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도 대전, 아내도 대전: 서울 이사는 꿈꿀 수 없다
- 21 Dec, 2025
처가도 대전, 아내도 대전: 서울 이사는 꿈꿀 수 없다
아내의 대답
“서울 이사 어때?”
물어본 적이 있다. 딱 한 번.
아내는 3초 만에 답했다. “싫어. 나 공무원인데.”
끝이었다. 더 말할 게 없었다.
결혼 전에도 알고 있었다. 아내는 대전시청 공무원이고, 이 동네가 집이고, 여기서 평생 살고 싶어 한다는 것.
나도 사실 서울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서 3년 다닐 때도 주말마다 대전 내려왔다. 부모님도 여기, 친구들도 여기, 익숙한 식당도 여기.
근데 창업하고 나니까 달라졌다.
서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KTX 정기권을 끊은 이유
3년 전에는 월 1회 서울 갔다.
2년 전에는 월 2회.
작년에는 주 1회.
올해는 주 2회.
KTX 정기권 끊었다. 월 38만원. 회사 법인카드로.
대전역 8번 출구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12분. 아침 7시 첫차 타려면 6시 40분에 나가야 한다.
용산역 도착 8시. 지하철 타고 강남까지 30분. 9시 미팅 딱 맞춰 들어간다.
점심 먹고 2시 미팅. 4시 미팅. 6시 저녁 미팅 잡으면 9시 차 타고 대전 들어온다.
집 도착 10시 반.
아들은 자고 있다. 아내는 거실에서 TV 보고 있다.
“고생했어.” 아내가 말한다.
“응.” 나는 대답한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우면 11시. 노트북 켜서 메일 확인한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한테 후속 메일 보낸다.
자정 넘어서 잔다.
다음날 8시 출근.

판교에 영업 거점을 둔 이유
직원은 6명. 5명은 대전 본사, 1명은 판교.
판교 직원은 영업이다. 김대리. 29살.
김대리가 없으면 우리는 서울 고객을 못 만난다.
대기업 담당자들은 대전 오라고 하지 않는다. “판교 오세요.” “여의도 오세요.” 끝.
미팅 잡으려면 우리가 올라가야 한다.
김대리가 선방문하고, 다음에 내가 올라가서 PT 하고, 그다음에 기술이사가 올라가서 데모한다.
PoC 시작하면 일주일에 세 번 올라간다.
대전에서 판교까지 편도 1시간 10분. 왕복 2시간 20분.
일주일에 세 번이면 7시간.
한 달이면 28시간.
KTX 안에서 일한다. 노트북 펴고 문서 작업하고 메일 보낸다.
가끔 생각한다. ‘판교에 사무실 냈으면 이 시간에 뭐 했을까?’
근데 판교 오피스텔 보증금이 5000만원이다. 월세 200만원.
우리 회사 월 매출이 600만원인데 무슨 수로.
김대리 월급 330만원. 판교 원룸 월세 80만원 지원해준다. 실수령 250만원.
대전이면 200만원 줘도 괜찮은데, 서울은 330만원 줘도 “적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김대리 없으면 안 된다.

처가 집에 가면 듣는 말
일요일 점심. 처가에 간다. 대전 둔산동.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장모님이 밥상 차려준다. 된장찌개, 생선구이, 나물 반찬 다섯 가지.
“요즘은 서울 자주 가니?” 장인어른이 묻는다.
“네, 주에 두 번 정도요.”
“힘들겠다.”
“괜찮습니다.”
장모님이 끼어든다. “그냥 서울로 이사 가면 안 돼?”
아내가 대답한다. “엄마, 나 공무원인데 무슨 소리야.”
“그래도 남편이 저렇게 오가는데.”
“아빠도 평생 대전에서 일하셨잖아.”
장인어른은 말이 없다. 40년 대전 공무원 출신이다.
나는 밥을 먹는다.
장모님이 또 묻는다. “회사는 잘되니?”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투자는 받았고?”
“소액 받았습니다.”
“얼마나?”
“1억 정도요.”
“그거로 되니?”
아내가 끼어든다. “엄마, 그런 거 물어보지 마.”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아들이 운다. 나는 아들을 안는다.
밖에 나가서 산책한다.
처가 집에 가면 항상 이렇다. 격려는 없고 걱정만 있다.
이해한다. 딸이 고생하는 게 보이니까.
근데 나도 고생한다. 그것도 좀 봐줬으면.
개발자를 못 뽑는 이유
채용공고 올렸다. 원티드, 로켓펀치, 점핏.
“백엔드 개발자 시니어급, 연봉 4500~6500만원”
지원자 3명. 2명은 신입, 1명은 경력 1년.
시니어는 안 온다. 대전에는.
판교 스타트업 공고 보면 “연봉 5000~8000만원” 이렇게 써있다.
같은 경력인데 대전은 4500, 판교는 5000.
아니, 솔직히 판교는 7000도 준다.
우리는 못 준다.
헤드헌터한테 물어봤다. “대전에서 시니어 개발자 어떻게 구하나요?”
답: “못 구합니다. 서울에서 데려오세요.”
“서울 개발자가 대전 올까요?”
“연봉 2배 주면 옵니다.”
불가능하다.
결국 경력 1년 개발자 뽑았다. 연봉 4200만원.
좋은 사람이다. 열심히 한다.
근데 시니어가 필요하다. 아키텍처 설계할 사람. 주니어 가르칠 사람.
없다. 대전에는.
가끔 생각한다. ‘서울에 있었으면 이 사람 뽑았을까?’
근데 서울에 있었으면 우리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전이라서 버틸 수 있었다. 사무실 월세 80만원. 서울이면 300만원.
직원들 월급 합계 1400만원. 서울이면 2000만원.
대전이 아니면 우리는 이미 망했다.
VC를 만나러 서울에 간다
목요일 오후 2시. 강남역 근처 카페.
VC 파트너를 만난다. 30대 중반. 명함에 “Partner” 적혀있다.
“IR 자료 보내주시죠.”
“네.” 노트북 돌려서 보여준다.
5분 동안 본다. 질문한다.
“매출이 월 600만원?”
“네.”
“적네요.”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대기업 PoC는?”
“3곳 진행 중입니다.”
“언제 계약돼요?”
“내년 상반기 목표입니다.”
“목표가 아니라 확정이 중요한데.”
”…노력하겠습니다.”
분위기가 차갑다.
마지막 질문. “본사가 대전이죠?”
“네.”
“왜 대전이에요?”
이 질문을 100번 들었다.
답변도 100번 했다.
“저희 타겟이 제조업 공장입니다. 충청권에 공장이 많고, 본사도 대전에 있는 게 고객 입장에서 더 신뢰감을…”
파트너가 끊는다. “그건 핑계 같고요. 스타트업은 서울이 맞습니다. 채용도 어렵죠?”
”…네.”
“서울 이전 계획은요?”
“아직은…”
“그럼 어렵겠네요. 저희는 서울 기반 팀에 투자합니다.”
끝났다.
커피값은 내가 냈다. 9000원.
KTX 타고 대전 돌아왔다.
차창 밖을 봤다. 논밭이 지나간다.
생각했다. ‘서울 이사 가야 하나?’
근데 못 간다. 아내가 있다. 아들이 있다. 어린이집이 있다. 처가가 있다.
나는 대전 사람이다.
토요일 아침, 아들과 놀이터
토요일 오전 10시. 아들 손 잡고 아파트 놀이터 간다.
미끄럼틀 태워준다. 아들이 웃는다.
“아빠, 또!”
열 번 태워준다. 땀난다.
벤치에 앉는다. 아들은 혼자 논다.
옆에 앉은 아빠가 말 건다. “몇 살이에요?”
“2살이요.”
“귀엽네요. 무슨 일 하세요?”
“스타트업 합니다.”
“오, 뭐 하는 거예요?”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요.”
“대전에서요?”
“네.”
“힘들겠네요. 대전은 스타트업 하기…”
말을 흐린다.
나는 웃는다. “그래도 살 만합니다.”
“서울 안 가세요?”
“처가가 여기라서요. 아내도 공무원이고.”
“아,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대화가 끝난다.
아들이 넘어진다. 달려가서 일으켜 세운다.
“괜찮아. 아빠 있어.”
아들이 다시 웃는다.
생각한다. ‘내가 서울 가면 이 시간은 없겠지.’
토요일도 일해야 할 것이다. 판교 카페에서 노트북 펴고 있을 것이다.
아들은 엄마랑 있을 것이다.
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싫다.
대전이 답이다. 나한테는.
일요일 밤, 다시 서울 준비
일요일 밤 10시. 내일 서울 간다.
가방 싼다. 노트북, 충전기, 명함, IR 자료 출력본.
아내가 옆에서 본다.
“내일 몇 시 차야?”
“7시요.”
“일찍 자.”
“응.”
침대에 눕는다. 알람 세팅한다. 5시 30분.
아내가 묻는다. “힘들지?”
“괜찮아.”
“미안해.”
“왜?”
“내가 서울 못 가서.”
나는 아내 손을 잡는다.
“아니야. 나도 여기가 좋아.”
반은 진심이다. 반은 위로다.
아내도 안다. 근데 둘 다 말 안 한다.
불 끈다.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언젠가는 서울 안 가도 될까?’
‘대전에서도 투자받고, 채용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아니면 평생 이렇게 KTX 타고 살까?’
답은 모른다.
내일 아침 7시 차 타고 서울 간다.
수요일에 다시 간다.
금요일에 또 간다.
그러다 아들 초등학교 들어간다.
중학교 들어간다.
나는 여전히 KTX를 타고 있을 것이다.
처가도 대전, 아내도 대전.
나도 대전.
그래서 서울로 간다.
결혼은 선택이고, 창업도 선택이다. 근데 둘 다 선택하면 KTX 정기권은 필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