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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도 괜찮아요: 자주 외치는 말

대전도 괜찮아요: 자주 외치는 말

오늘도 그 말을 했다 판교에서 미팅 끝나고 나왔다. VC 파트너가 물었다. "왜 서울로 안 오세요?" 나는 자동으로 답했다. "대전도 괜찮아요. 제조업은 현장이 중요하거든요." KTX 타고 돌아오는데 생각났다. 이게 몇 번째 하는 말인가. 작년 IR 피칭 6번. 엔젤 투자자 미팅 12번. 정부 과제 발표 4번. 매번 같은 질문, 매번 같은 대답. "대전에서도 충분히 사업할 수 있습니다." 입에서 자동으로 나온다. 준비한 것도 아닌데.준비된 논리 이젠 논리가 체계화됐다. 머릿속에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처럼 정리돼 있다. "첫째, 제조업 도메인입니다. 고객사 공장이 충청권에 많아요. 현장 대응이 빠릅니다." "둘째, 인건비 효율입니다. 서울 시니어 개발자 연봉으로 대전에선 두 명 뽑습니다." "셋째, 정부 지원 사업입니다. 대전은 R&D 예산 따기 유리해요." "넷째, 삶의 질입니다. 출퇴근 30분, 주거비 절반, 아이 키우기 좋죠." IR 덱에도 넣어놨다. '왜 대전인가' 슬라이드. 투자자들 질문 나오기 전에 먼저 설명한다. 근데 이상하다. 설명하면 할수록 변명처럼 들린다. 실제로 괜찮은가 솔직히 따져보자. 제조업 현장 대응? 우리 고객사 절반은 경기도다. 대전에서 2시간 걸린다. 판교 사무실 있으면 30분이다. 인건비 효율? 시니어 개발자를 못 구한다. 대전 개발자 커뮤니티가 작다. 결국 서울 연봉 맞춰줘야 오는데, 그럼 의미 없다. 정부 과제? 맞다. R&D 예산은 잘 딴다. 근데 그게 전부다. VC 투자는 서울 가야 받는다. 대전에서 만난 투자자 0명. 삶의 질? 이건 맞다. 출퇴근 편하다. 아내 직장 안정적이다. 부모님 가깝다. 근데 사업과 무슨 상관인가. 결론: 반만 진실이다.진짜 이유 왜 대전에 있나. 진짜 이유. 아내가 공무원이다. 대전시청 7년차. 연봉 4500만원. 우리 회사보다 안정적이다. 서울 가면 그만둬야 한다. 부모님이 대전이다. 아들 어린이집 데려다주신다. 주말에 봐주신다. 서울 가면 육아 다 우리가 한다. 나도 솔직히 편하다. 출근 20분. 점심 단골집 있다. 헬스장 5분 거리. 서울 가면 출퇴근 2시간이다. 그리고 무섭다. 서울 가면 경쟁이 보인다. 판교 스타트업들 채용 공고 본다. 우리보다 두 배 빠르다. 투자 규모가 다르다. 대전에 있으면 비교 대상이 적다. '충청권 스타트업 중에선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게 진짜 이유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미팅에서 "왜 서울 안 가세요?" 질문 나온다. 0.5초 안에 느낀다. '아, 이 사람 우리 별로 관심 없구나.' 서울 VC들은 안다. 지방 스타트업의 한계를. 개발자 채용 어렵다. 네트워크 약하다. 스케일 안 된다. "대전도 괜찮아요" 말하는 순간, 나는 변명하고 있다. IR 끝나고 나온다. 파트너가 명함 주면서 말한다. "서울 오시면 연락 주세요." 투자 안 한다는 뜻이다. KTX 타고 돌아온다. 노트북 켠다. 메일 쓴다. "오늘 미팅 감사했습니다. 대전에서도 충분히 성장 가능한 모델입니다." 보내놓고 생각한다. 누구를 설득하려는 건가. 상대방인가, 나 자신인가.창업 커뮤니티에서 대전 스타트업 모임 간다. 월 1회. 참석자 15명 정도. 다들 비슷하다. 제조업, 바이오, 정부 과제. 매출 10억 이하. 직원 10명 이하. 술 한잔 하면 나온다. "서울 갈까 말까" 고민. 다들 한 번씩 했다. 누군가 말한다. "대전도 괜찮지 않아요? 여기도 인재 있고." 다들 고개 끄덕인다. 근데 눈빛은 다르다. 작년에 서울 간 팀 있다. 6개월 만에 시리즈A 50억 받았다. 우리 모임에서 제일 잘나갔던 팀. 이제 그 팀 얘기 안 한다. 비교되니까.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다들 말한다. 근데 카톡방은 조용하다. 숫자로 보면 냉정하게 보자. 대전 스타트업 VC 투자 유치: 작년 3건. 서울: 547건. 대전 스타트업 시리즈A 이상: 12개사. 서울: 600개사 이상. 대전 테크 스타트업 개발자 채용 공고: 평균 지원자 2.3명. 서울: 평균 15.7명. 대전 스타트업 네트워킹 행사: 월 23회. 판교: 주 56회.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대전도 괜찮다"는 말, 숫자로는 안 괜찮다. 작년 이맘때 작년 11월. 서울 VC 파트너가 말했다. "본사 서울로 옮기면 투자 검토하겠습니다." 밤새 고민했다. 아내랑 이야기했다. "서울 가볼까?" 아내가 물었다. "당신 정말 가고 싶어?" 나는 대답 못 했다. 회사 가고 싶다. 사업 키우고 싶다. 근데 서울 가고 싶지 않다. 모순이다. 결국 안 갔다. VC한테 메일 보냈다. "저희는 대전에서 계속하겠습니다. 제조업 특성상 현장 밀착이 중요해서요." 답장 안 왔다. 3개월 뒤 다른 VC 미팅 갔다. 또 같은 질문. "왜 서울 안 가세요?" 또 같은 대답. "대전도 괜찮아요." 진심과 자기최면 이 말이 진심인가. 50%는 진심이다. 대전도 장점 있다. 생활비 싸다. 출퇴근 편하다. 정부 지원 받기 좋다. 50%는 자기최면이다. '여기서도 된다' 믿어야 버틴다. 안 믿으면 불안하다. IR 때마다 외친다. "대전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외치다 보면 믿게 된다.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뭐가 되나. 서울 가야 한다. 근데 못 간다. 그럼 포기해야 한다. 포기 안 하려면 믿어야 한다. 그래서 외친다. "대전도 괜찮아요." 대표는 영업이다 창업하고 배웠다. 대표는 영업맨이다. 투자자한테 회사 판다. 직원한테 비전 판다. 고객한테 솔루션 판다. 나 자신한테도 판다. "여기서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연습한다. 거울 보고 말한다. "대전도 괜찮아요." 표정 연습한다. 자신감 있게. 미팅 전날 밤. 예상 질문 적는다. "왜 서울 안 가세요?" 답변 쓴다. 외운다. KTX에서 리허설한다. 속으로 말한다. "대전에서도 충분히 사업할 수 있습니다." 미팅장 들어간다. 웃는다. 말한다. 집에 온다. 거울 본다. 피곤하다. 어제 판교에서 어제 미팅. 스타트업 대표 만났다. 나랑 비슷한 업종. 작년에 시리즈A 받았다. 점심 먹으면서 물었다. "힘든 거 없으세요?" 그가 말했다. "개발자 채용이요. 지원자는 많은데 다 주니어예요. 시니어는 네이버 카카오 가죠." 나는 말했다. "저희는 지원자가 없어요." 그가 웃었다. "대전이시잖아요." 나도 웃었다. "네, 대전도 괜찮긴 한데요." 그는 안 물었다. '뭐가 괜찮은데요?' 안 물어서 다행이다. 대답 준비 안 했다. 아내가 아는 것 아내는 안다. 내가 불안한 거. 주말에 노트북 켜놓으면 안다. 또 서울 스타트업 채용 공고 보는 거. VC 메일 쓰고 있으면 안다. 또 '대전도 괜찮다' 문장 넣는 거. 말은 안 한다. 그냥 커피 타준다. 한 번 물었다. "서울 가고 싶어?" 나는 대답했다. "아니, 괜찮아." 아내가 말했다. "거짓말." 나는 웃었다. "반만 거짓말." 아내도 웃었다. "어느 반?" 대답 못 했다. 나도 모르겠다. 다음 주 IR 다음 주 또 서울 간다. 액셀러레이터 IR. 20개 팀 피칭. 자료 준비했다. '왜 대전인가' 슬라이드 넣었다. 4가지 이유 적었다. 리허설했다. 타이머 켰다. 3분 30초. 딱 맞다. 거울 보고 연습했다. "대전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목소리 자신감 있게. 준비 끝났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저번 IR 때 투자자 표정. 내가 "대전도" 말하는 순간 미묘하게 바뀌는 눈빛. '아, 이 팀은 아니구나' 하는 표정. 다음 주도 볼 것 같다. 그 표정. 그래도 말할 것이다. "대전도 괜찮아요." 안 말하면 뭐라고 하나. 솔직히 말할까. "서울 가고 싶은데 못 가요. 집안 사정이요." 그럼 더 안 될 것 같다. 커피 내리면서 사무실 커피 내린다. 직원들 출근 전. 조용하다. 창밖 본다. 대덕연구단지 보인다. KAIST 보인다. 멀리 계룡산 보인다. 여기도 나쁘지 않다. 진짜로. 공기 좋다. 출퇴근 편하다. 단골집 있다. 익숙하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판교 카페에서 본 풍경. 스타트업 대표들 모여 있던 거. 다들 자연스럽게 네트워킹하던 거. 대전엔 그런 카페 없다. 커피 마신다. 쓰다. 노트북 연다. 메일함 본다. "왜 서울 안 오세요?" 질문 들어간 메일 3개. 답장 쓴다. 복붙한다. "대전도 괜찮습니다" 문장. 보낸다. 창밖 다시 본다.매번 외치는 말. "대전도 괜찮아요." 반은 진심, 반은 자기최면. 근데 외치지 않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오늘도 연습한다. 다음 주 IR 자료에 또 넣는다. '왜 대전인가' 슬라이드. 언젠가 진짜 믿게 될까. 아니면 계속 외치기만 할까. 모르겠다. 일단 오늘도 출근한다. 여기서.

부모님 대전 거주: 이건 운인가 약인가

부모님 대전 거주: 이건 운인가 약인가

어제 또 불렀다 어제 아침 7시 출근길. 아내가 전화했다. "아들이 열 났어." 나는 KTX 안이었다. 부모님한테 전화했다. "엄마, 미안한데 유찬이 좀..." 30분 후 우리 집에 도착하셨다고.이번 달만 세 번째다. 부모님 안 계셨으면 회사 접었다. 부모님이 가까이 산다는 것 대전에 남은 이유 중 하나. 솔직히 크다. 아이 아플 때. 출장 갈 때. 야근할 때. 아내 야근할 때. 부모님이 10분 거리다. 이게 얼마나 큰 건지. 서울 스타트업 대표들 얘기 들으면. 베이비시터 월 200만원. 친정 내려오면 KTX 왕복 10만원. 명절 때만 만난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세 번 본다. 아들은 할머니가 키운다고 생각한다.감사하다. 진심으로. 근데. 이게 족쇄일 수도 지난주 서울 VC 미팅. "왜 대전이세요? 판교로 오시죠." 대답했다. "가족이 대전이라서요." 투자자가 웃었다. "아,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그 말투. '지방에 묶인 사람' 보는 눈빛. 집에 와서 생각했다. 부모님이 가까이 있어서. 서울 못 가는 거 아닌가. 아내는 공무원이다. 대전시청 7급. 전근 없다. 사표 낼 생각도 없다. 부모님은 평생 대전이다. 처가도 대전이다. 아들 어린이집도 대전이다. 나만 서울로? 그건 아니다.그럼 가족 다 데리고? 아내 커리어 포기? 부모님 70 넘어서 이사? 불가능하다. 서울 나간 친구 대학 동기 하나. 작년에 서울로 올라갔다. 핀테크 스타트업. 엊그제 통화했다. "애 아프면 어떡해?" "..일단 병원 보내고 어린이집 가요." "진짜 아프면?" "둘 중 하나 조퇴하죠. 뭐." 목소리가 피곤했다. 주말에 대전 내려온댔다. 아이 친정에 맡기려고. 편도 2시간. 주말마다. "대전 있을 때가 좋았다." 그렇게 말했다. 나는 대답 못 했다. 너 서울 가고 싶다고 했잖아. 3년 전에. 운인가 약인가 솔직히 모르겠다. 부모님 덕분에 버틴다. 출장도 가고. 야근도 하고. 회사도 돌아간다. 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좋아한다. 일주일에 서너 번 본다.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나도 안다. 부모님 연세 생각하면. 지금 아니면 못 본다. 근데. 서울 가면 투자 쉽다는 거. 개발자 구하기 쉽다는 거. 네트워크 넓어진다는 거. 다 안다. 대전 있으면 VC들 만날 때마다 설명한다. "왜 대전이세요?" "가족이 있어서요." "아..." 그 '아...' 소리. 들을 때마다. 이게 핑계인가 싶다. 어제 저녁 부모님 집에서 저녁 먹었다. 아버지가 물었다. "회사 잘돼?" "네, 괜찮아요." 거짓말이다. 투자 안 들어오면 연말까지다. 어머니가 말했다. "유찬이 크는 거 보니까 좋다." "우리 젊었을 때는 못 봤는데." 아버지도 그랬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 나 어릴 때 거의 못 봤다. 지금 나는? 아들 재우고 나온다. 아침에 깨워준다. 주말엔 공원 간다. 대전이라서 가능하다. 부모님 도움으로 가능하다. 이게 운이다. 분명히. 근데 왜. 서울 간 친구들 보면. 부럽다. 답은 없다 오늘도 KTX 탄다. 서울 IR 있다. 부모님한테 전화했다. "아버지, 오늘 서울 갔다 와요."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유찬이는..." "걱정 마라. 우리가 데리고 있는다." 끊고 나서. 또 생각한다. 이게 운인지. 족쇄인지. 대전에 남은 게. 정답인지. 핑계인지.부모님 전화번호는 즐겨찾기 1번이다. 아내보다 위에.

제조업 B2B SaaS라는 설명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제조업 B2B SaaS라는 설명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엘리베이터 피치 30초 "무슨 일 하세요?" 명절 때마다 듣는다. 이번엔 고모부였다.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만들어요." "아, 공장 자동화?" "비슷한데요, 소프트웨어로..." "아 기계 만드시는구나." 아니다. 설명을 다시 시작한다. "제조업 B2B SaaS입니다." "...네?" 이 대화가 3년째 반복된다.왜 이렇게 어려운가 문제는 세 겹이다. 첫째, '제조업'. 사람들은 공장하면 기계를 떠올린다. 컨베이어 벨트, 용접, 조립. 소프트웨어는 안 떠올린다. 둘째, 'B2B'. 일반인은 B2C만 안다. 배달앱, 쇼핑몰, 게임. 기업 대상 소프트웨어는 존재감이 없다. 셋째, 'SaaS'. 이건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아 구독형이요?" 반만 맞다. 세 개를 합치면 난이도가 기하급수다. 제조업을 모르는 사람에게 B2B를 설명하고, B2B를 모르는 사람에게 SaaS를 설명한다. 30초 안에. 불가능하다.KTX에서의 연습 서울 가는 날이면 연습한다. 오늘은 마포에서 VC 미팅이 있다. 1시간 20분 동안 노트북을 켜고 피치덱을 본다. 첫 페이지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저희는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너무 딱딱하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추상적이다. "MES와 ERP를 연결해서..." 전문용어 폭격이다. 옆자리 할머니가 김밥을 드신다. 나는 노트북 화면만 본다. 설명 버전 7개를 만들었다. 제조업 종사자용, 비전공자용, VC용, 정부과제용, 가족용, 구직자용, 기자용. 버전마다 단어가 다르다. '설비 가동률'이 어떤 버전에선 '기계 사용 시간'이 된다. 'Real-time monitoring'이 '실시간 체크'가 된다. 천안아산역을 지난다. 아직도 첫 페이지다.대전 백반집에서 점심시간이다. 사무실 근처 '맛나식당'에 간다. 사장님이 물으신다. "요즘 일은 잘 되냐?" "그럭저럭요." "근디 니네 회사가 정확히 뭐 하는 디야?" 3년째 오는 단골집이다. 아직도 모르신다. "공장에서 쓰는 프로그램 만들어요." "아, 컴퓨터로 기계 돌리는 거?" "비슷한데요, 좀 다른..." "아이고 어렵다. 아무튼 잘 되이소." 된장찌개를 드신다. 나도 먹는다. 옆 테이블에서 대화가 들린다. "우리 아들이 카카오 다니는디." "오, 대단하다." 설명이 필요 없다. 카카오톡을 다들 쓰니까. 우리 직원이 "부럽네요"라고 한다. 나도 그렇다. IR 자료 37번째 버전 작년 11월, 판교 액셀러레이터 IR이었다. "3분 드립니다." 첫 슬라이드. "국내 제조업 시장규모 500조." 심사위원이 핸드폰을 본다. 두 번째 슬라이드. "스마트팩토리 보급률 12%." 한 명이 커피를 마신다. 세 번째 슬라이드. "저희 솔루션은..." "잠깐만요." 질문이 들어왔다. "그래서 정확히 뭘 파는 건가요?" 1분 30초가 지났다. 아직 제품 설명도 못 했다. "공장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모아서 분석하고..." "MES 같은 건가요?" "MES보다 가볍고, 설치가 쉽고..." "그럼 IoT?" "IoT도 포함되지만 본질은 SaaS..." 3분이 끝났다. 질문만 5개 받았다. 제품 시연은 못 했다. 복도에서 다른 팀 발표가 들렸다. "배달 음식 추천 앱입니다." 박수가 나왔다. 1분 만에 다들 이해했다. 채용 공고를 쓸 때 개발자를 구한다. 공고를 쓴다. "제조업 B2B SaaS 스타트업에서 백엔드 개발자를 모십니다." 지원이 없다. 일주일째다. 공고를 고친다.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하실 분을 찾습니다." 지원 1명. 경력 8년. 질문이 왔다. "제조 도메인 경험이 필수인가요?" 아니다. 근데 설명이 필요하다. 30분짜리 통화를 했다. 결국 지원을 취소했다. "제조업은 잘 모르겠네요." 다시 고친다.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플랫폼 개발자 모집." 제조업을 뺐다. 지원이 3명 왔다. 면접을 봤다. 셋 다 물었다. "그래서 정확히 뭐 만드는 회사죠?" 설명했다. 한 명은 "음... 복잡하네요"라고 했다. 한 명은 "제조업 경험이 없어서요"라고 했다. 한 명은 합격했는데 서울 회사 오퍼를 받아서 거절했다. 판교 스타트업 채용공고를 본다. "OO페이 백엔드 개발자 모집." 지원자 120명. 부럽다. 아내와의 대화 저녁에 집에 온다. 아들이 잔다. 아내가 묻는다. "오늘 투자 미팅 어땠어?" "글쎄." "떨어진 거야?" "아직 몰라. 근데 설명하는 데만 20분 걸렸어." "그럼 제품 설명은 못 한 거네?" "응." 아내가 웃는다. "그러게 좀 쉬운 거 할 걸." 농담이다. 근데 반만 농담이다. "우리 동기가 배달앱 스타트업 다니는데, 투자 5억 받았대." "그래." "설명 필요 없잖아. 배달앱이면 다들 알지." "그렇지." "너도 그런 거 하지 그랬어." 아내는 공무원이다. 안정적이다. 나는 3년째 월급을 못 받았다. 대신 직원들 월급은 꼬박꼬박 준다. "제조업이 중요해. 한국 GDP의 28%야." "근데 사람들은 모르잖아." 맞는 말이다. 할 말이 없다. 엔지니어 시절이 그립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땐 설명이 필요 없었다.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예요." "오, 삼성?" 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스타트업 대표예요." "오, 뭐 하는 데요?" 시작이다. 엔지니어 시절엔 내 일이 명확했다. 수율 개선, 불량률 감소, 공정 최적화. 숫자로 나왔다. 성과가 보였다. 지금은 다르다. '시장 교육'이라는 걸 해야 한다. 고객에게 우리 솔루션이 왜 필요한지 설명한다. 그 전에 스마트팩토리가 뭔지 설명한다. 그 전에 제조업 디지털 전환이 뭔지 설명한다. 3단계 설명이다. 피곤하다. 공장에선 문제가 명확했다. 라인이 멈추면 고친다. 불량이 나오면 원인을 찾는다. 지금은 문제부터 설명해야 한다. "왜 이게 문제인가요?" 중소기업 대표님들이 묻는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실시간 모니터링, 예지 보전. 단어가 낯설다. 공장 사장님들은 30년째 감으로 공장을 돌렸다. 잘 돌아갔다. 왜 바꿔야 하나. 설득이 필요하다.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세일즈다. 정부과제 제안서에서만 유일하게 설명이 쉬운 곳이 있다. 정부 R&D 과제 제안서다. "제조업 디지털 전환을 위한 클라우드 기반 통합 관제 시스템 개발." 심사위원들이 다 이해한다. 제조업 박사들이다. MES, ERP, POP, WMS. 약어를 써도 된다. 오히려 써야 한다. 전문성을 보여줘야 한다. 작년에 과제 하나 땄다. 2억. 2년 과제다. 제안서는 120페이지였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기술 스펙만 채웠다. 근데 이게 문제다. 정부 과제에만 통하는 언어다. 시장에선 안 통한다. 실제 고객사 미팅에 가면 다르다. "박사님, 저희는 그냥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만 보고 싶어요." 중소기업 생산관리 과장님이 말씀하신다. 제안서에 쓴 단어들이 부끄럽다. 'Digital Twin 기반 실시간 시뮬레이션.' 과장님은 "그냥 핸드폰으로 볼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두 개 언어를 쓴다. 정부용, 고객용. 피곤하다. 대전 스타트업 모임에서 월례 모임이 있다. 대전 스타트업 대표들 20명 정도 모인다. 자기소개 시간이다. 한 명씩 돌아간다. "안녕하세요, 교육 플랫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헬스케어 앱 만들어요." "배달 중개 플랫폼입니다." 다들 한 문장이다. 명확하다. 내 차례다. "제조업 B2B SaaS...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하고 있고요, 공장 데이터를..." 옆 사람이 "아 MES?"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려다가 "비슷해요"라고 답한다. 설명하면 길다. 끝나고 네트워킹 시간이다. 교육 플랫폼 대표가 온다. "제조업이요? 어렵겠네요." "좀 그래요." "고객사는 어떻게 찾아요?" "발로 뛰어야죠. 공장 찾아가고." "우리는 그냥 페이스북 광고 돌리는데." "부럽네요." 헬스케어 앱 대표도 온다. "B2B는 매출 사이클이 길지 않아요?" "6개월에서 1년이요." "우리는 다운로드하면 바로 결제 들어오는데." "그렇겠네요."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한다. 나만 어려운 걸 하는 건가. PoC 설명하기 대기업 PoC가 진행 중이다. 3개월 무상 파일럿이다. 구매팀 과장님이 묻는다. "이거 끝나고 정식 계약하면 얼마예요?" "월 500만원입니다." "...비싸네요. 이게 정확히 뭘 해주는 건데요?" 다시 설명한다. 세 번째다. "설비별 가동률을 실시간으로 보여드리고, 비가동 사유를 분석하고, 예지 보전 알람을 주고..." "아 그러니까 기계 고장 나기 전에 알려준다는 거죠?" "맞습니다. 그리고..." "그럼 그렇게 말하지." 맞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설명하면 길다. 줄이면 오해가 생긴다. PoC 결과 보고서를 쓴다. 30페이지다. 그래프가 20개다. 가동률 개선 8%, 비가동 시간 감소 15%, 예측 정확도 92%. 숫자는 좋다. 근데 과장님이 묻는다. "이거 우리가 왜 500 주고 사야 해요? 지금도 공장 잘 돌아가는데." 대답이 막힌다. 잘 돌아가는 걸 더 잘 돌아가게 하는 게 우리 제품이다. 근데 '잘 돌아가는데 왜?'라는 질문엔 답이 어렵다. 결국 "ROI가 6개월이면 나옵니다"라고 한다. 숫자로 승부한다. 서울 사람들의 반응 판교에 영업 거점이 있다. 직원 1명이 상주한다. 주간 회의를 한다. 화상으로. "이번 주 미팅 5건 잡혔어요." "좋네. 어디어디?" "판교 스타트업 2곳, 강남 VC 1곳, 여의도 대기업 계열사 1곳." "반응은?" "음... 다들 '제조업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대전 오실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어려워하고." 서울 사람들은 대전을 멀게 느낀다. KTX로 1시간인데. 반대로 대전 고객사들은 서울 회사를 선호한다. "본사가 서울이에요?" 물어본다. "대전입니다." "아..." 어정쩡하다. 서울에선 지방 회사고, 지방에선 서울 회사가 아니다. 영업 직원이 말한다. "형, 차라리 본사를 판교로 옮기면 어때요?" "직원들 다 대전 사람인데." "그럼 법인만이라도." "투자 받으면 생각해볼게." 근데 솔직히 나도 대전이 좋다. 출퇴근 20분이다. 주차 걱정 없다. 아들 어린이집 픽업이 가능하다. 서울 가면 다 포기해야 한다. 트레이드오프다. 설명의 편의 vs 삶의 질. 아직은 후자를 택한다. 투자자들의 질문 IR할 때마다 받는 질문들이 있다. "TAM이 얼마죠?" "국내 제조업체 40만개, 그중 스마트팩토리 대상은..." "아니 그냥 숫자로요." "8000억 정도 됩니다." "근데 제조업은 보수적이지 않나요?" "그래서 저희가..." "도입 기간은?" "평균 3개월입니다." "길네요. B2C는 즉시인데." "B2B 특성상..." "경쟁사는?" "레거시 MES 업체들하고..." "차별점은?" "클라우드 기반이고, 설치가 쉽고..." "그래서 한 문장으로?" "...쉽고 빠른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입니다." "음." 미팅이 끝난다. 2주 뒤 답이 온다. "좋은 팀이지만 시장이 불확실해서 패스합니다." 시장이 불확실한 게 아니다. 설명이 어려운 거다. 이해가 어려운 거다. B2C 스타트업은 다르다. "배달앱인데 AI 추천 넣었어요." "오케이 5억." 이런 식이다. 부럽다. 그래도 하는 이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작년 9월이었다. 투자 미팅 12곳에서 다 떨어졌다. 정부과제 심사도 탈락했다. 통장에 3000만원 남았다. 직원 월급 2달치였다. 아내한테 말했다. "접을까 봐." "진짜?" "설명하는 게 너무 힘들어." "그럼 어쩔 건데?" "취업하지 뭐." "삼성 돌아갈 거야?" "글쎄. 아니면 다른 스타트업." "그럼 거기선 설명 안 해도 돼?" "회사 설명은 안 해도 되지." "근데 너 일은 설명해야 하잖아." 맞는 말이었다. 어디 가도 설명은 해야 한다. 내 일을, 내 가치를. 그리고 생각했다. 어려운 게 나쁜 건 아니다. 어려우니까 진입장벽이 있다. 쉬우면 다들 한다. 제조업 B2B SaaS를 하는 스타트업이 적은 이유가 있다. 어렵다. 설명도 어렵고, 영업도 어렵고, 도입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한다. 다음 날 출근했다. 직원들한테 말했다. "IR 자료 다시 만들자. 이번엔 제조업 빼고." "그럼 뭐라고 해요?" "데이터 플랫폼. 산업 데이터." "그래도 결국 제조업 아니에요?" "나중에 말하면 돼." 꼼수다. 근데 먹힌다. 다음 IR에서 "오 데이터 플랫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관심이 생겼다. 설명 순서를 바꿨다. 문제 → 솔루션 → 시장. 기존은 시장 → 문제 → 솔루션이었다. 제조업을 나중에 말한다. 효과가 있었다. 한 VC가 "2차 미팅 하시죠"라고 했다. 3년차의 깨달음 이제 안다. B2B SaaS는 원래 설명이 어렵다. 제조업이라서가 아니다. B2B 자체가 그렇다. Salesforce도 처음엔 그랬다. "CRM이요? 그게 뭔데요?" 지금은 시가총액 200조다. Slack도 그랬다. "메신저 또 만들어요?" 지금은 다들 쓴다. 처음엔 다 어렵다. 설명이 필요하다. 시장 교육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은 '스마트팩토리'라는 단어도 설명해야 한다. 5년 뒤엔 아닐 거다. '제조업 B2B SaaS'라고 하면 "아 공장 소프트웨어요?"라고 바로 이해할 거다. 그때까지 버티면 된다. 어제 고객사에서 연락 왔다. 작년에 PoC 했던 곳이다. 계약하겠다고. 월 500만원. 2년 약정.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사장님이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대전에서 온 친구들, 제품 괜찮아?' 제가 설명 드렸죠. 한 시간." "감사합니다." "근데 있잖아요. 저도 처음엔 이해 못 했어요. 근데 써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좋은 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다만 다른 사람 설득하기는 어렵겠어요. 설명이 복잡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끊고 나서 웃었다. 고객도 설명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좋다. 쓰면 안다. 설명은 어려워도 제품은 좋다. 그걸로 됐다.설명은 여전히 어렵다. 근데 계속한다.

저녁 9시에 퇴근했다고 쓰지만, 집에서도 노트북은 켜져 있다

저녁 9시에 퇴근했다고 쓰지만, 집에서도 노트북은 켜져 있다

퇴근은 9시, 퇴근이 아닌 9시 사무실을 나선다 저녁 9시. 사무실 불을 끈다. "대표님 먼저 가세요." 개발팀장이 말한다. "응, 수고했어. 내일 봐." 주차장으로 걸어간다. 겨울이라 벌써 깜깜하다. 차에 시동을 건다. 히터를 튼다. 오늘도 12시간 일했다. 집에 가면 아들은 자고 있겠지. 근데 아직 안 끝났다. 집까지 20분. 그 사이 슬랙 알림 3개. 신호 대기 중에 본다. 고객사 문의다. "내일 답장하면 안 되나?" 혼잣말. 근데 손은 이미 타이핑하고 있다.집에 도착한다 9시 30분. 현관문을 연다. 아내가 설거지 중이다. "왔어?" "응. 밥 먹었어?" "먹었지. 당신 거 냉장고." 아들 방에 들어간다. 자고 있다. 이불을 덮어준다. 볼에 뽀뽀한다. 하루에 보는 시간 30분. 아침에 어린이집 데려다주는 게 전부다. 거실로 나온다. 소파에 앉는다. 노트북을 꺼낸다. 습관이다. "또 일해?" 아내가 묻는다. "아니, 그냥 메일 확인만." 근데 '그냥 확인'이 없다. 메일함에 읽지 않은 메일 47개. VC 답장, 고객 문의, 팀원 보고서, 정부 과제 공고. 하나씩 읽는다. 답장한다. 30분 지나간다.토요일도 마찬가지 주말이다. 오전 10시. 아들과 놀이터에 간다. 그네를 밀어준다. "아빠, 더!" 아들이 웃는다. "그래, 더 높이!" 근데 주머니에서 진동. 슬랙이다. 판교 영업 직원. "대표님, 고객사에서 갑자기 미팅 요청이요. 월요일 10시 가능하세요?" 그네를 밀면서 답장한다. "가능. 자료는 내가 오늘 밤에 보낼게." "죄송해요 주말인데." "괜찮아. 좋은 신호잖아." 아들은 계속 웃고 있다. 나는 그네를 밀면서 머릿속으로 PT 구성한다.기존 문제점 / 2. 우리 솔루션 / 3. ROI 계산 익숙하다. 자동이다.일요일 밤이 제일 싫다 일요일 저녁 8시. 아들을 재운다. 동화책 세 권 읽어준다. "아빠 내일도 집에 있어?" "아니, 아빠 일하러 가야지." "왜?" "...돈 벌어야지." 아들이 잠든다. 거실로 나온다. 노트북을 연다. 월요일 미팅 자료를 만든다. 새벽 1시. 자료 완성. 슬랙에 올린다. "@김대리 월요일 이거로 갑시다." 3분 뒤 답장. "확인했습니다." 김대리도 안 자고 있었다. 침대에 눕는다. 아내는 자고 있다. 불을 끈다. 근데 눈이 안 감긴다. 스마트폰을 켠다. 슬랙을 본다. 메일을 본다. 네이버 뉴스를 본다. 스타트업 관련 기사. "XX사, 시리즈B 300억 유치" 부럽다. 우리는 언제쯤? 잠이 안 온다. 퇴근이라는 말 "몇 시에 퇴근하세요?" 투자자가 물어본 적 있다. IR 미팅에서. "보통 9시요." "일찍 하시네요." 일찍이라고? 9시에 사무실 나오는 게 일찍? 근데 맞는 말이다. 내가 아는 서울 스타트업 대표들. 밤 11시까지는 기본이다. 대전에서 9시 퇴근은 양반이다. 하지만 '퇴근'이라는 말이 의미가 없다. 사무실을 나오는 게 퇴근이 아니다. 머릿속에서 일이 안 떠나는 게 문제다. 샤워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아들이랑 놀 때도. "고객사 미팅 어떻게 풀지?" "개발자 채용 공고 어떻게 쓸까?" "다음 분기 매출 어떻게 채우지?" 끊을 수가 없다. 스위치가 고장 났다. 가끔 생각한다 "이게 맞나?" 3년 전 창업했을 때. '워라밸 좋은 대표가 되자' 생각했다. 삼성전자 다닐 때 야근에 지쳐서 나왔는데. 결과는? 더 심하다. 회사원 때는 야근해도 월급 나왔다. 지금은? 내 돈 까먹으면서 야근한다. 밤새워도 매출은 제자리다. 근데 그만둘 수 없다. 직원 6명 월급. 정부 과제 책임. 고객사 약속.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 서울 스타트업들 보면 자극된다. "나도 할 수 있다" 증명하고 싶다. 지방이라서 안 되는 거 아니라는 거. 아내가 말했다 지난주 토요일. "당신, 요즘 너무 피곤해 보여." 아내가 말했다. "괜찮아. 다음 달에 대기업 계약 들어오면 나아질 거야." "지난달에도 그 말 했잖아." 할 말이 없었다. "아들이 어제 물어봤어. '아빠는 왜 맨날 컴퓨터 봐?' 라고." 가슴이 찔렸다. "미안." "미안하지 말고, 좀 쉬어. 제발." 근데 어떻게 쉬나. 쉬면 불안하다. 경쟁사는 쉬지 않는다. 서울 스타트업들은 주말에도 달린다. "투자 받으면 나아질 거야." "그것도 지난해에 한 말이야." 맞는 말이다. 작년 엔젤 투자 받았을 때. "이제 좀 여유 생긴다" 했다. 근데 더 바빠졌다. 투자금 태우면 안 된다는 압박. 성과 내야 한다는 부담. 시리즈A 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 돈이 들어와도 마음은 안 편하다. 언제쯤 될까 "언제쯤 여유 생겨요?" 후배가 물어본 적 있다. 창업 상담. "글쎄. 엑시트하면?"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다. 매출 10억 넘으면? 아니다. 그때는 직원 20명 될 거다. 시리즈B 받으면? 아니다. 그때는 목표가 100억이 된다. 끝이 없다. 스타트업 대표는 원래 이런 거다. 선배들 보면 다 그렇다. 회사 규모 커져도 불안은 그대로다. '퇴근'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다. 그래도 한다. 왜? 내가 선택했으니까.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삼성 관두고 나올 때. 안정 버리고 창업할 때. 다 알고 했다. 근데 가끔. 정말 가끔. "그냥 다시 취업할까?" 생각한다. 저녁 6시 퇴근. 주말은 진짜 쉬기. 월급 통장에 꼬박꼬박. 근데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 팀원들 보면. "아, 나는 여기가 맞다" 생각한다. 오늘도 9시에 퇴근한다 저녁 9시. 사무실 불을 끈다. "수고했어요." 팀원들에게 인사한다. "대표님도요." 차에 탄다. 집으로 간다. 20분 뒤 도착. 노트북을 켠다. 슬랙을 확인한다. 메일을 읽는다. 내일 일정을 정리한다. 오전 10시 판교 미팅. 새벽 5시 50분 KTX. 자료는 준비됐다. 침대에 눕는다. 스마트폰을 본다. 슬랙 알림 2개. "또 일해?" 아내 목소리. "아니, 이제 잔다." 근데 5분 뒤. 또 스마트폰을 켠다. 이게 창업이다. 이게 대표다. 퇴근은 9시. 근데 퇴근이 아니다.퇴근 시간은 있다. 퇴근은 없다.

점심은 사무실 근처 백반집, 저녁은 또 백반집

점심은 사무실 근처 백반집, 저녁은 또 백반집

점심 메뉴는 아주머니가 정한다 점심시간이다. 11시 50분. "오늘 뭐 먹어요?" 개발팀 김 대리가 묻는다. "백반집." 내가 답한다. "어제도 백반이었는데요." "그럼 어디 가?" 침묵. 선택지가 없다.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음식점이 딱 세 곳 있다. 백반집, 김밥천국, 중국집. 백반집 빼면 선택권이 없다. 김밥천국은 회계팀 박 과장이 질렸다고 했고, 중국집은 기름이 너무 많다. 결국 백반집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주머니가 우릴 본다. "어, 또 왔어요?" "네." "오늘은 고등어조림이에요. 어제 제육 먹었으니까."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아주머니가 정한다. 직원 여섯 명 식사를 일주일 단위로 관리하신다. 월요일 제육, 화요일 고등어, 수요일 김치찌개, 목요일 생선구이, 금요일 불고기. 루틴이다. 회사 운영보다 정확하다. 7500원의 행복 백반 한 끼가 7500원이다. 반찬은 여섯 가지. 김치, 콩나물, 시금치, 멸치볶음, 계란찜, 그리고 메인 반찬. 밥은 무한리필. 된장찌개도 무한. "이거 사실 가성비 좋긴 해요." 영업팀 이 사원이 말한다. 맞다.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만한 반찬 못 먹는다. 판교 출장 갈 때마다 느낀다. 샐러드 한 그릇이 만 원이다.근데 질린다. 매일 먹으면 질린다. "사장님, 우리 내일은 다른 데 가요." 개발팀 최 대리가 말한다. "어디?" "몰라요. 근데 백반 말고요." 그래서 차 몰고 10분 거리 식당 찾으러 갔다. 파스타집이 있다. 만 오천 원. 직원 여섯 명이면 구만 원. 회사 카드 결제했다. 월 식비 예산이 팀당 20만 원인데 이러면 넘친다. 다음날 또 백반집 갔다. 서울은 뭐 먹지 서울 출장 날이다. KTX 타고 올라간다. 판교에서 미팅이 셋 있다. 오전 10시, 오후 2시, 저녁 6시. 점심은 중간에 어디서든 먹어야 한다. 첫 번째 미팅. 여의도 VC 대표님. "점심 같이 하시죠." 대표님이 말한다. "네, 좋습니다." 강남역 근처 비스트로 갔다. 파스타 2만 원. 샐러드 세트 추가하면 2만 8천 원. 커피까지 3만 원. "요즘 창업 어때요?" 대표님이 묻는다. "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답한다. 파스타를 먹는다. 맛있다. 근데 밥이 없다. 한국 사람이라 밥이 있어야 배가 찬다.두 번째 미팅. 판교 스타트업 대표. "우리 회사 구내식당 가시죠." 구내식당이다. 메뉴가 열 개다. 한식, 양식, 일식, 분식. 선택권이 있다. 가격은 무료다. 회사가 낸다. "부럽네요." 내가 말한다. "뭐가요?" "구내식당이요." "아, 이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연하지 않다. 우리 회사는 직원 여섯 명이다. 구내식당은 꿈도 못 꾼다. 밥을 먹는다. 제육볶음이다. 우리 동네 백반집 제육이랑 비슷하다. 근데 여기는 샐러드바가 있다. 저녁도 백반 저녁 7시. KTX 타고 내려온다. 사무실 도착. 8시 반. 배고프다. 직원들이 아직 남아있다. "사장님, 저녁 뭐 먹어요?" "백반집?" "문 닫았어요." 그럼 배달이다. 치킨 아니면 중국집. 짜장면 여섯 개 시켰다. 한 그릇에 6천 원. 총 3만 6천 원. 회사 카드 또 긁었다. "내일은 칼퇴합시다." 내가 말한다. "무슨 일 있어요?" 김 대리가 묻는다. "없어. 그냥 집에 일찍 가자." 근데 다음날도 야근했다. 고객사 미팅 준비. 저녁은 또 짜장면. 일주일에 백반을 아홉 번 먹는다. 점심 다섯 번, 저녁 네 번. 아내가 묻는다. "오늘 저녁 뭐 먹었어?" "백반." "어제도 백반이었잖아." "회사 근처가 그래." 아내가 웃는다. "서울 가면 달라져?" "거기도 비슷할걸. 바쁘면 다 똑같아." 판교 스타트업의 점심 인스타그램을 본다. 판교 스타트업 대표들 피드다. 한 대표는 회사 근처 브런치 카페 인증샷. 아보카도 토스트에 아메리카노. 만 오천 원. 다른 대표는 구내식당 메뉴판. "오늘 점심 고민 중~ 스테이크 vs 연어덮밥." 또 다른 대표는 팀 회식. 고깃집. 한 명당 5만 원. "우리 팀 고생 많았어요 🥩" 스크롤을 내린다. 우리 회사 마지막 포스팅은 한 달 전이다. 정부 과제 선정 소식. 음식 사진은 없다. 올릴 게 없다. 백반집은 인스타 감성이 아니다. "사장님, 우리도 팀 회식 해요." 최 대리가 말한다. "그래, 하자. 언제?" "이번 주 금요일이요." 금요일 저녁. 회식 장소는 백반집 옆 고깃집이다. 한 명당 3만 원. 여섯 명이면 18만 원. 회사 카드로 결제. 고기를 굽는다. 직원들 표정이 밝다. 소주 한 잔씩 돈다. "사장님, 다음 달에 또 해요." 이 사원이 말한다. "매달은 좀..." "분기에 한 번?" "그래, 분기에 한 번." 계산한다. 분기에 한 번이면 연 네 번. 한 번에 20만 원이면 연 80만 원. 가능하다. 백반의 맛 다음날 점심. 또 백반집이다. 아주머니가 우릴 본다. "어제 회식했지?" "네, 어떻게 아세요?" "얼굴 봐. 다들 피곤해 보여. 오늘은 북어국 끓였어." 해장국이다. 아주머니가 우리 스케줄을 안다. 국을 먹는다. 맛있다. 서울 비스트로 파스타보다 맛있다. 3만 원짜리 브런치보다 든든하다. "사장님, 이거 사실 괜찮은 거 아니에요?" 김 대리가 말한다. "뭐가?" "매일 백반. 건강하잖아요. 서울 애들 샌드위치 먹을 때 우린 반찬 여섯 개." 맞는 말이다. 건강하다. 가성비도 좋다. 아주머니도 좋은 분이다. 근데 질린다. 일주일에 아홉 번은 많다. "다음 주에 파스타 먹으러 가자." 내가 말한다. "예산 괜찮아요?" "한 번 정도는." 직원들이 웃는다. 한 번만. 다음 달에 또 한 번. 그렇게 버틴다. 오늘도 백반 퇴근 전이다. 8시 반. "사장님, 저녁 어떡해요?" 박 과장이 묻는다. "백반집 문 닫았지?" "네." "그럼 편의점." 편의점 도시락이다. 4500원. 여섯 명이면 2만 7천 원. 회사 카드로 끊었다. 사무실에서 먹는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도시락. 반찬은 두 개. 김치랑 단무지. "내일은 일찍 퇴근하자." 내가 말한다. "네." 직원들이 답한다. 근데 내일도 야근할 것 같다. 대기업 PoC 발표 준비가 남았다. 핸드폰을 본다. 아내 카톡. "저녁 먹었어?" "응. 편의점 도시락." "...내일은 집에서 먹어." "알았어. 일찍 갈게." 거짓말이다. 내일도 늦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본다. 판교 스타트업 대표 포스팅. "팀 회식 2차 🍺 생맥주 한잔의 여유~" 스크롤을 넘긴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까. 구내식당 생기고 팀 회식 매달 하고 브런치 카페 가고. 모르겠다. 지금은 백반이다. 내일도 백반. 모레도 백반. 다음 주도 백반. 그래도 괜찮은 이유 점심시간이다. 금요일. "오늘은 뭐예요?" 김 대리가 묻는다. "불고기래." 내가 답한다. "어떻게 알아요?" "금요일은 항상 불고기잖아." 백반집 문을 연다. 아주머니가 웃는다. "다들 왔네. 오늘 불고기 맛있어. 어제 고기 좋은 거 샀어." 자리에 앉는다. 물 떠온다. 반찬 나온다. 김치, 콩나물, 시금치, 멸치, 계란찜, 불고기. 밥을 먹는다. 맛있다. "사장님, 이거 서울 가면 못 먹죠?" 최 대리가 묻는다. "응. 이 가격에 이만한 백반은 없어." "그럼 우린 괜찮은 거네요."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매일 똑같은 메뉴. 선택권 없는 점심. 7500원짜리 행복. 근데 나쁘진 않다. 서울 스타트업들은 구내식당 있고 브런치 카페 가고 팀 회식 자주 한다. 부럽다. 우리는 백반집 아주머니가 반찬 정해주고 일주일에 아홉 번 백반 먹고 가끔 편의점 도시락 먹는다. 그게 지방 스타트업이다. 다음 주 월요일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다. 11시 50분. 점심시간. "오늘 뭐 먹어요?" 김 대리가 묻는다. "백반집." 내가 답한다. "메뉴 뭐예요?" "월요일이니까 제육." 직원들이 웃는다. 이제 우리도 안다. 월요일은 제육, 화요일은 고등어, 수요일은 김치찌개. 백반집 문을 연다. 아주머니가 손을 흔든다. "어, 왔어? 오늘 제육이야." "알아요." 우리가 답한다. 자리에 앉는다. 밥이 나온다. 반찬 여섯 개. 된장찌개. 숟가락을 든다. "맛있게 드세요." 아주머니가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가 답한다. 밥을 먹는다. 제육이 맵다. 김치가 시원하다. 콩나물이 아삭하다. 직원들이 이야기한다. 주말 얘기. 프로젝트 얘기. 대기업 PoC 결과 발표 준비. 웃음소리가 난다. 서울은 멀다. 판교는 더 멀다. 구내식당도 브런치 카페도 없다. 우리는 백반집이 있다. 7500원짜리 점심. 아주머니가 정해주는 반찬. 그게 우리 일상이다. 질리지만 익숙하다. 불만이지만 감사하다. 부럽지만 괜찮다. 내일도 백반이다. 모레도 백반이다. 그래도 계속한다.오늘도 백반집 간다. 화요일이니까 고등어다.

아들 2살,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서울 출장 가기

아들 2살,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서울 출장 가기

새벽 6시 40분 알람 끄고 일어났다. 아들 방 문 살짝 열어봤다. 아직 자고 있다. 오늘 서울 출장이다. KTX 8시 20분 타야 한다. 판교에서 VC 2곳, 잠재 고객사 1곳. 미팅 3개 몰아서 잡았다. 아내가 부엌에서 커피 내린다. "오늘 늦게 들어와?" 물어본다. "저녁 7시 KTX 타면 9시쯤 도착해." 대답했다. 아내는 고개 끄덕인다. 말은 안 하지만 안다. 힘들다는 거.7시 15분, 아들 깨우기 "민준아, 일어나야지." 아들 볼 쿨쿨 잔다. 2살 애가 뭘 알겠냐. 천천히 눈 뜬다. "아빠?" 한다. "어린이집 가야지." 말하면서 옷 갈아입힌다. 아들이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내가 오늘 저녁에나 온다는 걸 모른다. 아침에 헤어지면 저녁에 본다고 생각한다. 가방 챙기면서 생각했다. 민준이가 초등학생 되면 기억이나 할까. 아빠가 매일 아침 어린이집 데려다줬던 거. 아내가 민준이 밥 먹인다. 나는 노트북 가방에 충전기 넣는다. 오늘 IR 자료 다시 봐야 한다. KTX에서.7시 50분, 어린이집 가는 길 민준이 손 잡고 걷는다. 어린이집까지 5분 거리다. "아빠 어디 가?" 민준이가 묻는다. "아빠 일하러 가." 대답한다. "언제 와?" "저녁에 와." 민준이는 이해 못 한다. 그냥 고개 끄덕인다.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다. 선생님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민준이!" 밝게 인사한다. 민준이 내려놓고 가방 건넨다. "아빠 가봐야 해. 잘 있어." 머리 쓰다듬는다. 민준이가 "응" 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뒤도 안 돌아본다. 다행이다. 울면 마음 아프니까.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나왔다. 시계 본다. 7시 58분. KTX역까지 20분. 딱 맞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맞나. KTX 안 8시 20분 KTX 탔다. 자리 앉자마자 노트북 켰다. 오늘 첫 미팅은 10시 30분. 판교 VC. 시리즈 A 투자 타진하는 자리다. 2억 목표다. IR 자료 다시 본다. 매출 그래프, 고객사 리스트, 제품 로드맵. 매번 보는 건데 또 본다. 옆자리 사람도 노트북 켜고 있다. 뭐 하는지 몰라. 다들 바쁘다. 창밖 본다. 논밭 지나간다. 대전 떠나서 서울 가는 중이다. 이 길을 일주일에 2번 왔다갔다한다. 문득 민준이 생각난다. 지금쯤 간식 먹을 시간이다. 바나나 좋아한다. 다시 화면 본다. 집중해야 한다. 오늘 미팅 잘 풀려야 한다.서울 미팅들 첫 번째 VC. 판교역 근처 빌딩 12층. IR 발표 30분 했다. 질문 20분 받았다. "지방에서 개발자 채용은 어떻게 하시나요?" "대전에 계속 계실 건가요?" "서울 거점 확대 계획은?" 예상한 질문들이다. 준비한 답 했다. "대전은 제조업 도메인 전문가 많습니다. 충청권 제조사 접근성 좋습니다. 서울 영업 거점은 확대할 계획입니다." 표정은 모르겠다. "검토해보겠습니다" 한다. 늘 듣는 말이다. 두 번째는 점심 미팅. 잠재 고객사 구매팀장. 삼성역 근처 일식집. "솔루션 좋습니다. 근데 레퍼런스가 좀..." 한다. 알아듣는다. 대기업 레퍼런스 없다는 얘기다. "지금 PoC 진행 중인 곳이 2곳 있습니다." 설명한다. "결과 나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명함 받는다. 세 번째 VC. 강남역 근처. 3시 미팅. 여기는 좀 달랐다. 대표님이 충남 출신이다. "저도 대전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한다. 이야기가 잘 풀렸다. 제조업 시장 이해도가 높다. "다음 주에 대전 사무실 한 번 방문하겠습니다." 약속 잡았다. 미팅 끝나고 나왔다. 5시 30분. 7시 KTX 타야 한다. 집에 가는 길 KTX 안이다. 7시 기차. 피곤하다. 오늘 성과 정리한다. VC 2곳 긍정적, 1곳은 글쎄. 고객사 1곳은 보류. 나쁘지 않다. 근데 확실한 건 없다. 늘 그렇다. 폰 본다. 아내한테 카톡 왔다. "민준이 저녁 잘 먹었어. 아빠 찾네." 가슴이 뜬다. 미안하다. "곧 도착해. 30분 후면 돼." 답장 보낸다. 창밖 본다. 어둡다. 불빛들만 보인다. 이게 맞나. 또 생각한다. 대전으로 내려온 게 맞나. 서울에 있었으면 이렇게 왔다갔다 안 해도 되는데. 근데 대전 떠날 수 없다. 아내 직장 여기 있다. 부모님도 여기다. 집도 샀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대전 좋다. 사무실 월세 싸다. 직원들 이직 안 한다. 출퇴근 30분이다. 서울은 모든 게 빠르고 크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다. 밤 9시 15분, 집 도착 현관문 열었다. "아빠!" 민준이가 뛰어온다. 안아 올렸다. "민준아, 보고 싶었어." 진심이다. 아내가 거실에서 웃는다. "저녁 먹었어?" 묻는다. "판교에서 먹었어." 대답한다. 민준이 내려놓는다. "아빠 놀아줘!" 한다. 장난감 기차 가져온다. 가방 내려놓고 바닥에 앉는다. 민준이랑 기차 놀이 한다. 10분 정도. 근데 자꾸 폰이 신경 쓰인다. 오늘 미팅 정리 메일 보내야 한다. VC한테 팔로업 해야 한다. "민준아, 아빠 잠깐만." 한다. 노트북 꺼낸다. 아내가 민준이 데리고 간다. "씻자, 민준아." 한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 켠다. 이메일 쓴다. 토요일 오후 주말이다. 민준이가 낮잠 잔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다. 노트북 켜 있다. 다음 주 미팅 자료 준비한다. 아내가 옆에 앉는다. "또 일해?" 묻는다. 비난하는 톤은 아니다. 그냥 확인한다. "응. 다음 주에 VC 대전 온다고 해서." 대답한다. 아내가 한숨 쉰다. "민준이 깨면 놀아줘. 약속해." 한다. "응. 그럴게." 약속한다. 근데 안다. 민준이 깨도 나는 노트북 계속 볼 거다. 일하는 척하면서. 아내도 안다. 말 안 하지만. 민준이 방에서 소리 난다. 깼다. 노트북 덮는다. 일어난다. 민준이 방으로 간다. "아빠!" 민준이가 웃는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안아 올린다. "잘 잤어?" 묻는다. "응!" 대답한다. 거실로 나온다. 블록 놀이 시작한다. 민준이가 탑 쌓는다. 나는 옆에서 본다. 근데 머릿속은 다른 생각이다. 다음 주 미팅. IR 자료. 개발자 채용 공고. 민준이가 "아빠, 봐!" 한다. 탑 무너뜨린다. 웃는다. "우와, 잘했다!" 박수친다. 민준이가 또 쌓는다. 나는 본다. 이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월요일 아침 또 새벽이다. 6시 40분. 민준이 깨운다. 옷 입힌다. 어린이집 간다. "아빠 오늘도 가?" 민준이가 묻는다. "응. 일하러 가." 대답한다. 민준이는 이제 익숙하다. "응" 하고 대답한다. 어린이집 앞. 민준이 내려놓는다. "잘 있어." 머리 쓰다듬는다. 민준이가 들어간다. 손 흔들지 않는다. 나는 돌아선다. KTX역으로 간다. 오늘도 서울이다. 오늘도 미팅이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럴까. 시리즈 A 받으면 나아질까. 매출 1억 넘으면 달라질까. 모르겠다. 그냥 걷는다. 역으로.민준이가 나를 기억이나 할까. 이 시간들을.

KTX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보내기: 성공률은 몇 프로?

KTX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보내기: 성공률은 몇 프로?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쓴다 오늘도 KTX다. 판교 미팅 3개. 새벽 6시 첫차. 카페카에 자리 잡았다. 노트북 켰다. 와이파이 연결 기다린다. 터널 지나가면 끊긴다. 대전-서울 구간은 터널이 많다. 메일함 열었다. 어젯밤 보낸 VC 콜드메일 15통. 회신 0건. 당연하다.50통 보내면 1통 온다 작년부터 계산했다. 콜드메일 성공률 2%. 50통 보내면 1통 회신 온다. 그중에 미팅으로 이어지는 건 10통 중 1통. 결국 500통 보내야 미팅 1개다. 투자까지 가려면? 아직 모른다. 미팅은 20번 했는데 투자는 안 받았다. 지방 스타트업이라고 말하면 표정이 변한다. "오, 대전이시군요." 그 다음은 정부 과제 얘기. "R&D 많이 받으셨나요?" 받았다. 2억. 그게 뭐 어쨌다고. 어제 본 강남 VC는 이렇게 말했다. "팀이 서울로 오실 계획은요?" 계획 없다고 했다. 아내가 공무원이라고. 아들이 어린이집 다닌다고. "아, 그러시면 조금..." 끝까지 안 했다. 어려울 거라는 말.밤 11시 콜드메일 루틴 집에 왔다. 아들 재웠다. 아내는 TV 본다. 노트북 켰다. 11시 30분. 콜드메일 쓸 시간이다. 크런치베이스 열었다. 국내 VC 리스트. 파트너 이름 찾는다. 링크드인 확인. 메일 주소 추정한다. firstname@vcfirm.com firstname.lastname@vcfirm.comf.lastname@vcfirm.com 3개 다 cc로 넣는다. 하나는 걸린다. 제목은 매번 바꾼다. "대전 제조 SaaS, 미팅 요청드립니다" "스마트팩토리 B2B, 30분만 시간 주십시오" "지방 제조업 시장, 기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본문은 템플릿이다. 4문단.인사 + 우리 소개 (2줄) 트랙션 숫자 (3줄) 시장 기회 (3줄) 미팅 요청 (1줄)총 200단어 안쪽. 길면 안 읽는다. "저희는 대전에서..." 이 문장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지금은 넣는다. 어차피 미팅 가면 알게 된다. 투명하게 가는 게 낫다. 발송. 15통. 오늘 할당량 끝. 내일 아침에 확인한다. 기대는 안 한다. 그래도 확인한다. 회신이 올 때 2주 전이었다. 아침에 메일 열었다. 회신 1건. 심장이 뛰었다. "관심 있습니다. 다음 주 가능하신가요?" 판교 VC였다. 시리즈 A 전문. 제조 쪽 투자 몇 건 있었다. 그날 하루 기분이 좋았다. 팀한테도 말했다. "VC 미팅 잡혔어." 다들 좋아했다. "서울이요?" "판교요?" "응. KTX 타고 간다." 미팅은 1시간이었다. 파트너랑 애널리스트. 질문 많이 받았다. "제조업 고객사는 몇 곳이세요?" "7곳이요. 대기업 PoC 1곳 포함이요." "MRR은요?" "600이요. 이번 분기 목표는 1500." "팀은요?" "6명. 개발 3, 영업 2, 디자인 1." "다 대전이세요?" "네. 판교에 영업 1명 있어요." "음..." 그 '음...'을 안다. 지방 팀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개발자 채용은 어떻게 하세요?" "로컬 위주요. 충남대, 한밭대 출신들." "서울 경력직은요?" "연봉 못 맞춰요. 대전 물가로는 7천이 한계거든요." "아..." 미팅 끝나고 계단 내려오는데 알았다. 안 될 거다. 일주일 뒤 회신 왔다. "좋은 팀이시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괜찮다. 익숙하다.2% 확률에 매일 건다 오늘도 카페카다. 대전으로 돌아간다. 노트북 켰다. 콜드메일 10통 더 보낸다. 저녁에 15통 더 보낼 거다. 50통 보내면 1통 온다. 500통 보내면 미팅 1개다. 5000통 보내면? 투자 1건 받을까? 모른다. 그래도 보낸다. 아내한테 말했다. "서울 VC들한테 매일 메일 보낸다." "받아?" "가끔." "힘들겠다."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 대전에서 스타트업 한다는 건 이런 거다. 서울 가는 KTX에서 와이파이 잡으면서 메일 쓴다. 터널 지나가면 작성 중이던 문장 날아간다. 다시 쓴다. 성공률 2%. 나쁘지 않다. 보험 영업 성공률보다 높다. 그리고 나는 매일 보낸다. 보험 영업보다 많이 보낸다. 언젠가는 된다. 확률의 문제다. 50통이 안 되면 100통. 100통이 안 되면 500통. 회사 망하기 전까지는 보낸다.KTX 도착 10분 전. 노트북 정리했다. 오늘 보낸 메일 25통. 내일 아침에 확인한다.

판교에 1명, 대전에 5명: 원격팀의 외로움

판교에 1명, 대전에 5명: 원격팀의 외로움

판교에 1명, 대전에 5명: 원격팀의 외로움 판교에 사람을 뒀다. 6개월 전이다. 영업 잘한다고 해서 월 350만원 줬다. 근데 매주 서울 간다. 결국 나다.아침 5시 40분 KTX 오늘도 첫차다. 대전역 5시 40분. 판교 사무실 있는데 내가 간다. 민수(판교 담당)한테 맡기면 불안하다. "대표님이 직접 오신다니 영광입니다." 고객사 팀장이 그랬다. 지난주에. 민수가 먼저 갔다 온 미팅이었다. 결국 내가 다시 가야 했다. 계약서에 도장 안 찍었다. "좀 더 검토해보겠습니다." 민수 보고 듣고 머리 아팠다. 뭘 놓쳤을까. 계속 생각했다. 녹취록 달라고 했다. 없단다. "분위기 괜찮았어요. 거의 다 된 것 같았는데." 그 말만 들었다. 신뢰의 문제인가, 통제욕인가 민수는 나쁘지 않다. 영업 경력 8년. 전 직장 실적도 봤다. 괜찮았다. 근데 못 믿겠다. 솔직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민수가 그랬다. 첫 출근날. 좋았다. 기대했다. 한 달 지나니까 답답했다. 보고가 성의 없다. 미팅 결과 세 줄. "관심 있어 보였습니다." "다음 주 재논의 예정입니다." "견적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게 없다. 숫자가 없다. 누구 만났는지, 뭘 물어봤는지. 우리 솔루션 중 뭘 관심 있어 했는지. 결국 내가 물어본다. 카톡으로. "정확히 누구 만났어요?" "우리 제품 중 어떤 모듈 얘기했어요?" "예산 얼마나 잡혀 있대요?" 민수는 답이 늦다. 한 시간, 두 시간. "확인해보겠습니다" 자주 온다. 그럼 내가 빡친다. 미팅 때 왜 안 물었나.결국 가는 건 나다 고객사 미팅 10개 중 7개는 내가 간다. 민수가 먼저 가도 결국 내가 또 간다. "대표님이 한 번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민수가 그렇게 말한다. 그럼 간다. KTX 타고. 새벽에 일어나서 면도하고. 정장 입고 대전역 간다. 도착하면 9시 30분. 미팅 10시. 민수랑 커피 마시면서 브리핑 듣는다. "어제 통화했는데 분위기 좋았어요." 그 말 듣고 들어간다. 미팅 시작하면 안다. 바로 안다. 분위기 안 좋다. 민수 말이랑 다르다. 고객 표정이 시큰둥하다. "저희 공장 규모가 좀 큰 편인데요." "기존 시스템이랑 연동이 되나요?" "ROI가 얼마나 나올까요?" 질문이 쏟아진다. 제대로 된 질문. 민수는 못 대답한다. 나만 본다. 결국 내가 답한다. 2시간 동안. 나올 때 민수가 말한다. "오늘 대표님이 오시길 잘했네요." "제가 준비가 부족했나 봐요." 화는 안 낸다. 근데 속으로 생각한다. '다음에도 내가 가야겠네.' 대전 팀은 답답해한다 점심 먹으면서 개발팀이랑 통화한다. "형 또 서울 갔어?" 현우(CTO)가 묻는다. "응. 미팅 있어서." "민수 형 있잖아." "...같이 간 거야." 현우는 한숨 쉰다. 들린다. "우리 언제 판교 가봐요?" "고객사 궁금한데 맨날 형만 가." 미안하다. 근데 어쩔 수 없다. 고객 앞에서 개발자 데려가면 복잡해진다. "이거 개발 가능해요?" 물어본다. 현우는 솔직하다. 너무 솔직하다. "지금은 안 되는데 3개월 걸려요." 그 말 듣고 고객은 시든다. 영업은 애매하게 답해야 한다. "검토해보겠습니다" 정도로. 근데 개발자는 정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안 데려간다. 현우도, 다른 개발자도. 결국 혼자 간다. 아니면 민수랑. 리모트 팀의 착각 민수 뽑을 때 생각했다. '판교에 거점 생기면 다르겠지.' '서울 출장 안 가도 되겠지.' 완전히 착각이었다. 거점이 있어도 결국 대표가 간다. 고객은 대표를 원한다. "의사결정권자 좀 만나고 싶은데요." 결국 그 얘기 나온다. 민수한테 권한을 줬다. 계약 3000만원까지. 근데 못 쓴다. 한 번도. "대표님 확인받고 진행할게요." 민수가 매번 그런다. 권한을 줘도 안 쓴다. 책임지기 싫은 거다. 이해한다. 나도 직장인이었다. 알아. 근데 답답하다. 엄청 답답하다. 민수한테 화낼 수도 없다. 잘못한 거 없으니까.통제하고 싶은 이유 왜 이렇게 됐나. 생각해봤다. 민수를 못 믿어서? 아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다. 내가 불안해서다. 3년 만든 회사다. 직원 6명. 정부 과제 2억, 엔젤 1억. 이게 끝이다. 돈이. 한 건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 월 매출 600만원. 인건비도 안 된다. 대기업 PoC 하나 따야 산다. 그러니까 못 놓는다. 통제가. 민수한테 맡기면 불안하다. '내가 갔으면 계약했을 텐데.' 그 생각이 자꾸 든다. 실제로 내가 가면 다르다. 계약률이 높다. 확실히. 민수 단독: 10개 중 2개. 내가 동행: 10개 중 5개. 이 숫자 아니까 못 놓는다. 민수한테 미안하다. 진짜. 근데 회사가 먼저다. 외로운 건 민수도 마찬가지 지난주 민수랑 술 먹었다. 판교 미팅 끝나고 저녁 먹었다. 판교 역 근처 고깃집. "형, 저 믿고 좀 맡겨주세요." 민수가 소주 두 잔 마시고 말했다. "맡기고 있잖아." "아니에요. 형이 다 챙기잖아요." "미팅 때마다 오시고."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니까. "형이 오시면 저는 투명인간이에요." "고객들 형만 봐요." "제가 뭐 하러 거기 있나 싶어요." 미안했다. 진짜로. 근데 바꿀 수가 없다. "판교 사무실도 외로워요." 민수가 또 말했다. "혼자 있으니까 회사 같지 않아요." "대전 팀은 맨날 같이 밥 먹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대전은 6명이 붙어 있다. 점심 같이 먹고, 저녁도 가끔. 회의할 때 화이트보드 앞에 모인다. 민수는 혼자다. 판교 오피스텔에. 화상회의로만 팀 본다. 주 1회 찍는 주간회의 때. "한 달에 한 번은 대전 오세요." 내가 말했다. "팀이랑 같이 일해야죠." 민수는 고개 끄덕였다. 근데 안 온다. 바쁘다고. 서울 미팅 많다고. 나도 이해한다. 왔다 갔다 피곤하다. KTX 4시간. 왕복 8시간. 업무 시간 다 날아간다. 대전 팀도, 민수도, 나도 결국 아무도 안 좋다. 대전 팀은 고객을 못 본다. 뭘 만드는지 감이 안 온다. "형이 서울 가서 뭐 했어?" 물어봐도 내 설명으로만 듣는다. 민수는 외롭다. 혼자다. 팀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월급 받으러 다니는 것 같다고. 지난주에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나는 계속 움직인다. 대전-서울, 서울-대전. KTX 정기권 끊었다. 50만원짜리. 한 달에 15번 넘게 탄다. 집에는 늦게 들어간다. 아내는 잔다. 아이도. 노트북 켜고 민수한테 카톡 보낸다. "오늘 미팅 어떻게 됐어요?" 답 오기 전에 잠든다. 소파에서. 답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겠다. 민수한테 다 맡긴다? 불안하다. 매출 떨어질까 봐. 민수를 대전으로? 싫다고 한다. 서울 떠날 생각 없다고. 내가 판교로? 아내가 싫어한다. 공무원 그만둘 수 없다고. 아이 유치원도 있다고. 그럼 계속 이렇게? 피곤하다. 올해만 KTX 200번 넘게 탔다. 역무원이 나 안다. 얼굴을. 지방 창업은 이런 거다. 서울에 거점 만들어도 결국 혼자 간다. 팀은 쪼개지고, 대표는 바빠지고. "서울로 이전 안 해요?" 투자자가 물어본다. 매번. "...검토 중입니다." 거짓말이다. 검토 안 한다. 못 간다. 가기 싫다. 솔직히. 근데 이렇게 계속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민수는 언젠가 나간다. 확실히. 외로운 사람은 떠난다. 대전 팀도 불만 쌓인다. "형만 좋은 거 다 해." 현우가 농담처럼 말한다. 근데 농담 아니다. 진심 섞였다.오늘도 판교 간다. 민수 단독 미팅 결과 안 좋았다. 내일 다시 가서 수습해야 한다. 새벽 첫차다.

새벽 5시 KTX 타면서 느낀 것들

새벽 5시 KTX 타면서 느낀 것들

새벽 5시 KTX 타면서 느낀 것들 알람은 4시 10분 알람 울린다. 4시 10분. 아내가 뒤척인다. 미안하다. 어제 밤 11시에 잤다. 5시간 못 잤다. 세수하고 어젯밤에 준비한 옷 입는다. 정장 아니다. 깔끔한 셔츠에 면바지. 서울 가면 다들 후드 입고 있다. 아들 방 살짝 열어본다. 자고 있다. 2살이다. 아빠가 새벽에 나가는 줄 모른다. 다행이다. 울면 마음 아프다. 현관에서 신발 신는다. 아내가 부엌에서 나온다. "조심히 다녀와." "응. 저녁에 올게." 엘리베이터 안. 나 혼자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피곤하다.대전역 5시 20분 택시 탄다. 기사님 반갑게 인사한다. "서울 가세요?" "네, 첫 차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 대화 일주일에 두 번 한다. 같은 기사님이다. 단골이다. 대전역 도착. 5시 20분. 역 안 카페는 아직 안 열었다. 편의점 커피 뽑는다. 아메리카노 벤티. 2700원. 이제 3000원 넘나. 대합실에 사람 별로 없다. 출근하는 직장인 몇 명. 나처럼 노트북 가방 멘 사람 둘. 스타트업인지 대기업 출장인지 모르겠다. 개찰구 통과한다. 플랫폼에 서 있다. 5월인데 새벽은 춥다. KTX 들어온다. 5시 43분 출발. 항상 이 시간이다. 외운다.기차 안 2시간 자리 찾는다. 2호차 창가. 항상 여기 앉는다. 습관이다. 노트북 꺼낸다. 맥북 프로 14인치. 회사 돈으로 산 거다. 280만원. 살 때 고민 많이 했다. 와이파이 연결한다. KTX-WiFi. 느리다. 가끔 끊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 오늘 미팅 자료 열어본다. 9시 30분 판교 VC. 11시 여의도 대기업 구매팀. 1시 30분 강남 고객사. 판교 자료부터 본다. IR 덱이다. 42페이지. 이번 달에 15번째 IR이다. 슬라이드 넘긴다. "Why Daejeon?" 페이지 나온다. 항상 이 질문 나온다. 답은 준비돼 있다. "제조 거점 집중, 인건비 효율, 정부 지원." 근데 솔직히 나도 가끔 의문이다. 창밖 본다. 아직 어둡다. 천안 지나간다. 불빛 보인다. 사람들 일어나는 시간이다. 커피 마신다. 식었다. 편의점 커피는 금방 식는다. 서울 도착하면 또 사야 한다. 메일 확인한다. 새벽에 온 메일 3개. 전부 스팸이다. 투자 제안 사기. "1억 투자 가능합니다" 제목. 누가 믿나. 슬랙 켠다. 메시지 없다. 직원들 아직 안 일어났다. 8시 반에 출근이다. 근데 나는 이미 1시간 반째다.서울역 7시 45분 도착한다. 서울역. 사람 많다. 출근 시간이다. 역 안 스타벅스 들어간다. 줄 길다. 10명 넘는다. 다들 테이크아웃이다. 아메리카노 벤티 주문한다. 5900원. 대전보다 비싸다. 아니 대전이랑 똑같나. 잘 모르겠다. 커피 받고 지하철 탄다. 2호선 판교행 환승. 신논현역까지 40분. 지하철 안 사람 많다. 앉을 자리 없다. 노트북 가방 무겁다. 핸드폰 본다. 뉴스레터 읽는다. "판교 스타트업 시리즈 B 300억" 부럽다. 우리는 엔젤 1억 받는 데 6개월 걸렸다. 대전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우리 실력 부족이다. 신논현역 도착. 8시 30분. VC 사무실까지 걸어간다. 15분. 미팅까지 45분 남았다. 카페 들어간다. 또. 아메리카노 또 시킨다. 오늘 벌써 세 번째다. 노트북 켠다. 자료 마지막 점검한다. 숫자 다시 확인한다. 근데 집중 안 된다. 피곤하다. 미팅 9시 30분 VC 사무실 도착한다. 9시 25분. 로비에서 기다린다. 대표님 나온다. 30대 중반쯤. 명함 교환한다. "먼 데서 오셨어요?" "네, 대전에서요." "아, 그러시구나.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 말 듣는 순간. '아, 이미 끝났구나' 싶다. 미팅룸 들어간다. 노트북 연결한다. 화면 안 나온다. 어댑터 문제다. 당황한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근데 시간은 빠르게 간다. 겨우 연결한다. 발표 시작한다. "저희는 제조 B2B SaaS입니다." "대전 본사, 판교 영업 거점 운영 중입니다." "현재 월 매출 600만원..." 대표님 표정 읽는다. 관심 없어 보인다. "고객사는 어디어디인가요?" "충청권 중소 제조업체 위주입니다." "서울 고객은요?" "PoC 진행 중인 대기업 1곳 있습니다." "음..." 이 '음'이 전부다. 30분 미팅. 25분 만에 끝난다. "검토 후 연락드릴게요." 연락 안 온다. 안다. 악수하고 나온다. 엘리베이터 탄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더 피곤해 보인다. 여의도 11시 지하철 탄다. 2호선 또. 여의도까지 30분. 핸드폰 본다. 직원한테 슬랙 왔다. "대표님 미팅 어떠셨어요?" "글쎄. 기대 안 함." "ㅠㅠ 다음엔 잘 될 거예요." 고맙다. 근데 다음도 똑같을 거다. 여의도 도착. 대기업 본사 빌딩 들어간다. 로비 화려하다. 보안 카드 받는다. 23층 올라간다. 구매팀장님 만난다. 40대 중반. 친절하다. "저희 공장 스마트화 검토 중입니다." "솔루션 데모 가능할까요?" 가능하다. 노트북 꺼낸다. 데모 보여준다. 팀장님 고개 끄덕인다. "괜찮네요." "근데 레퍼런스가 좀..." 또 이거다. "대기업 레퍼런스 있으신가요?" "현재 PoC 진행 중입니다." "완료된 건요?" "아직은..." "그럼 좀 더 지켜보고 연락드릴게요." 나온다. 복도에서 한숨 쉰다. 레퍼런스 없으면 못 받는다. 레퍼런스 받으려면 대기업 필요하다. 대기업은 레퍼런스 요구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강남 1시 30분 점심 먹는다. 강남역 근처. 혼자다. 김치찌개 시킨다. 9000원. 대전이면 7000원이다. 밥 먹으면서 핸드폰 본다. 아내한테 카톡 온다. "점심 먹었어?" "응 지금 먹어." "고생 많아. 힘내." 사진 보낸다. 아들 사진. 어린이집에서 찍은 거다. 웃고 있다. 힘난다. 조금. 1시 20분. 고객사 간다. 스타트업이다. 시리즈 A 받았다. 대표님 만난다. 30대 초반. 나보다 어리다. "현장 데이터 수집 어떻게 하세요?" 설명한다. "IoT 센서 설치하고..." "데이터 클라우드 전송..." "대시보드에서 실시간 모니터링..." 대표님 관심 있어 보인다.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 비용 설명한다. 초기 설치비 500만원. 월 구독료 50만원. "음... 좀 비싸네요." 비싸다. 안다. "근데 ROI 계산하면..." "일단 검토해볼게요." 또 검토. 나온다. 강남역 지하철역 간다. 서울역까지 30분. KTX 4시 30분. 아직 시간 있다. 카페 들어간다. 아메리카노 또 시킨다. 오늘 다섯 번째다. 노트북 켠다. 오늘 미팅 정리한다. 판교 VC - 관심 없음 여의도 대기업 - 레퍼런스 필요 강남 고객사 - 비용 부담 결과: 0 서울역 4시 KTX 탄다. 4시 30분. 대전행. 자리 앉는다. 같은 자리. 2호차 창가. 노트북 닫는다. 더 볼 힘 없다. 창밖 본다. 서울 빠져나간다. 핸드폰 본다. 뉴스 읽는다. "지방 스타트업 투자 감소" "수도권 집중 심화" "지역 인재 유출 가속" 기사 닫는다. 기분 나빠진다. 슬랙 확인한다. 직원들 메시지 있다. "대표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개발 회의 있어요." "고객 문의 3건 왔어요." 답장한다. "ㅇㅇ 내일 봐." 눈 감는다. 잠깐 자려고. 근데 잠 안 온다. 머릿속 복잡하다. 오늘 교통비. KTX 왕복 5만원. 지하철 5000원. 택시 1만원. 커피 3만원. 점심 9000원. 총 9만 4000원. 성과: 0원. 이게 맞나. 대전역 6시 30분 도착한다. 사람들 우르르 내린다. 택시 탄다. 또 단골 기사님이다. "오늘도 다녀오셨네요." "네." "힘드시죠?" "괜찮습니다." 거짓말이다. 집 도착한다. 6시 50분. 초인종 누른다. 아내가 문 연다. 아들이 뛰어나온다. "아빠!" 안아준다. 무겁다. 많이 컸다. "오늘 어땠어?" "그냥 그랬어." 저녁 먹는다. 아내가 해놓은 밥. 된장찌개에 김치. 맛있다. 서울 음식보다 낫다. 밥 먹고 아들이랑 논다. 블록 쌓기. 30분 한다. 8시. 아들 재운다. 동화책 읽어준다. 자장가 부른다. 잠든다. 거실 나온다. 아내가 설거지한다. "나도 할게." "아니야. 너 쉬어." 소파에 앉는다. 노트북 켠다. 메일 확인한다. 새로운 VC 콜드메일 보낸다. "안녕하세요. 대전 기반 제조 B2B SaaS..." 보내기 누른다. 답장 올까. 모르겠다. 시계 본다. 9시. 내일도 서울 간다. 새벽 5시 KTX. 알람 맞춘다. 4시 10분. 그래도 침대 눕는다. 아내 옆에. "고생했어." "응." "서울 이사 안 갈 거지?" "...안 가." 아내 손 잡는다. 따뜻하다. 창밖 본다. 대전 밤하늘. 서울보다 별 많다. 그건 좋다. 내일도 5시에 일어난다. 또 KTX 탄다. 또 미팅한다. 또 거절당한다. 근데 뭐. 여기가 내 자리다. 대전이. 눈 감는다.새벽 5시 KTX는 내 사무실이다. 거기서 일하고 거기서 고민한다. 오늘도 표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