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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보내기: 성공률은 몇 프로?

KTX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보내기: 성공률은 몇 프로?

카페카에서 콜드메일 쓴다 오늘도 KTX다. 판교 미팅 3개. 새벽 6시 첫차. 카페카에 자리 잡았다. 노트북 켰다. 와이파이 연결 기다린다. 터널 지나가면 끊긴다. 대전-서울 구간은 터널이 많다. 메일함 열었다. 어젯밤 보낸 VC 콜드메일 15통. 회신 0건. 당연하다.50통 보내면 1통 온다 작년부터 계산했다. 콜드메일 성공률 2%. 50통 보내면 1통 회신 온다. 그중에 미팅으로 이어지는 건 10통 중 1통. 결국 500통 보내야 미팅 1개다. 투자까지 가려면? 아직 모른다. 미팅은 20번 했는데 투자는 안 받았다. 지방 스타트업이라고 말하면 표정이 변한다. "오, 대전이시군요." 그 다음은 정부 과제 얘기. "R&D 많이 받으셨나요?" 받았다. 2억. 그게 뭐 어쨌다고. 어제 본 강남 VC는 이렇게 말했다. "팀이 서울로 오실 계획은요?" 계획 없다고 했다. 아내가 공무원이라고. 아들이 어린이집 다닌다고. "아, 그러시면 조금..." 끝까지 안 했다. 어려울 거라는 말.밤 11시 콜드메일 루틴 집에 왔다. 아들 재웠다. 아내는 TV 본다. 노트북 켰다. 11시 30분. 콜드메일 쓸 시간이다. 크런치베이스 열었다. 국내 VC 리스트. 파트너 이름 찾는다. 링크드인 확인. 메일 주소 추정한다. firstname@vcfirm.com firstname.lastname@vcfirm.comf.lastname@vcfirm.com 3개 다 cc로 넣는다. 하나는 걸린다. 제목은 매번 바꾼다. "대전 제조 SaaS, 미팅 요청드립니다" "스마트팩토리 B2B, 30분만 시간 주십시오" "지방 제조업 시장, 기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본문은 템플릿이다. 4문단.인사 + 우리 소개 (2줄) 트랙션 숫자 (3줄) 시장 기회 (3줄) 미팅 요청 (1줄)총 200단어 안쪽. 길면 안 읽는다. "저희는 대전에서..." 이 문장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지금은 넣는다. 어차피 미팅 가면 알게 된다. 투명하게 가는 게 낫다. 발송. 15통. 오늘 할당량 끝. 내일 아침에 확인한다. 기대는 안 한다. 그래도 확인한다. 회신이 올 때 2주 전이었다. 아침에 메일 열었다. 회신 1건. 심장이 뛰었다. "관심 있습니다. 다음 주 가능하신가요?" 판교 VC였다. 시리즈 A 전문. 제조 쪽 투자 몇 건 있었다. 그날 하루 기분이 좋았다. 팀한테도 말했다. "VC 미팅 잡혔어." 다들 좋아했다. "서울이요?" "판교요?" "응. KTX 타고 간다." 미팅은 1시간이었다. 파트너랑 애널리스트. 질문 많이 받았다. "제조업 고객사는 몇 곳이세요?" "7곳이요. 대기업 PoC 1곳 포함이요." "MRR은요?" "600이요. 이번 분기 목표는 1500." "팀은요?" "6명. 개발 3, 영업 2, 디자인 1." "다 대전이세요?" "네. 판교에 영업 1명 있어요." "음..." 그 '음...'을 안다. 지방 팀이 불안하다는 뜻이다. "개발자 채용은 어떻게 하세요?" "로컬 위주요. 충남대, 한밭대 출신들." "서울 경력직은요?" "연봉 못 맞춰요. 대전 물가로는 7천이 한계거든요." "아..." 미팅 끝나고 계단 내려오는데 알았다. 안 될 거다. 일주일 뒤 회신 왔다. "좋은 팀이시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괜찮다. 익숙하다.2% 확률에 매일 건다 오늘도 카페카다. 대전으로 돌아간다. 노트북 켰다. 콜드메일 10통 더 보낸다. 저녁에 15통 더 보낼 거다. 50통 보내면 1통 온다. 500통 보내면 미팅 1개다. 5000통 보내면? 투자 1건 받을까? 모른다. 그래도 보낸다. 아내한테 말했다. "서울 VC들한테 매일 메일 보낸다." "받아?" "가끔." "힘들겠다."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 대전에서 스타트업 한다는 건 이런 거다. 서울 가는 KTX에서 와이파이 잡으면서 메일 쓴다. 터널 지나가면 작성 중이던 문장 날아간다. 다시 쓴다. 성공률 2%. 나쁘지 않다. 보험 영업 성공률보다 높다. 그리고 나는 매일 보낸다. 보험 영업보다 많이 보낸다. 언젠가는 된다. 확률의 문제다. 50통이 안 되면 100통. 100통이 안 되면 500통. 회사 망하기 전까지는 보낸다.KTX 도착 10분 전. 노트북 정리했다. 오늘 보낸 메일 25통. 내일 아침에 확인한다.

새벽 5시 KTX 타면서 느낀 것들

새벽 5시 KTX 타면서 느낀 것들

새벽 5시 KTX 타면서 느낀 것들 알람은 4시 10분 알람 울린다. 4시 10분. 아내가 뒤척인다. 미안하다. 어제 밤 11시에 잤다. 5시간 못 잤다. 세수하고 어젯밤에 준비한 옷 입는다. 정장 아니다. 깔끔한 셔츠에 면바지. 서울 가면 다들 후드 입고 있다. 아들 방 살짝 열어본다. 자고 있다. 2살이다. 아빠가 새벽에 나가는 줄 모른다. 다행이다. 울면 마음 아프다. 현관에서 신발 신는다. 아내가 부엌에서 나온다. "조심히 다녀와." "응. 저녁에 올게." 엘리베이터 안. 나 혼자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피곤하다.대전역 5시 20분 택시 탄다. 기사님 반갑게 인사한다. "서울 가세요?" "네, 첫 차요." "고생이 많으시네요." 이 대화 일주일에 두 번 한다. 같은 기사님이다. 단골이다. 대전역 도착. 5시 20분. 역 안 카페는 아직 안 열었다. 편의점 커피 뽑는다. 아메리카노 벤티. 2700원. 이제 3000원 넘나. 대합실에 사람 별로 없다. 출근하는 직장인 몇 명. 나처럼 노트북 가방 멘 사람 둘. 스타트업인지 대기업 출장인지 모르겠다. 개찰구 통과한다. 플랫폼에 서 있다. 5월인데 새벽은 춥다. KTX 들어온다. 5시 43분 출발. 항상 이 시간이다. 외운다.기차 안 2시간 자리 찾는다. 2호차 창가. 항상 여기 앉는다. 습관이다. 노트북 꺼낸다. 맥북 프로 14인치. 회사 돈으로 산 거다. 280만원. 살 때 고민 많이 했다. 와이파이 연결한다. KTX-WiFi. 느리다. 가끔 끊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 오늘 미팅 자료 열어본다. 9시 30분 판교 VC. 11시 여의도 대기업 구매팀. 1시 30분 강남 고객사. 판교 자료부터 본다. IR 덱이다. 42페이지. 이번 달에 15번째 IR이다. 슬라이드 넘긴다. "Why Daejeon?" 페이지 나온다. 항상 이 질문 나온다. 답은 준비돼 있다. "제조 거점 집중, 인건비 효율, 정부 지원." 근데 솔직히 나도 가끔 의문이다. 창밖 본다. 아직 어둡다. 천안 지나간다. 불빛 보인다. 사람들 일어나는 시간이다. 커피 마신다. 식었다. 편의점 커피는 금방 식는다. 서울 도착하면 또 사야 한다. 메일 확인한다. 새벽에 온 메일 3개. 전부 스팸이다. 투자 제안 사기. "1억 투자 가능합니다" 제목. 누가 믿나. 슬랙 켠다. 메시지 없다. 직원들 아직 안 일어났다. 8시 반에 출근이다. 근데 나는 이미 1시간 반째다.서울역 7시 45분 도착한다. 서울역. 사람 많다. 출근 시간이다. 역 안 스타벅스 들어간다. 줄 길다. 10명 넘는다. 다들 테이크아웃이다. 아메리카노 벤티 주문한다. 5900원. 대전보다 비싸다. 아니 대전이랑 똑같나. 잘 모르겠다. 커피 받고 지하철 탄다. 2호선 판교행 환승. 신논현역까지 40분. 지하철 안 사람 많다. 앉을 자리 없다. 노트북 가방 무겁다. 핸드폰 본다. 뉴스레터 읽는다. "판교 스타트업 시리즈 B 300억" 부럽다. 우리는 엔젤 1억 받는 데 6개월 걸렸다. 대전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우리 실력 부족이다. 신논현역 도착. 8시 30분. VC 사무실까지 걸어간다. 15분. 미팅까지 45분 남았다. 카페 들어간다. 또. 아메리카노 또 시킨다. 오늘 벌써 세 번째다. 노트북 켠다. 자료 마지막 점검한다. 숫자 다시 확인한다. 근데 집중 안 된다. 피곤하다. 미팅 9시 30분 VC 사무실 도착한다. 9시 25분. 로비에서 기다린다. 대표님 나온다. 30대 중반쯤. 명함 교환한다. "먼 데서 오셨어요?" "네, 대전에서요." "아, 그러시구나. 고생 많으셨겠어요." 이 말 듣는 순간. '아, 이미 끝났구나' 싶다. 미팅룸 들어간다. 노트북 연결한다. 화면 안 나온다. 어댑터 문제다. 당황한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근데 시간은 빠르게 간다. 겨우 연결한다. 발표 시작한다. "저희는 제조 B2B SaaS입니다." "대전 본사, 판교 영업 거점 운영 중입니다." "현재 월 매출 600만원..." 대표님 표정 읽는다. 관심 없어 보인다. "고객사는 어디어디인가요?" "충청권 중소 제조업체 위주입니다." "서울 고객은요?" "PoC 진행 중인 대기업 1곳 있습니다." "음..." 이 '음'이 전부다. 30분 미팅. 25분 만에 끝난다. "검토 후 연락드릴게요." 연락 안 온다. 안다. 악수하고 나온다. 엘리베이터 탄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더 피곤해 보인다. 여의도 11시 지하철 탄다. 2호선 또. 여의도까지 30분. 핸드폰 본다. 직원한테 슬랙 왔다. "대표님 미팅 어떠셨어요?" "글쎄. 기대 안 함." "ㅠㅠ 다음엔 잘 될 거예요." 고맙다. 근데 다음도 똑같을 거다. 여의도 도착. 대기업 본사 빌딩 들어간다. 로비 화려하다. 보안 카드 받는다. 23층 올라간다. 구매팀장님 만난다. 40대 중반. 친절하다. "저희 공장 스마트화 검토 중입니다." "솔루션 데모 가능할까요?" 가능하다. 노트북 꺼낸다. 데모 보여준다. 팀장님 고개 끄덕인다. "괜찮네요." "근데 레퍼런스가 좀..." 또 이거다. "대기업 레퍼런스 있으신가요?" "현재 PoC 진행 중입니다." "완료된 건요?" "아직은..." "그럼 좀 더 지켜보고 연락드릴게요." 나온다. 복도에서 한숨 쉰다. 레퍼런스 없으면 못 받는다. 레퍼런스 받으려면 대기업 필요하다. 대기업은 레퍼런스 요구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강남 1시 30분 점심 먹는다. 강남역 근처. 혼자다. 김치찌개 시킨다. 9000원. 대전이면 7000원이다. 밥 먹으면서 핸드폰 본다. 아내한테 카톡 온다. "점심 먹었어?" "응 지금 먹어." "고생 많아. 힘내." 사진 보낸다. 아들 사진. 어린이집에서 찍은 거다. 웃고 있다. 힘난다. 조금. 1시 20분. 고객사 간다. 스타트업이다. 시리즈 A 받았다. 대표님 만난다. 30대 초반. 나보다 어리다. "현장 데이터 수집 어떻게 하세요?" 설명한다. "IoT 센서 설치하고..." "데이터 클라우드 전송..." "대시보드에서 실시간 모니터링..." 대표님 관심 있어 보인다.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 비용 설명한다. 초기 설치비 500만원. 월 구독료 50만원. "음... 좀 비싸네요." 비싸다. 안다. "근데 ROI 계산하면..." "일단 검토해볼게요." 또 검토. 나온다. 강남역 지하철역 간다. 서울역까지 30분. KTX 4시 30분. 아직 시간 있다. 카페 들어간다. 아메리카노 또 시킨다. 오늘 다섯 번째다. 노트북 켠다. 오늘 미팅 정리한다. 판교 VC - 관심 없음 여의도 대기업 - 레퍼런스 필요 강남 고객사 - 비용 부담 결과: 0 서울역 4시 KTX 탄다. 4시 30분. 대전행. 자리 앉는다. 같은 자리. 2호차 창가. 노트북 닫는다. 더 볼 힘 없다. 창밖 본다. 서울 빠져나간다. 핸드폰 본다. 뉴스 읽는다. "지방 스타트업 투자 감소" "수도권 집중 심화" "지역 인재 유출 가속" 기사 닫는다. 기분 나빠진다. 슬랙 확인한다. 직원들 메시지 있다. "대표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개발 회의 있어요." "고객 문의 3건 왔어요." 답장한다. "ㅇㅇ 내일 봐." 눈 감는다. 잠깐 자려고. 근데 잠 안 온다. 머릿속 복잡하다. 오늘 교통비. KTX 왕복 5만원. 지하철 5000원. 택시 1만원. 커피 3만원. 점심 9000원. 총 9만 4000원. 성과: 0원. 이게 맞나. 대전역 6시 30분 도착한다. 사람들 우르르 내린다. 택시 탄다. 또 단골 기사님이다. "오늘도 다녀오셨네요." "네." "힘드시죠?" "괜찮습니다." 거짓말이다. 집 도착한다. 6시 50분. 초인종 누른다. 아내가 문 연다. 아들이 뛰어나온다. "아빠!" 안아준다. 무겁다. 많이 컸다. "오늘 어땠어?" "그냥 그랬어." 저녁 먹는다. 아내가 해놓은 밥. 된장찌개에 김치. 맛있다. 서울 음식보다 낫다. 밥 먹고 아들이랑 논다. 블록 쌓기. 30분 한다. 8시. 아들 재운다. 동화책 읽어준다. 자장가 부른다. 잠든다. 거실 나온다. 아내가 설거지한다. "나도 할게." "아니야. 너 쉬어." 소파에 앉는다. 노트북 켠다. 메일 확인한다. 새로운 VC 콜드메일 보낸다. "안녕하세요. 대전 기반 제조 B2B SaaS..." 보내기 누른다. 답장 올까. 모르겠다. 시계 본다. 9시. 내일도 서울 간다. 새벽 5시 KTX. 알람 맞춘다. 4시 10분. 그래도 침대 눕는다. 아내 옆에. "고생했어." "응." "서울 이사 안 갈 거지?" "...안 가." 아내 손 잡는다. 따뜻하다. 창밖 본다. 대전 밤하늘. 서울보다 별 많다. 그건 좋다. 내일도 5시에 일어난다. 또 KTX 탄다. 또 미팅한다. 또 거절당한다. 근데 뭐. 여기가 내 자리다. 대전이. 눈 감는다.새벽 5시 KTX는 내 사무실이다. 거기서 일하고 거기서 고민한다. 오늘도 표 끊었다.

KTX 정기권이 나의 사무실이 된 지 1년

KTX 정기권이 나의 사무실이 된 지 1년

KTX 정기권이 나의 사무실이 된 지 1년 알람이 울린다. 월요일 아침 6시 47분. KTX 첫 차 타려면 6시 50분까지 역에 도착해야 한다. 25분밖에 없다. 집에서 대전역까지 15분. 계산이 안 맞는다. 어제부터 이미 짐을 다 챙겨뒀다. 양치질하고 옷만 입으면 된다. 아내는 아직 자고 있다. 2살 아들도. "가고 와." 문자로만 남기고 나간다. 문구점 가 듯이. 차에 올라탄다. KTX 타기 전에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와 계란말이를 산다. 이게 아침 식사다. 밥을 먹을 시간이 없다. 역에서 뛰어간다. 어제도, 그저께도, 지난 일 년도 이렇게 뛰었다.6시 58분, 승차 승차 벨이 울린다. "다음 정거장은 서울." 정기권을 찍고 들어간다. 같은 차량, 같은 자리. 2-C. 창가 자리. 창문 옆에 콘센트가 있다. 이게 내 자리다. 1년 동안 여기서만 일한다. 노트북을 켠다. 시동이 걸릴 때까지 커피를 마신다. 화면이 켜진다. 시간이 벌써 7시 3분. 서울 도착은 9시 정도. 105분의 업무 시간이 생겼다. 슬랙 확인. 메시지 7개. 대전 본사 팀원들 밤 10시에 보낸 것들. "CEO님, 삼성 담당자가 자료 요청했어요" "내일 VC 콜 시간 확인 가능할까요?" "개발 진행 상황 보고 있습니다"105분. 이 시간 안에 회신하고, 피칭 자료 업데이트하고, 발표 연습도 해야 한다. 할 것들을 메모한다.삼성 자료 수정 (15분) 원스톱 펀딩 VC 피치덱 V7 → V8 (40분) 대전 팀 슬랙 회신 (10분) 오후 미팅 체크리스트 정리 (20분)계산이 안 맞는다. 105분에 85분을 넣으려고 한다. 근데 매주 이렇게 한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춤을 춘다. 익숙하다. KTX 흔들림 속에서 일하기도 이제 습관이다. 맞춤법 틀려도 나중에 수정하면 된다. 일단 빨리. 빨리 해야 한다. 옆 좌석엔 할머니가 앉아 있다. 종로 갈라고. 처음 3개월은 신경 썼다. 내가 노트북하고 있으니까 자기도 괜찮나 싶고. 지금은 아무것도 안 본다. 할머니도 내 노트북을 안 본다. 이게 예의다. 대전을 떠나고 2시간 50분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할 일의 60%는 끝난다. "이거 왜 기차에서 보내요?" 판교 VC 담당자가 물었다. 메일 타임스탬프를 봤나 본다. 아침 7시 45분. KTX 안에서 보낸 거다. "이동 중입니다." 이렇게만 썼다. 더 이상 설명하기 싫다. 설명해도 이해 못 할 것 같다. 그 담당자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고, 판교에서 일한다. 대전이 어디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대전공. 농구팀 아니냐고. 농구팀도 있긴 하다. KTX에서 일하는 게 낭만적으로 들릴 줄 알았다. "오, 기차에서도 일하시네요. 멋있네요." 이렇게 말해줄 줄 알았다. 현실은 다르다. "기차에서 일하신다니까 좀 불안정하지 않나요?" 그 말이 더 자주 나온다. 회사가 불안정해 보인다는 뜻이다. 그게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마이너스다. 이미.대전 같은 곳에선 이게 정상이다 처음 사람들한테 설명했을 때 반응이 이랬다. "KTX요? 왜?" "대전에서 일할 수 없으니까요." "아, 서울이 손해가 되지 않나요?" KTX 정기권이 월 26만 원이다. 아메리카노와 계란말이가 6천 원. 일 년에 312만 원의 정기권. 52주 × 2회. 104일을 KTX에서 산다. 하루 3시간. 총 312시간. 연간 312시간을 기차 안에서 일한다. 임차료로 계산하면 시간당 1만 원이다. 그런데 정기권을 안 끊으면 어쩌나. VC들은 서울에만 있다. 우리 고객도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다. 제조업 기업들이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다. 팩토리는 지방에 있어도. 대전에서 일하려고 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개발자 없나요?" 대전에는 없다. 진짜로. 우리가 필요한 임베디드 리눅스 엔지니어 구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서울 연봉 6500만 원, 대전으로 와서 5000만 원 받겠어? 아무도 안 온다. "사무실 없나요?" 판교 스타트업 오피스. 월 200만 원 정도. 대전 일반 사무실. 월 100만 원. 근데 스타트업들은 판교로 간다. 생태계가 있으니까. 대전엔 뭐가 있나. 정부 과제 설명회. 이게 다다. 그래서 나는 KTX를 탄다. "이 정도면 충청권에서 제일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요." 지난달 충청권 창업 연합회에서 누가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 가장 슬펐다. 열심히 한다는 건 정상이어야 한다는 뜻이니까. 105분의 루틴 월요일. 오전 회차. 7시 정기권 체크. 07:03 노트북 ON. 07:15 삼성 자료 수정 완료. 07:55 VC 피치덱 수정 버전 저장. 08:22 팀 회신 완료. 08:45 오후 미팅 프레임 정리. 매주 반복이다. 수요일. 오후 회차. 16시 대전역 탑승. 16:05 메일 체크. 16:20 고객 보고서 작성 시작. 17:10 슬라이드 정렬. 17:45 코드 리뷰 (개발팀이 보낸 영상). 18:10 내일 미팅 주요 포인트 정리. 105분씩 두 번. 주 210분. 한 달 840분. 일 년 10080분. 그 시간에 뭘 했나.피치덱: V1 → V9 (8번 수정) VC 미팅: 17곳 (3곳 2차, 1곳 3차) 고객 제안서: 12개 회사 팀 온보딩: 개발자 3명 (근데 2명 떠남. 원격 근무는 아니었고, 연봉이었다) 정부 과제 지원서: 4개 (2개 통과)생산성이 높나. 그냥 바쁜 거 아닌가. 구분 못 한다.아내의 침묵 "또 간다고?" 아내가 몇 달 전에 물었다. 월요일 아침. "응. 미팅이 3개 있어." "한두 번도 아니고, 매주?" "응." "아이 많이 봐." 이 말이 전부다. 아내는 대전에서 공무원이다. 월급이 나온다. 계획이 있다. 휴가도 정해져 있다. 그런데 나는 매주 두 번 사라진다. "엄마는 어디 가?" 2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 말고 아빠 말이다. 엄마가 말해줘. "아빠는 서울." "아빠 일?" "응. 아빠 일이 서울에 있어." 이제 아들은 물어보지 않는다. 나가는 게 정상이 됐다. 아빠는 월요일과 수요일에 없는 엄마, 할머니 품에 있는 아이다. 이게 정상인가. 모르겠다. 아내는 주말에 "충전"이라는 말을 쓴다. "주말에 충전할 시간이 있어?" "일이 있으니까." "일이 항상 있지. 아들 봐." 주말에도 노트북을 켜고 앉는다. 정부 과제 보고서. IR 자료. 다음 주 미팅 준비. 아들이 노트북 화면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다. 자유로운 선. 마우스 커서 같은 선. "아, 저장 안 했는데." 다시 켜기 귀찮다. 그냥 남겨둔다. 1년이 끝나고 정기권을 또 샀다. 계약 기간이 끝나서 새로 사는 거다. 26만 원. 카드를 긋는다. 익숙하다. 마치 월급 내는 것처럼. 얼마 전 투자 미팅이 있었다. 판교의 한 VC. "왜 대전에 있어요?" 또 이 질문이다. "제조업 고객이 충청권이 중심이고. 개발팀도 여기 있습니다." "근데 불편하지 않나요?" "KTX 정기권 있잖아요." "아." 그 이후로 투자 회신이 없다. 메일로 답장이 왔다. "현재로선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맞지 않는다. 우리가 아니라 상황이. 아니, 우리가. 둘 다 맞지 않는다. 그래도 내일도 KTX를 탄다. 월요일 아침 6시 50분. 또 뛸 것 같다. "가고 와." 아내에게 문자를 쓴다. 아들은 아직 자고 있을 것이다. KTX 정기권을 떼기 전에, 뭔가 바뀔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탈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