었다. 파트너랑 애널리스트. 질문 많이 받았다. "제조업 고객사는 몇 곳이세요?" "7곳이요. 대기업 PoC 1곳 포함이요." "MRR은요?" "600이요. 이번 분기 목표는 1500." "팀은요?" "6명. 개발 3, 영업 2, 디자인 1." "다 대전이세요?" "네. 판교에 영업 1명 있어요." "음..." 그 '음...'을 안다. 지방 팀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개발자 채용은 어떻게 하세요?" "로컬 위주요. 충남대, 한밭대 출신들." "서울 경력직은요?" "연봉 못 맞춰요. 대전 물가로는 7천이 한계거든요." "아..." 미팅 끝나고 계단 내려오는데 알았다. 안 될 거다. 일주일 뒤 회신 왔다. "좋은 팀이시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괜찮다. 익숙하다.2% 확률에 매일 건다 오늘도 카페카다. 대전으로 돌아간다. 노트북 켰다. 콜드메일 10통 더 보낸다. 저녁에 15통 더 보낼 거다. 50통 보내면 1통 온다. 500통 보내면 미팅 1개다. 5000통 보내면? 투자 1건 받을까? 모른다. 그래도 보낸다. 아내한테 말했다. "서울 VC들한테 매일 메일 보낸다." "받아?" "가끔." "힘들겠다."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 대전에서 스타트업 한다는 건 이런 거다. 서울 가는 KTX에서 와이파이 잡으면서 메일 쓴다. 터널 지나가면 작성 중이던 문장 날아간다. 다시 쓴다. 성공률 2%. 나쁘지 않다. 보험 영업 성공률보다 높다. 그리고 나는 매일 보낸다. 보험 영업보다 많이 보낸다. 언젠가는 된다. 확률의 문제다. 50통이 안 되면 100통. 100통이 안 되면 500통. 회사 망하기 전까지는 보낸다.KTX 도착 10분 전. 노트북 정리했다. 오늘 보낸 메일 25통. 내일 아침에 확인한다.

삼성전자 엔지니어에서 지방 스타트업 대표로: 신분상승인가 하락인가

삼성전자 엔지니어에서 지방 스타트업 대표로: 신분상승인가 하락인가

명함 두 개 명함을 두 개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공정기술팀 책임연구원". 2014년부터 2021년까지. 7년. 다른 하나는 "㈜스마트링크 대표이사". 202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3년 2개월. KTX에서 노트북 열고 작업하다가 옆자리 사람이 물어본다. "무슨 일 하세요?" "스타트업 합니다." "어디 다니셨어요?" "삼성전자요." 그 순간 표정이 달라진다. "아, 그래서 창업하셨구나." 근데 속으로는 생각한다. '퇴사한 거지, 창업한 게 아니라.'기흥 7년 기흥 공장 3년 근무하면 반도체 공정 전체가 보인다고 했다. 나는 7년 했다. 클린룸 들어가는 날이 1년에 200일. 방진복 입고 8시간. 에어샤워 지나가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라인 멈추면 억대 손실. 그걸 막는 게 내 일이었다. 밤 11시에 전화 오면 15분 안에 공장 도착. 새벽 2시에 라인 살리고 새벽 4시에 집 도착. 연봉은 1년차 4800만원. 7년차 8500만원. 보너스 포함하면 억 가까이. 대전 아파트 전세 2억 5천. 여유 있었다. 아내도 공무원이라 안정적이었다. 근데 40살까지 이렇게 살 수 없었다. 라인 문제 해결하는 건 잘했다. 근데 내 문제는 못 풀었다. "이게 내 일인가." 3년째 같은 질문. 7년째도 답은 없었다.창업 아닌 퇴사 2021년 9월. 사표 냈다. 팀장이 물었다. "뭐 하려고?" "스타트업 차릴 생각입니다." "아이템은?" "제조업 쪽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요." 팀장은 한숨 쉬었다. "시장 좁아. 삼성 나와서 삼성 상대로 장사하려고?" 맞는 말이었다. 근데 7년 동안 현장에서 본 게 있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MES도 제대로 못 쓴다. 엑셀로 생산 관리한다. 2021년에. 시장은 있다고 생각했다. 정부 R&D 과제 2억 받았다. 엔젤 투자 1억. 총 3억으로 시작. 대전 유성구 테크노파크에 사무실 얻었다. 월세 150만원. 평수는 기흥 사무실의 1/10. 직원은 나 포함 3명. 개발자 2명은 대전대 후배. 연봉 4천. 첫날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 대표다." 근데 실감이 안 났다. 신분상승의 환상 주변에서는 축하했다. "대표님 되셨네요!" "창업가시는구나!" "멋있다, 형!" 근데 통장에는 월급이 안 들어온다. 삼성 다닐 땐 25일이면 700만원. 칼같이. 지금은 내가 월급 주는 사람. 근데 나는 못 받는다. 첫 6개월은 저축한 돈으로 버텼다. 아내 월급으로 생활비. 내 통장은 회사 운영비. 명함에는 "대표이사"라고 적혀있다. 근데 실제로 하는 일은:개발자 출퇴근 관리 정부 과제 보고서 작성 VC 콜드메일 보내기 대기업 구매팀 문의 전화 홈페이지 오타 수정 사무실 청소삼성에서는 라인 한 줄 건드리면 수백억 매출에 영향 갔다. 지금은 홈페이지 오타 하나 고치는데 개발자 불러야 한다. 이게 신분상승인가.삼성 출신이라는 무기 PoC 미팅 갈 때마다 소개한다. "삼성전자 기흥 7년 근무했습니다." 분위기가 바뀐다. "아, 그러시면 현장을 아시겠네요." "반도체 공정 경험이 있으시면 우리 라인도 이해 빠르시겠어요." "삼성 출신이면 믿을 만하죠." 대기업 구매팀 담당자들은 삼성 출신을 좋아한다. 검증됐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PoC 3건 중 2건은 "삼성 출신"이라는 말로 문 열었다. 투자자 미팅도 마찬가지. "팀 백그라운드 보니까 대표님 삼성 출신이시네요?" "네, 7년 있었습니다." "도메인 전문성 있으시겠어요. 좋습니다." 명함 한 줄이 브랜드가 된다. 삼성전자. 4글자. 근데 이게 무기인지 족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족쇄가 되는 순간 대기업 PoC 진행 중이다. 상대는 구매팀 과장. 나이 비슷해 보인다. "최 대표님, 그래서 단가가 얼마예요?" "연 6500만원입니다." "아, 그 정도면... 우리가 쓰는 외산 솔루션이 연 8천인데." "네, 그래서 20% 저렴합니다." "근데 레퍼런스가..." 말을 흐린다. "저희 현재 5개사 운영 중입니다." "중소기업들이죠?" "네." "대기업 레퍼런스는?" "첫 케이스가 되실 겁니다." 과장이 웃는다. "첫 케이스요? 저희가요?" 그 웃음에 다 담겨있다. '네가 삼성 나왔으면 삼성 레퍼런스 가지고 나오지.' '지방 스타트업이 우리한테 팔려고?' 'PoC는 해주는데, 본계약은 글쎄.' 미팅 끝나고 KTX 타고 대전 돌아온다. 기흥역 지나간다. 예전 출근하던 역. 저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밖에서 보면 저렇게 높은 벽인지. 연봉 8500에서 0으로 삼성 마지막 해 연봉이 8500만원이었다. 퇴사하던 날 인사팀에서 정산 받았다. 퇴직금 포함 1억 3천. 그게 3년 만에 바닥났다. 창업 1년차: 정부 과제로 버팀. 월급 300만원 꼬박꼬박. 창업 2년차: 매출 발생. 월 400만원. 근데 비용이 월 800만원. 창업 3년차: 매출 600만원. 비용 900만원. 적자 300만원. 지금 내 월급은 0원이다. 직원 6명 월급은 나간다. 4천만원. 사무실 월세. 150만원. AWS 서버비. 80만원. 마케팅비. 50만원. 기타 경비. 120만원. 총 지출 월 4400만원. 매출 600만원. 적자 3800만원. 정부 과제 남은 돈으로 버틴다. 6개월 치. 6개월 안에 대기업 계약 따내거나, 투자 받거나, 접거나. 아내는 모른다. 내 월급이 0원인 걸. 통장에 5천만원 남았다고 했다. 실제로는 2천만원. 밤에 노트북 켜고 VC 메일 쓴다. "안녕하세요, 스마트링크 대표 최지방입니다. 삼성전자 기흥 7년 근무..." 삼성 출신이라는 말 꺼내는 내가 초라하다. 판교와 유성구 주 1회 서울 출장. 판교 스타트업캠퍼스 가면 20대 대표들이 보인다. "저희 시리즈A 30억 받았어요." "개발자 15명 채용 중이에요." "다음 달 판교 더샵 입주합니다." 사무실은 넓고 깨끗하다. 간식은 풍족하다. 직원들은 젊고 밝다. 나는 대전 유성구. 테크노파크 건물은 1990년대 지어졌다. 엘리베이터는 느리다. 사무실 창밖은 산. 근처에는 편의점 하나. 직원 평균 나이 35세. 다들 조용하다. 간식은 커피믹스. 판교 스타트업 채용 공고 보면 부럽다. "시리즈B 투자 유치 완료, 적극 채용 중" "연봉 상한선 없음, 스톡옵션 제공" "판교역 5분 거리, 최신 사무환경" 우리 채용 공고는: "정부 과제 수행 중, 개발자 1명 채용" "연봉 4천~4500만원" "대전 유성구 근무, 주차 가능" 지원자 3명. 2명은 면접 불참. 판교는 넘친다. 대전은 모자란다. 근데 나는 대전을 떠날 수 없다. 아내가 공무원이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닌다. 부모님이 근처 산다. 판교 가면 이 모든 게 무너진다. '지방 스타트업'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그래도 대표는 대표 동창회 갔다. 고등학교 동창. 20년 만에 보는 얼굴들. "야, 최지방이다!" "너 삼성 다닌다며?" "퇴사했어. 창업했어." "헐, 대박. 뭐 해?" "제조업 쪽 SaaS." "...응?" 설명해도 모른다. 그냥 웃는다. 옆에서 친구가 끼어든다. "그러니까 대표라는 거지? 사장?" "뭐, 그렇지." "오, 사장님 됐네!" 분위기가 달라진다. 술 따라준다. 명함 달라고 한다. 사진 찍자고 한다. 근데 속으로는 안다. 이들은 내가 월급 0원인 걸 모른다. 이들은 내가 3800만원 적자인 걸 모른다. 이들은 내가 6개월 안에 투자 못 받으면 접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른다. 그냥 "대표"라는 단어만 듣는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묻는다. "동창들 어땠어?" "그냥 그랬어." "대표 됐다고 부러워하더라?" "...응." 거짓말은 아니다. 부러워하긴 했다. 근데 뭘 부러워하는지 모르고 부러워한다. 신분 같은 건 없다 결론은 없다. 신분상승도 아니고 하락도 아니다. 그냥 다른 삶이다. 삼성 다닐 때:안정적 월급 명확한 업무 큰 조직의 부품 40년 후 퇴직금스타트업 대표:불안정한 수입 모호한 업무 작은 조직의 전부 6개월 후 미래어느 게 나은지 모르겠다. 삼성 다닐 때는 이게 싫어서 나왔다. 지금은 가끔 그때가 그립다. 근데 돌아갈 수는 없다. 명함에 "전 삼성전자" 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삼성 사람이 아니다. PoC 미팅에서 구매팀 과장이 웃을 때, 나는 외부인이다. 판교 스타트업 보면서 부러워할 때, 나는 지방 사람이다. 그래도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한다. 직원들 얼굴 보면 책임감이 생긴다. 대기업 계약서에 사인 받는 날을 상상한다. 시리즈A 투자 받는 날을 꿈꾼다. 그날이 오면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는 힘들었지.' 지금은 그냥 버틴다. 신분상승인지 하락인지 판단은 10년 후에.KTX 안에서 쓴다. 서울 가는 길. 오늘도 미팅 3개.

아내가 '서울 이사 안 돼?' 라고 한 지 6개월

아내가 '서울 이사 안 돼?' 라고 한 지 6개월

아내가 '서울 이사 안 돼?' 라고 한 지 6개월 그날 저녁 작년 11월이었다. 서울 출장 다녀온 날. 저녁 9시 반에 집 도착. 아들은 자고 있었다. 아내는 거실에서 노트북 보고 있었다. "오늘 어땠어?" "괜찮았어. 미팅 3개 다 했어." "VC는?" "관심 있다는데 뭐." 평소와 같은 대화. 그런데 아내가 노트북 덮었다. "여보, 서울 이사 안 돼?" 멈췄다. 예상 못 한 질문이었다. "갑자기 왜?" "갑자기 아니야. 당신 매주 서울 가잖아." 맞는 말이었다. 주 2회. 많을 땐 3회. "회사 때문에 그런 거지." "그럼 회사를 서울로 옮기면 되잖아." 말은 간단했다. 실행은 복잡했다.서울로 가면 계산해봤다. 여러 번 해봤다. 판교 사무실 보증금 5000만원. 월세 300만원. 직원들 이사 비용. 새로 구해야 할 직원들. 서울 연봉은 우리 기준으로 1.5배. 개발자 한 명 뽑으려면 5500만원은 줘야 한다. 지금은 3800만원 주고 있다. 대전 기준으론 높은 편. 정부 과제. 대전시 지원 사업. 다 날아간다. 충남테크노파크 입주 혜혜택. 월 50만원 절약. 세종시 실증 사업 우선 선정. 내년에 2억. 서울 가면 다 포기. 그리고 가장 큰 문제. 아내. "너 공무원 그만둘 거야?" "...아니." "그럼?" "주말부부 하면 되잖아." 2살 아들이 있는데 주말부부. 말이 안 됐다. "그건 안 돼." "그럼 당신이 계속 오가든가." 결국 제자리.아내의 진심 3월에 또 나왔다. 같은 질문. "진짜 서울 안 가?" 이번엔 내가 물었다. "너 진짜 가고 싶어?" 아내가 멈췄다. 대답이 늦었다. "...잘 모르겠어." "뭐가?" "가야 할 것 같은데. 가기 싫어." 솔직한 답이었다. 아내 부모님.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주말마다 아들 봐준다. 평일에도 급할 때 부른다. 아내 친구들. 대학 동기들. 다 대전. 월 2회 정모. 빠지면 섭섭해함. 동네 어린이집. 원장님이 아들 좋아함. "엄마 아빠 공무원이시죠? 안심이에요." 이 모든 걸 버리고 서울. "너도 가기 싫잖아." "...응." 둘 다 솔직해졌다. 내 진심 나도 대전이 편하다. 출근 20분. 주차 걱정 없음. 점심 6000원. 반찬 6개 나옴. 저녁 9시에 퇴근해도 집에 9시 반. 아들 재우고 노트북 켜서 일해도 12시 전 취침. 서울 가면? 출퇴근 왕복 3시간. 집 구하려면 월세 200만원. 전세 5억. 아들 어린이집 대기 6개월. 부모님 왕래 주 1회에서 월 1회로.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나 서울 출신 아니다. 태어나서 쭉 대전. 서울 가면 외롭다. 친구 없다. 대학 동기들 다 대전 충청권. 월 1회 모임. 맥주 마시면서 하소연. "대전에서 창업하니까 힘들지?" "그래도 너희가 있어서 버틴다." 서울 가면 이것도 없어진다.서울이 부러운 순간 그래도 서울 가고 싶을 때 있다. 판교 스타트업 채용 공고 볼 때. "시리즈 B 200억 유치" "개발자 연봉 상한 없음" "점심 제공, 저녁 제공, 간식 무제한" 우리는? 점심 식대 7000원 지원. VC 미팅 잡을 때. "대전에서 오시는 거죠? 수고 많으십니다." 수고가 아니라 기본이 되고 싶다. 서울 창업자들 네트워킹 볼 때. "어제 홍대에서 만났는데" "강남에서 술 한잔 했어" "을지로 새로 생긴 곳 가봤어?" 나는? KTX에서 노트북. 개발자 채용 공고 올릴 때. 대전 등록: 지원자 3명. 서울 등록: 지원자 47명. 이게 현실이다. 6개월 후 지금도 아내는 가끔 묻는다. "서울 생각 없어?" "너는?" "...없어." "나도." 그러면서도 둘 다 안다. 언젠가는 가야 할 수도 있다는 걸. 회사가 커지면. 투자 받으면. 직원이 늘면. "서울 진출이 필수입니다." VC들이 하는 말. "판교에 거점 만드세요." 엔젤 투자자가 하는 말. "대전에선 한계 있어요." 선배 창업자가 하는 말. 다 맞는 말이다. 들리기 싫은 말이다. 지금 우리 방식 일단 버티기로 했다. 판교 거점 1명. 더 늘릴 계획. 나는 주 2회 서울. KTX 정기권. 대전 본사는 그대로. 연구 개발 여기서. 영업 마케팅은 서울 거점. 하이브리드. 중간 형태. 완벽하지 않다. 비효율 있다. 그래도 지금 우리한테 최선. 아내는 계속 공무원. 나는 계속 출장. 아들은 계속 대전 어린이집. 부모님은 계속 손주 봐주심. "이게 맞나?" 자주 든는 생각. "그래도 버틸 만하네." 더 자주 드는 생각. 지방 창업자의 딜레마 우리 같은 사람 많다. 대전, 대구, 광주, 부산. 다들 비슷한 고민. "서울 가야 하나?" "여기서 버텨야 하나?" 정답은 없다. 서울 간 선배. 3년 만에 시리즈 B. 대전 남은 선배. 5년째 정부 과제. 둘 다 성공이다. 둘 다 실패 아니다. 그냥 선택의 차이. 나는 아직 대전. 언제까지? 모른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모른다. 그냥 오늘 하루 버티는 중. 아내에게 어젯밤에 아내가 또 물었다. "힘들면 말해. 우리 서울 갈 수도 있어." 고마운 말이었다. "괜찮아. 지금이 좋아." 거짓말 아니다. 힘들긴 하다. 그래도 좋다. 아들 키우면서 일하기. 부모님 가까이 살기. 친구들 자주 만나기. 이게 다 돈으로 안 된다. 서울 가면 연봉 더 받을 수 있다. 투자 더 받을 수 있다. 직원 더 뽑을 수 있다. 그래도. "당신 오늘 몇 시에 와?" "9시쯤?" "그럼 저녁 같이 먹자." 이게 안 된다. 마무리 오늘도 서울 출장. 6시 15분 KTX. 노트북 켰다. 투자 제안서 수정 중. "대전 본사의 강점" 항목을 추가했다. 뭐라고 쓸지 고민 중이다.대전 살면서 서울 다니기. 6개월째 아내 설득 중. 아니, 나 자신을 설득 중인지도.

판교에 1명, 대전에 5명: 원격팀의 외로움

판교에 1명, 대전에 5명: 원격팀의 외로움

판교에 1명, 대전에 5명: 원격팀의 외로움 판교에 사람을 뒀다. 6개월 전이다. 영업 잘한다고 해서 월 350만원 줬다. 근데 매주 서울 간다. 결국 나다.아침 5시 40분 KTX 오늘도 첫차다. 대전역 5시 40분. 판교 사무실 있는데 내가 간다. 민수(판교 담당)한테 맡기면 불안하다. "대표님이 직접 오신다니 영광입니다." 고객사 팀장이 그랬다. 지난주에. 민수가 먼저 갔다 온 미팅이었다. 결국 내가 다시 가야 했다. 계약서에 도장 안 찍었다. "좀 더 검토해보겠습니다." 민수 보고 듣고 머리 아팠다. 뭘 놓쳤을까. 계속 생각했다. 녹취록 달라고 했다. 없단다. "분위기 괜찮았어요. 거의 다 된 것 같았는데." 그 말만 들었다. 신뢰의 문제인가, 통제욕인가 민수는 나쁘지 않다. 영업 경력 8년. 전 직장 실적도 봤다. 괜찮았다. 근데 못 믿겠다. 솔직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민수가 그랬다. 첫 출근날. 좋았다. 기대했다. 한 달 지나니까 답답했다. 보고가 성의 없다. 미팅 결과 세 줄. "관심 있어 보였습니다." "다음 주 재논의 예정입니다." "견적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게 없다. 숫자가 없다. 누구 만났는지, 뭘 물어봤는지. 우리 솔루션 중 뭘 관심 있어 했는지. 결국 내가 물어본다. 카톡으로. "정확히 누구 만났어요?" "우리 제품 중 어떤 모듈 얘기했어요?" "예산 얼마나 잡혀 있대요?" 민수는 답이 늦다. 한 시간, 두 시간. "확인해보겠습니다" 자주 온다. 그럼 내가 빡친다. 미팅 때 왜 안 물었나.결국 가는 건 나다 고객사 미팅 10개 중 7개는 내가 간다. 민수가 먼저 가도 결국 내가 또 간다. "대표님이 한 번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민수가 그렇게 말한다. 그럼 간다. KTX 타고. 새벽에 일어나서 면도하고. 정장 입고 대전역 간다. 도착하면 9시 30분. 미팅 10시. 민수랑 커피 마시면서 브리핑 듣는다. "어제 통화했는데 분위기 좋았어요." 그 말 듣고 들어간다. 미팅 시작하면 안다. 바로 안다. 분위기 안 좋다. 민수 말이랑 다르다. 고객 표정이 시큰둥하다. "저희 공장 규모가 좀 큰 편인데요." "기존 시스템이랑 연동이 되나요?" "ROI가 얼마나 나올까요?" 질문이 쏟아진다. 제대로 된 질문. 민수는 못 대답한다. 나만 본다. 결국 내가 답한다. 2시간 동안. 나올 때 민수가 말한다. "오늘 대표님이 오시길 잘했네요." "제가 준비가 부족했나 봐요." 화는 안 낸다. 근데 속으로 생각한다. '다음에도 내가 가야겠네.' 대전 팀은 답답해한다 점심 먹으면서 개발팀이랑 통화한다. "형 또 서울 갔어?" 현우(CTO)가 묻는다. "응. 미팅 있어서." "민수 형 있잖아." "...같이 간 거야." 현우는 한숨 쉰다. 들린다. "우리 언제 판교 가봐요?" "고객사 궁금한데 맨날 형만 가." 미안하다. 근데 어쩔 수 없다. 고객 앞에서 개발자 데려가면 복잡해진다. "이거 개발 가능해요?" 물어본다. 현우는 솔직하다. 너무 솔직하다. "지금은 안 되는데 3개월 걸려요." 그 말 듣고 고객은 시든다. 영업은 애매하게 답해야 한다. "검토해보겠습니다" 정도로. 근데 개발자는 정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안 데려간다. 현우도, 다른 개발자도. 결국 혼자 간다. 아니면 민수랑. 리모트 팀의 착각 민수 뽑을 때 생각했다. '판교에 거점 생기면 다르겠지.' '서울 출장 안 가도 되겠지.' 완전히 착각이었다. 거점이 있어도 결국 대표가 간다. 고객은 대표를 원한다. "의사결정권자 좀 만나고 싶은데요." 결국 그 얘기 나온다. 민수한테 권한을 줬다. 계약 3000만원까지. 근데 못 쓴다. 한 번도. "대표님 확인받고 진행할게요." 민수가 매번 그런다. 권한을 줘도 안 쓴다. 책임지기 싫은 거다. 이해한다. 나도 직장인이었다. 알아. 근데 답답하다. 엄청 답답하다. 민수한테 화낼 수도 없다. 잘못한 거 없으니까.통제하고 싶은 이유 왜 이렇게 됐나. 생각해봤다. 민수를 못 믿어서? 아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다. 내가 불안해서다. 3년 만든 회사다. 직원 6명. 정부 과제 2억, 엔젤 1억. 이게 끝이다. 돈이. 한 건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 월 매출 600만원. 인건비도 안 된다. 대기업 PoC 하나 따야 산다. 그러니까 못 놓는다. 통제가. 민수한테 맡기면 불안하다. '내가 갔으면 계약했을 텐데.' 그 생각이 자꾸 든다. 실제로 내가 가면 다르다. 계약률이 높다. 확실히. 민수 단독: 10개 중 2개. 내가 동행: 10개 중 5개. 이 숫자 아니까 못 놓는다. 민수한테 미안하다. 진짜. 근데 회사가 먼저다. 외로운 건 민수도 마찬가지 지난주 민수랑 술 먹었다. 판교 미팅 끝나고 저녁 먹었다. 판교 역 근처 고깃집. "형, 저 믿고 좀 맡겨주세요." 민수가 소주 두 잔 마시고 말했다. "맡기고 있잖아." "아니에요. 형이 다 챙기잖아요." "미팅 때마다 오시고."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니까. "형이 오시면 저는 투명인간이에요." "고객들 형만 봐요." "제가 뭐 하러 거기 있나 싶어요." 미안했다. 진짜로. 근데 바꿀 수가 없다. "판교 사무실도 외로워요." 민수가 또 말했다. "혼자 있으니까 회사 같지 않아요." "대전 팀은 맨날 같이 밥 먹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대전은 6명이 붙어 있다. 점심 같이 먹고, 저녁도 가끔. 회의할 때 화이트보드 앞에 모인다. 민수는 혼자다. 판교 오피스텔에. 화상회의로만 팀 본다. 주 1회 찍는 주간회의 때. "한 달에 한 번은 대전 오세요." 내가 말했다. "팀이랑 같이 일해야죠." 민수는 고개 끄덕였다. 근데 안 온다. 바쁘다고. 서울 미팅 많다고. 나도 이해한다. 왔다 갔다 피곤하다. KTX 4시간. 왕복 8시간. 업무 시간 다 날아간다. 대전 팀도, 민수도, 나도 결국 아무도 안 좋다. 대전 팀은 고객을 못 본다. 뭘 만드는지 감이 안 온다. "형이 서울 가서 뭐 했어?" 물어봐도 내 설명으로만 듣는다. 민수는 외롭다. 혼자다. 팀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월급 받으러 다니는 것 같다고. 지난주에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나는 계속 움직인다. 대전-서울, 서울-대전. KTX 정기권 끊었다. 50만원짜리. 한 달에 15번 넘게 탄다. 집에는 늦게 들어간다. 아내는 잔다. 아이도. 노트북 켜고 민수한테 카톡 보낸다. "오늘 미팅 어떻게 됐어요?" 답 오기 전에 잠든다. 소파에서. 답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겠다. 민수한테 다 맡긴다? 불안하다. 매출 떨어질까 봐. 민수를 대전으로? 싫다고 한다. 서울 떠날 생각 없다고. 내가 판교로? 아내가 싫어한다. 공무원 그만둘 수 없다고. 아이 유치원도 있다고. 그럼 계속 이렇게? 피곤하다. 올해만 KTX 200번 넘게 탔다. 역무원이 나 안다. 얼굴을. 지방 창업은 이런 거다. 서울에 거점 만들어도 결국 혼자 간다. 팀은 쪼개지고, 대표는 바빠지고. "서울로 이전 안 해요?" 투자자가 물어본다. 매번. "...검토 중입니다." 거짓말이다. 검토 안 한다. 못 간다. 가기 싫다. 솔직히. 근데 이렇게 계속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민수는 언젠가 나간다. 확실히. 외로운 사람은 떠난다. 대전 팀도 불만 쌓인다. "형만 좋은 거 다 해." 현우가 농담처럼 말한다. 근데 농담 아니다. 진심 섞였다.오늘도 판교 간다. 민수 단독 미팅 결과 안 좋았다. 내일 다시 가서 수습해야 한다. 새벽 첫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