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울 안 가세요?' - IR할 때마다 받는 질문

'왜 서울 안 가세요?' - IR할 때마다 받는 질문

또 물어본다

강남 VC 사무실. 15층. 유리창 너머 테헤란로가 보인다.

“제품 괜찮네요. 근데 왜 대전이세요?”

세 번째 질문이다. 오늘만.

IR 자료 23페이지에 있다. ‘본사 위치 전략’. 준비했다. 외웠다.

“제조업 고객사가 수도권보다 충청권에 많습니다.”

파트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또 묻는다.

“그래도 서울 나오시면 채용이 쉽지 않을까요?”

준비한 답변 2번.

“대전도 카이스트, 충남대 인재풀이 있습니다.”

“음…” 하고 넘어간다. 넘어간 게 아니다. 마음속에 남는다. ‘지방 스타트업’이라는 꼬리표.

KTX 타고 왔다. 새벽 5시 40분. 8시 미팅 맞추려고. 2시간 30분. 노트북 켜고 IR 자료 수정했다. 근데 질문은 또 같다.

“서울 안 가세요?”

준비한 답변들

A4 용지 한 장. 프린트했다. ‘FAQ - 본사 위치 관련’.

  1. 제조업 B2B는 고객사 접근성이 중요. 충청권 중소 제조업체 밀집.
  2. 서울 대비 운영비 30% 절감. R&D 집중 가능.
  3. 정부 지역 균형 발전 과제 혜택. 올해 2억 받음.
  4. 대전 인재 풀 충분. 카이스트, 충남대, ETRI 출신들.
  5. 판교 영업 거점 있음. 김 대리 상주.

다 맞는 말이다. 거짓 없다.

그런데 설명하면서도 알 수 있다. 상대방 표정이.

‘아, 그냥 못 가는구나.’

아니다. 안 가는 거다. 차이가 있다.

아내가 대전 공무원이다. 7급. 9년차. 서울 가면 퇴사다. 우리 집 안정적 월급이 없어진다.

아들 2살. 어린이집 적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봐준다. 서울 가면 다 없어진다.

본사 이전 비용. 보증금, 이삿비, 직원 이동 수당. 계산했다. 5천만원. 지금 통장에 없다.

이걸 IR 자료에 쓸 수 없다. ‘가족 때문에’, ‘돈 없어서’. VC들은 이해 못 한다.

그래서 포장한다. ‘전략적 선택’이라고.

서울 출장 루틴

월요일 아침. 미팅 3개 잡았다.

8시 VC. 11시 파트너사. 2시 대기업 구매팀.

대전역 5시 40분 출발. 서울역 8시 10분 도착. 지하철 20분. 딱 맞다.

어제 저녁 짐 쌌다. 노트북, 충전기, IR 자료 인쇄본, 명함 50장, 휴대폰 보조배터리.

아내가 물었다.

“몇 시에 와?”

“7시쯤?”

“저녁은?”

“서울서 먹고.”

아들이 안 놔준다. 가방 잡고 논다. 안아줬다. 30초.

“아빠 가야 해.”

택시 탔다. 대전역까지 15분. 6500원.

KTX 정기권 끊었다. 월 48만원. 주 2회 왕복하면 이득이다. 지금 주 1.5회 타는 중. 손해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서울 미팅은 무조건 서울서 한다. VC들 대전 안 온다. 한 번도 없다.

“혹시 저희 쪽으로 오실 수 있으세요?”

물어봤다. 예전에.

“아, 저희가 미팅이 많아서요. 서울로 오시는 게…”

알았다. 안 온다는 거.

그래서 내가 간다. 새벽에.

VC 사무실 풍경

강남. 테헤란로. 역삼. 선릉.

다 비슷하다. 15층 이상. 통유리. 커피 머신. 젊은 애널리스트들.

들어가면 프런트가 웃는다.

“예약하셨어요?”

“네, 8시에 최지방입니다.”

“잠시만요.”

대기한다. 소파 앉는다. 커피 마신다. 이미 세 번째다. KTX에서 두 번.

파트너 나온다. 악수한다.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괜찮습니다.”

회의실 들어간다. 빔 연결한다. 노트북 화면 띄운다.

“시작하겠습니다.”

15분 발표. 10분 질문. 5분 잡담.

질문은 정해져 있다.

“MRR이 얼마나 되세요?” “고객사 몇 곳이에요?” “엔지니어는 몇 분이세요?” “시리즈 A 계획은?”

그리고 마지막.

“왜 대전이세요?”

또.

“제조업 특성상…”

설명한다. 또. 파트너 고개 끄덕인다. 근데 눈빛이 다르다.

‘흠…’ 하는 눈빛.

끝나고 나온다. 엘리베이터 탄다. 1층 내린다.

결과 나올 때까지 2주. 메일 온다.

“검토 결과, 이번 라운드는…”

탈락.

다음 VC 찾는다. 강남. 테헤란로. 역삼. 선릉.

반복.

판교 부러움

김 대리가 보낸다. 카톡.

“대표님, 여기 개발자 채용 공고 미쳤어요.”

판교 스타트업. 시리즈 B. 3년차 개발자 연봉 7천.

우리는 4500 준다. 한도다.

“그러게요.”

답장 이게 다다.

김 대리 말 맞다. 판교는 다르다.

점심시간에 개발자들 우글우글. 카페 자리 없다. 네트워킹 자연스럽다.

“어느 회사세요?” “저희 뭐하는 덴데…”

명함 주고받는다. 나중에 연락된다. 이직 제안, 협업 제안, 투자 소개.

우리는 그게 없다.

대전 유성구. 점심시간 백반집.

“뭐 드릴까요?” “제육 하나요.”

개발자 만날 일 없다. 다들 대기업이나 연구소 다닌다. 스타트업 안 한다.

채용 공고 올렸다. 3주 됐다. 지원자 2명. 경력 안 맞다.

판교였으면 20명 왔다. 알고 있다.

서울 연봉 못 준다. 스톡옵션으로 때운다.

“저희 성장 가능성이…”

누가 믿냐. 지방 스타트업 스톡옵션.

안 믿는다. 본인도.

대전의 장점

있다. 진짜로.

출퇴근 30분. 서울은 1시간 30분.

점심값 7천원. 서울은 1만 2천원.

사무실 보증금 3천. 서울은 1억.

주차 공짜. 서울은 월 20만원.

저녁 9시 퇴근해도 집 9시 30분 도착. 서울은 11시.

아들 보는 시간 더 많다. 주말에 처가 가기 쉽다. 부모님 자주 본다.

다 좋다.

IR 자료에 쓴다.

“운영비 효율성”, “워라밸 가능”, “지역 거점 전략”.

VC들 고개 끄덕인다. 근데 투자 안 한다.

알고 있다. 장점 아니라는 거.

핑계다. 서울 못 가는 이유를 정당화하는.

솔직히 말하면 이거다.

‘서울 가면 좋은데, 못 간다.’

근데 IR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대전이 전략적으로 유리합니다.’

거짓말 아니다. 반은 진짜다. 반만.

정부 과제 의존

올해 R&D 과제 2억 받았다.

‘지역 특화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

없으면 망했다. 직원 월급 못 줬다.

정부 과제는 지방이 유리하다. 진짜다.

지역 균형 발전. 가점 있다. 서울보다 붙기 쉽다.

그래서 또 신청한다. 내년 과제.

‘중소 제조업체 AI 품질관리 시스템’

3억 신청. 2억은 받을 것 같다.

근데 불안하다.

정부 과제로만 버티는 거. 스타트업 아니다. 연구소다.

매출 늘려야 한다. 월 600만원. 목표는 3천만원.

고객사 늘려야 한다. 지금 8곳. 목표는 30곳.

근데 영업이 안 된다.

대기업 PoC 3개월째. 결과 안 나온다.

“검토 중입니다.”

기다린다. 또.

서울이었으면 다를까?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아내의 한마디

저녁 9시 30분 도착.

아들 잤다. 아내가 TV 본다.

“어땠어?”

“그냥.”

“투자 될 것 같아?”

“글쎄.”

앉았다. 피곤하다.

아내가 말한다.

“서울 가고 싶어?”

”…”

“솔직히 말해봐.”

“모르겠어.”

진짜 모르겠다.

서울 가면 기회 많다. 안다. VC 가깝다. 인재 많다. 네트워크 있다.

근데 잃는 것도 많다.

아내 월급 없어진다. 300만원. 우리 집 안전판.

아이 돌봐줄 사람 없다. 어린이집비 두 배.

집값 비싸다. 전세 3억 더 필요.

출퇴근 3시간. 아들 얼굴 못 본다.

계산하면 서울 가는 게 손해다. 지금은.

근데 IR할 때는 확신 없다.

‘대전이 맞을까?’

아내가 말했다. 예전에.

“우리는 서울 안 가도 돼. 여기서도 할 수 있어.”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다.

근데 VC들 눈빛 보면 흔들린다.

‘서울 가야 하나?’

답 없다.

IR 끝나고

회의 끝났다. 악수했다.

“검토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탔다. 1층 내렸다.

시계 봤다. 10시 30분.

다음 미팅 11시. 30분 남았다.

스타벅스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주문. 네 번째다.

앉았다. 노트북 켰다.

IR 자료 수정한다. 또.

23페이지. ‘본사 위치 전략’.

지운다. 다시 쓴다.

“대전 본사 유지의 3가지 이유”

  1. 제조업 고객사 접근성
  2. 운영비 효율화
  3. 지역 특화 지원 사업 활용

저장한다.

근데 안다.

다음 미팅 가면 또 물어본다.

“왜 서울 안 가세요?”

답한다. 또.

외운 대로.


서울행 KTX는 주 2회. 질문은 매번 같다. 답변도 같다. 근데 확신은 매번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