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PoC가 진행 중일 때의 불안감

대기업 PoC가 진행 중일 때의 불안감

PoC 67% 진행 중 대기업 구매팀에서 연락 왔다. "진행률 67%입니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모르겠다. 3개월 전 시작한 PoC다. H사 천안 공장. 우리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테스트 중. 목표는 불량률 15% 감소. 지금 12% 나왔다. 나쁘지 않다. 근데 마음이 안 놓인다. 구매팀 김 차장이 말했다. "다음 주 중간 보고 있습니다." 중간 보고. 임원들 앞에서. 우리는 못 간다. 담당자가 알아서 한다. 알아서 잘 해주겠지.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근데 믿어지지가 않는다.밤 11시에 김 차장한테 카톡 보냈다. "혹시 필요한 자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읽씹이다. 당연하다. 밤 11시인데. 새벽 2시에 답장 왔다. "괜찮습니다 ^^" 이모티콘 하나 더. 괜찮다는 게 뭐가 괜찮다는 건가. 잠이 안 온다. 3년 전 그 PoC 3년 전에도 비슷했다. 창업 첫해. L사 대전 공장. PoC 2개월 진행했다. 결과는 좋았다. 불량률 18% 줄었다. 담당 부장이 칭찬했다. "정말 좋네요." 악수했다. 명함 다시 받았다. 그리고 연락 끊겼다. 한 달 뒤 전화했다. "아, 최 대표님. 죄송한데 내부 사정이 좀..." 내부 사정. 예산. 우선순위. 타이밍. 결국 무산됐다. 2개월 인건비 800만원 날렸다. 정부 과제 돈으로 메웠다. 그때 배웠다. PoC 성공이 계약은 아니라는 걸.지금도 똑같다. 67% 진행률. 12% 불량 감소. 김 차장의 "괜찮습니다 ^^" 다 의미 없을 수 있다. 대기업의 시간 대기업은 느리다. 우리 기준으로 느리다. 김 차장이 말했다. "저희는 절차가 있어서요." 절차. 중간 보고. 최종 보고. 구매 위원회. 법무 검토. 계약서 작성. 날인. 최소 3개월이다. 김 차장 말로는. 근데 실제로는 더 걸린다. 작년에 K사 PoC 끝나고 계약까지 7개월 걸렸다. 계약금 3000만원. 그나마 감사했다. H사는 더 클 거다. 목표 계약금 8000만원. 3년 계약. 연 3억 매출. 근데 아직 PoC다. 67%다. 계약까지는 아직 멀다. 우리는 빠르다. 스타트업이니까. 결정도 빠르고 실행도 빠르다. 버그 고치는 데 하루면 된다. 대기업은 다르다. 버그 리포트 올리는 데 일주일. 검토하는 데 일주일. 수정 요청하는 데 일주일. 총 3주. 그 시간이 답답하다.김 차장한테 전화했다. "진행 상황 어떤가요?" 김 차장이 웃었다. "잘 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건 말 안 한다. 대기업 담당자는 구체적인 걸 싫어한다. 확정 안 된 걸 말하면 나중에 책임져야 하니까. 이해한다. 근데 답답하다. 월말 급여일 오늘은 25일. 급여일이다. 직원 6명 급여 총 2800만원. 4대보험 포함하면 3200만원. 이번 달 매출 600만원. 정부 과제비 1500만원 입금됐다. 총 2100만원. 1100만원 부족하다. 회사 통장에서 메운다. 통장 잔액 4700만원에서 3600만원 됐다. 다음 달은 더 빡빡하다. 정부 과제비 입금 없다. 매출은 600만원 예상. 3200만원 또 부족하다. H사 계약이 필요하다. 절실하게. 계약금 8000만원 들어오면 3개월은 버틴다. 추가 개발자 1명 뽑을 수 있다. 판교 영업 거점도 확장할 수 있다. 근데 아직 PoC다. 67%다. 사무실 막내가 물었다. "대표님, H사 언제 계약돼요?" 웃으면서 대답했다. "곧 되겠지." 확신은 없다. 판교 영업사원의 전화 판교에서 일하는 영업 최 대리가 전화했다. "대표님, S사 미팅 잡혔어요." S사. 또 대기업이다. "PoC 가능할까요?" 최 대리가 물었다. 가능하다. 당연히 가능하다. 근데 대답이 안 나왔다. H사 PoC 진행 중이다. 인력이 빠듯하다. 개발팀 4명 중 2명이 H사 붙어있다. S사까지 하면 3명 필요하다. 남는 인력이 1명이다. 그것도 신입이다. "일단 미팅 잡아." 그렇게 말했다. 최 대리가 좋아했다. "네! 다음 주 목요일이요." 끊고 나서 후회했다. H사도 불안한데 S사까지. 두 개 다 날릴 수도 있다. 근데 안 하면 기회가 없다. 지방 스타트업한테 대기업 PoC 기회가 얼마나 오는데. 다 잡아야 한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CTO한테 말했다. "S사 PoC도 할 거 같아." CTO가 한숨 쉬었다. "인력이 없는데요." 알고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신입 교육 빨리 시켜." CTO가 고개 끄덕였다. 뭐라 안 한다. 3년 같이 버텼으니까. 아내의 질문 집에 왔다. 밤 10시. 아들은 잤다. 아내가 거실에 있었다. "오늘도 늦었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응" 했다. 아내가 물었다. "H사는 잘 돼가?" "잘 돼가." 거짓말은 아니다. 67%니까. 잘 되고는 있다. 근데 끝은 모른다. 아내가 말했다. "이번엔 꼭 됐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다. 정말로. "계약되면 좀 여유로워질까?" 아내가 물었다. 모르겠다. 솔직히 모르겠다. 계약되면 개발 들어간다. 일정 빡빡하다. 오히려 더 바빠질 거다. 근데 그 바쁨은 괜찮다. 돈 되는 바쁨이니까. 지금 바쁨은 불안한 바쁨이다. 결과가 안 보이는 바쁨. 아내한테 말 안 했다. 통장 잔고 얘기. 다음 달 급여 얘기. S사 PoC 얘기. 말하면 걱정한다. 아내도 일한다. 공무원이다. 안정적이다. 월급 250만원 꼬박꼬박 들어온다. 우리 집 생활비는 아내 월급으로 나간다. 내 월급은 거의 안 받는다. 월 150만원만 가져간다. 나머지는 회사에 둔다. 아내가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 무리 안 하면 안 된다. 스타트업은 원래 무리다. "응, 알았어." 그렇게 대답했다. 김 차장의 메시지 다음 날 아침. 출근길 KTX에서. 김 차장한테 메시지 왔다. "대표님, 중간 보고 잘 끝났습니다. 임원들 반응 괜찮았어요." 심장이 뛰었다. 괜찮았다. 괜찮았다는 거다. "감사합니다! 혹시 어떤 의견 있으셨나요?" 바로 답장 보냈다. 읽씹이다. 10분 지났다. 20분 지났다. 대전역 도착했다. 답장 안 왔다. 사무실 도착했다. 답장 왔다. "몇 가지 보완 요청 있습니다. 오후에 통화할까요?" 보완 요청.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보완하면 계약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더 지켜보자는 건가. "네, 통화 가능합니다." 답장 보냈다. 오후 3시까지 기다렸다. 전화 안 왔다. 4시. 5시. 6시. 저녁 7시에 전화 왔다. "죄송합니다, 회의가 길어져서요." 김 차장이 말했다. "데이터 시각화 부분 좀 더 직관적으로 개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 충분히 가능하다. "언제까지 필요하신가요?" 물었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요." 일주일이다. 빡빡하지만 할 수 있다. "그리고요," 김 차장이 말을 이었다. "최종 보고는 다음 달 중순입니다. 그때 결정 날 거예요." 다음 달 중순. 3주 뒤다. 3주 더 기다려야 한다. 3주 동안 불안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김 차장이 웃었다. "화이팅하세요." 화이팅. 감사하다. 근데 화이팅으로 계약이 되는 건 아니다. 보완 작업 개발팀 모았다. "H사 보완 요청 들어왔다." 다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데이터 시각화 개선. 일주일." CTO가 고개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신입 개발자가 물었다. "S사는요?" 아, S사. 다음 주 목요일 미팅. "S사는 일단 미팅만. 계약은 H사 다음." 우선순위를 정했다. H사가 먼저다. 67%까지 왔으니까. 근데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H사 안 되면 S사라도 해야 하는데. S사 미팅 망치면 둘 다 없는 거다. "S사 미팅 자료는 내가 만들게." 야근 각이다. 일주일 동안 매일 밤 11시까지 일했다. H사 보완 작업. S사 미팅 자료. 정부 과제 보고서. 금요일 저녁. H사한테 보완 결과 보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읽씹이다. 주말 동안 연락 없다. 월요일 아침. 김 차장한테 메시지 보냈다. "혹시 확인하셨나요?" 오후 3시에 답장 왔다. "네, 확인했습니다. 좋네요 ^^" 좋다는 거다. 좋다는 건 계약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S사 미팅 목요일. 판교. S사 본사. 최 대리랑 같이 갔다. 미팅룸 들어갔다. S사 구매팀 3명. 제조팀 2명. 총 5명. 우리는 2명이다. 밸런스가 안 맞는다. 근데 익숙하다. 늘 그랬다. 프레젠테이션 시작했다. 30분 발표. 질문 20분. "타사 대비 장점이 뭔가요?"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구축 기간은요?" "A/S는요?" 다 대답했다. 준비한 답변들이다. 마지막 질문. "PoC 진행 경험 있으신가요?" 있다. H사. K사. L사. "L사는 무산됐다고 들었는데요?" 알고 있었다. 업계가 좁다. "네, 내부 사정으로 무산됐습니다. 하지만 PoC 결과 자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사실이다. 구매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미팅 끝났다. 1시간. 결과는 모른다. 나오면서 최 대리가 물었다. "어떤 거 같으세요?"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일단 기다려보자." 그렇게 말했다. KTX 타고 대전 가는 길. 핸드폰 봤다. 김 차장한테 메시지 없다. S사한테도 없다. 창밖 풍경 봤다. 논밭 지나간다. 시골 마을 지나간다. 지방이다. 서울이 아니다. 여기서 스타트업 한다는 게 이런 거다. 늘 불안하다. 늘 기다린다. 3주 뒤 H사 최종 보고 일주일 전. 김 차장한테 메시지 보냈다. "혹시 준비할 거 더 있을까요?" 답장 없다. 하루 지났다. 이틀 지났다. 사흘째 되는 날. 김 차장한테 전화했다. "네, 대표님." 목소리가 무겁다. "최종 보고 준비 어떤가요?" 물었다. 김 차장이 한숨 쉬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대표님, 죄송한데요..." 끝이다. 이 말 나오면 끝이다. "예산 문제가 좀 생겼어요." 예산. 예산 문제. "올해 말 예산 동결됐습니다. 내년으로 미뤄질 거 같아요." 내년. 미뤄진다. 취소는 아니다. "그럼 내년에는 가능한 건가요?" 물었다. 김 차장이 말했다. "아마도요. 근데 확답은 어렵습니다." 확답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네, 알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끊었다. 사무실 봤다. 직원들 퇴근했다. 나 혼자다. 시계 봤다. 밤 10시. 통장 잔고 확인했다. 3600만원. 다음 달 급여 3200만원. 남는 돈 400만원. 그다음 달은 어떻게 하지. S사한테 메시지 보냈다. "안녕하세요, 지난주 미팅 이후 검토 상황 어떠신가요?" 답장 안 올 거다. 알고 있다. 근데 보냈다. 집에 갔다. 아내는 자고 있었다. 아들 방 들어가서 얼굴 봤다. 잘 자고 있다. 다시 거실 나왔다. 노트북 켰다. 이력서 사이트 들어갔다. 개발자 구인공고 올렸다. "스마트팩토리 개발자 채용, 연봉 4500만원, 대전 본사" 올리고 나서 생각했다. 급여 줄 돈이 있나. 없다. 근데 올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늘 그랬으니까.67%는 100%가 아니다. 기다림은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내일 출근한다.

지방 창업 지원 사업은 다 신청한다

지방 창업 지원 사업은 다 신청한다

월요일 아침, 또 공고가 떴다 출근하자마자 카톡이 왔다. 대전시 창업 지원 사업 공고. 올해 세 번째다. 커피 마시면서 공고문을 읽는다. 지원 대상, 지원 내용, 제출 서류. 다 똑같다. 사업계획서, 재무제표, 대표자 이력서. 작년에 쓴 거 복붙하면 된다. "또 신청하세요?" 부장이 물었다. "당연하지." 작년에 5개 신청해서 2개 붙었다. 올해는 7개 신청했다. 지금 3개 붙었고, 2개 대기, 2개 탈락. 확률 게임이다.대전시, 충남도, 중기부 내가 노리는 건 크게 세 갈래다. 대전시 사업은 규모가 작다. 3000만원~5000만원. 근데 붙기 쉽다. 대전 소재 기업이면 가점이 크다. 작년에 '대전형 스마트공장 실증' 5000만원 받았다. 충남도 사업은 중간이다. 5000만원~1억. 충남 제조업 특화 사업이 많다. 우리 같은 B2B SaaS는 딱이다. 올해 '충남 제조혁신 바우처' 8000만원 받았다. 중기부 사업은 크다. 1억~3억. 근데 전국 경쟁이라 어렵다. 서류 탈락이 대부분이다. 작년에 '딥테크 예비창업' 지원했다가 1차 탈락. 올해는 '창업도약패키지' 지원했다. 결과 대기 중이다. 셋 다 신청한다. 겹쳐도 상관없다. 어차피 협약 단계에서 조율하면 된다.서류는 다 비슷하다 사업계획서는 템플릿이 있다.사업 개요 (500자) 기술 및 제품 소개 (1000자) 시장 분석 (800자) 추진 계획 (1200자) 재무 계획 (표)작년 거 복사해서 쓴다. 숫자만 바꾼다. 매출 목표, 고용 인원, 투자 유치 계획. "이번엔 뭐가 다른데요?" 부장이 물었다. "글쎄. 사업명이 다르지." 진짜로 그렇다. '스마트공장 실증'이나 '제조혁신 바우처'나 '디지털전환 지원'이나 다 똑같다. 우리 솔루션 설치해주고, 데이터 모니터링하고, 리포트 뽑아주는 거다. 근데 이름이 다르다. 그래서 다 신청한다. 재무제표는 회계사무소에 맡긴다. 월 10만원. 작년부터 고정 비용이다. 사업 신청할 때마다 최신 버전 받는다. 대표자 이력서는 한 번 쓰면 끝이다. 삼성전자 8년, 창업 3년. 숫자만 업데이트한다. 추천서는 교수님한테 받는다. KAIST 산학협력 교수님. 작년에 한 번 부탁드렸더니 "앞으로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하셨다. 감사하다. 행정 업무가 늘어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신청하면 끝이 아니다. 발표 자료 만들어야 하고, 인터뷰 가야 하고, 현장 실사 받아야 한다. 작년에 5개 신청하니까 2개월 동안 발표만 4번 했다. 대전시청, 충남도청, 테크노파크, 창조경제혁신센터. 발표 자료도 다 다르다. 대전시는 15페이지 이내. 충남도는 20페이지 이내. 중기부는 30페이지. 템플릿도 다 달라서 매번 새로 만든다. "대표님, 이번 주 목요일 발표래요." 부장이 말했다. "어디?" "천안. 충남도 사업." "몇 시?" "오후 2시." KTX 표를 끊는다. 대전→천안. 40분. 1시 출발하면 된다. 목요일 아침엔 서울 미팅이 있다. 9시. 끝나고 천안 가면 딱이다. 이게 일상이다.붙으면 일이 더 많다 탈락하면 편하다. 이메일 한 통 오고 끝이다. "귀사의 사업계획서는 아쉽게도..." 복붙 문장. 붙으면 진짜 시작이다. 협약서 쓰고, 통장 만들고, 월별 보고서 쓰고, 정산 자료 제출하고. 1년 내내 한다. 작년에 받은 충남도 8000만원. 매달 보고서 쓴다. A4 5페이지. 이번 달 실적, 다음 달 계획, 예산 집행 내역. 매월 10일까지 제출. 대전시 5000만원은 분기별 보고다. 분기마다 현장 실사 온다. 담당자 2명. 사무실 둘러보고, 직원 인터뷰하고, 장비 확인하고. 2시간. 중기부 과제는 더 세다. 중간 점검, 최종 점검, 추적 점검. 3년 동안 계속 본다. 작년 과제가 올해도 점검 온다. "귀찮지 않아요?" 서울 투자사 대표가 물었다. "귀찮지." "그럼 왜 해요?" "돈 필요하니까." 현실이 그렇다. 우리 같은 초기 스타트업은 정부 과제 없으면 못 버틴다. 월 매출 600만원으로 직원 6명 월급 못 준다. 혹시 모를 기회 올해 신청한 사업 중에 '창업도약패키지'가 있다. 중기부 사업. 3억. 솔직히 기대 안 했다. 서울 쪽 유명한 스타트업들 다 지원한다. 우리 같은 지방 B2B는 경쟁력 없다. 근데 1차 통과했다. 40개 중에 10개. 우리가 들어갔다. "와, 진짜요?" 부장이 놀랐다. "응." 2차는 발표 심사다. 다음 달. 서울 가야 한다. 3억이면 개발자 2명 1년 데이터 분석 인력 1명. 제대로 된 제품 만들 수 있다. 대기업 PoC 넘어서 상용화 가능하다.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다. 만약 올해 신청 안 했으면? 이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다 신청한다. 귀찮아도. 확률이 낮아도. 혹시 모른다. 지방 스타트업의 자구책 서울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는다. 판교 지인은 작년에 시드 10억 받았다. 엔젤 투자자 소개받고, VC 미팅 잡고, 텀싯 받고. 3개월 만에 끝났다. 우리는? 1년 동안 VC 50군데 이메일 보냈다. 미팅 잡힌 곳 5군데. 2차까지 간 곳 1군데. 결과는 패스. "B2B 제조업은 저희 포트폴리오랑 안 맞아요." "지방 소재는 좀..." "팀이 대전에 있으면 관리가 어려워서요." 다 들었다. 그래서 정부 과제를 한다. 지방 기업에게는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 투자 못 받으면 정부 지원금. 매출 안 나오면 R&D 과제. 직원 못 뽑으면 고용 장려금. 창피한가? 아니다. 생존이다. 올해 들어온 돈 총 3억 2000만원. 정부 과제 2억 8000만원. 엔젤 투자 1억. 매출 4000만원. 정부 지원금 없으면 우리는 지금 없다. 월요일 점심, 공고 확인 점심 먹으면서 핸드폰을 본다. 대전시 공식 홈페이지. 충남도 창업 지원 센터. 중소벤처기업부 공고 페이지. 즐겨찾기 해놨다. 새 공고 2개 떴다. '대전형 AI 융합 지원 사업' 5000만원. '충남 수출 바우처' 1억. AI 융합은 우리랑 맞다. 수출 바우처는 애매하다. 근데 일단 저장한다. 오늘 저녁에 공고문 읽어본다. 내일 아침에 신청 여부 결정한다. 되면 이번 주 안에 서류 준비한다. 루틴이다. "또 신청하세요?" 부장이 웃으면서 물었다. "당연하지. 안 하면 바보지." 백반을 먹는다. 7000원. 이 동네는 밥값이 싸다. 서울은 1만 2000원 한다더라. 그것도 지방의 장점이다. 적어도 밥은 싸게 먹는다. 저녁 9시, 공고문 읽는 중 퇴근하고 집에 왔다. 아들이 자고 있다. 아내는 드라마 본다. 나는 노트북을 켠다. '대전형 AI 융합 지원 사업' 공고문. PDF 15페이지. 천천히 읽는다. 지원 대상: 대전 소재 3년 이내 스타트업. 우리 딱 3년차다. 지원 내용: AI 기술 융합 R&D 지원금 5000만원. 6개월 과제. 제출 서류: 사업계획서, 재무제표, 기술 설명서, 추진 일정. 신청 기간: 이번 주 금요일까지. "할 만한데." 혼잣말이 나온다. 기술 설명서만 새로 쓰면 된다. 우리 솔루션에 AI 모델 적용하는 계획. 이미 머릿속에 있다. 내일 오전에 2시간 쓰면 된다. 추진 일정은 템플릿 있다. 1개월 기획, 2개월 개발, 2개월 테스트, 1개월 정리. 복붙한다. 금요일까지 4일. 충분하다. 신청서를 저장한다. 폴더명은 '2025_대전AI융합_지원사업'. 작년 폴더 옆에 놓는다. 올해 12번째 신청이다.지방에서 스타트업 한다는 건 이런 거다. 투자 대신 과제, 네트워크 대신 공고. 귀찮아도 다 신청한다. 혹시 모르니까.

엔젤 투자 1억, 그 돈이 바닥나기까지

엔젤 투자 1억, 그 돈이 바닥나기까지

엔젤 투자 1억, 그 돈이 바닥나기까지 1억이 통장에 들어온 날 2년 전이다. 엔젤 투자금 1억. 통장에 찍힌 숫자 보고 멍했다. 9자리가 내 통장에. 처음이었다. 아내한테 캡처 보냈다. "왔어." 답장은 빨랐다. "축하해. 근데 조심해." 그날 밤 혼자 맥주 한 캔 마셨다. 계획 세웠다. 노트북에 엑셀 켜고 항목 적었다. 개발자 2명, 월 500만원씩. 1년이면 1억 2천. 안 된다. 다시 계산했다. 새벽 2시까지 숫자 만졌다. 결론은 명확했다. "1년 반이 한계다."쓰기 시작하면 빠르다 첫 달에 3천만원 나갔다. 개발자 2명 계약금. 각 500만원. 정부 과제 매칭금 1천만원. 사무실 보증금 600만원. 법인카드 만들고, 회계사무실 계약하고. "이게 맞나?" 생각했다. 근데 멈출 수 없었다. 두 번째 달. 급여 1천만원. 서버비 120만원. AWS 요금이 생각보다 높다. 개발 외주 300만원. UI/UX 디자이너 프리랜서. 세 번째 달. 전시회 부스비 400만원. 명함 못 뿌렸다. 관람객이 제조업 쪽이 아니었다. 마케팅 대행사 계약 500만원. 효과는 모르겠다. 통장 잔액 5,200만원. 6개월도 안 됐다.정부 과제가 숨통이다 R&D 과제 2억 받은 게 다행이다. 근데 이것도 장난 아니다. 매칭금 내야 하고, 정산 빡세고, 인건비 인정 비율 제한 있고. 개발자들 급여 일부만 과제비로 처리된다. 나머지는 자체 부담. 엔젤 투자금으로 메꾼다. 과제 담당자 전화 올 때마다 긴장한다. "서류 보완 필요합니다." 또 야근이다. 아내가 물었다. "정부 과제 없으면 어쩔 거야?" 대답 못 했다. 솔직히 모른다.서울 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KTX 정기권 끊었다. 한 달 35만원. 서울 미팅은 주 2회. VC 만나고, 잠재 고객 만나고, 네트워킹 행사 가고. 점심값, 커피값. 한 번 가면 10만원은 쓴다. 한 달이면 80만원. 판교 영업 거점 직원 한 명. 월급 350만원. 숙소 지원 50만원. 한 달 400만원이다. "서울 안 가면 안 되냐?" 스스로 물어봤다. 안 된다. 투자도, 고객도, 다 서울이다. 대전에서 버티는 게 비용 절감 맞나 싶다. 근데 서울 가면 사무실비가 3배다. 계산기 두드리다 머리 아프다. 개발자 뽑는 데 실패한 돈 채용 공고 3개월 돌렸다. 원티드, 점핏, 로켓펀치. 지원자 2명. 둘 다 최종 면접에서 거절했다. "서울 회사 제안 받았어요." "연봉 차이가 좀..." 할 말 없었다. 헤드헌터 써봤다. 수수료 연봉의 20%. 계약금 300만원 먼저 냈다. 결과는 제로. "대전은 풀이 없어요." 헤드헌터 말이다. 알고 있다. 결국 서울 개발자 주 3일 원격으로 계약했다. 월 600만원. 대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다. 채용 실패에 쓴 돈만 500만원 넘는다. 시간은 계산 안 했다. 매출은 더디고 지출은 빠르다 월 매출 600만원. 고정비는 1,800만원. 개발자 4명 급여 1,500만원. 사무실비 120만원. 서버비 100만원. 기타 100만원. 매달 1,200만원 마이너스다. 엔젤 투자금으로 메꾼다. "언제 손익분기 맞춰요?" IR 때마다 받는 질문이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내년 3분기 목표입니다." 근데 내년 3분기까지 돈이 남아있을까. 엑셀 열어서 런웨이 계산했다. 지금 속도면 8개월이다. 8개월 후면 제로. 대기업 PoC 계약 성사되면 3천만원 들어온다. 그럼 10개월로 늘어난다. 그게 답일까. 아끼려 해도 아낄 데가 없다 사무실 옮길까 생각했다. 지금 보증금 600만원에 월 120만원. 작은 곳 찾아봤다. 80만원짜리. 근데 이사비 200만원. 인터넷 재설치 50만원. 명함 새로 찍어야 하고. 계산하면 6개월 손해다. 개발자 줄일까. 4명을 3명으로. 프로젝트 속도 느려진다. PoC 못 맞추면 3천만원 날린다. 못 줄인다. AWS 비용 줄일까. 서버 최적화 해봤다. 한 달에 10만원 아꼈다. 의미 없다. 내 급여는 이미 제로다. 아내 월급으로 산다. 미안하다. 점심값 아끼려고 도시락 싸온다. 한 달에 15만원 절약. 이게 무슨 의미냐. VC들은 관심이 없다 콜드메일 50통 보냈다. 답장 3통. 미팅 1건. "지방 스타트업은 좀..." 대놓고 말하진 않는다. 분위기로 안다. "대전에서도 잘하시네요." 칭찬 아니다. 놀라는 거다. IR 자료 100번 고쳤다. 투자 제안서 버전 15까지 갔다. 결과는 똑같다.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액셀러레이터 3곳 지원했다. 다 떨어졌다. "제조업 도메인 전문성이 부족해서요." 피드백이다. 정부 과제 성과로는 투자 못 받는다. "매출 트랙션 보여주세요." VC들 말이다. 트랙션 만들려면 돈 필요한데. 돈 받으려면 트랙션 필요하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통장 보는 게 무섭다 요즘 통장 잔액 확인 자주 한다. 하루에 5번. 3,200만원. 어제보다 80만원 줄었다. 급여일도 아닌데. AWS 자동결제였다. 계산기 두드린다. 3,200만원 나누기 1,200만원. 2.6개월. 석 달도 안 남았다. 새벽에 깬다. 통장 생각하면서. 아내는 모른다. 얘기 안 했다. 대기업 PoC 결과 나오는 게 다음 달 말이다. 성사되면 3천만원. 그럼 5개월 더 버틴다. 안 되면? 생각 안 하려고 한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다른 일 찾아볼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한다. 입 밖으로 안 냈다. 아직. 1억이 이렇게 없어지는구나 2년 전 통장에 9자리 찍혔을 때가 기억난다. "이 돈으로 3년은 버틴다."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쓰기 시작하면 빠르다. 급여, 서버비, 출장비, 채용 실패, 마케팅 실패, 전시회 실패. 실패에 쓴 돈이 제일 아깝다. 근데 안 쓸 수도 없었다. 뭐가 먹힐지 모르니까. 엔젤 투자자한테 연락 왔다. "진행 어때요?" 좋다고 했다. PoC 진행 중이라고. 거짓말은 아니다. "추가 투자 생각 있으세요?" 물어볼 뻔했다. 참았다. 아직 성과가 없다. 성과 내야 한다. 석 달 안에.런웨이가 보인다. 끝이 보인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점심은 사무실 근처 백반집, 저녁은 또 백반집

점심은 사무실 근처 백반집, 저녁은 또 백반집

점심 메뉴는 아주머니가 정한다 점심시간이다. 11시 50분. "오늘 뭐 먹어요?" 개발팀 김 대리가 묻는다. "백반집." 내가 답한다. "어제도 백반이었는데요." "그럼 어디 가?" 침묵. 선택지가 없다.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음식점이 딱 세 곳 있다. 백반집, 김밥천국, 중국집. 백반집 빼면 선택권이 없다. 김밥천국은 회계팀 박 과장이 질렸다고 했고, 중국집은 기름이 너무 많다. 결국 백반집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주머니가 우릴 본다. "어, 또 왔어요?" "네." "오늘은 고등어조림이에요. 어제 제육 먹었으니까."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아주머니가 정한다. 직원 여섯 명 식사를 일주일 단위로 관리하신다. 월요일 제육, 화요일 고등어, 수요일 김치찌개, 목요일 생선구이, 금요일 불고기. 루틴이다. 회사 운영보다 정확하다. 7500원의 행복 백반 한 끼가 7500원이다. 반찬은 여섯 가지. 김치, 콩나물, 시금치, 멸치볶음, 계란찜, 그리고 메인 반찬. 밥은 무한리필. 된장찌개도 무한. "이거 사실 가성비 좋긴 해요." 영업팀 이 사원이 말한다. 맞다.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만한 반찬 못 먹는다. 판교 출장 갈 때마다 느낀다. 샐러드 한 그릇이 만 원이다.근데 질린다. 매일 먹으면 질린다. "사장님, 우리 내일은 다른 데 가요." 개발팀 최 대리가 말한다. "어디?" "몰라요. 근데 백반 말고요." 그래서 차 몰고 10분 거리 식당 찾으러 갔다. 파스타집이 있다. 만 오천 원. 직원 여섯 명이면 구만 원. 회사 카드 결제했다. 월 식비 예산이 팀당 20만 원인데 이러면 넘친다. 다음날 또 백반집 갔다. 서울은 뭐 먹지 서울 출장 날이다. KTX 타고 올라간다. 판교에서 미팅이 셋 있다. 오전 10시, 오후 2시, 저녁 6시. 점심은 중간에 어디서든 먹어야 한다. 첫 번째 미팅. 여의도 VC 대표님. "점심 같이 하시죠." 대표님이 말한다. "네, 좋습니다." 강남역 근처 비스트로 갔다. 파스타 2만 원. 샐러드 세트 추가하면 2만 8천 원. 커피까지 3만 원. "요즘 창업 어때요?" 대표님이 묻는다. "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답한다. 파스타를 먹는다. 맛있다. 근데 밥이 없다. 한국 사람이라 밥이 있어야 배가 찬다.두 번째 미팅. 판교 스타트업 대표. "우리 회사 구내식당 가시죠." 구내식당이다. 메뉴가 열 개다. 한식, 양식, 일식, 분식. 선택권이 있다. 가격은 무료다. 회사가 낸다. "부럽네요." 내가 말한다. "뭐가요?" "구내식당이요." "아, 이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연하지 않다. 우리 회사는 직원 여섯 명이다. 구내식당은 꿈도 못 꾼다. 밥을 먹는다. 제육볶음이다. 우리 동네 백반집 제육이랑 비슷하다. 근데 여기는 샐러드바가 있다. 저녁도 백반 저녁 7시. KTX 타고 내려온다. 사무실 도착. 8시 반. 배고프다. 직원들이 아직 남아있다. "사장님, 저녁 뭐 먹어요?" "백반집?" "문 닫았어요." 그럼 배달이다. 치킨 아니면 중국집. 짜장면 여섯 개 시켰다. 한 그릇에 6천 원. 총 3만 6천 원. 회사 카드 또 긁었다. "내일은 칼퇴합시다." 내가 말한다. "무슨 일 있어요?" 김 대리가 묻는다. "없어. 그냥 집에 일찍 가자." 근데 다음날도 야근했다. 고객사 미팅 준비. 저녁은 또 짜장면. 일주일에 백반을 아홉 번 먹는다. 점심 다섯 번, 저녁 네 번. 아내가 묻는다. "오늘 저녁 뭐 먹었어?" "백반." "어제도 백반이었잖아." "회사 근처가 그래." 아내가 웃는다. "서울 가면 달라져?" "거기도 비슷할걸. 바쁘면 다 똑같아." 판교 스타트업의 점심 인스타그램을 본다. 판교 스타트업 대표들 피드다. 한 대표는 회사 근처 브런치 카페 인증샷. 아보카도 토스트에 아메리카노. 만 오천 원. 다른 대표는 구내식당 메뉴판. "오늘 점심 고민 중~ 스테이크 vs 연어덮밥." 또 다른 대표는 팀 회식. 고깃집. 한 명당 5만 원. "우리 팀 고생 많았어요 🥩" 스크롤을 내린다. 우리 회사 마지막 포스팅은 한 달 전이다. 정부 과제 선정 소식. 음식 사진은 없다. 올릴 게 없다. 백반집은 인스타 감성이 아니다. "사장님, 우리도 팀 회식 해요." 최 대리가 말한다. "그래, 하자. 언제?" "이번 주 금요일이요." 금요일 저녁. 회식 장소는 백반집 옆 고깃집이다. 한 명당 3만 원. 여섯 명이면 18만 원. 회사 카드로 결제. 고기를 굽는다. 직원들 표정이 밝다. 소주 한 잔씩 돈다. "사장님, 다음 달에 또 해요." 이 사원이 말한다. "매달은 좀..." "분기에 한 번?" "그래, 분기에 한 번." 계산한다. 분기에 한 번이면 연 네 번. 한 번에 20만 원이면 연 80만 원. 가능하다. 백반의 맛 다음날 점심. 또 백반집이다. 아주머니가 우릴 본다. "어제 회식했지?" "네, 어떻게 아세요?" "얼굴 봐. 다들 피곤해 보여. 오늘은 북어국 끓였어." 해장국이다. 아주머니가 우리 스케줄을 안다. 국을 먹는다. 맛있다. 서울 비스트로 파스타보다 맛있다. 3만 원짜리 브런치보다 든든하다. "사장님, 이거 사실 괜찮은 거 아니에요?" 김 대리가 말한다. "뭐가?" "매일 백반. 건강하잖아요. 서울 애들 샌드위치 먹을 때 우린 반찬 여섯 개." 맞는 말이다. 건강하다. 가성비도 좋다. 아주머니도 좋은 분이다. 근데 질린다. 일주일에 아홉 번은 많다. "다음 주에 파스타 먹으러 가자." 내가 말한다. "예산 괜찮아요?" "한 번 정도는." 직원들이 웃는다. 한 번만. 다음 달에 또 한 번. 그렇게 버틴다. 오늘도 백반 퇴근 전이다. 8시 반. "사장님, 저녁 어떡해요?" 박 과장이 묻는다. "백반집 문 닫았지?" "네." "그럼 편의점." 편의점 도시락이다. 4500원. 여섯 명이면 2만 7천 원. 회사 카드로 끊었다. 사무실에서 먹는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도시락. 반찬은 두 개. 김치랑 단무지. "내일은 일찍 퇴근하자." 내가 말한다. "네." 직원들이 답한다. 근데 내일도 야근할 것 같다. 대기업 PoC 발표 준비가 남았다. 핸드폰을 본다. 아내 카톡. "저녁 먹었어?" "응. 편의점 도시락." "...내일은 집에서 먹어." "알았어. 일찍 갈게." 거짓말이다. 내일도 늦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본다. 판교 스타트업 대표 포스팅. "팀 회식 2차 🍺 생맥주 한잔의 여유~" 스크롤을 넘긴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까. 구내식당 생기고 팀 회식 매달 하고 브런치 카페 가고. 모르겠다. 지금은 백반이다. 내일도 백반. 모레도 백반. 다음 주도 백반. 그래도 괜찮은 이유 점심시간이다. 금요일. "오늘은 뭐예요?" 김 대리가 묻는다. "불고기래." 내가 답한다. "어떻게 알아요?" "금요일은 항상 불고기잖아." 백반집 문을 연다. 아주머니가 웃는다. "다들 왔네. 오늘 불고기 맛있어. 어제 고기 좋은 거 샀어." 자리에 앉는다. 물 떠온다. 반찬 나온다. 김치, 콩나물, 시금치, 멸치, 계란찜, 불고기. 밥을 먹는다. 맛있다. "사장님, 이거 서울 가면 못 먹죠?" 최 대리가 묻는다. "응. 이 가격에 이만한 백반은 없어." "그럼 우린 괜찮은 거네요."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매일 똑같은 메뉴. 선택권 없는 점심. 7500원짜리 행복. 근데 나쁘진 않다. 서울 스타트업들은 구내식당 있고 브런치 카페 가고 팀 회식 자주 한다. 부럽다. 우리는 백반집 아주머니가 반찬 정해주고 일주일에 아홉 번 백반 먹고 가끔 편의점 도시락 먹는다. 그게 지방 스타트업이다. 다음 주 월요일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다. 11시 50분. 점심시간. "오늘 뭐 먹어요?" 김 대리가 묻는다. "백반집." 내가 답한다. "메뉴 뭐예요?" "월요일이니까 제육." 직원들이 웃는다. 이제 우리도 안다. 월요일은 제육, 화요일은 고등어, 수요일은 김치찌개. 백반집 문을 연다. 아주머니가 손을 흔든다. "어, 왔어? 오늘 제육이야." "알아요." 우리가 답한다. 자리에 앉는다. 밥이 나온다. 반찬 여섯 개. 된장찌개. 숟가락을 든다. "맛있게 드세요." 아주머니가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가 답한다. 밥을 먹는다. 제육이 맵다. 김치가 시원하다. 콩나물이 아삭하다. 직원들이 이야기한다. 주말 얘기. 프로젝트 얘기. 대기업 PoC 결과 발표 준비. 웃음소리가 난다. 서울은 멀다. 판교는 더 멀다. 구내식당도 브런치 카페도 없다. 우리는 백반집이 있다. 7500원짜리 점심. 아주머니가 정해주는 반찬. 그게 우리 일상이다. 질리지만 익숙하다. 불만이지만 감사하다. 부럽지만 괜찮다. 내일도 백반이다. 모레도 백반이다. 그래도 계속한다.오늘도 백반집 간다. 화요일이니까 고등어다.

'왜 서울 안 가세요?' - IR할 때마다 받는 질문

'왜 서울 안 가세요?' - IR할 때마다 받는 질문

또 물어본다 강남 VC 사무실. 15층. 유리창 너머 테헤란로가 보인다. "제품 괜찮네요. 근데 왜 대전이세요?" 세 번째 질문이다. 오늘만. IR 자료 23페이지에 있다. '본사 위치 전략'. 준비했다. 외웠다. "제조업 고객사가 수도권보다 충청권에 많습니다." 파트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또 묻는다. "그래도 서울 나오시면 채용이 쉽지 않을까요?" 준비한 답변 2번. "대전도 카이스트, 충남대 인재풀이 있습니다." "음..." 하고 넘어간다. 넘어간 게 아니다. 마음속에 남는다. '지방 스타트업'이라는 꼬리표. KTX 타고 왔다. 새벽 5시 40분. 8시 미팅 맞추려고. 2시간 30분. 노트북 켜고 IR 자료 수정했다. 근데 질문은 또 같다. "서울 안 가세요?"준비한 답변들 A4 용지 한 장. 프린트했다. 'FAQ - 본사 위치 관련'.제조업 B2B는 고객사 접근성이 중요. 충청권 중소 제조업체 밀집. 서울 대비 운영비 30% 절감. R&D 집중 가능. 정부 지역 균형 발전 과제 혜택. 올해 2억 받음. 대전 인재 풀 충분. 카이스트, 충남대, ETRI 출신들. 판교 영업 거점 있음. 김 대리 상주.다 맞는 말이다. 거짓 없다. 그런데 설명하면서도 알 수 있다. 상대방 표정이. '아, 그냥 못 가는구나.' 아니다. 안 가는 거다. 차이가 있다. 아내가 대전 공무원이다. 7급. 9년차. 서울 가면 퇴사다. 우리 집 안정적 월급이 없어진다. 아들 2살. 어린이집 적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준다. 서울 가면 다 없어진다. 본사 이전 비용. 보증금, 이삿비, 직원 이동 수당. 계산했다. 5천만원. 지금 통장에 없다. 이걸 IR 자료에 쓸 수 없다. '가족 때문에', '돈 없어서'. VC들은 이해 못 한다. 그래서 포장한다. '전략적 선택'이라고.서울 출장 루틴 월요일 아침. 미팅 3개 잡았다. 8시 VC. 11시 파트너사. 2시 대기업 구매팀. 대전역 5시 40분 출발. 서울역 8시 10분 도착. 지하철 20분. 딱 맞다. 어제 저녁 짐 쌌다. 노트북, 충전기, IR 자료 인쇄본, 명함 50장, 휴대폰 보조배터리. 아내가 물었다. "몇 시에 와?" "7시쯤?" "저녁은?" "서울서 먹고." 아들이 안 놔준다. 가방 잡고 논다. 안아줬다. 30초. "아빠 가야 해." 택시 탔다. 대전역까지 15분. 6500원. KTX 정기권 끊었다. 월 48만원. 주 2회 왕복하면 이득이다. 지금 주 1.5회 타는 중. 손해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서울 미팅은 무조건 서울서 한다. VC들 대전 안 온다. 한 번도 없다. "혹시 저희 쪽으로 오실 수 있으세요?" 물어봤다. 예전에. "아, 저희가 미팅이 많아서요. 서울로 오시는 게..." 알았다. 안 온다는 거. 그래서 내가 간다. 새벽에.VC 사무실 풍경 강남. 테헤란로. 역삼. 선릉. 다 비슷하다. 15층 이상. 통유리. 커피 머신. 젊은 애널리스트들. 들어가면 프런트가 웃는다. "예약하셨어요?" "네, 8시에 최지방입니다." "잠시만요." 대기한다. 소파 앉는다. 커피 마신다. 이미 세 번째다. KTX에서 두 번. 파트너 나온다. 악수한다.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괜찮습니다." 회의실 들어간다. 빔 연결한다. 노트북 화면 띄운다. "시작하겠습니다." 15분 발표. 10분 질문. 5분 잡담. 질문은 정해져 있다. "MRR이 얼마나 되세요?" "고객사 몇 곳이에요?" "엔지니어는 몇 분이세요?" "시리즈 A 계획은?" 그리고 마지막. "왜 대전이세요?" 또. "제조업 특성상..." 설명한다. 또. 파트너 고개 끄덕인다. 근데 눈빛이 다르다. '흠...' 하는 눈빛. 끝나고 나온다. 엘리베이터 탄다. 1층 내린다. 결과 나올 때까지 2주. 메일 온다. "검토 결과, 이번 라운드는..." 탈락. 다음 VC 찾는다. 강남. 테헤란로. 역삼. 선릉. 반복. 판교 부러움 김 대리가 보낸다. 카톡. "대표님, 여기 개발자 채용 공고 미쳤어요." 판교 스타트업. 시리즈 B. 3년차 개발자 연봉 7천. 우리는 4500 준다. 한도다. "그러게요." 답장 이게 다다. 김 대리 말 맞다. 판교는 다르다. 점심시간에 개발자들 우글우글. 카페 자리 없다. 네트워킹 자연스럽다. "어느 회사세요?" "저희 뭐하는 덴데..." 명함 주고받는다. 나중에 연락된다. 이직 제안, 협업 제안, 투자 소개. 우리는 그게 없다. 대전 유성구. 점심시간 백반집. "뭐 드릴까요?" "제육 하나요." 개발자 만날 일 없다. 다들 대기업이나 연구소 다닌다. 스타트업 안 한다. 채용 공고 올렸다. 3주 됐다. 지원자 2명. 경력 안 맞다. 판교였으면 20명 왔다. 알고 있다. 서울 연봉 못 준다. 스톡옵션으로 때운다. "저희 성장 가능성이..." 누가 믿냐. 지방 스타트업 스톡옵션. 안 믿는다. 본인도. 대전의 장점 있다. 진짜로. 출퇴근 30분. 서울은 1시간 30분. 점심값 7천원. 서울은 1만 2천원. 사무실 보증금 3천. 서울은 1억. 주차 공짜. 서울은 월 20만원. 저녁 9시 퇴근해도 집 9시 30분 도착. 서울은 11시. 아들 보는 시간 더 많다. 주말에 처가 가기 쉽다. 부모님 자주 본다. 다 좋다. IR 자료에 쓴다. "운영비 효율성", "워라밸 가능", "지역 거점 전략". VC들 고개 끄덕인다. 근데 투자 안 한다. 알고 있다. 장점 아니라는 거. 핑계다. 서울 못 가는 이유를 정당화하는. 솔직히 말하면 이거다. '서울 가면 좋은데, 못 간다.' 근데 IR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대전이 전략적으로 유리합니다.' 거짓말 아니다. 반은 진짜다. 반만. 정부 과제 의존 올해 R&D 과제 2억 받았다. '지역 특화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 없으면 망했다. 직원 월급 못 줬다. 정부 과제는 지방이 유리하다. 진짜다. 지역 균형 발전. 가점 있다. 서울보다 붙기 쉽다. 그래서 또 신청한다. 내년 과제. '중소 제조업체 AI 품질관리 시스템' 3억 신청. 2억은 받을 것 같다. 근데 불안하다. 정부 과제로만 버티는 거. 스타트업 아니다. 연구소다. 매출 늘려야 한다. 월 600만원. 목표는 3천만원. 고객사 늘려야 한다. 지금 8곳. 목표는 30곳. 근데 영업이 안 된다. 대기업 PoC 3개월째. 결과 안 나온다. "검토 중입니다." 기다린다. 또. 서울이었으면 다를까?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아내의 한마디 저녁 9시 30분 도착. 아들 잤다. 아내가 TV 본다. "어땠어?" "그냥." "투자 될 것 같아?" "글쎄." 앉았다. 피곤하다. 아내가 말한다. "서울 가고 싶어?" "..." "솔직히 말해봐." "모르겠어." 진짜 모르겠다. 서울 가면 기회 많다. 안다. VC 가깝다. 인재 많다. 네트워크 있다. 근데 잃는 것도 많다. 아내 월급 없어진다. 300만원. 우리 집 안전판. 아이 돌봐줄 사람 없다. 어린이집비 두 배. 집값 비싸다. 전세 3억 더 필요. 출퇴근 3시간. 아들 얼굴 못 본다. 계산하면 서울 가는 게 손해다. 지금은. 근데 IR할 때는 확신 없다. '대전이 맞을까?' 아내가 말했다. 예전에. "우리는 서울 안 가도 돼. 여기서도 할 수 있어."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다. 근데 VC들 눈빛 보면 흔들린다. '서울 가야 하나?' 답 없다. IR 끝나고 회의 끝났다. 악수했다. "검토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탔다. 1층 내렸다. 시계 봤다. 10시 30분. 다음 미팅 11시. 30분 남았다. 스타벅스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주문. 네 번째다. 앉았다. 노트북 켰다. IR 자료 수정한다. 또. 23페이지. '본사 위치 전략'. 지운다. 다시 쓴다. "대전 본사 유지의 3가지 이유"제조업 고객사 접근성 운영비 효율화 지역 특화 지원 사업 활용저장한다. 근데 안다. 다음 미팅 가면 또 물어본다. "왜 서울 안 가세요?" 답한다. 또. 외운 대로.서울행 KTX는 주 2회. 질문은 매번 같다. 답변도 같다. 근데 확신은 매번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