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은 사무실 근처 백반집, 저녁은 또 백반집

점심은 사무실 근처 백반집, 저녁은 또 백반집

점심 메뉴는 아주머니가 정한다

점심시간이다. 11시 50분.

“오늘 뭐 먹어요?” 개발팀 김 대리가 묻는다.

“백반집.” 내가 답한다.

“어제도 백반이었는데요.”

“그럼 어디 가?”

침묵. 선택지가 없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음식점이 딱 세 곳 있다. 백반집, 김밥천국, 중국집. 백반집 빼면 선택권이 없다. 김밥천국은 회계팀 박 과장이 질렸다고 했고, 중국집은 기름이 너무 많다.

결국 백반집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주머니가 우릴 본다. “어, 또 왔어요?”

“네.”

“오늘은 고등어조림이에요. 어제 제육 먹었으니까.”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아주머니가 정한다. 직원 여섯 명 식사를 일주일 단위로 관리하신다. 월요일 제육, 화요일 고등어, 수요일 김치찌개, 목요일 생선구이, 금요일 불고기.

루틴이다. 회사 운영보다 정확하다.

7500원의 행복

백반 한 끼가 7500원이다.

반찬은 여섯 가지. 김치, 콩나물, 시금치, 멸치볶음, 계란찜, 그리고 메인 반찬. 밥은 무한리필. 된장찌개도 무한.

“이거 사실 가성비 좋긴 해요.” 영업팀 이 사원이 말한다.

맞다. 서울에서 이 가격에 이만한 반찬 못 먹는다. 판교 출장 갈 때마다 느낀다. 샐러드 한 그릇이 만 원이다.

근데 질린다. 매일 먹으면 질린다.

“사장님, 우리 내일은 다른 데 가요.” 개발팀 최 대리가 말한다.

“어디?”

“몰라요. 근데 백반 말고요.”

그래서 차 몰고 10분 거리 식당 찾으러 갔다. 파스타집이 있다. 만 오천 원. 직원 여섯 명이면 구만 원. 회사 카드 결제했다. 월 식비 예산이 팀당 20만 원인데 이러면 넘친다.

다음날 또 백반집 갔다.

서울은 뭐 먹지

서울 출장 날이다. KTX 타고 올라간다.

판교에서 미팅이 셋 있다. 오전 10시, 오후 2시, 저녁 6시. 점심은 중간에 어디서든 먹어야 한다.

첫 번째 미팅. 여의도 VC 대표님.

“점심 같이 하시죠.” 대표님이 말한다.

“네, 좋습니다.”

강남역 근처 비스트로 갔다. 파스타 2만 원. 샐러드 세트 추가하면 2만 8천 원. 커피까지 3만 원.

“요즘 창업 어때요?” 대표님이 묻는다.

“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답한다.

파스타를 먹는다. 맛있다. 근데 밥이 없다. 한국 사람이라 밥이 있어야 배가 찬다.

두 번째 미팅. 판교 스타트업 대표.

“우리 회사 구내식당 가시죠.”

구내식당이다. 메뉴가 열 개다. 한식, 양식, 일식, 분식. 선택권이 있다. 가격은 무료다. 회사가 낸다.

“부럽네요.” 내가 말한다.

“뭐가요?”

“구내식당이요.”

“아, 이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연하지 않다. 우리 회사는 직원 여섯 명이다. 구내식당은 꿈도 못 꾼다.

밥을 먹는다. 제육볶음이다. 우리 동네 백반집 제육이랑 비슷하다. 근데 여기는 샐러드바가 있다.

저녁도 백반

저녁 7시. KTX 타고 내려온다.

사무실 도착. 8시 반. 배고프다.

직원들이 아직 남아있다. “사장님, 저녁 뭐 먹어요?”

“백반집?”

“문 닫았어요.”

그럼 배달이다. 치킨 아니면 중국집. 짜장면 여섯 개 시켰다. 한 그릇에 6천 원. 총 3만 6천 원.

회사 카드 또 긁었다.

“내일은 칼퇴합시다.” 내가 말한다.

“무슨 일 있어요?” 김 대리가 묻는다.

“없어. 그냥 집에 일찍 가자.”

근데 다음날도 야근했다. 고객사 미팅 준비. 저녁은 또 짜장면.

일주일에 백반을 아홉 번 먹는다. 점심 다섯 번, 저녁 네 번. 아내가 묻는다.

“오늘 저녁 뭐 먹었어?”

“백반.”

“어제도 백반이었잖아.”

“회사 근처가 그래.”

아내가 웃는다. “서울 가면 달라져?”

“거기도 비슷할걸. 바쁘면 다 똑같아.”

판교 스타트업의 점심

인스타그램을 본다. 판교 스타트업 대표들 피드다.

한 대표는 회사 근처 브런치 카페 인증샷. 아보카도 토스트에 아메리카노. 만 오천 원.

다른 대표는 구내식당 메뉴판. “오늘 점심 고민 중~ 스테이크 vs 연어덮밥.”

또 다른 대표는 팀 회식. 고깃집. 한 명당 5만 원. “우리 팀 고생 많았어요 🥩”

스크롤을 내린다.

우리 회사 마지막 포스팅은 한 달 전이다. 정부 과제 선정 소식. 음식 사진은 없다. 올릴 게 없다. 백반집은 인스타 감성이 아니다.

“사장님, 우리도 팀 회식 해요.” 최 대리가 말한다.

“그래, 하자. 언제?”

“이번 주 금요일이요.”

금요일 저녁. 회식 장소는 백반집 옆 고깃집이다. 한 명당 3만 원. 여섯 명이면 18만 원. 회사 카드로 결제.

고기를 굽는다. 직원들 표정이 밝다. 소주 한 잔씩 돈다.

“사장님, 다음 달에 또 해요.” 이 사원이 말한다.

“매달은 좀…”

“분기에 한 번?”

“그래, 분기에 한 번.”

계산한다. 분기에 한 번이면 연 네 번. 한 번에 20만 원이면 연 80만 원. 가능하다.

백반의 맛

다음날 점심. 또 백반집이다.

아주머니가 우릴 본다. “어제 회식했지?”

“네, 어떻게 아세요?”

“얼굴 봐. 다들 피곤해 보여. 오늘은 북어국 끓였어.”

해장국이다. 아주머니가 우리 스케줄을 안다.

국을 먹는다. 맛있다. 서울 비스트로 파스타보다 맛있다. 3만 원짜리 브런치보다 든든하다.

“사장님, 이거 사실 괜찮은 거 아니에요?” 김 대리가 말한다.

“뭐가?”

“매일 백반. 건강하잖아요. 서울 애들 샌드위치 먹을 때 우린 반찬 여섯 개.”

맞는 말이다. 건강하다. 가성비도 좋다. 아주머니도 좋은 분이다.

근데 질린다. 일주일에 아홉 번은 많다.

“다음 주에 파스타 먹으러 가자.” 내가 말한다.

“예산 괜찮아요?”

“한 번 정도는.”

직원들이 웃는다. 한 번만. 다음 달에 또 한 번. 그렇게 버틴다.

오늘도 백반

퇴근 전이다. 8시 반.

“사장님, 저녁 어떡해요?” 박 과장이 묻는다.

“백반집 문 닫았지?”

“네.”

“그럼 편의점.”

편의점 도시락이다. 4500원. 여섯 명이면 2만 7천 원. 회사 카드로 끊었다.

사무실에서 먹는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도시락. 반찬은 두 개. 김치랑 단무지.

“내일은 일찍 퇴근하자.” 내가 말한다.

“네.” 직원들이 답한다.

근데 내일도 야근할 것 같다. 대기업 PoC 발표 준비가 남았다.

핸드폰을 본다. 아내 카톡.

“저녁 먹었어?”

“응. 편의점 도시락.”

”…내일은 집에서 먹어.”

“알았어. 일찍 갈게.”

거짓말이다. 내일도 늦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본다. 판교 스타트업 대표 포스팅. “팀 회식 2차 🍺 생맥주 한잔의 여유~”

스크롤을 넘긴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될까. 구내식당 생기고 팀 회식 매달 하고 브런치 카페 가고.

모르겠다. 지금은 백반이다.

내일도 백반. 모레도 백반. 다음 주도 백반.

그래도 괜찮은 이유

점심시간이다. 금요일.

“오늘은 뭐예요?” 김 대리가 묻는다.

“불고기래.” 내가 답한다.

“어떻게 알아요?”

“금요일은 항상 불고기잖아.”

백반집 문을 연다. 아주머니가 웃는다.

“다들 왔네. 오늘 불고기 맛있어. 어제 고기 좋은 거 샀어.”

자리에 앉는다. 물 떠온다. 반찬 나온다. 김치, 콩나물, 시금치, 멸치, 계란찜, 불고기.

밥을 먹는다. 맛있다.

“사장님, 이거 서울 가면 못 먹죠?” 최 대리가 묻는다.

“응. 이 가격에 이만한 백반은 없어.”

“그럼 우린 괜찮은 거네요.”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매일 똑같은 메뉴. 선택권 없는 점심. 7500원짜리 행복.

근데 나쁘진 않다.

서울 스타트업들은 구내식당 있고 브런치 카페 가고 팀 회식 자주 한다. 부럽다.

우리는 백반집 아주머니가 반찬 정해주고 일주일에 아홉 번 백반 먹고 가끔 편의점 도시락 먹는다.

그게 지방 스타트업이다.

다음 주 월요일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

출근한다. 11시 50분. 점심시간.

“오늘 뭐 먹어요?” 김 대리가 묻는다.

“백반집.” 내가 답한다.

“메뉴 뭐예요?”

“월요일이니까 제육.”

직원들이 웃는다. 이제 우리도 안다. 월요일은 제육, 화요일은 고등어, 수요일은 김치찌개.

백반집 문을 연다. 아주머니가 손을 흔든다.

“어, 왔어? 오늘 제육이야.”

“알아요.” 우리가 답한다.

자리에 앉는다. 밥이 나온다. 반찬 여섯 개. 된장찌개.

숟가락을 든다.

“맛있게 드세요.” 아주머니가 말한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가 답한다.

밥을 먹는다. 제육이 맵다. 김치가 시원하다. 콩나물이 아삭하다.

직원들이 이야기한다. 주말 얘기. 프로젝트 얘기. 대기업 PoC 결과 발표 준비.

웃음소리가 난다.

서울은 멀다. 판교는 더 멀다. 구내식당도 브런치 카페도 없다.

우리는 백반집이 있다. 7500원짜리 점심. 아주머니가 정해주는 반찬.

그게 우리 일상이다.

질리지만 익숙하다. 불만이지만 감사하다. 부럽지만 괜찮다.

내일도 백반이다. 모레도 백반이다.

그래도 계속한다.


오늘도 백반집 간다. 화요일이니까 고등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