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Dec, 2025
대전 창업 커뮤니티: 따뜻하지만 작다
목요일 밤 밋업목요일 저녁 7시. 유성구 한 카페. 대전 스타트업 밋업이다. 오늘 참석자는 15명. 이제 얼굴 다 안다. 3개월에 한 번씩 보니까. 옆 테이블 대표는 헬스케어. 건너편은 에듀테크. 나처럼 제조업 하는 사람은 둘. 다들 좋은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요즘 어때요?" "그럭저럭요. 대표님은?" "비슷해요." 이 대화가 편하다. 서울처럼 IR 모드 아니어도 된다. 누가 떡볶이 시켰다. 다들 나눠 먹는다. 이런 게 좋다. 근데. 떡볶이 먹으면서 드는 생각. '이 시간에 판교는 뭐 하고 있을까?'정보는 늦게 온다밋업에서 들은 이야기. "요즘 GPT 래퍼 투자 많이 받던데요." 아. 그거 두 달 전 트렌드다. 서울은 이미 지나갔다. 정보가 늦게 온다. 대전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VC 소식도 그렇다. "○○ 펀드 모집한대요." 알고 보면 이미 마감. 서울 지인한테 물어봤다. "그거 한 달 전에 끝났어." 속상하다. 정보 비대칭. 이게 진짜 문제다. 채팅방도 다르다. 서울 창업가 단톡방은 실시간. 새벽에도 메시지 올라온다. 대전 단톡방은 조용하다. 가끔 "다들 화이팅" 정도.서울 가는 날 회사에 말했다. "내일 서울 갑니다." 직원들 반응이 재밌다. "또요?" "이번 주에 벌써 두 번째예요." 미안하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서울 가는 날 일정표.9시 VC 미팅 11시 액셀러레이터 1시 점심 (예비 창업가) 3시 대기업 담당자 5시 커피챗5시 반에 대전 가는 KTX. 7시 반 도착. 사무실 들러서 9시까지. 이게 한 달에 6번. KTX 정기권 끊었다. 41만원. 회사 돈. 판교 영업 담당자가 말했다. "대표님, 서울에 거점 하나 더 두시죠." "돈이 어딨어." 실은 생각해봤다. 판교에 작은 오피스. 나랑 개발자 한 명. 근데 그럼 본사는? 대전 팀은? 다 서울 가고 싶어 할 텐데.작지만 진심인밋업 끝나고 몇 명 남았다. 근처 고깃집. 헬스케어 대표가 말했다. "저도 서울 갈까 고민했어요." "진짜요?" "근데 우리 회사 CTO가 대전 사람이라." 에듀테크 대표. "저는 부모님이 여기 계셔서." 다들 이유가 있다. 대전에 남은 이유. 누군가 물었다. "최 대표님은요?" "아내가 공무원이라." 다들 웃었다. "그게 최고죠." 이 사람들 좋다. 서로 부럽지 않은 척한다. 근데 속마음은 다 안다. 다들 서울 궁금하다. 판교 부럽다. VC 많은 곳. 개발자 많은 곳. 근데 여기 있다. 각자 이유로. 고기 먹으면서 나눈 정보. "○○ 과제 괜찮더라." "□□ 지원사업 한번 봐." "△△ 대기업 담당자 소개해줄게." 이런 거. 서울처럼 화려하진 않다. 근데 진심이다.돌아오는 KTX 밤 11시 KTX. 대전 가는 마지막 차. 서울 미팅 3개 끝. 피곤하다. 옆자리는 대학생. 취업 공부하나 봐. 나도 저랬지. 삼성 입사 준비. 서울이 꿈이었다. 지금은 반대로 간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핸드폰 봤다. 판교 지인이 올린 인스타. "스타트업 네트워킹 데이 🔥" 사진 속 사람들 100명은 넘어 보인다. 다들 명함 주고받는다. 댓글 봤다. "대전도 이런 거 있어요?" 누가 나한테 물어본 적 있다. 있다. 15명 규모로. 차이가 크다. 인정한다. 근데. 대전 15명은 진짜 친구가 된다. 서울 100명은 명함 친구. 이렇게 생각하면서 산다. 안 그러면 못 버틴다.다음 날 아침 출근했다. 직원들이 물어본다. "어제 어땠어요?" "그냥 그랬어." 사무실 창밖. 대전 풍경. 한적하다. 서울 같으면 지금쯤. 스타벅스는 만석. 길거리는 정장 입은 사람들. 여긴 조용하다. 그게 좋을 때도 있다. 집중된다. CTO가 말했다. "대표님, 다음 달 개발자 채용 어떻게 할까요?" "서울 연봉은 못 맞춰줘." "그럼 대전에서?" "그래." 또 대전이다. 계속 대전이다. 근데 뭐. 여기서 시작했으니까. 여기서 버텨본다. 밋업 단톡방에 메시지 왔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ㅎㅎ" "담에 또 봐요" 15명. 작다. 근데 따뜻하다. 그걸로 됐다. 지금은.작지만 진심이면 된다. 지금은.
- 13 Dec, 2025
제조업 B2B SaaS라는 설명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엘리베이터 피치 30초 "무슨 일 하세요?" 명절 때마다 듣는다. 이번엔 고모부였다.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만들어요." "아, 공장 자동화?" "비슷한데요, 소프트웨어로..." "아 기계 만드시는구나." 아니다. 설명을 다시 시작한다. "제조업 B2B SaaS입니다." "...네?" 이 대화가 3년째 반복된다.왜 이렇게 어려운가 문제는 세 겹이다. 첫째, '제조업'. 사람들은 공장하면 기계를 떠올린다. 컨베이어 벨트, 용접, 조립. 소프트웨어는 안 떠올린다. 둘째, 'B2B'. 일반인은 B2C만 안다. 배달앱, 쇼핑몰, 게임. 기업 대상 소프트웨어는 존재감이 없다. 셋째, 'SaaS'. 이건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아 구독형이요?" 반만 맞다. 세 개를 합치면 난이도가 기하급수다. 제조업을 모르는 사람에게 B2B를 설명하고, B2B를 모르는 사람에게 SaaS를 설명한다. 30초 안에. 불가능하다.KTX에서의 연습 서울 가는 날이면 연습한다. 오늘은 마포에서 VC 미팅이 있다. 1시간 20분 동안 노트북을 켜고 피치덱을 본다. 첫 페이지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저희는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너무 딱딱하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추상적이다. "MES와 ERP를 연결해서..." 전문용어 폭격이다. 옆자리 할머니가 김밥을 드신다. 나는 노트북 화면만 본다. 설명 버전 7개를 만들었다. 제조업 종사자용, 비전공자용, VC용, 정부과제용, 가족용, 구직자용, 기자용. 버전마다 단어가 다르다. '설비 가동률'이 어떤 버전에선 '기계 사용 시간'이 된다. 'Real-time monitoring'이 '실시간 체크'가 된다. 천안아산역을 지난다. 아직도 첫 페이지다.대전 백반집에서 점심시간이다. 사무실 근처 '맛나식당'에 간다. 사장님이 물으신다. "요즘 일은 잘 되냐?" "그럭저럭요." "근디 니네 회사가 정확히 뭐 하는 디야?" 3년째 오는 단골집이다. 아직도 모르신다. "공장에서 쓰는 프로그램 만들어요." "아, 컴퓨터로 기계 돌리는 거?" "비슷한데요, 좀 다른..." "아이고 어렵다. 아무튼 잘 되이소." 된장찌개를 드신다. 나도 먹는다. 옆 테이블에서 대화가 들린다. "우리 아들이 카카오 다니는디." "오, 대단하다." 설명이 필요 없다. 카카오톡을 다들 쓰니까. 우리 직원이 "부럽네요"라고 한다. 나도 그렇다. IR 자료 37번째 버전 작년 11월, 판교 액셀러레이터 IR이었다. "3분 드립니다." 첫 슬라이드. "국내 제조업 시장규모 500조." 심사위원이 핸드폰을 본다. 두 번째 슬라이드. "스마트팩토리 보급률 12%." 한 명이 커피를 마신다. 세 번째 슬라이드. "저희 솔루션은..." "잠깐만요." 질문이 들어왔다. "그래서 정확히 뭘 파는 건가요?" 1분 30초가 지났다. 아직 제품 설명도 못 했다. "공장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모아서 분석하고..." "MES 같은 건가요?" "MES보다 가볍고, 설치가 쉽고..." "그럼 IoT?" "IoT도 포함되지만 본질은 SaaS..." 3분이 끝났다. 질문만 5개 받았다. 제품 시연은 못 했다. 복도에서 다른 팀 발표가 들렸다. "배달 음식 추천 앱입니다." 박수가 나왔다. 1분 만에 다들 이해했다. 채용 공고를 쓸 때 개발자를 구한다. 공고를 쓴다. "제조업 B2B SaaS 스타트업에서 백엔드 개발자를 모십니다." 지원이 없다. 일주일째다. 공고를 고친다.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하실 분을 찾습니다." 지원 1명. 경력 8년. 질문이 왔다. "제조 도메인 경험이 필수인가요?" 아니다. 근데 설명이 필요하다. 30분짜리 통화를 했다. 결국 지원을 취소했다. "제조업은 잘 모르겠네요." 다시 고친다.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플랫폼 개발자 모집." 제조업을 뺐다. 지원이 3명 왔다. 면접을 봤다. 셋 다 물었다. "그래서 정확히 뭐 만드는 회사죠?" 설명했다. 한 명은 "음... 복잡하네요"라고 했다. 한 명은 "제조업 경험이 없어서요"라고 했다. 한 명은 합격했는데 서울 회사 오퍼를 받아서 거절했다. 판교 스타트업 채용공고를 본다. "OO페이 백엔드 개발자 모집." 지원자 120명. 부럽다. 아내와의 대화 저녁에 집에 온다. 아들이 잔다. 아내가 묻는다. "오늘 투자 미팅 어땠어?" "글쎄." "떨어진 거야?" "아직 몰라. 근데 설명하는 데만 20분 걸렸어." "그럼 제품 설명은 못 한 거네?" "응." 아내가 웃는다. "그러게 좀 쉬운 거 할 걸." 농담이다. 근데 반만 농담이다. "우리 동기가 배달앱 스타트업 다니는데, 투자 5억 받았대." "그래." "설명 필요 없잖아. 배달앱이면 다들 알지." "그렇지." "너도 그런 거 하지 그랬어." 아내는 공무원이다. 안정적이다. 나는 3년째 월급을 못 받았다. 대신 직원들 월급은 꼬박꼬박 준다. "제조업이 중요해. 한국 GDP의 28%야." "근데 사람들은 모르잖아." 맞는 말이다. 할 말이 없다. 엔지니어 시절이 그립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땐 설명이 필요 없었다.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예요." "오, 삼성?" 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스타트업 대표예요." "오, 뭐 하는 데요?" 시작이다. 엔지니어 시절엔 내 일이 명확했다. 수율 개선, 불량률 감소, 공정 최적화. 숫자로 나왔다. 성과가 보였다. 지금은 다르다. '시장 교육'이라는 걸 해야 한다. 고객에게 우리 솔루션이 왜 필요한지 설명한다. 그 전에 스마트팩토리가 뭔지 설명한다. 그 전에 제조업 디지털 전환이 뭔지 설명한다. 3단계 설명이다. 피곤하다. 공장에선 문제가 명확했다. 라인이 멈추면 고친다. 불량이 나오면 원인을 찾는다. 지금은 문제부터 설명해야 한다. "왜 이게 문제인가요?" 중소기업 대표님들이 묻는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실시간 모니터링, 예지 보전. 단어가 낯설다. 공장 사장님들은 30년째 감으로 공장을 돌렸다. 잘 돌아갔다. 왜 바꿔야 하나. 설득이 필요하다.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세일즈다. 정부과제 제안서에서만 유일하게 설명이 쉬운 곳이 있다. 정부 R&D 과제 제안서다. "제조업 디지털 전환을 위한 클라우드 기반 통합 관제 시스템 개발." 심사위원들이 다 이해한다. 제조업 박사들이다. MES, ERP, POP, WMS. 약어를 써도 된다. 오히려 써야 한다. 전문성을 보여줘야 한다. 작년에 과제 하나 땄다. 2억. 2년 과제다. 제안서는 120페이지였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기술 스펙만 채웠다. 근데 이게 문제다. 정부 과제에만 통하는 언어다. 시장에선 안 통한다. 실제 고객사 미팅에 가면 다르다. "박사님, 저희는 그냥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만 보고 싶어요." 중소기업 생산관리 과장님이 말씀하신다. 제안서에 쓴 단어들이 부끄럽다. 'Digital Twin 기반 실시간 시뮬레이션.' 과장님은 "그냥 핸드폰으로 볼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두 개 언어를 쓴다. 정부용, 고객용. 피곤하다. 대전 스타트업 모임에서 월례 모임이 있다. 대전 스타트업 대표들 20명 정도 모인다. 자기소개 시간이다. 한 명씩 돌아간다. "안녕하세요, 교육 플랫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헬스케어 앱 만들어요." "배달 중개 플랫폼입니다." 다들 한 문장이다. 명확하다. 내 차례다. "제조업 B2B SaaS...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하고 있고요, 공장 데이터를..." 옆 사람이 "아 MES?"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려다가 "비슷해요"라고 답한다. 설명하면 길다. 끝나고 네트워킹 시간이다. 교육 플랫폼 대표가 온다. "제조업이요? 어렵겠네요." "좀 그래요." "고객사는 어떻게 찾아요?" "발로 뛰어야죠. 공장 찾아가고." "우리는 그냥 페이스북 광고 돌리는데." "부럽네요." 헬스케어 앱 대표도 온다. "B2B는 매출 사이클이 길지 않아요?" "6개월에서 1년이요." "우리는 다운로드하면 바로 결제 들어오는데." "그렇겠네요."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한다. 나만 어려운 걸 하는 건가. PoC 설명하기 대기업 PoC가 진행 중이다. 3개월 무상 파일럿이다. 구매팀 과장님이 묻는다. "이거 끝나고 정식 계약하면 얼마예요?" "월 500만원입니다." "...비싸네요. 이게 정확히 뭘 해주는 건데요?" 다시 설명한다. 세 번째다. "설비별 가동률을 실시간으로 보여드리고, 비가동 사유를 분석하고, 예지 보전 알람을 주고..." "아 그러니까 기계 고장 나기 전에 알려준다는 거죠?" "맞습니다. 그리고..." "그럼 그렇게 말하지." 맞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설명하면 길다. 줄이면 오해가 생긴다. PoC 결과 보고서를 쓴다. 30페이지다. 그래프가 20개다. 가동률 개선 8%, 비가동 시간 감소 15%, 예측 정확도 92%. 숫자는 좋다. 근데 과장님이 묻는다. "이거 우리가 왜 500 주고 사야 해요? 지금도 공장 잘 돌아가는데." 대답이 막힌다. 잘 돌아가는 걸 더 잘 돌아가게 하는 게 우리 제품이다. 근데 '잘 돌아가는데 왜?'라는 질문엔 답이 어렵다. 결국 "ROI가 6개월이면 나옵니다"라고 한다. 숫자로 승부한다. 서울 사람들의 반응 판교에 영업 거점이 있다. 직원 1명이 상주한다. 주간 회의를 한다. 화상으로. "이번 주 미팅 5건 잡혔어요." "좋네. 어디어디?" "판교 스타트업 2곳, 강남 VC 1곳, 여의도 대기업 계열사 1곳." "반응은?" "음... 다들 '제조업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대전 오실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어려워하고." 서울 사람들은 대전을 멀게 느낀다. KTX로 1시간인데. 반대로 대전 고객사들은 서울 회사를 선호한다. "본사가 서울이에요?" 물어본다. "대전입니다." "아..." 어정쩡하다. 서울에선 지방 회사고, 지방에선 서울 회사가 아니다. 영업 직원이 말한다. "형, 차라리 본사를 판교로 옮기면 어때요?" "직원들 다 대전 사람인데." "그럼 법인만이라도." "투자 받으면 생각해볼게." 근데 솔직히 나도 대전이 좋다. 출퇴근 20분이다. 주차 걱정 없다. 아들 어린이집 픽업이 가능하다. 서울 가면 다 포기해야 한다. 트레이드오프다. 설명의 편의 vs 삶의 질. 아직은 후자를 택한다. 투자자들의 질문 IR할 때마다 받는 질문들이 있다. "TAM이 얼마죠?" "국내 제조업체 40만개, 그중 스마트팩토리 대상은..." "아니 그냥 숫자로요." "8000억 정도 됩니다." "근데 제조업은 보수적이지 않나요?" "그래서 저희가..." "도입 기간은?" "평균 3개월입니다." "길네요. B2C는 즉시인데." "B2B 특성상..." "경쟁사는?" "레거시 MES 업체들하고..." "차별점은?" "클라우드 기반이고, 설치가 쉽고..." "그래서 한 문장으로?" "...쉽고 빠른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입니다." "음." 미팅이 끝난다. 2주 뒤 답이 온다. "좋은 팀이지만 시장이 불확실해서 패스합니다." 시장이 불확실한 게 아니다. 설명이 어려운 거다. 이해가 어려운 거다. B2C 스타트업은 다르다. "배달앱인데 AI 추천 넣었어요." "오케이 5억." 이런 식이다. 부럽다. 그래도 하는 이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작년 9월이었다. 투자 미팅 12곳에서 다 떨어졌다. 정부과제 심사도 탈락했다. 통장에 3000만원 남았다. 직원 월급 2달치였다. 아내한테 말했다. "접을까 봐." "진짜?" "설명하는 게 너무 힘들어." "그럼 어쩔 건데?" "취업하지 뭐." "삼성 돌아갈 거야?" "글쎄. 아니면 다른 스타트업." "그럼 거기선 설명 안 해도 돼?" "회사 설명은 안 해도 되지." "근데 너 일은 설명해야 하잖아." 맞는 말이었다. 어디 가도 설명은 해야 한다. 내 일을, 내 가치를. 그리고 생각했다. 어려운 게 나쁜 건 아니다. 어려우니까 진입장벽이 있다. 쉬우면 다들 한다. 제조업 B2B SaaS를 하는 스타트업이 적은 이유가 있다. 어렵다. 설명도 어렵고, 영업도 어렵고, 도입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한다. 다음 날 출근했다. 직원들한테 말했다. "IR 자료 다시 만들자. 이번엔 제조업 빼고." "그럼 뭐라고 해요?" "데이터 플랫폼. 산업 데이터." "그래도 결국 제조업 아니에요?" "나중에 말하면 돼." 꼼수다. 근데 먹힌다. 다음 IR에서 "오 데이터 플랫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관심이 생겼다. 설명 순서를 바꿨다. 문제 → 솔루션 → 시장. 기존은 시장 → 문제 → 솔루션이었다. 제조업을 나중에 말한다. 효과가 있었다. 한 VC가 "2차 미팅 하시죠"라고 했다. 3년차의 깨달음 이제 안다. B2B SaaS는 원래 설명이 어렵다. 제조업이라서가 아니다. B2B 자체가 그렇다. Salesforce도 처음엔 그랬다. "CRM이요? 그게 뭔데요?" 지금은 시가총액 200조다. Slack도 그랬다. "메신저 또 만들어요?" 지금은 다들 쓴다. 처음엔 다 어렵다. 설명이 필요하다. 시장 교육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은 '스마트팩토리'라는 단어도 설명해야 한다. 5년 뒤엔 아닐 거다. '제조업 B2B SaaS'라고 하면 "아 공장 소프트웨어요?"라고 바로 이해할 거다. 그때까지 버티면 된다. 어제 고객사에서 연락 왔다. 작년에 PoC 했던 곳이다. 계약하겠다고. 월 500만원. 2년 약정.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사장님이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대전에서 온 친구들, 제품 괜찮아?' 제가 설명 드렸죠. 한 시간." "감사합니다." "근데 있잖아요. 저도 처음엔 이해 못 했어요. 근데 써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좋은 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다만 다른 사람 설득하기는 어렵겠어요. 설명이 복잡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끊고 나서 웃었다. 고객도 설명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좋다. 쓰면 안다. 설명은 어려워도 제품은 좋다. 그걸로 됐다.설명은 여전히 어렵다. 근데 계속한다.
- 12 Dec, 2025
서울 미팅 3개를 하루에 몰아서 잡는 이유
서울 미팅 3개를 하루에 몰아서 잡는 이유 새벽 5시 40분 KTX 알람은 5시에 맞춘다. 6시 21분 첫차. 대전역까지 차로 20분. 여유 있게. 세수하고 나오니 아내가 김밥을 쌌다. 편의점 거 아니고 직접 만든 거. "오늘 몇 개예요?" "세 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차 시동 걸고 네비 켠다. 대전역. 12분 소요. 새벽이라 길이 뻥 뚫렸다. 역 지하 주차장에 차 세운다. 월 주차권 12만원. KTX 정기권 36만원. 이게 내 서울 출장 고정비다. 매달. 개찰구 통과. 7번 승강장. 익숙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타니까.10시 강남역 VC 첫 미팅은 10시. 강남역 2번 출구 근처 VC. 서울역 도착 8시 50분. 2호선 타면 9시 20분쯤. 여유 있다. 지하철에서 IR 자료 다시 본다. 이번 달 매출 그래프, PoC 진행 현황, 로드맵. 외워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VC 사무실. 29층. 창밖으로 강남이 보인다. 우리 사무실은 2층인데. "최지방 대표님, 반갑습니다." 악수하고 앉는다. 노트북 켠다. "저희는 제조업 B2B SaaS를..." 20분 발표, 10분 질문. 정확히 30분. "대전이시죠? 왜 서울 안 오세요?" 이 질문. 또 나왔다. "제조업은 지방이 거점이라서요. 고객사도 대부분 충청권이고." 표정을 읽는다. 납득했는지 아닌지.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안다. 90%는 연락 없다.12시 을지로 파트너사 두 번째 미팅. 을지로 3가. 강남역에서 2호선 타고 을지로입구까지. 30분. 점심 미팅이다. 파트너사 이사님. 대기업 납품 건 상의. "대표님, 고기 드세요." 삼겹살집이다. 점심인데 소주 한 잔 권한다. 사양한다. 오후에 미팅 하나 더 있어서. "우리 본사가 천안이거든요. 대전이랑 가깝잖아요." 지방 기업끼리는 통한다. 서울 VC랑 다른 분위기. "다음 달 PoC 일정 잡읍시다. 우리 공장에서." 계약서까지는 아니지만. 진전이다. 1시 20분 끝. 세 번째 미팅까지 2시간 반.4시 판교 SI 업체 마지막. 판교. 을지로에서 판교까지. 지하철로 1시간 10분. 신분당선 환승. 판교역. 알파돔시티 23층. SI 업체 팀장. 대기업 프로젝트에 우리 솔루션 끼워넣을 수 있는지. "저희 API 연동 가능합니다. 레퍼런스는..." 30분 미팅. 기술 검토는 다음 주. 끝나고 시계 본다. 4시 40분. 판교역에서 KTX 광명역까지. 버스로 40분. 광명역 5시 50분 기차. 대전 6시 50분 도착. 딱 맞다. 계획대로. 광명역 대합실 기차 대기하면서 노트북 연다. 오늘 미팅 세 개 정리. 노션에 기록.강남 VC - 기대 안 함. 지방 스타트업 투자 안 한다는 거 안다. 을지로 파트너사 - 가능성 있음. PoC 일정 잡힘. 판교 SI - 50대50. 기술 검토 통과하면 기회.세 개 중 하나만 성사돼도 본전이다. KTX 왕복 7만원. 점심값 3만원. 하루 인건비 치면 30만원. 총 40만원. 이게 내 서울 미팅 한 번 비용이다. 그래서 몰아서 잡는다. 세 개, 많으면 네 개. 한 번 갈 때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왜 서울을 안 가냐고 이 질문 정말 많이 받는다. "회사 서울로 옮기시죠." 쉽게 말한다. 서울로 가면 다 된다는 듯이. 서울 가면 뭐가 달라지나. 사무실 월세 3배. 인건비 1.5배. 생활비 2배. 우리 회사 지금 월 매출 600만원이다. 서울 가면 고정비만 2천 넘는다. 그리고 아내 직장이 대전이다. 공무원. 5년 차. 그만둘 수 없다. 아들 어린이집도 있고. 친정 시댁도 대전이고. "저는 대전에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표정이 애매해진다. 고집 센 사람 보는 눈빛. 아니다. 고집이 아니다. 계산이다. 제조업은 지방이 답이다. 고객사가 여기 있다. 협력사도 여기 있다. 서울 가면 오히려 멀어진다. 대전역 도착 7시. 대전역 도착. 지하 주차장. 내 차. 시동 건다. 아내한테 문자. "도착. 30분 후 집." 퇴근 시간이라 길 막힌다. 40분 걸린다. 집 앞 주차. 엘리베이터. 5층. 문 열자마자 아들이 뛰어온다. "아빠!" 안아 올린다. 무겁다. 또 컸다. "오늘 어땠어요?" 아내가 묻는다. "그럭저럭. 하나 건졌어." 저녁은 된장찌개. 아내가 끓인 거. 밥 두 그릇 먹는다. 아들 재우고 노트북 연다. 9시. 내일 할 일 정리. 개발팀 미팅 준비. 정부 과제 보고서. 서울 VC한테 콜드메일 하나 더 쓴다. "안녕하세요. 대전 기반 제조업 B2B SaaS..." 보낸다. 읽힐 확률 10%. 답장 올 확률 1%. 그래도 보낸다. 매일. 다음 주 화요일 캘린더 본다. 다음 주 화요일. 서울 미팅 두 개 잡혀 있다. 하나 더 넣을 수 있다. 오전 11시, 오후 3시. 사이에 1시 슬롯 비었다. 링크드인 뒤진다. 서울 SI 업체 영업 담당자들. 메시지 보낸다. "다음 주 화요일 1시 가능하신가요?" 세 명한테 보냈다. 한 명이라도 응답하면 된다. 하루에 세 개. 이게 내 서울 미팅 공식이다. 네 개 잡으면 이동 시간이 빡빡하다. 지각하면 다 꼬인다. 세 개가 딱 맞다. 10시, 12시, 4시. 황금 타임. KTX 시간표도 외웠다. 새벽 6시 21분, 저녁 5시 50분. 이 두 기차가 내 생명줄이다. 지방 스타트업의 공식 서울 사람들은 모른다. 지방 스타트업이 얼마나 KTX 시간표에 목숨 거는지. 오전 미팅 하나 잡으려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거. 저녁 기차 놓치면 막차가 9시라는 거. 9시 타면 10시 도착. 집 가면 11시. 다음 날 죽는다. 그래서 계산한다. 퍼즐 맞추듯이. 미팅 장소, 이동 시간, 환승, 식사, 버퍼. 엑셀로 짜놓는다. 10분 단위로. 한 곳이라도 지각하면 다 무너진다. 그래서 일찍 도착한다. 30분 전에. 카페에서 대기. 이게 지방 스타트업 대표의 서울 출장이다.오늘도 메일 하나 왔다. "서울로 이전 계획 없으세요?" 없다. 대전에서 한다. KTX로 버틴다.
- 11 Dec, 2025
저녁 9시에 퇴근했다고 쓰지만, 집에서도 노트북은 켜져 있다
퇴근은 9시, 퇴근이 아닌 9시 사무실을 나선다 저녁 9시. 사무실 불을 끈다. "대표님 먼저 가세요." 개발팀장이 말한다. "응, 수고했어. 내일 봐."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겨울이라 벌써 깜깜하다. 차에 시동을 건다. 히터를 튼다. 오늘도 12시간 일했다. 집에 가면 아들은 자고 있겠지. 근데 아직 안 끝났다. 집까지 20분. 그 사이 슬랙 알림 3개. 신호 대기 중에 본다. 고객사 문의다. "내일 답장하면 안 되나?" 혼잣말. 근데 손은 이미 타이핑하고 있다.집에 도착한다 9시 30분. 현관문을 연다. 아내가 설거지 중이다. "왔어?" "응. 밥 먹었어?" "먹었지. 당신 거 냉장고." 아들 방에 들어간다. 자고 있다. 이불을 덮어준다. 볼에 뽀뽀한다. 하루에 보는 시간 30분. 아침에 어린이집 데려다주는 게 전부다. 거실로 나온다. 소파에 앉는다. 노트북을 꺼낸다. 습관이다. "또 일해?" 아내가 묻는다. "아니, 그냥 메일 확인만." 근데 '그냥 확인'이 없다. 메일함에 읽지 않은 메일 47개. VC 답장, 고객 문의, 팀원 보고서, 정부 과제 공고. 하나씩 읽는다. 답장한다. 30분 지나간다.토요일도 마찬가지 주말이다. 오전 10시. 아들과 놀이터에 간다. 그네를 밀어준다. "아빠, 더!" 아들이 웃는다. "그래, 더 높이!" 근데 주머니에서 진동. 슬랙이다. 판교 영업 직원. "대표님, 고객사에서 갑자기 미팅 요청이요. 월요일 10시 가능하세요?" 그네를 밀면서 답장한다. "가능. 자료는 내가 오늘 밤에 보낼게." "죄송해요 주말인데." "괜찮아. 좋은 신호잖아." 아들은 계속 웃고 있다. 나는 그네를 밀면서 머릿속으로 PT 구성한다.기존 문제점 / 2. 우리 솔루션 / 3. ROI 계산 익숙하다. 자동이다.일요일 밤이 제일 싫다 일요일 저녁 8시. 아들을 재운다. 동화책 세 권 읽어준다. "아빠 내일도 집에 있어?" "아니, 아빠 일하러 가야지." "왜?" "...돈 벌어야지." 아들이 잠든다. 거실로 나온다. 노트북을 연다. 월요일 미팅 자료를 만든다. 새벽 1시. 자료 완성. 슬랙에 올린다. "@김대리 월요일 이거로 갑시다." 3분 뒤 답장. "확인했습니다." 김대리도 안 자고 있었다. 침대에 눕는다. 아내는 자고 있다. 불을 끈다. 근데 눈이 안 감긴다. 스마트폰을 켠다. 슬랙을 본다. 메일을 본다. 네이버 뉴스를 본다. 스타트업 관련 기사. "XX사, 시리즈B 300억 유치" 부럽다. 우리는 언제쯤? 잠이 안 온다. 퇴근이라는 말 "몇 시에 퇴근하세요?" 투자자가 물어본 적 있다. IR 미팅에서. "보통 9시요." "일찍 하시네요." 일찍이라고? 9시에 사무실 나오는 게 일찍? 근데 맞는 말이다. 내가 아는 서울 스타트업 대표들. 밤 11시까지는 기본이다. 대전에서 9시 퇴근은 양반이다. 하지만 '퇴근'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다. 사무실을 나오는 게 퇴근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일이 안 떠나는 게 문제다. 샤워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아들이랑 놀 때도. "고객사 미팅 어떻게 풀지?" "개발자 채용 공고 어떻게 쓸까?" "다음 분기 매출 어떻게 채우지?" 끊을 수가 없다. 스위치가 고장 났다. 가끔 생각한다 "이게 맞나?" 3년 전 창업했을 때. '워라밸 좋은 대표가 되자' 생각했다. 삼성전자 다닐 때 야근에 지쳐서 나왔는데. 결과는? 더 심하다. 회사원 때는 야근해도 월급 나왔다. 지금은? 내 돈 까먹으면서 야근한다. 밤새워도 매출은 제자리다. 근데 그만둘 수 없다. 직원 6명 월급. 정부 과제 책임. 고객사 약속.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 서울 스타트업들 보면 자극된다. "나도 할 수 있다" 증명하고 싶다. 지방이라서 안 되는 거 아니라는 거. 아내가 말했다 지난주 토요일. "당신, 요즘 너무 피곤해 보여." 아내가 말했다. "괜찮아. 다음 달에 대기업 계약 들어오면 나아질 거야." "지난달에도 그 말 했잖아."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이 어제 물어봤어. '아빠는 왜 맨날 컴퓨터 봐?' 라고." 가슴이 찔렸다. "미안." "미안하지 말고, 좀 쉬어. 제발." 근데 어떻게 쉬나. 쉬면 불안하다. 경쟁사는 쉬지 않는다. 서울 스타트업들은 주말에도 달린다. "투자 받으면 나아질 거야." "그것도 지난해에 한 말이야." 맞는 말이다. 작년 엔젤 투자 받았을 때. "이제 좀 여유 생긴다" 했다. 근데 더 바빠졌다. 투자금 태우면 안 된다는 압박. 성과 내야 한다는 부담. 시리즈A 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 돈이 들어와도 마음은 안 편하다. 언제쯤 될까 "언제쯤 여유 생겨요?" 후배가 물어본 적 있다. 창업 상담. "글쎄. 엑시트하면?"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다. 매출 10억 넘으면? 아니다. 그때는 직원 20명 될 거다. 시리즈B 받으면? 아니다. 그때는 목표가 100억이 된다. 끝이 없다. 스타트업 대표는 원래 이런 거다. 선배들 보면 다 그렇다. 회사 규모 커져도 불안은 그대로다. '퇴근'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 그래도 한다. 왜? 내가 선택했으니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삼성 관두고 나올 때. 안정 버리고 창업할 때. 다 알고 했다. 근데 가끔. 정말 가끔. "그냥 다시 취업할까?" 생각한다. 저녁 6시 퇴근. 주말은 진짜 쉬기. 월급 통장에 꼬박꼬박. 근데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 팀원들 보면. "아, 나는 여기가 맞다" 생각한다. 오늘도 9시에 퇴근한다 저녁 9시. 사무실 불을 끈다. "수고했어요." 팀원들에게 인사한다. "대표님도요." 차에 탄다. 집으로 간다. 20분 뒤 도착. 노트북을 켠다. 슬랙을 확인한다. 메일을 읽는다. 내일 일정을 정리한다. 오전 10시 판교 미팅. 새벽 5시 50분 KTX. 자료는 준비됐다. 침대에 눕는다. 스마트폰을 본다. 슬랙 알림 2개. "또 일해?" 아내 목소리. "아니, 이제 잔다." 근데 5분 뒤. 또 스마트폰을 켠다. 이게 창업이다. 이게 대표다. 퇴근은 9시. 근데 퇴근이 아니다.퇴근 시간은 있다. 퇴근은 없다.
- 10 Dec, 2025
직원 6명과 함께 유성구 사무실에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
월요일 아침 8시 20분 사무실 문 열었다. 벌써 세 명 와 있다. "대표님 커피 뽑았어요." 개발팀 막내 준호가 말한다. 고맙다고 했다. 유성구 궁동. 월세 90만원짜리 사무실. 25평. 책상 6개 딱 맞는다. 창문으로 보이는 건 아파트 단지. 판교 같은 데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직원 6명. 나 빼면 5명이다. CTO 성민이형. 41살. 대전 동신고 졸업. 카이스트 전기과 나왔다. LG전자 13년 다니다가 나왔다. "형님이 하신다면요." 그 말 하나로 합류했다. 개발자 준호. 28살. 충남대 컴공. 졸업하고 바로 들어왔다. 서울 대기업 최종 면접 떨어지고 왔다. "대전이 편해요 사실." 영업 지훈이. 32살. 공주 출신. 판교 사무실 혼자 지킨다. 주 3일은 서울이다. "저 언제 대전 복귀 가능한가요?" 가끔 묻는다. 디자이너 수진씨. 29살. 청주 사람. 전 직장은 서울 광고대행사였다. "야근 지겹더라고요." 대전 온 이유다. 마케터 은영씨. 31살. 대전 태생. 남편도 대전 직장인이다. 아이 돌봐줄 친정이 가까워서 좋다고 했다. 이렇게 6명이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 백반집 가는 길. 5분 거리다. "오늘 메뉴 뭐예요?" "된장찌개." "어제도 된장이었는데." 매일 같이 걷는다. 같은 가게 간다. 7000원짜리 백반. 판교에선 점심 1만5천원 쓴다던데. 우린 회식도 1인당 2만원 안 넘긴다.걸으면서 성민이형이 말했다. "우리 회사 좋긴 한데." "네?" "친구가 네이버 다니는데. 연봉 듣고 깜짝 놀랐어." 말 안 했다. 나도 안다. 우리 회사 평균 연봉 3800만원. 성민이형이 5000. 나는 월급 안 받는다. 아내 공무원 월급으로 산다. 네이버 시니어 개발자는 1억 넘는다. 안다. 근데 뭐라 할 말이 없다. 오후 3시 회의 주간 회의다. 매주 월요일 3시. 의제: 대기업 A사 PoC 준비 상황. 준호가 발표했다. 데모 버전 80% 완성. 다음주 화요일 시연. "고생했다." 진심이다. 그런데 준호 표정이 어둡다. "대표님." "응." "제 동기가요. 카카오 붙었대요." "그래? 축하해주고." "네... 근데 연봉이..." 말 끊었다. 알겠다는 표정 지었다. 회의 끝나고 준호 따로 불렀다. "우리 회사 그만두고 싶어?"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솔직히 말해도 돼." "그냥... 부러운 거죠. 솔직히." 알겠다고 했다. 나도 부럽다고 했다.퇴근 후 혼자 남아서 저녁 9시. 다들 퇴근했다. 성민이형만 남았다. "좀 더 할게요." 나도 앉아 있다. 노트북 켜놓고 멍 때린다. 직원들 이직 걱정한다. 솔직히. 준호는 카카오 가고 싶을 거다. 당연하다. 28살인데. 수진씨도 서울 에이전시에서 연락 온다고 했다. 연봉 1.5배 준다고. 은영씨는 안정적이다. 대전 떠날 일 없다. 근데 우리 회사가 계속 안정적일까? 지훈이는 판교에서 혼자 외롭다고 한다. "팀이랑 떨어져 있으니까요." 성민이형은? 모르겠다. 가끔 "나도 나이 먹는데." 그런다. 다들 더 나은 선택지가 있다. 서울 가면. 대기업 가면. 근데 여기 있다. 왜? 화요일 아침 출근했다. 준호가 또 커피 뽑아놨다. "대표님 어제 늦게까지 계셨죠?" "어떻게 알아?" "불 켜져 있더라고요. 집 가는 길에." 아무 말 안 했다. 성민이형이 말했다. "주말에 친구 만났는데." "네." "LG 때 같이 일하던 애. 걔가 그러더라. '너희 회사 재밌겠다' 하더라고." "재밌나요?" "글쎄. 재밌는 건가? 근데 나쁘진 않아." 준호가 끼어들었다. "전 좋아요 사실. 여긴." "왜?" "음... 어제 카카오 간 동기랑 통화했거든요. 걔 말 들어보니까 거긴 거기 나름대로 빡세더라고요. 야근도 많고. 팀도 20명이라 눈치 보이고." "그래도 연봉은." "그건 맞죠. 근데 전... 여기서 뭔가 만드는 게 더 보람차요." 거짓말 같았다. 근데 표정은 진지했다. 왜 안 떠날까 생각해봤다. 진짜로. 연봉은 우리가 적다. 팩트다. 삼성 네이버 카카오 절반도 안 된다. 사무실도 초라하다. 판교 스타트업들 인스타 보면 부럽다. 우린 인테리어 예산도 없다. 복지도 없다. 점심 지원 7000원 전부다. 야근 수당도 없다. 법대로 주면 회사 망한다. 그런데 왜 안 떠날까. 성민이형한테 물어봤다. 솔직하게. "형. 연봉 두 배 주는 데 있으면 안 가요?" "글쎄." "솔직히요." "솔직히... 고민은 하지. 근데 여기가 편해." "편하다고요?" "응. 나이 먹으니까 편한 게 중요해. 서울 가면 출퇴근 2시간이야. 대기업 가면 보고 라인 5단계고 눈치 봐야 하고. 여긴 뭐 대표한테 바로 얘기하면 되잖아." 준호한테도 물었다. "너 진짜 카카오 가고 싶지 않아?" "가고 싶죠. 솔직히." "그럼 왜 안 가?" "지원해도 붙을지 모르겠고요. 그리고 여기서 하는 일이 좀 더... 내 거 같아요?" "무슨 말이야?" "대기업 가면 톱니바퀴 하나잖아요. 근데 여기선 제가 만든 게 바로 고객한테 가고. 그게 좀 좋아요." 수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 에이전시에서 연락 왔는데요. 거절했어요." "왜?" "거기 다니다 온 거라. 또 그럴 바엔... 여기서 천천히 가는 게 낫죠. 야근도 없고 가족 저녁 같이 먹을 수 있고." 은영씨는. "전 대전 아니면 못 살아요. 친정도 있고 어린이집도 가깝고. 서울 가자고 하면 남편이랑 싸워요." 지훈이만 애매했다. "저 진짜 대전 오고 싶어요." "판교 괜찮잖아." "외로워요 혼자. 팀이랑 밥 먹고 싶고. 근데 영업은 서울에 있어야 하니까..." 다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연봉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수요일 점심 또 백반집 갔다. 김치찌개였다. 은영씨가 말했다. "대표님. 우리 회사 올해 매출 목표 얼마예요?" "1억." "작년엔?" "6천." "오 좋네요. 그럼 내년엔?" "3억 목표." 준호가 물었다. "그럼 우리 연봉도 오르나요?" "당연하지. 내년에 30% 올려줄게." "오! 진짜요?" "그래야 너희가 안 떠나지." 다들 웃었다. 근데 나는 불안했다. 3억 찍을 수 있을까? PoC 하나 성공해야 하는데. 성민이형이 말했다. "대표 걱정하지 마. 우리 다 안 떠나." "왜요?" "여기 나쁘지 않아. 진짜로. 연봉은 적지만 나름 괜찮아." "괜찮다는 게..." "편해. 사람들도 좋고. 일도 의미 있고. 그리고 뭐... 우리가 대전 사람들이잖아." 그 말에 다들 고개 끄덕였다. "맞아요. 우린 대전 팀이니까." "여기서 대전 기업 하나 만들어보자고요." "서울 부럽긴 한데 우리도 할 만해요." 밥 먹으면서 그런 얘기들 했다. 나는 아무 말 못 했다. 괜히 뭉클했다. 목요일 KTX 안 서울 투자사 미팅 갔다. 오전 11시 미팅. 새벽 6시 첫차 탔다. 노트북 켰다. IR 자료 봤다. 옆자리 사람이 물었다. "스타트업 하세요?" "네." "서울이요?" "대전이요." "아 그래요? 힘드시겠어요." "괜찮아요." 힘들다. 솔직히. VC들 만나면 꼭 묻는다. "왜 대전이세요?" 그럼 나는 말한다. "대전에 좋은 인력 많고요. 제조업 강점 있고요. 생활비도 저렴하고요." 근데 속으론 생각한다. '그냥 여기가 집이라서.' 투자사 미팅 끝났다. 별로였다. "다음 라운드 때 연락 주세요." 거절이다. 에둘러 말한 거다. 판교 카페에서 커피 마셨다. 스타트업들 많더라. 다들 비슷한 옷 입고 비슷한 얘기한다. "우리 MAU가", "우리 ARR이", "시리즈A 준비 중". 부러웠다. 저 생태계가. 근데 나는 대전 사람이다. 내 팀도 대전이다. 저녁 6시 KTX 탔다. 8시 반 대전역 도착. 사무실은 아직 불 켜져 있었다. 금요일 오후 성민이형이 말했다. "다음주 화요일 PoC 시연. 준비 다 됐어." "고생했어요." "우리가 하면 되지. 뭐." 준호가 퇴근하면서 말했다. "대표님 주말 잘 쉬세요. 월요일에 봬요." "너도." "저 주말에 좀 더 손볼 건데." "야근 수당 없어." "알아요. 그래도 제가 만든 거니까 제대로 하고 싶어서요." 고맙다고 했다. 진심으로. 수진씨가 떠나면서. "대표님 우리 회사 올해 꼭 대박 나요." "그래야지." "응원할게요. 저도 열심히 할게요." 은영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다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거예요." 다들 퇴근했다. 나 혼자 남았다. 또. 창밖 봤다. 유성구 아파트들. 저녁 7시 불 켜지는 창문들. 여긴 서울이 아니다. 판교도 아니다. 근데 우리 팀은 여기 있다. 6명. 적은 숫자다. 연봉도 적다. 사무실도 작다. 투자도 안 된다. 그래도 다들 안 떠난다. 왜? 아마 나도 모른다. 정확히는. 근데 준호 말이 맞는 것 같다. "여기서 뭔가 만드는 게 더 보람차요." 성민이형 말도. "편해. 사람들도 좋고." 은영씨 말도. "우리 다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거예요." 그런 거 같다. 우린 서울 스타트업처럼 화려하지 않다. 판교 오피스처럼 멋지지도 않다. 근데 6명이 매일 같이 출근한다. 같이 백반 먹는다. 같이 회의한다. 같이 밤늦게까지 일한다. 그리고 아무도 떠나지 않는다. 적어도 아직은. 월요일 또 왔다 8시 20분 사무실 문 열었다. 벌써 네 명 와 있다. "대표님 커피요." 준호가 또 뽑아놨다. "고마워." "주말 잘 쉬셨어요?" "응. 너는?" "저 토요일에 나와서 좀 했어요." "야근 수당..." "알아요 없다는 거." 웃었다. 둘 다. 성민이형이 말했다. "이번주 화요일 PoC 잘해보자." "네." "우리 할 수 있어." 준호가 말했다. "당연히 되죠. 우리가 만들었는걸요." 수진씨가 말했다. "자료 다시 한번 봐주세요. 제가 어제 손봤어요." 은영씨가 말했다. "SNS 콘텐츠 준비했어요. 성공하면 바로 올릴 거예요." 지훈이가 서울에서 전화 왔다. "형님 저도 내일 A사 가요. 같이 하죠." 우리 팀이다. 6명. 유성구 작은 사무실. 월세 90만원. 평균 연봉 3800만원. 투자 안 되는 스타트업. 근데 이 사람들은 안 떠난다. 왜일까. 아마 우리 모두 대전 사람이라서. 여기가 집이라서. 서울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여기서 뭔가 만들 수 있다고 믿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웃고 같이 일하는 게. 나쁘지 않아서. 적어도 우리에겐.직원 6명. 적지만 든든하다. 다들 각자 이유로 여기 있다.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