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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창업 지원 사업은 다 신청한다

지방 창업 지원 사업은 다 신청한다

월요일 아침, 또 공고가 떴다 출근하자마자 카톡이 왔다. 대전시 창업 지원 사업 공고. 올해 세 번째다. 커피 마시면서 공고문을 읽는다. 지원 대상, 지원 내용, 제출 서류. 다 똑같다. 사업계획서, 재무제표, 대표자 이력서. 작년에 쓴 거 복붙하면 된다. "또 신청하세요?" 부장이 물었다. "당연하지." 작년에 5개 신청해서 2개 붙었다. 올해는 7개 신청했다. 지금 3개 붙었고, 2개 대기, 2개 탈락. 확률 게임이다.대전시, 충남도, 중기부 내가 노리는 건 크게 세 갈래다. 대전시 사업은 규모가 작다. 3000만원~5000만원. 근데 붙기 쉽다. 대전 소재 기업이면 가점이 크다. 작년에 '대전형 스마트공장 실증' 5000만원 받았다. 충남도 사업은 중간이다. 5000만원~1억. 충남 제조업 특화 사업이 많다. 우리 같은 B2B SaaS는 딱이다. 올해 '충남 제조혁신 바우처' 8000만원 받았다. 중기부 사업은 크다. 1억~3억. 근데 전국 경쟁이라 어렵다. 서류 탈락이 대부분이다. 작년에 '딥테크 예비창업' 지원했다가 1차 탈락. 올해는 '창업도약패키지' 지원했다. 결과 대기 중이다. 셋 다 신청한다. 겹쳐도 상관없다. 어차피 협약 단계에서 조율하면 된다.서류는 다 비슷하다 사업계획서는 템플릿이 있다.사업 개요 (500자) 기술 및 제품 소개 (1000자) 시장 분석 (800자) 추진 계획 (1200자) 재무 계획 (표)작년 거 복사해서 쓴다. 숫자만 바꾼다. 매출 목표, 고용 인원, 투자 유치 계획. "이번엔 뭐가 다른데요?" 부장이 물었다. "글쎄. 사업명이 다르지." 진짜로 그렇다. '스마트공장 실증'이나 '제조혁신 바우처'나 '디지털전환 지원'이나 다 똑같다. 우리 솔루션 설치해주고, 데이터 모니터링하고, 리포트 뽑아주는 거다. 근데 이름이 다르다. 그래서 다 신청한다. 재무제표는 회계사무소에 맡긴다. 월 10만원. 작년부터 고정 비용이다. 사업 신청할 때마다 최신 버전 받는다. 대표자 이력서는 한 번 쓰면 끝이다. 삼성전자 8년, 창업 3년. 숫자만 업데이트한다. 추천서는 교수님한테 받는다. KAIST 산학협력 교수님. 작년에 한 번 부탁드렸더니 "앞으로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하셨다. 감사하다. 행정 업무가 늘어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신청하면 끝이 아니다. 발표 자료 만들어야 하고, 인터뷰 가야 하고, 현장 실사 받아야 한다. 작년에 5개 신청하니까 2개월 동안 발표만 4번 했다. 대전시청, 충남도청, 테크노파크, 창조경제혁신센터. 발표 자료도 다 다르다. 대전시는 15페이지 이내. 충남도는 20페이지 이내. 중기부는 30페이지. 템플릿도 다 달라서 매번 새로 만든다. "대표님, 이번 주 목요일 발표래요." 부장이 말했다. "어디?" "천안. 충남도 사업." "몇 시?" "오후 2시." KTX 표를 끊는다. 대전→천안. 40분. 1시 출발하면 된다. 목요일 아침엔 서울 미팅이 있다. 9시. 끝나고 천안 가면 딱이다. 이게 일상이다.붙으면 일이 더 많다 탈락하면 편하다. 이메일 한 통 오고 끝이다. "귀사의 사업계획서는 아쉽게도..." 복붙 문장. 붙으면 진짜 시작이다. 협약서 쓰고, 통장 만들고, 월별 보고서 쓰고, 정산 자료 제출하고. 1년 내내 한다. 작년에 받은 충남도 8000만원. 매달 보고서 쓴다. A4 5페이지. 이번 달 실적, 다음 달 계획, 예산 집행 내역. 매월 10일까지 제출. 대전시 5000만원은 분기별 보고다. 분기마다 현장 실사 온다. 담당자 2명. 사무실 둘러보고, 직원 인터뷰하고, 장비 확인하고. 2시간. 중기부 과제는 더 세다. 중간 점검, 최종 점검, 추적 점검. 3년 동안 계속 본다. 작년 과제가 올해도 점검 온다. "귀찮지 않아요?" 서울 투자사 대표가 물었다. "귀찮지." "그럼 왜 해요?" "돈 필요하니까." 현실이 그렇다. 우리 같은 초기 스타트업은 정부 과제 없으면 못 버틴다. 월 매출 600만원으로 직원 6명 월급 못 준다. 혹시 모를 기회 올해 신청한 사업 중에 '창업도약패키지'가 있다. 중기부 사업. 3억. 솔직히 기대 안 했다. 서울 쪽 유명한 스타트업들 다 지원한다. 우리 같은 지방 B2B는 경쟁력 없다. 근데 1차 통과했다. 40개 중에 10개. 우리가 들어갔다. "와, 진짜요?" 부장이 놀랐다. "응." 2차는 발표 심사다. 다음 달. 서울 가야 한다. 3억이면 개발자 2명 1년 데이터 분석 인력 1명. 제대로 된 제품 만들 수 있다. 대기업 PoC 넘어서 상용화 가능하다.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다. 만약 올해 신청 안 했으면? 이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다 신청한다. 귀찮아도. 확률이 낮아도. 혹시 모른다. 지방 스타트업의 자구책 서울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는다. 판교 지인은 작년에 시드 10억 받았다. 엔젤 투자자 소개받고, VC 미팅 잡고, 텀싯 받고. 3개월 만에 끝났다. 우리는? 1년 동안 VC 50군데 이메일 보냈다. 미팅 잡힌 곳 5군데. 2차까지 간 곳 1군데. 결과는 패스. "B2B 제조업은 저희 포트폴리오랑 안 맞아요." "지방 소재는 좀..." "팀이 대전에 있으면 관리가 어려워서요." 다 들었다. 그래서 정부 과제를 한다. 지방 기업에게는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 투자 못 받으면 정부 지원금. 매출 안 나오면 R&D 과제. 직원 못 뽑으면 고용 장려금. 창피한가? 아니다. 생존이다. 올해 들어온 돈 총 3억 2000만원. 정부 과제 2억 8000만원. 엔젤 투자 1억. 매출 4000만원. 정부 지원금 없으면 우리는 지금 없다. 월요일 점심, 공고 확인 점심 먹으면서 핸드폰을 본다. 대전시 공식 홈페이지. 충남도 창업 지원 센터. 중소벤처기업부 공고 페이지. 즐겨찾기 해놨다. 새 공고 2개 떴다. '대전형 AI 융합 지원 사업' 5000만원. '충남 수출 바우처' 1억. AI 융합은 우리랑 맞다. 수출 바우처는 애매하다. 근데 일단 저장한다. 오늘 저녁에 공고문 읽어본다. 내일 아침에 신청 여부 결정한다. 되면 이번 주 안에 서류 준비한다. 루틴이다. "또 신청하세요?" 부장이 웃으면서 물었다. "당연하지. 안 하면 바보지." 백반을 먹는다. 7000원. 이 동네는 밥값이 싸다. 서울은 1만 2000원 한다더라. 그것도 지방의 장점이다. 적어도 밥은 싸게 먹는다. 저녁 9시, 공고문 읽는 중 퇴근하고 집에 왔다. 아들이 자고 있다. 아내는 드라마 본다. 나는 노트북을 켠다. '대전형 AI 융합 지원 사업' 공고문. PDF 15페이지. 천천히 읽는다. 지원 대상: 대전 소재 3년 이내 스타트업. 우리 딱 3년차다. 지원 내용: AI 기술 융합 R&D 지원금 5000만원. 6개월 과제. 제출 서류: 사업계획서, 재무제표, 기술 설명서, 추진 일정. 신청 기간: 이번 주 금요일까지. "할 만한데." 혼잣말이 나온다. 기술 설명서만 새로 쓰면 된다. 우리 솔루션에 AI 모델 적용하는 계획. 이미 머릿속에 있다. 내일 오전에 2시간 쓰면 된다. 추진 일정은 템플릿 있다. 1개월 기획, 2개월 개발, 2개월 테스트, 1개월 정리. 복붙한다. 금요일까지 4일. 충분하다. 신청서를 저장한다. 폴더명은 '2025_대전AI융합_지원사업'. 작년 폴더 옆에 놓는다. 올해 12번째 신청이다.지방에서 스타트업 한다는 건 이런 거다. 투자 대신 과제, 네트워크 대신 공고. 귀찮아도 다 신청한다. 혹시 모르니까.

삼성전자 엔지니어에서 지방 스타트업 대표로: 신분상승인가 하락인가

삼성전자 엔지니어에서 지방 스타트업 대표로: 신분상승인가 하락인가

명함 두 개 명함을 두 개 가지고 다닌다. 하나는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공정기술팀 책임연구원". 2014년부터 2021년까지. 7년. 다른 하나는 "㈜스마트링크 대표이사". 2021년 12월부터 지금까지. 3년 2개월. KTX에서 노트북 열고 작업하다가 옆자리 사람이 물어본다. "무슨 일 하세요?" "스타트업 합니다." "어디 다니셨어요?" "삼성전자요." 그 순간 표정이 달라진다. "아, 그래서 창업하셨구나." 근데 속으로는 생각한다. '퇴사한 거지, 창업한 게 아니라.'기흥 7년 기흥 공장 3년 근무하면 반도체 공정 전체가 보인다고 했다. 나는 7년 했다. 클린룸 들어가는 날이 1년에 200일. 방진복 입고 8시간. 에어샤워 지나가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다. 라인 멈추면 억대 손실. 그걸 막는 게 내 일이었다. 밤 11시에 전화 오면 15분 안에 공장 도착. 새벽 2시에 라인 살리고 새벽 4시에 집 도착. 연봉은 1년차 4800만원. 7년차 8500만원. 보너스 포함하면 억 가까이. 대전 아파트 전세 2억 5천. 여유 있었다. 아내도 공무원이라 안정적이었다. 근데 40살까지 이렇게 살 수 없었다. 라인 문제 해결하는 건 잘했다. 근데 내 문제는 못 풀었다. "이게 내 일인가." 3년째 같은 질문. 7년째도 답은 없었다.창업 아닌 퇴사 2021년 9월. 사표 냈다. 팀장이 물었다. "뭐 하려고?" "스타트업 차릴 생각입니다." "아이템은?" "제조업 쪽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이요." 팀장은 한숨 쉬었다. "시장 좁아. 삼성 나와서 삼성 상대로 장사하려고?" 맞는 말이었다. 근데 7년 동안 현장에서 본 게 있었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MES도 제대로 못 쓴다. 엑셀로 생산 관리한다. 2021년에. 시장은 있다고 생각했다. 정부 R&D 과제 2억 받았다. 엔젤 투자 1억. 총 3억으로 시작. 대전 유성구 테크노파크에 사무실 얻었다. 월세 150만원. 평수는 기흥 사무실의 1/10. 직원은 나 포함 3명. 개발자 2명은 대전대 후배. 연봉 4천. 첫날 출근해서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 대표다." 근데 실감이 안 났다. 신분상승의 환상 주변에서는 축하했다. "대표님 되셨네요!" "창업가시는구나!" "멋있다, 형!" 근데 통장에는 월급이 안 들어온다. 삼성 다닐 땐 25일이면 700만원. 칼같이. 지금은 내가 월급 주는 사람. 근데 나는 못 받는다. 첫 6개월은 저축한 돈으로 버텼다. 아내 월급으로 생활비. 내 통장은 회사 운영비. 명함에는 "대표이사"라고 적혀있다. 근데 실제로 하는 일은:개발자 출퇴근 관리 정부 과제 보고서 작성 VC 콜드메일 보내기 대기업 구매팀 문의 전화 홈페이지 오타 수정 사무실 청소삼성에서는 라인 한 줄 건드리면 수백억 매출에 영향 갔다. 지금은 홈페이지 오타 하나 고치는데 개발자 불러야 한다. 이게 신분상승인가.삼성 출신이라는 무기 PoC 미팅 갈 때마다 소개한다. "삼성전자 기흥 7년 근무했습니다." 분위기가 바뀐다. "아, 그러시면 현장을 아시겠네요." "반도체 공정 경험이 있으시면 우리 라인도 이해 빠르시겠어요." "삼성 출신이면 믿을 만하죠." 대기업 구매팀 담당자들은 삼성 출신을 좋아한다. 검증됐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PoC 3건 중 2건은 "삼성 출신"이라는 말로 문 열었다. 투자자 미팅도 마찬가지. "팀 백그라운드 보니까 대표님 삼성 출신이시네요?" "네, 7년 있었습니다." "도메인 전문성 있으시겠어요. 좋습니다." 명함 한 줄이 브랜드가 된다. 삼성전자. 4글자. 근데 이게 무기인지 족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족쇄가 되는 순간 대기업 PoC 진행 중이다. 상대는 구매팀 과장. 나이 비슷해 보인다. "최 대표님, 그래서 단가가 얼마예요?" "연 6500만원입니다." "아, 그 정도면... 우리가 쓰는 외산 솔루션이 연 8천인데." "네, 그래서 20% 저렴합니다." "근데 레퍼런스가..." 말을 흐린다. "저희 현재 5개사 운영 중입니다." "중소기업들이죠?" "네." "대기업 레퍼런스는?" "첫 케이스가 되실 겁니다." 과장이 웃는다. "첫 케이스요? 저희가요?" 그 웃음에 다 담겨있다. '네가 삼성 나왔으면 삼성 레퍼런스 가지고 나오지.' '지방 스타트업이 우리한테 팔려고?' 'PoC는 해주는데, 본계약은 글쎄.' 미팅 끝나고 KTX 타고 대전 돌아온다. 기흥역 지나간다. 예전 출근하던 역. 저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밖에서 보면 저렇게 높은 벽인지. 연봉 8500에서 0으로 삼성 마지막 해 연봉이 8500만원이었다. 퇴사하던 날 인사팀에서 정산 받았다. 퇴직금 포함 1억 3천. 그게 3년 만에 바닥났다. 창업 1년차: 정부 과제로 버팀. 월급 300만원 꼬박꼬박. 창업 2년차: 매출 발생. 월 400만원. 근데 비용이 월 800만원. 창업 3년차: 매출 600만원. 비용 900만원. 적자 300만원. 지금 내 월급은 0원이다. 직원 6명 월급은 나간다. 4천만원. 사무실 월세. 150만원. AWS 서버비. 80만원. 마케팅비. 50만원. 기타 경비. 120만원. 총 지출 월 4400만원. 매출 600만원. 적자 3800만원. 정부 과제 남은 돈으로 버틴다. 6개월 치. 6개월 안에 대기업 계약 따내거나, 투자 받거나, 접거나. 아내는 모른다. 내 월급이 0원인 걸. 통장에 5천만원 남았다고 했다. 실제로는 2천만원. 밤에 노트북 켜고 VC 메일 쓴다. "안녕하세요, 스마트링크 대표 최지방입니다. 삼성전자 기흥 7년 근무..." 삼성 출신이라는 말 꺼내는 내가 초라하다. 판교와 유성구 주 1회 서울 출장. 판교 스타트업캠퍼스 가면 20대 대표들이 보인다. "저희 시리즈A 30억 받았어요." "개발자 15명 채용 중이에요." "다음 달 판교 더샵 입주합니다." 사무실은 넓고 깨끗하다. 간식은 풍족하다. 직원들은 젊고 밝다. 나는 대전 유성구. 테크노파크 건물은 1990년대 지어졌다. 엘리베이터는 느리다. 사무실 창밖은 산. 근처에는 편의점 하나. 직원 평균 나이 35세. 다들 조용하다. 간식은 커피믹스. 판교 스타트업 채용 공고 보면 부럽다. "시리즈B 투자 유치 완료, 적극 채용 중" "연봉 상한선 없음, 스톡옵션 제공" "판교역 5분 거리, 최신 사무환경" 우리 채용 공고는: "정부 과제 수행 중, 개발자 1명 채용" "연봉 4천~4500만원" "대전 유성구 근무, 주차 가능" 지원자 3명. 2명은 면접 불참. 판교는 넘친다. 대전은 모자란다. 근데 나는 대전을 떠날 수 없다. 아내가 공무원이다. 아이가 어린이집 다닌다. 부모님이 근처 산다. 판교 가면 이 모든 게 무너진다. '지방 스타트업'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그래도 대표는 대표 동창회 갔다. 고등학교 동창. 20년 만에 보는 얼굴들. "야, 최지방이다!" "너 삼성 다닌다며?" "퇴사했어. 창업했어." "헐, 대박. 뭐 해?" "제조업 쪽 SaaS." "...응?" 설명해도 모른다. 그냥 웃는다. 옆에서 친구가 끼어든다. "그러니까 대표라는 거지? 사장?" "뭐, 그렇지." "오, 사장님 됐네!" 분위기가 달라진다. 술 따라준다. 명함 달라고 한다. 사진 찍자고 한다. 근데 속으로는 안다. 이들은 내가 월급 0원인 걸 모른다. 이들은 내가 3800만원 적자인 걸 모른다. 이들은 내가 6개월 안에 투자 못 받으면 접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른다. 그냥 "대표"라는 단어만 듣는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묻는다. "동창들 어땠어?" "그냥 그랬어." "대표 됐다고 부러워하더라?" "...응." 거짓말은 아니다. 부러워하긴 했다. 근데 뭘 부러워하는지 모르고 부러워한다. 신분 같은 건 없다 결론은 없다. 신분상승도 아니고 하락도 아니다. 그냥 다른 삶이다. 삼성 다닐 때:안정적 월급 명확한 업무 큰 조직의 부품 40년 후 퇴직금스타트업 대표:불안정한 수입 모호한 업무 작은 조직의 전부 6개월 후 미래어느 게 나은지 모르겠다. 삼성 다닐 때는 이게 싫어서 나왔다. 지금은 가끔 그때가 그립다. 근데 돌아갈 수는 없다. 명함에 "전 삼성전자" 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삼성 사람이 아니다. PoC 미팅에서 구매팀 과장이 웃을 때, 나는 외부인이다. 판교 스타트업 보면서 부러워할 때, 나는 지방 사람이다. 그래도 매일 아침 8시에 출근한다. 직원들 얼굴 보면 책임감이 생긴다. 대기업 계약서에 사인 받는 날을 상상한다. 시리즈A 투자 받는 날을 꿈꾼다. 그날이 오면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그때는 힘들었지.' 지금은 그냥 버틴다. 신분상승인지 하락인지 판단은 10년 후에.KTX 안에서 쓴다. 서울 가는 길. 오늘도 미팅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