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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창업
- 28 Dec, 2025
제조업 현장을 아는 것: 강점이자 고민
기흥 공장 7년 삼성전자 기흥 라인에서 7년 일했다.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 24시간 돌아가는 현장. 설비 하나 멈추면 시간당 몇천만원 날아간다. 그때는 몰랐다. 그 7년이 나중에 무기가 될 줄. 창업하고 나서 알았다. 현장을 아는 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우리 솔루션 데모할 때마다 느낀다. 고객사 공장장님들 눈빛이 달라진다. "이거 현장 아시는 분이 만드셨네요." 그 한마디가 계약으로 이어진다. 기술보다 신뢰다.경쟁사는 모른다 경쟁 PT 들어가면 안다. 소프트웨어 회사들. 대부분 현장을 몰라. "저희 AI가 불량률 30% 줄입니다." "어떤 공정에서요?" "...모든 공정에서 가능합니다." 말이 안 된다. 사출이랑 프레스가 같을 리 없다. 현장 사람들은 안다. 저런 말 하는 순간 끝이다. 우리는 다르게 접근한다. "사출 공정이시죠? 금형 온도 센서 몇 개 달려있나요?" "6개요." "그럼 우리 솔루션으로 8개로 늘리고, 온도 편차 실시간 모니터링하면 불량률 12% 정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구체적이다. 현실적이다. 고객이 고개를 끄덕인다. 경쟁사 IR 자료 보면 웃긴다. 공장 사진은 게티이미지에서 다운받은 것. 용어는 인터넷에서 긁어온 것. 현장 사람들은 한 번에 안다. 우리는 기흥에서 찍은 내 사진을 쓴다. 허락받고. 실제 라인 사진. 그게 신뢰다.현장의 언어 지난주 충주 공장 미팅. 생산관리 부장님. "CT가 지금 85초인데요." "목표는요?" "75초로 줄이고 싶은데 병목이 3공정이에요." CT. Cycle Time. 생산 사이클 시간. 현장 용어다. 설명 안 해도 안다. 3공정 병목. 바로 이해한다. 경쟁사였으면 물어봤을 것이다. "CT가 뭐죠?" 그 순간 끝이다. 현장 사람들은 설명하기 귀찮아한다. 모르면 그냥 다른 업체 부른다. 우리 개발자들한테도 가르친다. 현장 용어. 공정 흐름. 설비 구조. 코드 짜기 전에 먼저 배운다. "이거 왜 배워야 하나요? 개발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처음엔 다들 그렇게 묻는다. 한 달 지나면 안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이해하려면 현장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걸. 하지만 문제도 있다 현장을 너무 안다는 게 독이 될 때가 있다. 투자자 미팅. 판교 VC 파트너님. "시장 규모가 얼마나 되나요?" "국내 제조업체 중 직원 100명 이상이 약 3500곳이고요." "그게 TAM인가요?" "실제로는 그 중 자동화 여력 있는 곳이 30% 정도라서..." 파트너님 표정이 굳는다. "왜 30%만 되는데요? 다 필요한 거 아닌가요?" 설명한다. 현장 이야기를. 영세 공장은 투자 여력이 없다는 것. 수작업이 더 싸다는 것. 사장님이 IT 자체를 안 믿는다는 것. "그럼 시장이 너무 작은데요." 현실이 그렇다. 근데 투자자는 큰 숫자를 원한다. 현장을 아니까 솔직하게 말한다. 그게 마이너스가 된다. 서울 스타트업들 IR 보면 다르다. TAM 10조. SAM 3조. 근사하게 뻥튀기한다. 투자 받는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말한다. 투자 안 받는다. 이게 맞는 건가. 가끔 모르겠다.제품 개발의 딜레마 우리 솔루션은 현실적이다. 과하지 않다. 딱 필요한 기능만 있다. "AI 예측 정확도가 왜 82%인가요? 95% 이상 만들어야죠." 현장에서는 82%면 충분하다. 95%는 과적합이다. 실제 라인에서는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안다. 기흥에서 겪었다. 근데 고객은 95%를 원한다. 숫자만 본다. 경쟁사는 95%라고 쓴다. 데모 환경에서만 돌아간다. 실제 현장 가면 70%도 안 나온다. 근데 계약은 따낸다. 우리는 정직하게 82%라고 쓴다. 실제 현장에서 82% 나온다. 근데 계약 못 따낸다. 이게 맞나. 현장을 아는 게 맞나. 모르는 척하고 뻥치는 게 나을까. 밤마다 고민한다. 개발팀장 민수가 말했다. "대표님, 우리도 그냥 95%라고 쓰면 안 돼요? 어차피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화가 났다. 근데 뭐라 말 못 했다. 민수 말도 틀린 건 아니니까. 채용의 어려움 현장 경험자를 뽑고 싶다. 제조업 경력 있는 개발자. 근데 없다. 대전에는. 서울은 다르다. 제조업 출신 개발자들이 많다. 스타트업도 많다. 선택지가 많다. 대전은 그냥 없다. 있어도 대기업 붙잡고 있다. 연봉 맞춰줄 수도 없다. 그래서 현장 모르는 개발자를 뽑는다. 가르친다. 3개월 걸린다. 그 사이 다른 스타트업으로 간다. 서울로. "죄송합니다 대표님. 더 좋은 기회가 와서요." 다시 뽑는다. 다시 가르친다. 반복한다. 현장을 아는 게 강점이라면서. 그걸 전파할 사람이 없다. 아이러니다. 혼자 알고 있으면 뭐하나. 회사가 커지려면 팀이 알아야 하는데. 고객이 아는 것 그래도 고객은 안다. 우리가 진짜라는 걸. 천안 자동차 부품 공장. 두 달 전 PoC 끝났다. 어제 전화 왔다. "최 대표님, 우리 본계약 하려고요." "감사합니다. 금액은..." "조달청 가격 그대로 하죠. 대신 다른 라인도 해주세요." 2500만원. 3개 라인 확장. 연 매출 1억 고객 되는 거다. "경쟁사 3곳 더 봤는데요. 최 대표님이 제일 현장을 아시더라고요. 믿고 갑니다." 그 말 듣는 순간. 기흥 7년이 떠올랐다. 야근하던 날들. 설비 앞에서 모니터 보던 시간들. 헛되지 않았다. 지금 쓰인다. 투자자는 모른다. 이 가치를. 현장을 아는 게 얼마나 큰 해자인지. 천천히 간다. 우리 속도로. 고객이 알아주는 속도로. 제조업의 미래 요즘 뉴스 보면 AI다 뭐다 시끄럽다. 제조업은 망한다고 한다. 다 로봇이 대체한다고. 웃긴다. 현장 가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다. 제조업은 안 없어진다. 방법이 바뀔 뿐이다. 더 스마트해질 뿐이다. 그 중간에 우리가 있다. 현장과 기술을 연결하는. 현장 없는 기술은 뜬다. 기술 없는 현장은 죽는다. 둘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 사람이다. 기흥에서 배웠다. 창업해서 실천한다. 느리다. 맞다. 서울 스타트업들보다 느리다. 덜 화려하다. 근데 우리는 진짜다. 현장이 증명한다. 고객이 증명한다.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은. KTX 안에서 다음 주 또 서울 간다. VC 2곳 미팅. 정부 과제 발표. 저녁에는 제조 스타트업 모임. KTX 시간표 확인했다. 6시 반 첫차. 8시 반 도착. 미팅 9시. 노트북 챙긴다. 가는 길에 IR 자료 고친다. 어떻게 설명할까. 현장의 가치를. TAM 숫자 말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공장들이 보인다. 평택. 천안. 저기도 우리 고객될 곳들이다. 숫자로 설명 못 하는 시장. 현장 가봐야 아는 니즈. 그게 우리 강점이다. 투자자가 모르면 어쩔 수 없다. 고객은 안다. 그걸로 버틴다. 기흥 7년. 창업 3년. 앞으로 얼마나 더 갈까. 모른다. 근데 계속 간다. 현장을 아니까. 그게 내 무기니까.현장 아는 게 답이다. 느려도.
- 27 Dec, 2025
'지방 스타트업'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
오늘도 '대전의' IR 자료 검토 메일이 왔다. "대전의 스마트팩토리 스타트업 지방의..." 다시 왔다. 이 단어. 커피를 마셨다. 세 번째다. 창밖을 봤다. 유성구 테크노밸리. 나쁘지 않은데. 그런데 소개될 때마다 '대전'이 먼저 붙는다.작년 겨울 컨퍼런스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였다. "다음은 대전에서 오신 최지방 대표님입니다." 박수. 그리고 시선. '아, 지방에서 왔구나.' 피칭 10분. 기술력 설명 8분. 질의응답에서 첫 질문. "대전에 있으면 개발자 채용이 힘들지 않나요?" 기술 질문은 없었다. 솔루션 아키텍처는 안 궁금한 거다. 지역이 궁금한 거다. 대전이 문제인 거다. 숙소로 돌아오는 KTX 안. 노트북을 펼쳤다. 피칭 자료를 다시 봤다. 어디가 부족했나. 기술 설명이 약했나. 아니다. 기술은 괜찮았다. 문제는 첫 소개였다. '대전에서 온.'서울 VC 미팅 4개월 기록 1월. 강남역 VC. "지방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우리는 일반 트랙 지원했다. 2월. 판교 액셀러레이터. "대전에 계시면 네트워킹이..." 우리 고객사는 전국구다. 3월. 여의도 투자사. "서울 오실 계획은요?" 본사 이전 얘기가 아니었다. 4월. 을지로 VC. "지방 제조 스타트업 포트폴리오가..." 제조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방이 문제였다. 투자 제안은 없었다. 4개월간 하나도. KTX 정기권 48만원어치를 썼다. 미팅은 16번 했다. 결과는 0건이다. 집에 와서 아내한테 말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닌가 봐." 아내가 물었다. "그럼 뭐가 문제야?" 말하지 않았다. 대전이라고.실제 차이 개발자 채용 공고를 냈다. 3주간. 지원자 2명. 둘 다 경력 1년 미만. 같은 시기 판교 스타트업 공고. 우리보다 작은 회사. 지원자 47명. 경력 3년 이상 23명. 연봉 제시했다. 5500만원. "서울은 7000 받았는데요." 우리 자금은 3억이다. 7000 주면 월 운영비가 터진다. 결국 채용 실패. 대표가 개발했다. 나. 밤 11시까지 코딩. 주말도 코딩. 엔지니어 출신이라 가능했다. 근데 이게 맞나. 아침 8시 출근. 영업. 미팅. IR. 저녁 7시부터 개발. 밤 11시 퇴근. 집에 와서 씻고 누우면 12시. 아들이 자는 모습을 봤다. 이번 주도 같이 못 놀았다. 기술력은 있다. 고객사 만족도 높다. 그런데 성장은 느리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이 없다. 왜 없나. 서울이 아니라서. 정부 과제의 역설 대전에 있으면 좋은 게 하나 있다. 정부 과제. 대덕연구단지 덕분이다. 과제가 많다. 작년 과기부 R&D 2억. 올해 중기부 1.5억 신청 중. 매출 600만원. 과제 의존도 70%. 이게 건강한가. VC들이 본다. "정부 과제 비중이 높네요." 변명한다. "민간 매출 늘리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과제 없으면 문 닫는다. 대전이라서 과제를 받는다. 과제 받으니까 VC가 안 본다. VC 안 보니까 과제로 버틴다. 순환이다. 벗어날 수 없는. 동기가 물었다. 서울에서 SaaS 하는 친구. "Series A 받았다고?" "응. 50억." "매출은?" "월 3천." 우리보다 5배다. 근데 투자는 25배 받았다. 기술력 차이는 없다. 확신한다. 차이는 주소다. 서울 강남구. 우리는 대전 유성구. 꼬리표를 떼려는 시도들 회사 소개서를 바꿨다. Before: "대전 기반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After: "제조 데이터 인텔리전스 플랫폼" 지역을 뺐다. LinkedIn 프로필도 바꿨다. "Location: Daejeon" → "Location: South Korea" 넓게 썼다. IR 자료 첫 장. 회사 사진을 뺐다. 대전 건물이 보여서. 대신 고객사 로고를 넣었다. 서울 본사들. 효과는 미미했다. 어차피 미팅에서 묻는다. "본사가 어디세요?" "대전입니다." "아..." 이 "아..."에 모든 게 담겨 있다. 연민. 걱정. 그리고 거리두기. 기술력으로 말하기 고객사가 늘었다. 천천히. 경기도 화성 공장. 충남 아산 공장. 전북 군산 공장. 우리 솔루션 도입 후 불량률 23% 감소.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시간 75% 단축. 이게 실력이다. PoC 미팅. 대기업 스마트팩토리 담당 상무. "솔루션 괜찮네요. 근데 대전에 계시면..." 또 나왔다. 참았다가 말했다. "저희 기술팀 역량 보셔야죠. 지역이 중요한가요?" 상무가 웃었다. "그래도 서울이 가깝긴 해야죠." PoC는 통과했다. 그런데 본계약은 보류.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무엇을. 기술을 더 봐야 하나. 아니다. 우리가 버티는지 보는 거다. 지방 스타트업이 망하는 걸 많이 봤으니까. 신뢰의 문제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밤에 개발하면서 생각했다. 언제쯤 '대전의'를 떼고 소개될까. 언제쯤 기술로만 평가받을까. 서울 가지 않기로 결심 아내와 얘기했다. 3시간. "서울 가면 투자 받기 쉬울까?" "모르겠어. 근데 우리 삶은 힘들어지겠지." "그렇긴 해." 아내 공무원 경력 8년. 그만두면 다시 못 들어간다. 부모님 여기 계신다. 처가도 여기다. 아이 어린이집도 적응했다. 우리 삶의 뿌리가 여기 있다. 그걸 뽑고 서울 가면 뭐가 달라질까. 투자 확률 20% 올라간다 치자. 대신 삶의 질은 50% 떨어진다. 출퇴근 2시간. 집값 2배. 육아 도움 0. 계산이 안 맞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여기서 한다. 대전에서. '대전의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스타트업'으로 끝낸다. 지역 빼는 게 목표다. 실제로 가능한가 솔직히 모르겠다. 국내 유니콘 23개. 서울 21개. 경기 2개. 대전은 0개다. 충청권 전체가 0개. 통계가 말한다. 가능성 낮다고. 그런데 해외는 다르다. Zoom. 산호세. Atlassian. 시드니에서 시작. Shopify. 캐나다 오타와. 기술 기업이 꼭 실리콘밸리에만 있나. 아니다. 그럼 한국도 가능해야 맞다. 왜 안 되는가. 생태계 때문이다. 투자. 인재. 네트워크. 다 서울에 있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 혼자서는. 그럼 어떻게 하나. 버티는 거다. 실력으로. 기술로 증명하는 거다. 고객사 늘리고. 매출 올리고. 이익 내고. 그러면 꼬리표는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대전의'가 아니라 '수익성 좋은'. '지방의'가 아니라 '기술력 있는'. 시간 문제다. 그렇게 믿는다. 오늘의 선택 아침 8시. 출근. 팀원들이 모였다. 6명. 대전 토박이 4명. 세종 1명. 청주 1명. 다들 서울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 있다. 이유가 있어서. 개발자 김 대리. 전 네이버. "서울 출퇴근 2시간이 싫었어요." 영업 박 과장. 전 삼성. "애 키우기는 여기가 낫죠." 이들도 안다. 여기 있으면 연봉이 적다는 걸. 커리어 성장이 느리다는 걸. 그래도 남았다. 다른 가치가 있어서. 회의 시작. "이번 달 목표. 신규 고객 3곳. 가능하죠?" "해봅시다." 창밖을 봤다. 유성구 아침. 나쁘지 않다. 여기. 점심은 백반집. 7000원. 서울이면 만원이다. 작지만 실질적인 차이. 이런 게 쌓이면 버틸 수 있다. 언젠가 5년 후를 상상했다. IR 자료 첫 장. "제조 데이터 인텔리전스 선도 기업" 지역 언급 없다. 매출 100억. 영업이익 20억. 투자 안 받아도 된다. 자생 가능. 소개받는다. "스마트팩토리 분야 대표 스타트업 지방입니다." '대전의'가 없다. 필요 없으니까. 실력이 증명됐으니까. 이게 목표다. 현실적인가. 모르겠다. 가능한가. 해봐야 안다. 포기할 건가. 아니다. 여기서 한다. 끝까지. '지방 스타트업' 꼬리표. 떼는 방법은 하나다. 계속하는 것.KTX 안. 서울 가는 길. 오늘도 미팅이다. 그런데 다음 주부터는 고객사가 우리 사무실로 온다. 처음이다. 꼬리표가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다.
- 21 Dec, 2025
처가도 대전, 아내도 대전: 서울 이사는 꿈꿀 수 없다
처가도 대전, 아내도 대전: 서울 이사는 꿈꿀 수 없다 아내의 대답 "서울 이사 어때?" 물어본 적이 있다. 딱 한 번. 아내는 3초 만에 답했다. "싫어. 나 공무원인데." 끝이었다. 더 말할 게 없었다. 결혼 전에도 알고 있었다. 아내는 대전시청 공무원이고, 이 동네가 집이고, 여기서 평생 살고 싶어 한다는 것. 나도 사실 서울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서 3년 다닐 때도 주말마다 대전 내려왔다. 부모님도 여기, 친구들도 여기, 익숙한 식당도 여기. 근데 창업하고 나니까 달라졌다. 서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KTX 정기권을 끊은 이유 3년 전에는 월 1회 서울 갔다. 2년 전에는 월 2회. 작년에는 주 1회. 올해는 주 2회. KTX 정기권 끊었다. 월 38만원. 회사 법인카드로. 대전역 8번 출구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12분. 아침 7시 첫차 타려면 6시 40분에 나가야 한다. 용산역 도착 8시. 지하철 타고 강남까지 30분. 9시 미팅 딱 맞춰 들어간다. 점심 먹고 2시 미팅. 4시 미팅. 6시 저녁 미팅 잡으면 9시 차 타고 대전 들어온다. 집 도착 10시 반. 아들은 자고 있다. 아내는 거실에서 TV 보고 있다. "고생했어." 아내가 말한다. "응." 나는 대답한다. 샤워하고 침대에 누우면 11시. 노트북 켜서 메일 확인한다.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한테 후속 메일 보낸다. 자정 넘어서 잔다. 다음날 8시 출근.판교에 영업 거점을 둔 이유 직원은 6명. 5명은 대전 본사, 1명은 판교. 판교 직원은 영업이다. 김대리. 29살. 김대리가 없으면 우리는 서울 고객을 못 만난다. 대기업 담당자들은 대전 오라고 하지 않는다. "판교 오세요." "여의도 오세요." 끝. 미팅 잡으려면 우리가 올라가야 한다. 김대리가 선방문하고, 다음에 내가 올라가서 PT 하고, 그다음에 기술이사가 올라가서 데모한다. PoC 시작하면 일주일에 세 번 올라간다. 대전에서 판교까지 편도 1시간 10분. 왕복 2시간 20분. 일주일에 세 번이면 7시간. 한 달이면 28시간. KTX 안에서 일한다. 노트북 펴고 문서 작업하고 메일 보낸다. 가끔 생각한다. '판교에 사무실 냈으면 이 시간에 뭐 했을까?' 근데 판교 오피스텔 보증금이 5000만원이다. 월세 200만원. 우리 회사 월 매출이 600만원인데 무슨 수로. 김대리 월급 330만원. 판교 원룸 월세 80만원 지원해준다. 실수령 250만원. 대전이면 200만원 줘도 괜찮은데, 서울은 330만원 줘도 "적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 김대리 없으면 안 된다.처가 집에 가면 듣는 말 일요일 점심. 처가에 간다. 대전 둔산동.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장모님이 밥상 차려준다. 된장찌개, 생선구이, 나물 반찬 다섯 가지. "요즘은 서울 자주 가니?" 장인어른이 묻는다. "네, 주에 두 번 정도요." "힘들겠다." "괜찮습니다." 장모님이 끼어든다. "그냥 서울로 이사 가면 안 돼?" 아내가 대답한다. "엄마, 나 공무원인데 무슨 소리야." "그래도 남편이 저렇게 오가는데." "아빠도 평생 대전에서 일하셨잖아." 장인어른은 말이 없다. 40년 대전 공무원 출신이다. 나는 밥을 먹는다. 장모님이 또 묻는다. "회사는 잘되니?"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투자는 받았고?" "소액 받았습니다." "얼마나?" "1억 정도요." "그거로 되니?" 아내가 끼어든다. "엄마, 그런 거 물어보지 마."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아들이 운다. 나는 아들을 안는다. 밖에 나가서 산책한다. 처가 집에 가면 항상 이렇다. 격려는 없고 걱정만 있다. 이해한다. 딸이 고생하는 게 보이니까. 근데 나도 고생한다. 그것도 좀 봐줬으면. 개발자를 못 뽑는 이유 채용공고 올렸다. 원티드, 로켓펀치, 점핏. "백엔드 개발자 시니어급, 연봉 4500~6500만원" 지원자 3명. 2명은 신입, 1명은 경력 1년. 시니어는 안 온다. 대전에는. 판교 스타트업 공고 보면 "연봉 5000~8000만원" 이렇게 써있다. 같은 경력인데 대전은 4500, 판교는 5000. 아니, 솔직히 판교는 7000도 준다. 우리는 못 준다. 헤드헌터한테 물어봤다. "대전에서 시니어 개발자 어떻게 구하나요?" 답: "못 구합니다. 서울에서 데려오세요." "서울 개발자가 대전 올까요?" "연봉 2배 주면 옵니다." 불가능하다. 결국 경력 1년 개발자 뽑았다. 연봉 4200만원. 좋은 사람이다. 열심히 한다. 근데 시니어가 필요하다. 아키텍처 설계할 사람. 주니어 가르칠 사람. 없다. 대전에는. 가끔 생각한다. '서울에 있었으면 이 사람 뽑았을까?' 근데 서울에 있었으면 우리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전이라서 버틸 수 있었다. 사무실 월세 80만원. 서울이면 300만원. 직원들 월급 합계 1400만원. 서울이면 2000만원. 대전이 아니면 우리는 이미 망했다. VC를 만나러 서울에 간다 목요일 오후 2시. 강남역 근처 카페. VC 파트너를 만난다. 30대 중반. 명함에 "Partner" 적혀있다. "IR 자료 보내주시죠." "네." 노트북 돌려서 보여준다. 5분 동안 본다. 질문한다. "매출이 월 600만원?" "네." "적네요."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대기업 PoC는?" "3곳 진행 중입니다." "언제 계약돼요?" "내년 상반기 목표입니다." "목표가 아니라 확정이 중요한데." "...노력하겠습니다." 분위기가 차갑다. 마지막 질문. "본사가 대전이죠?" "네." "왜 대전이에요?" 이 질문을 100번 들었다. 답변도 100번 했다. "저희 타겟이 제조업 공장입니다. 충청권에 공장이 많고, 본사도 대전에 있는 게 고객 입장에서 더 신뢰감을..." 파트너가 끊는다. "그건 핑계 같고요. 스타트업은 서울이 맞습니다. 채용도 어렵죠?" "...네." "서울 이전 계획은요?" "아직은..." "그럼 어렵겠네요. 저희는 서울 기반 팀에 투자합니다." 끝났다. 커피값은 내가 냈다. 9000원. KTX 타고 대전 돌아왔다. 차창 밖을 봤다. 논밭이 지나간다. 생각했다. '서울 이사 가야 하나?' 근데 못 간다. 아내가 있다. 아들이 있다. 어린이집이 있다. 처가가 있다. 나는 대전 사람이다. 토요일 아침, 아들과 놀이터 토요일 오전 10시. 아들 손 잡고 아파트 놀이터 간다. 미끄럼틀 태워준다. 아들이 웃는다. "아빠, 또!" 열 번 태워준다. 땀난다. 벤치에 앉는다. 아들은 혼자 논다. 옆에 앉은 아빠가 말 건다. "몇 살이에요?" "2살이요." "귀엽네요. 무슨 일 하세요?" "스타트업 합니다." "오, 뭐 하는 거예요?"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요." "대전에서요?" "네." "힘들겠네요. 대전은 스타트업 하기..." 말을 흐린다. 나는 웃는다. "그래도 살 만합니다." "서울 안 가세요?" "처가가 여기라서요. 아내도 공무원이고." "아,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대화가 끝난다. 아들이 넘어진다. 달려가서 일으켜 세운다. "괜찮아. 아빠 있어." 아들이 다시 웃는다. 생각한다. '내가 서울 가면 이 시간은 없겠지.' 토요일도 일해야 할 것이다. 판교 카페에서 노트북 펴고 있을 것이다. 아들은 엄마랑 있을 것이다. 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싫다. 대전이 답이다. 나한테는. 일요일 밤, 다시 서울 준비 일요일 밤 10시. 내일 서울 간다. 가방 싼다. 노트북, 충전기, 명함, IR 자료 출력본. 아내가 옆에서 본다. "내일 몇 시 차야?" "7시요." "일찍 자." "응." 침대에 눕는다. 알람 세팅한다. 5시 30분. 아내가 묻는다. "힘들지?" "괜찮아." "미안해." "왜?" "내가 서울 못 가서." 나는 아내 손을 잡는다. "아니야. 나도 여기가 좋아." 반은 진심이다. 반은 위로다. 아내도 안다. 근데 둘 다 말 안 한다. 불 끈다.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언젠가는 서울 안 가도 될까?' '대전에서도 투자받고, 채용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아니면 평생 이렇게 KTX 타고 살까?' 답은 모른다. 내일 아침 7시 차 타고 서울 간다. 수요일에 다시 간다. 금요일에 또 간다. 그러다 아들 초등학교 들어간다. 중학교 들어간다. 나는 여전히 KTX를 타고 있을 것이다. 처가도 대전, 아내도 대전. 나도 대전. 그래서 서울로 간다.결혼은 선택이고, 창업도 선택이다. 근데 둘 다 선택하면 KTX 정기권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