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과제 2억: 축복인가 함정인가

정부 R&D 과제 2억: 축복인가 함정인가

정부 R&D 과제 2억: 축복인가 함정인가 통장에 2억이 들어온 날 작년 8월이었다. 정부 과제 선정 통보 받고 통장 확인했다. 2억. 직원들한테 회식 쏜다고 했다. 다들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그날은. 근데 그날 밤에 잠이 안 왔다. 2억 쓸 계획 세우는데 머리가 아팠다. 인건비, 재료비, 외주비. 다 정해진 항목이다. 마음대로 못 쓴다. 그리고 1년 후엔 결과 보고서 써야 한다. 실패하면 돈 토해내야 한다. 축복인가 싶었다. 아닌 것 같기도 했다.월 매출 600만원의 의미 우리 회사 자체 매출은 한 달에 600만원이다. 많을 때 700만원. 직원 6명 월급이 2500만원이다. 사무실 월세 150만원. 서버비 80만원. 기타 비용 200만원. 계산하면 한 달에 2930만원 나간다. 매출로는 600만원 들어온다. 차액이 2330만원이다. 이걸 정부 과제로 메운다. 정부 과제 없으면 우리 회사는 3주 만에 망한다. 이게 현실이다.과제 쓰는 시간 정부 과제 공고 뜨면 무조건 지원한다. 안 맞아도 일단 쓴다. 작년에 과제 제안서 7개 썼다. 붙은 건 2개다. 확률 28%. 제안서 하나 쓰는데 2주 걸린다. 밤새는 날이 4~5일이다. 계산하면 작년에 과제 쓰느라 14주를 썼다. 3개월 반이다. 그 시간에 영업했으면 어땠을까. 제품 개발했으면 어땠을까. 근데 영업해도 계약 따기 어렵다. 제품 개발해도 당장 돈 안 된다. 결국 과제를 쓴다. 또 쓴다. 대기업 PoC의 함정 지금 S전자랑 PoC 하고 있다. 실증 사업이다. 6개월짜리. 성공하면 본 계약 가능성 있다고 했다. 금액은 안 말해줬다. 근데 이 PoC도 정부 돈이다. 실증 지원 사업으로 따낸 거다. S전자 담당자가 말했다. "정부 지원 끝나면 자체 예산 검토해보겠습니다." 검토해본다는 게 뭔지 안다. 안 한다는 뜻이다. 대기업들은 정부 돈 있을 때만 스타트업이랑 한다. 공짜니까. 우리도 안다. 근데 할 수밖에 없다. 이게 실적이 되니까. 투자 받을 때 "S전자랑 협업 중"이라고 쓴다. 먹힌다.VC 미팅에서 받는 질문 서울 VC 만나러 가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자체 매출 비중이 얼마나 되세요?" 정직하게 답한다. "20%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정부 과제요." 표정이 변한다. 미묘하게. "정부 의존도를 줄일 계획은요?" 계획 말한다. 대기업 계약, 해외 진출, 구독 모델 전환. 다 맞는 말이다. 근데 당장은 안 된다. "내년에는 자체 매출 50% 목표입니다." 거짓말은 아니다. 목표는 목표니까. 근데 가능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과제 끝나는 날의 공포 올해 12월에 큰 과제 하나 끝난다. 1년 8개월짜리. 그 과제 인건비로 개발자 2명 월급 줬다. 재료비로 장비 샀다. 12월 되면 그 돈 끊긴다. 개발자 2명 월급을 어떻게 주지. 신규 과제 따야 한다. 9월에 공고 뜬다. 지금 준비 중이다. 근데 떨어지면? 생각하기 싫다. 예비비가 2000만원 있다. 한 달치다. 그다음은? 모르겠다. 밤마다 이 생각 한다. 잠이 안 온다. 지방 창업의 딜레마 대전에서 정부 과제 안 받고 버티는 제조 스타트업 못 봤다. 다들 과제로 산다. 인정한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서울은 다르다는데. 투자 잘 받고 자체 매출로 큰다는데. 진짜 그런가. 서울 가면 달라질까. 근데 서울 가면 비용이 2배다. 사무실도, 인건비도. 그럼 더 큰 투자 받아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대전에 있으면 정부 지원은 받기 쉽다. 지역 할당이 있으니까. 이게 장점이다. 동시에 함정이다. 제조업의 특수성 우리는 제조업 쪽 솔루션이다. 공장 자동화. 이쪽은 개발 기간이 길다. 검증 기간도 길다. 고객이 돈 쓰는 결정도 느리다. 1년씩 걸린다. 그 1년을 버티려면 돈이 필요하다. 정부 과제가 필요하다. SW 스타트업은 빠르다. 3개월 만에 제품 내고 매출 낸다. 우리는 안 된다. 하드웨어 연동해야 한다. 현장 테스트해야 한다. 이 차이를 VC들은 잘 모른다. 이해 안 해준다. "왜 이렇게 느려요?" 묻는다. 제조업이 원래 그렇다.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다. 직원들한테 미안한 이유 직원들은 모른다. 회사가 얼마나 불안한지. 월급은 밀린 적 없다. 매달 25일에 정확히 준다. 근데 속은 타들어간다. 다음 달 월급 어떻게 주지. 신입 개발자가 물었다. "대표님, 우리 회사 안정적이죠?" "응, 걱정 마." 거짓말했다. 안정적이지 않다. 매달 아슬아슬하다. 근데 진실 말하면? 다들 불안해한다. 이직 준비한다. 그래서 말 못 한다. 혼자 버틴다. 대표 혼자 떠안는 게 이런 거구나. 요즘 안다. 탈출구는 있는가 정부 과제 의존에서 벗어나려면 뭐가 필요한가. 첫째, 큰 계약. 연 5억 이상. 가능한가. 어렵다. 둘째, 시리즈A 투자. 10억 이상. 가능한가. 더 어렵다. 셋째, 구독 모델 전환. MRR 3000만원. 가능한가. 시간 걸린다. 다 가능하긴 한데 당장은 아니다. 2년? 3년? 그 사이를 버티려면 결국 정부 과제다. 악순환이다. 알면서도 못 빠져나간다. 그래도 쓴다 이번 달에도 과제 제안서 쓴다. 중기부 공고 떴다. 밤 11시다.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았다. 노트북 켜고 HWP 연다. 사업 계획 작성한다. "본 사업을 통해 매출 200% 증대 및..." 타이핑한다. 작년에도 썼던 문장이다. 재작년에도 썼다. 매번 쓴다. 매번 믿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 이게 현실이다. 지방 제조 스타트업의 현실.정부 과제 없으면 한 달도 못 버틴다. 알면서도 계속 쓴다. 이게 함정인지 생존법인지 모르겠다.

새벽 5시 KTX 타면서 느낀 것들

새벽 5시 KTX 타면서 느낀 것들

새벽 5시 KTX 타면서 느낀 것들 알람은 4시 10분 알람 울린다. 4시 10분. 아내가 뒤척인다. 미안하다. 어제 밤 11시에 잤다. 5시간 못 잤다. 세수하고 어젯밤에 준비한 옷 입는다. 정장 아니다. 깔끔한 셔츠에 면바지. 서울 가면 다들 후드 입고 있다. 아들 방 살짝 열어본다. 자고 있다. 2살이다. 아빠가 새벽에 나가는 줄 모른다. 다행이다. 울면 마음 아프다. 현관에서 신발 신는다. 아내가 부엌에서 나온다. "조심히 다녀와." "응. 저녁에 올게." 엘리베이터 안. 나 혼자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피곤하다.대전역 5시 20분 택시 탄다. 기사님 반갑게 인사한다. "서울 가세요?" "네, 첫 차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 대화 일주일에 두 번 한다. 같은 기사님이다. 단골이다. 대전역 도착. 5시 20분. 역 안 카페는 아직 안 열었다. 편의점 커피 뽑는다. 아메리카노 벤티. 2700원. 이제 3000원 넘나. 대합실에 사람 별로 없다. 출근하는 직장인 몇 명. 나처럼 노트북 가방 멘 사람 둘. 스타트업인지 대기업 출장인지 모르겠다. 개찰구 통과한다. 플랫폼에 서 있다. 5월인데 새벽은 춥다. KTX 들어온다. 5시 43분 출발. 항상 이 시간이다. 외운다.기차 안 2시간 자리 찾는다. 2호차 창가. 항상 여기 앉는다. 습관이다. 노트북 꺼낸다. 맥북 프로 14인치. 회사 돈으로 산 거다. 280만원. 살 때 고민 많이 했다. 와이파이 연결한다. KTX-WiFi. 느리다. 가끔 끊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 오늘 미팅 자료 열어본다. 9시 30분 판교 VC. 11시 여의도 대기업 구매팀. 1시 30분 강남 고객사. 판교 자료부터 본다. IR 덱이다. 42페이지. 이번 달에 15번째 IR이다. 슬라이드 넘긴다. "Why Daejeon?" 페이지 나온다. 항상 이 질문 나온다. 답은 준비돼 있다. "제조 거점 집중, 인건비 효율, 정부 지원." 근데 솔직히 나도 가끔 의문이다. 창밖 본다. 아직 어둡다. 천안 지나간다. 불빛 보인다. 사람들 일어나는 시간이다. 커피 마신다. 식었다. 편의점 커피는 금방 식는다. 서울 도착하면 또 사야 한다. 메일 확인한다. 새벽에 온 메일 3개. 전부 스팸이다. 투자 제안 사기. "1억 투자 가능합니다" 제목. 누가 믿나. 슬랙 켠다. 메시지 없다. 직원들 아직 안 일어났다. 8시 반에 출근이다. 근데 나는 이미 1시간 반째다.서울역 7시 45분 도착한다. 서울역. 사람 많다. 출근 시간이다. 역 안 스타벅스 들어간다. 줄 길다. 10명 넘는다. 다들 테이크아웃이다. 아메리카노 벤티 주문한다. 5900원. 대전보다 비싸다. 아니 대전이랑 똑같나. 잘 모르겠다. 커피 받고 지하철 탄다. 2호선 판교행 환승. 신논현역까지 40분. 지하철 안 사람 많다. 앉을 자리 없다. 노트북 가방 무겁다. 핸드폰 본다. 뉴스레터 읽는다. "판교 스타트업 시리즈 B 300억" 부럽다. 우리는 엔젤 1억 받는 데 6개월 걸렸다. 대전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우리 실력 부족이다. 신논현역 도착. 8시 30분. VC 사무실까지 걸어간다. 15분. 미팅까지 45분 남았다. 카페 들어간다. 또. 아메리카노 또 시킨다. 오늘 벌써 세 번째다. 노트북 켠다. 자료 마지막 점검한다. 숫자 다시 확인한다. 근데 집중 안 된다. 피곤하다. 미팅 9시 30분 VC 사무실 도착한다. 9시 25분. 로비에서 기다린다. 대표님 나온다. 30대 중반쯤. 명함 교환한다. "먼 데서 오셨어요?" "네, 대전에서요." "아, 그러시구나.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 말 듣는 순간. '아, 이미 끝났구나' 싶다. 미팅룸 들어간다. 노트북 연결한다. 화면 안 나온다. 어댑터 문제다. 당황한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근데 시간은 빠르게 간다. 겨우 연결한다. 발표 시작한다. "저희는 제조 B2B SaaS입니다." "대전 본사, 판교 영업 거점 운영 중입니다." "현재 월 매출 600만원..." 대표님 표정 읽는다. 관심 없어 보인다. "고객사는 어디어디인가요?" "충청권 중소 제조업체 위주입니다." "서울 고객은요?" "PoC 진행 중인 대기업 1곳 있습니다." "음..." 이 '음'이 전부다. 30분 미팅. 25분 만에 끝난다. "검토 후 연락드릴게요." 연락 안 온다. 안다. 악수하고 나온다. 엘리베이터 탄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더 피곤해 보인다. 여의도 11시 지하철 탄다. 2호선 또. 여의도까지 30분. 핸드폰 본다. 직원한테 슬랙 왔다. "대표님 미팅 어떠셨어요?" "글쎄. 기대 안 함." "ㅠㅠ 다음엔 잘 될 거예요." 고맙다. 근데 다음도 똑같을 거다. 여의도 도착. 대기업 본사 빌딩 들어간다. 로비 화려하다. 보안 카드 받는다. 23층 올라간다. 구매팀장님 만난다. 40대 중반. 친절하다. "저희 공장 스마트화 검토 중입니다." "솔루션 데모 가능할까요?" 가능하다. 노트북 꺼낸다. 데모 보여준다. 팀장님 고개 끄덕인다. "괜찮네요." "근데 레퍼런스가 좀..." 또 이거다. "대기업 레퍼런스 있으신가요?" "현재 PoC 진행 중입니다." "완료된 건요?" "아직은..." "그럼 좀 더 지켜보고 연락드릴게요." 나온다. 복도에서 한숨 쉰다. 레퍼런스 없으면 못 받는다. 레퍼런스 받으려면 대기업 필요하다. 대기업은 레퍼런스 요구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강남 1시 30분 점심 먹는다. 강남역 근처. 혼자다. 김치찌개 시킨다. 9000원. 대전이면 7000원이다. 밥 먹으면서 핸드폰 본다. 아내한테 카톡 온다. "점심 먹었어?" "응 지금 먹어." "고생 많아. 힘내." 사진 보낸다. 아들 사진. 어린이집에서 찍은 거다. 웃고 있다. 힘난다. 조금. 1시 20분. 고객사 간다. 스타트업이다. 시리즈 A 받았다. 대표님 만난다. 30대 초반. 나보다 어리다. "현장 데이터 수집 어떻게 하세요?" 설명한다. "IoT 센서 설치하고..." "데이터 클라우드 전송..." "대시보드에서 실시간 모니터링..." 대표님 관심 있어 보인다.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 비용 설명한다. 초기 설치비 500만원. 월 구독료 50만원. "음... 좀 비싸네요." 비싸다. 안다. "근데 ROI 계산하면..." "일단 검토해볼게요." 또 검토. 나온다. 강남역 지하철역 간다. 서울역까지 30분. KTX 4시 30분. 아직 시간 있다. 카페 들어간다. 아메리카노 또 시킨다. 오늘 다섯 번째다. 노트북 켠다. 오늘 미팅 정리한다. 판교 VC - 관심 없음 여의도 대기업 - 레퍼런스 필요 강남 고객사 - 비용 부담 결과: 0 서울역 4시 KTX 탄다. 4시 30분. 대전행. 자리 앉는다. 같은 자리. 2호차 창가. 노트북 닫는다. 더 볼 힘 없다. 창밖 본다. 서울 빠져나간다. 핸드폰 본다. 뉴스 읽는다. "지방 스타트업 투자 감소" "수도권 집중 심화" "지역 인재 유출 가속" 기사 닫는다. 기분 나빠진다. 슬랙 확인한다. 직원들 메시지 있다. "대표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개발 회의 있어요." "고객 문의 3건 왔어요." 답장한다. "ㅇㅇ 내일 봐." 눈 감는다. 잠깐 자려고. 근데 잠 안 온다. 머릿속 복잡하다. 오늘 교통비. KTX 왕복 5만원. 지하철 5000원. 택시 1만원. 커피 3만원. 점심 9000원. 총 9만 4000원. 성과: 0원. 이게 맞나. 대전역 6시 30분 도착한다. 사람들 우르르 내린다. 택시 탄다. 또 단골 기사님이다. "오늘도 다녀오셨네요." "네." "힘드시죠?" "괜찮습니다." 거짓말이다. 집 도착한다. 6시 50분. 초인종 누른다. 아내가 문 연다. 아들이 뛰어나온다. "아빠!" 안아준다. 무겁다. 많이 컸다. "오늘 어땠어?" "그냥 그랬어." 저녁 먹는다. 아내가 해놓은 밥. 된장찌개에 김치. 맛있다. 서울 음식보다 낫다. 밥 먹고 아들이랑 논다. 블록 쌓기. 30분 한다. 8시. 아들 재운다. 동화책 읽어준다. 자장가 부른다. 잠든다. 거실 나온다. 아내가 설거지한다. "나도 할게." "아니야. 너 쉬어." 소파에 앉는다. 노트북 켠다. 메일 확인한다. 새로운 VC 콜드메일 보낸다. "안녕하세요. 대전 기반 제조 B2B SaaS..." 보내기 누른다. 답장 올까. 모르겠다. 시계 본다. 9시. 내일도 서울 간다. 새벽 5시 KTX. 알람 맞춘다. 4시 10분. 그래도 침대 눕는다. 아내 옆에. "고생했어." "응." "서울 이사 안 갈 거지?" "...안 가." 아내 손 잡는다. 따뜻하다. 창밖 본다. 대전 밤하늘. 서울보다 별 많다. 그건 좋다. 내일도 5시에 일어난다. 또 KTX 탄다. 또 미팅한다. 또 거절당한다. 근데 뭐. 여기가 내 자리다. 대전이. 눈 감는다.새벽 5시 KTX는 내 사무실이다. 거기서 일하고 거기서 고민한다. 오늘도 표 끊었다.

KTX 정기권이 나의 사무실이 된 지 1년

KTX 정기권이 나의 사무실이 된 지 1년

KTX 정기권이 나의 사무실이 된 지 1년 알람이 울린다. 월요일 아침 6시 47분. KTX 첫 차 타려면 6시 50분까지 역에 도착해야 한다. 25분밖에 없다. 집에서 대전역까지 15분. 계산이 안 맞는다. 어제부터 이미 짐을 다 챙겨뒀다. 양치질하고 옷만 입으면 된다. 아내는 아직 자고 있다. 2살 아들도. "가고 와." 문자로만 남기고 나간다. 문구점 가 듯이. 차에 올라탄다. KTX 타기 전에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와 계란말이를 산다. 이게 아침 식사다. 밥을 먹을 시간이 없다. 역에서 뛰어간다. 어제도, 그저께도, 지난 일 년도 이렇게 뛰었다.6시 58분, 승차 승차 벨이 울린다. "다음 정거장은 서울." 정기권을 찍고 들어간다. 같은 차량, 같은 자리. 2-C. 창가 자리. 창문 옆에 콘센트가 있다. 이게 내 자리다. 1년 동안 여기서만 일한다. 노트북을 켠다. 시동이 걸릴 때까지 커피를 마신다. 화면이 켜진다. 시간이 벌써 7시 3분. 서울 도착은 9시 정도. 105분의 업무 시간이 생겼다. 슬랙 확인. 메시지 7개. 대전 본사 팀원들 밤 10시에 보낸 것들. "CEO님, 삼성 담당자가 자료 요청했어요" "내일 VC 콜 시간 확인 가능할까요?" "개발 진행 상황 보고 있습니다"105분. 이 시간 안에 회신하고, 피칭 자료 업데이트하고, 발표 연습도 해야 한다. 할 것들을 메모한다.삼성 자료 수정 (15분) 원스톱 펀딩 VC 피치덱 V7 → V8 (40분) 대전 팀 슬랙 회신 (10분) 오후 미팅 체크리스트 정리 (20분)계산이 안 맞는다. 105분에 85분을 넣으려고 한다. 근데 매주 이렇게 한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춘다. 익숙하다. KTX 흔들림 속에서 일하기도 이제 습관이다. 맞춤법 틀려도 나중에 수정하면 된다. 일단 빨리. 빨리 해야 한다. 옆 좌석엔 할머니가 앉아 있다. 종로 갈라고. 처음 3개월은 신경 썼다. 내가 노트북하고 있으니까 자기도 괜찮나 싶고.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본다. 할머니도 내 노트북을 안 본다. 이게 예의다. 대전을 떠나고 2시간 50분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할 일의 60%는 끝난다. "이거 왜 기차에서 보내요?" 판교 VC 담당자가 물었다. 메일 타임스탬프를 봤나 본다. 아침 7시 45분. KTX 안에서 보낸 거다. "이동 중입니다." 이렇게만 썼다. 더 이상 설명하기 싫다. 설명해도 이해 못 할 것 같다. 그 담당자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판교에서 일한다. 대전이 어디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대전공. 농구팀 아니냐고. 농구팀도 있긴 하다. KTX에서 일하는 게 낭만적으로 들릴 줄 알았다. "오, 기차에서도 일하시네요. 멋있네요." 이렇게 말해줄 줄 알았다. 현실은 다르다. "기차에서 일하신다니까 좀 불안정하지 않나요?" 그 말이 더 자주 나온다. 회사가 불안정해 보인다는 뜻이다. 그게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마이너스다. 이미.대전 같은 곳에선 이게 정상이다 처음 사람들한테 설명했을 때 반응이 이랬다. "KTX요? 왜?" "대전에서 일할 수 없으니까요." "아, 서울이 손해가 되지 않나요?" KTX 정기권이 월 26만 원이다. 아메리카노와 계란말이가 6천 원. 일 년에 312만 원의 정기권. 52주 × 2회. 104일을 KTX에서 산다. 하루 3시간. 총 312시간. 연간 312시간을 기차 안에서 일한다. 임차료로 계산하면 시간당 1만 원이다. 그런데 정기권을 안 끊으면 어쩌나. VC들은 서울에만 있다. 우리 고객도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다. 제조업 기업들이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다. 팩토리는 지방에 있어도. 대전에서 일하려고 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개발자 없나요?" 대전에는 없다. 진짜로. 우리가 필요한 임베디드 리눅스 엔지니어 구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 연봉 6500만 원, 대전으로 와서 5000만 원 받겠어? 아무도 안 온다. "사무실 없나요?" 판교 스타트업 오피스. 월 200만 원 정도. 대전 일반 사무실. 월 100만 원. 근데 스타트업들은 판교로 간다. 생태계가 있으니까. 대전엔 뭐가 있나. 정부 과제 설명회. 이게 다다. 그래서 나는 KTX를 탄다. "이 정도면 충청권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요." 지난달 충청권 창업 연합회에서 누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가장 슬펐다. 열심히 한다는 건 정상이어야 한다는 뜻이니까. 105분의 루틴 월요일. 오전 회차. 7시 정기권 체크. 07:03 노트북 ON. 07:15 삼성 자료 수정 완료. 07:55 VC 피치덱 수정 버전 저장. 08:22 팀 회신 완료. 08:45 오후 미팅 프레임 정리. 매주 반복이다. 수요일. 오후 회차. 16시 대전역 탑승. 16:05 메일 체크. 16:20 고객 보고서 작성 시작. 17:10 슬라이드 정렬. 17:45 코드 리뷰 (개발팀이 보낸 영상). 18:10 내일 미팅 주요 포인트 정리. 105분씩 두 번. 주 210분. 한 달 840분. 일 년 10080분. 그 시간에 뭘 했나.피치덱: V1 → V9 (8번 수정) VC 미팅: 17곳 (3곳 2차, 1곳 3차) 고객 제안서: 12개 회사 팀 온보딩: 개발자 3명 (근데 2명 떠남. 원격 근무는 아니었고, 연봉이었다) 정부 과제 지원서: 4개 (2개 통과)생산성이 높나. 그냥 바쁜 거 아닌가. 구분 못 한다.아내의 침묵 "또 간다고?" 아내가 몇 달 전에 물었다. 월요일 아침. "응. 미팅이 3개 있어." "한두 번도 아니고, 매주?" "응." "아이 많이 봐." 이 말이 전부다. 아내는 대전에서 공무원이다. 월급이 나온다. 계획이 있다. 휴가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나는 매주 두 번 사라진다. "엄마는 어디 가?" 2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 말고 아빠 말이다. 엄마가 말해줘. "아빠는 서울." "아빠 일?" "응. 아빠 일이 서울에 있어." 이제 아들은 물어보지 않는다. 나가는 게 정상이 됐다. 아빠는 월요일과 수요일에 없는 엄마, 할머니 품에 있는 아이다. 이게 정상인가. 모르겠다. 아내는 주말에 "충전"이라는 말을 쓴다. "주말에 충전할 시간이 있어?" "일이 있으니까." "일이 항상 있지. 아들 봐." 주말에도 노트북을 켜고 앉는다. 정부 과제 보고서. IR 자료. 다음 주 미팅 준비. 아들이 노트북 화면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다. 자유로운 선. 마우스 커서 같은 선. "아, 저장 안 했는데." 다시 켜기 귀찮다. 그냥 남겨둔다. 1년이 끝나고 정기권을 또 샀다. 계약 기간이 끝나서 새로 사는 거다. 26만 원. 카드를 긋는다. 익숙하다. 마치 월급 내는 것처럼. 얼마 전 투자 미팅이 있었다. 판교의 한 VC. "왜 대전에 있어요?" 또 이 질문이다. "제조업 고객이 충청권이 중심이고. 개발팀도 여기 있습니다." "근데 불편하지 않나요?" "KTX 정기권 있잖아요." "아." 그 이후로 투자 회신이 없다. 메일로 답장이 왔다. "현재로선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맞지 않는다. 우리가 아니라 상황이. 아니, 우리가. 둘 다 맞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도 KTX를 탄다. 월요일 아침 6시 50분. 또 뛸 것 같다. "가고 와." 아내에게 문자를 쓴다. 아들은 아직 자고 있을 것이다. KTX 정기권을 떼기 전에, 뭔가 바뀔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탈 것 같기도 하다.

대전에서 개발자를 찾다: 서울과의 눈에 띄는 격차

대전에서 개발자를 찾다: 서울과의 눈에 띄는 격차

대전에서 개발자를 찾다: 서울과의 눈에 띄는 격차 판교에서 온 선후배들 SNS를 보면 항상 같은 내용이다. "개발자 채용 공고 올렸습니다"라는 글 아래 댓글이 50개. 지원자 20명. 면접 스케줄 잡기 힘들다고 한다. 그들 얘기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한 번도 그런 경험이 없어서다. 대전에서 3년을 운영하면서 배운 게 있다. 서울과 지방의 차이는 서비스 규모나 시장이 아니었다. 개발자 수급 격차였다. 같은 연봉, 같은 조건을 제시해도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공고 올린 지 3개월, 여전히 침묵 지난 3월이었다. 백엔드 개발자 1명, 풀스택 개발자 1명 공고를 올렸다. 잡코리아, 원티드, 로켓펀치 다 했다. SNS도 돌렸다. 회사 홈페이지에도 붙였다. 연봉은 대전 기준 상위권 4500만원부터 5200만원. 복지도 나쁘지 않다. 주 4일 출근 가능. 재택 무제한. 스톡옵션도 나눠줄 준비 했다. 3개월. 정확히 92일이 지났다. 연락 온 사람은 2명. 둘 다 지원 후 면접에서 떨어졌다. 한 명은 "서울로 갈 계획이 있어서요"라고 했다. 다른 한 명은 "부모님 반대가 있어서요"라고 했다. 그 사이 판교 회사에서 일하는 대학 후배한테 물었다. 그 친구 스타트업도 백엔드 공고를 올렸다고 했다. 같은 달이었다. 월급은 5000만원 + 주식. 같은 정도다. 다른 점은 지원 속도였다. 일주일 만에 10명 지원. 2주 만에 면접. 한 달 만에 채용 완료였다고 한다. 내가 했던 모든 노력은 뭐였나. 공고 올리기, SNS 홍보, 대전 커뮤니티 찾아다니기. 다 헛수고였나. 서울 후배에게 물었다. "너희는 지원자가 많긴 해? 근데 질이 좋아?" 그 친구 대답은 씁쓸했다. "질? 그건 모르겠는데, 어쨌든 선택지가 많긴 해. 대전이 어때?" 못했다. 대답을 못 했다. 같은 돈, 다른 선택 연봉을 올려봤다. 450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게임 회사나 대기업 인턴 수준이다. 대전에선 거의 톱 티어 급이다. 같은 공고를 다시 올렸다. 지원자는 3명. 이전과 비슷했다. 한 명은 인턴 경력 1년, 한 명은 팀프로젝트 경험만 있는 사람, 한 명은 정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잘하는 사람과 면접을 잡았다. 대전 출신이었다. 서울에서 일하다가 부모님 병환으로 내려온 사람. 결과적으로 우린 그 사람을 채용했다. 근데 그 사람도 "1년 정도 있다가 다시 서울 갈 예정"이라고 했다. 반대로 서울 후배한테 물었다. 연봉을 올려도 괜찮은가. 그 친구는 웃었다. "올려서 뭐하냐. 지금도 선택 못 할 정도인데." 그때 깨달았다. 이건 연봉 문제가 아니었다. 위치 문제였다.생태계의 차이 이건 개발자 개인의 선택이 아니었다. 생태계 자체가 다르다는 거였다. 서울에 있으면 한 회사 안 돼도 다음 회사가 있다. 5분 거리에 10개 회사. 30분 거리에 100개 회사. 실력이 있으면 언제든 이직할 수 있다. 커뮤니티도 있다. 강의도 있다. 멘토도 있다. 스터디 그룹도 있다. 개발자로서 성장할 모든 인프라가 있다. 대전은 어떤가. 개발 회사는 있다. 근데 IT 회사가 있는 게 다다. 다음 직업까지의 거리가 멀다. 대학생들은 아예 처음부터 서울로 간다. 왜냐하면 "대전에 괜찮은 IT 회사가 없다"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삼성 가고, 나중에 서울에서 스타트업 했고, 이제 내려와 있다. 서울에서 온 우리 판교 거점 직원이 말했다. "회장님, 개발자 이직 속도 보셨어요? 서울은 월 평균 5~10%가 이직해요. 개발자 유통시장이 활발해요. 근데 대전은요? 애초에 시장 자체가 작으니까 이직할 데가 없어요." 맞다. 대전에 좋은 개발자가 없는 게 아니었다. 좋은 개발자들이 서울로 다 가는 거였다. 그들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다. 숫자로 본 현실 사람들은 항상 물었다. "왜 대전에 있어요?" 나도 현실적으로 계산해본 적 있다. 상황 A: 서울로 본사 이전판교 오피스 임차료: 월 1200만원 개발자 4명 연봉 상승분: 월 1500만원 (대전 대비) 대면 미팅 시간: 주 30시간 절약 1년: 총 3억 2400만원 추가 비용상황 B: 현재 (대전 본사 유지)임차료: 월 350만원 개발자 연봉: 현재 수준 KTX 왕복: 월 280만원 서울 미팅 이동 시간: 주 10시간 소요 개발자 채용 실패율: 90%계산은 명확했다. 서울로 가면 확실히 더 비싸다. 근데 채용 성공률이 10배 다르다. 아내한테 이 계산을 보여줬다. 아내는 "그냥 대전에서 잘 돌아가는 거 아닌가"라고 했다. 맞다. 지금도 잘 돌아간다. 월 매출 600만원. 대기업 PoC 진행 중. 정부 과제도 있다. 그래도 불안하다. 불안의 원인은 간단했다. 개발 인력이 없으면 기술 고도화가 안 된다. 기술 고도화가 안 되면 대기업이나 해외 시장 진출이 어렵다. 하면 못하는 게 아니라 속도가 느리다. 스타트업은 속도다. 속도가 느리면 진다.해결책은 없는가 벤처캐피탈과 미팅을 할 때마다 물어본다. "지방 스타트업이라는 게 문제 되나요?" VC들은 항상 같게 답한다. "아니요, 좋은 팀이면 상관없어요." 다음 질문은 자동으로 나온다. "그럼 개발자 채용이 어렵다면요?" 그때 VC들은 침묵한다. 아니면 "원격 근무로 해봤어요?"라고 한다. 원격 근무. 시도해봤다. 서울 개발자 2명과 면접했다. 다 탈락했다. 이유는 "원격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출퇴근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었다. 결국 같은 문제였다. 대전으로 내려올 생각이 없다는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뭔가. 계속 고민했다.서울로 옮긴다 - 비용 3배, 가족 반발 해외 개발자를 쓴다 - 시간대 차이, 언어 장벽, 관리 복잡 인공지능으로 채운다 - 아직 B2B SaaS 레벨 아님 현재 팀으로 최선을 다한다 - 이미 하고 있음현재 팀. 6명. 백엔드 1명, 프론트 1명, 인프라 1명, 그리고 나포함 하이브리드. 우리는 3개월에 피처 1개 정도 낸다. 서울 같은 규모 팀은 주 1개다. 계산해보면 속도 격차는 4배다. 나는 이 격차를 뭔가로 채워야 한다. 코드로? 아니면 영업으로? 진짜 문제는 다른 곳 최근에 깨달았다. 개발자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진짜 문제는 "선택지의 부재"다. 좋은 개발자는 선택을 한다. 어디서 일할지. 누구와 일할지. 뭘 만들지. 개발자가 적으면 선택권이 많다. 대전은 선택권이 없다. 그래서 개발자들은 처음부터 서울을 간다. 만약 대전에 좋은 스타트업이 10개 있었다면? 개발자들이 남아있지 않았을까. 만약 연쇄 창업자들이 많았다면? 이탈리 효과가 생기지 않았을까. 근데 그건 내 문제가 아니다. 개인 스타트업 대표로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생태계 문제다. 정부 정책 문제다. 지역 경제 문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뭔가. 오늘도 KTX에 탄다. 월요일. 서울 미팅 3개. 개발자 네트워킹 1개. 새벽 5시 40분 첫 차. 노트북 꺼내고 시작한다. 팀에서 미처 못 한 코드 리뷰. 너무 피곤해서 자다 깨어 나면 대전이다. 아내는 "또 가세요?"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PoC 미팅이야"라고 했다. 그건 거짓이다. 이런 출장은 계속 있을 거다. KTX 창밖으로 대전 들판이 보인다. 노란 유채꽃이 피고 있다. 멀리서 보면 예쁘다. 안에 있으면 답답하다. 이게 지방 스타트업의 현실이다.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다.판교는 지원자가 50명인데 난 3개월에 0명. 이게 격차라고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