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2살,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서울 출장 가기
- 06 Dec, 2025
새벽 6시 40분
알람 끄고 일어났다. 아들 방 문 살짝 열어봤다. 아직 자고 있다.
오늘 서울 출장이다. KTX 8시 20분 타야 한다. 판교에서 VC 2곳, 잠재 고객사 1곳. 미팅 3개 몰아서 잡았다.
아내가 부엌에서 커피 내린다. “오늘 늦게 들어와?” 물어본다. “저녁 7시 KTX 타면 9시쯤 도착해.” 대답했다.
아내는 고개 끄덕인다. 말은 안 하지만 안다. 힘들다는 거.

7시 15분, 아들 깨우기
“민준아, 일어나야지.” 아들 볼 쿨쿨 잔다. 2살 애가 뭘 알겠냐.
천천히 눈 뜬다. “아빠?” 한다. “어린이집 가야지.” 말하면서 옷 갈아입힌다.
아들이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내가 오늘 저녁에나 온다는 걸 모른다. 아침에 헤어지면 저녁에 본다고 생각한다.
가방 챙기면서 생각했다. 민준이가 초등학생 되면 기억이나 할까. 아빠가 매일 아침 어린이집 데려다줬던 거.
아내가 민준이 밥 먹인다. 나는 노트북 가방에 충전기 넣는다. 오늘 IR 자료 다시 봐야 한다. KTX에서.

7시 50분, 어린이집 가는 길
민준이 손 잡고 걷는다. 어린이집까지 5분 거리다.
“아빠 어디 가?” 민준이가 묻는다. “아빠 일하러 가.” 대답한다. “언제 와?” “저녁에 와.”
민준이는 이해 못 한다. 그냥 고개 끄덕인다.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다. 선생님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민준이!” 밝게 인사한다.
민준이 내려놓고 가방 건넨다. “아빠 가봐야 해. 잘 있어.” 머리 쓰다듬는다.
민준이가 “응” 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뒤도 안 돌아본다. 다행이다. 울면 마음 아프니까.
선생님한테 인사하고 나왔다. 시계 본다. 7시 58분. KTX역까지 20분. 딱 맞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맞나.
KTX 안
8시 20분 KTX 탔다. 자리 앉자마자 노트북 켰다.
오늘 첫 미팅은 10시 30분. 판교 VC. 시리즈 A 투자 타진하는 자리다. 2억 목표다.
IR 자료 다시 본다. 매출 그래프, 고객사 리스트, 제품 로드맵. 매번 보는 건데 또 본다.
옆자리 사람도 노트북 켜고 있다. 뭐 하는지 몰라. 다들 바쁘다.
창밖 본다. 논밭 지나간다. 대전 떠나서 서울 가는 중이다. 이 길을 일주일에 2번 왔다갔다한다.
문득 민준이 생각난다. 지금쯤 간식 먹을 시간이다. 바나나 좋아한다.
다시 화면 본다. 집중해야 한다. 오늘 미팅 잘 풀려야 한다.

서울 미팅들
첫 번째 VC. 판교역 근처 빌딩 12층.
IR 발표 30분 했다. 질문 20분 받았다. “지방에서 개발자 채용은 어떻게 하시나요?” “대전에 계속 계실 건가요?” “서울 거점 확대 계획은?”
예상한 질문들이다. 준비한 답 했다. “대전은 제조업 도메인 전문가 많습니다. 충청권 제조사 접근성 좋습니다. 서울 영업 거점은 확대할 계획입니다.”
표정은 모르겠다. “검토해보겠습니다” 한다. 늘 듣는 말이다.
두 번째는 점심 미팅. 잠재 고객사 구매팀장. 삼성역 근처 일식집.
“솔루션 좋습니다. 근데 레퍼런스가 좀…” 한다. 알아듣는다. 대기업 레퍼런스 없다는 얘기다.
“지금 PoC 진행 중인 곳이 2곳 있습니다.” 설명한다. “결과 나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명함 받는다.
세 번째 VC. 강남역 근처. 3시 미팅.
여기는 좀 달랐다. 대표님이 충남 출신이다. “저도 대전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한다.
이야기가 잘 풀렸다. 제조업 시장 이해도가 높다. “다음 주에 대전 사무실 한 번 방문하겠습니다.” 약속 잡았다.
미팅 끝나고 나왔다. 5시 30분. 7시 KTX 타야 한다.
집에 가는 길
KTX 안이다. 7시 기차. 피곤하다.
오늘 성과 정리한다. VC 2곳 긍정적, 1곳은 글쎄. 고객사 1곳은 보류.
나쁘지 않다. 근데 확실한 건 없다. 늘 그렇다.
폰 본다. 아내한테 카톡 왔다. “민준이 저녁 잘 먹었어. 아빠 찾네.”
가슴이 뜬다. 미안하다.
“곧 도착해. 30분 후면 돼.” 답장 보낸다.
창밖 본다. 어둡다. 불빛들만 보인다.
이게 맞나. 또 생각한다.
대전으로 내려온 게 맞나. 서울에 있었으면 이렇게 왔다갔다 안 해도 되는데.
근데 대전 떠날 수 없다. 아내 직장 여기 있다. 부모님도 여기다. 집도 샀다.
그리고 솔직히 나도 대전 좋다. 사무실 월세 싸다. 직원들 이직 안 한다. 출퇴근 30분이다.
서울은 모든 게 빠르고 크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다.
밤 9시 15분, 집 도착
현관문 열었다. “아빠!” 민준이가 뛰어온다.
안아 올렸다. “민준아, 보고 싶었어.” 진심이다.
아내가 거실에서 웃는다. “저녁 먹었어?” 묻는다. “판교에서 먹었어.” 대답한다.
민준이 내려놓는다. “아빠 놀아줘!” 한다. 장난감 기차 가져온다.
가방 내려놓고 바닥에 앉는다. 민준이랑 기차 놀이 한다. 10분 정도.
근데 자꾸 폰이 신경 쓰인다. 오늘 미팅 정리 메일 보내야 한다. VC한테 팔로업 해야 한다.
“민준아, 아빠 잠깐만.” 한다. 노트북 꺼낸다.
아내가 민준이 데리고 간다. “씻자, 민준아.” 한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노트북 켠다. 이메일 쓴다.
토요일 오후
주말이다. 민준이가 낮잠 잔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다. 노트북 켜 있다. 다음 주 미팅 자료 준비한다.
아내가 옆에 앉는다. “또 일해?” 묻는다. 비난하는 톤은 아니다. 그냥 확인한다.
“응. 다음 주에 VC 대전 온다고 해서.” 대답한다.
아내가 한숨 쉰다. “민준이 깨면 놀아줘. 약속해.” 한다.
“응. 그럴게.” 약속한다.
근데 안다. 민준이 깨도 나는 노트북 계속 볼 거다. 일하는 척하면서.
아내도 안다. 말 안 하지만.
민준이 방에서 소리 난다. 깼다.
노트북 덮는다. 일어난다. 민준이 방으로 간다.
“아빠!” 민준이가 웃는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안아 올린다. “잘 잤어?” 묻는다. “응!” 대답한다.
거실로 나온다. 블록 놀이 시작한다. 민준이가 탑 쌓는다. 나는 옆에서 본다.
근데 머릿속은 다른 생각이다. 다음 주 미팅. IR 자료. 개발자 채용 공고.
민준이가 “아빠, 봐!” 한다. 탑 무너뜨린다. 웃는다.
“우와, 잘했다!” 박수친다.
민준이가 또 쌓는다. 나는 본다.
이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
월요일 아침
또 새벽이다. 6시 40분.
민준이 깨운다. 옷 입힌다. 어린이집 간다.
“아빠 오늘도 가?” 민준이가 묻는다. “응. 일하러 가.” 대답한다.
민준이는 이제 익숙하다. “응” 하고 대답한다.
어린이집 앞. 민준이 내려놓는다. “잘 있어.” 머리 쓰다듬는다.
민준이가 들어간다. 손 흔들지 않는다.
나는 돌아선다. KTX역으로 간다.
오늘도 서울이다. 오늘도 미팅이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럴까.
시리즈 A 받으면 나아질까. 매출 1억 넘으면 달라질까.
모르겠다.
그냥 걷는다. 역으로.
민준이가 나를 기억이나 할까. 이 시간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