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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 28 Dec, 2025
제조업 현장을 아는 것: 강점이자 고민
기흥 공장 7년 삼성전자 기흥 라인에서 7년 일했다.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 24시간 돌아가는 현장. 설비 하나 멈추면 시간당 몇천만원 날아간다. 그때는 몰랐다. 그 7년이 나중에 무기가 될 줄. 창업하고 나서 알았다. 현장을 아는 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우리 솔루션 데모할 때마다 느낀다. 고객사 공장장님들 눈빛이 달라진다. "이거 현장 아시는 분이 만드셨네요." 그 한마디가 계약으로 이어진다. 기술보다 신뢰다.경쟁사는 모른다 경쟁 PT 들어가면 안다. 소프트웨어 회사들. 대부분 현장을 몰라. "저희 AI가 불량률 30% 줄입니다." "어떤 공정에서요?" "...모든 공정에서 가능합니다." 말이 안 된다. 사출이랑 프레스가 같을 리 없다. 현장 사람들은 안다. 저런 말 하는 순간 끝이다. 우리는 다르게 접근한다. "사출 공정이시죠? 금형 온도 센서 몇 개 달려있나요?" "6개요." "그럼 우리 솔루션으로 8개로 늘리고, 온도 편차 실시간 모니터링하면 불량률 12% 정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구체적이다. 현실적이다. 고객이 고개를 끄덕인다. 경쟁사 IR 자료 보면 웃긴다. 공장 사진은 게티이미지에서 다운받은 것. 용어는 인터넷에서 긁어온 것. 현장 사람들은 한 번에 안다. 우리는 기흥에서 찍은 내 사진을 쓴다. 허락받고. 실제 라인 사진. 그게 신뢰다.현장의 언어 지난주 충주 공장 미팅. 생산관리 부장님. "CT가 지금 85초인데요." "목표는요?" "75초로 줄이고 싶은데 병목이 3공정이에요." CT. Cycle Time. 생산 사이클 시간. 현장 용어다. 설명 안 해도 안다. 3공정 병목. 바로 이해한다. 경쟁사였으면 물어봤을 것이다. "CT가 뭐죠?" 그 순간 끝이다. 현장 사람들은 설명하기 귀찮아한다. 모르면 그냥 다른 업체 부른다. 우리 개발자들한테도 가르친다. 현장 용어. 공정 흐름. 설비 구조. 코드 짜기 전에 먼저 배운다. "이거 왜 배워야 하나요? 개발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처음엔 다들 그렇게 묻는다. 한 달 지나면 안다. 고객이 뭘 원하는지 이해하려면 현장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걸. 하지만 문제도 있다 현장을 너무 안다는 게 독이 될 때가 있다. 투자자 미팅. 판교 VC 파트너님. "시장 규모가 얼마나 되나요?" "국내 제조업체 중 직원 100명 이상이 약 3500곳이고요." "그게 TAM인가요?" "실제로는 그 중 자동화 여력 있는 곳이 30% 정도라서..." 파트너님 표정이 굳는다. "왜 30%만 되는데요? 다 필요한 거 아닌가요?" 설명한다. 현장 이야기를. 영세 공장은 투자 여력이 없다는 것. 수작업이 더 싸다는 것. 사장님이 IT 자체를 안 믿는다는 것. "그럼 시장이 너무 작은데요." 현실이 그렇다. 근데 투자자는 큰 숫자를 원한다. 현장을 아니까 솔직하게 말한다. 그게 마이너스가 된다. 서울 스타트업들 IR 보면 다르다. TAM 10조. SAM 3조. 근사하게 뻥튀기한다. 투자 받는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말한다. 투자 안 받는다. 이게 맞는 건가. 가끔 모르겠다.제품 개발의 딜레마 우리 솔루션은 현실적이다. 과하지 않다. 딱 필요한 기능만 있다. "AI 예측 정확도가 왜 82%인가요? 95% 이상 만들어야죠." 현장에서는 82%면 충분하다. 95%는 과적합이다. 실제 라인에서는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안다. 기흥에서 겪었다. 근데 고객은 95%를 원한다. 숫자만 본다. 경쟁사는 95%라고 쓴다. 데모 환경에서만 돌아간다. 실제 현장 가면 70%도 안 나온다. 근데 계약은 따낸다. 우리는 정직하게 82%라고 쓴다. 실제 현장에서 82% 나온다. 근데 계약 못 따낸다. 이게 맞나. 현장을 아는 게 맞나. 모르는 척하고 뻥치는 게 나을까. 밤마다 고민한다. 개발팀장 민수가 말했다. "대표님, 우리도 그냥 95%라고 쓰면 안 돼요? 어차피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화가 났다. 근데 뭐라 말 못 했다. 민수 말도 틀린 건 아니니까. 채용의 어려움 현장 경험자를 뽑고 싶다. 제조업 경력 있는 개발자. 근데 없다. 대전에는. 서울은 다르다. 제조업 출신 개발자들이 많다. 스타트업도 많다. 선택지가 많다. 대전은 그냥 없다. 있어도 대기업 붙잡고 있다. 연봉 맞춰줄 수도 없다. 그래서 현장 모르는 개발자를 뽑는다. 가르친다. 3개월 걸린다. 그 사이 다른 스타트업으로 간다. 서울로. "죄송합니다 대표님. 더 좋은 기회가 와서요." 다시 뽑는다. 다시 가르친다. 반복한다. 현장을 아는 게 강점이라면서. 그걸 전파할 사람이 없다. 아이러니다. 혼자 알고 있으면 뭐하나. 회사가 커지려면 팀이 알아야 하는데. 고객이 아는 것 그래도 고객은 안다. 우리가 진짜라는 걸. 천안 자동차 부품 공장. 두 달 전 PoC 끝났다. 어제 전화 왔다. "최 대표님, 우리 본계약 하려고요." "감사합니다. 금액은..." "조달청 가격 그대로 하죠. 대신 다른 라인도 해주세요." 2500만원. 3개 라인 확장. 연 매출 1억 고객 되는 거다. "경쟁사 3곳 더 봤는데요. 최 대표님이 제일 현장을 아시더라고요. 믿고 갑니다." 그 말 듣는 순간. 기흥 7년이 떠올랐다. 야근하던 날들. 설비 앞에서 모니터 보던 시간들. 헛되지 않았다. 지금 쓰인다. 투자자는 모른다. 이 가치를. 현장을 아는 게 얼마나 큰 해자인지. 천천히 간다. 우리 속도로. 고객이 알아주는 속도로. 제조업의 미래 요즘 뉴스 보면 AI다 뭐다 시끄럽다. 제조업은 망한다고 한다. 다 로봇이 대체한다고. 웃긴다. 현장 가보지도 않고 하는 소리다. 제조업은 안 없어진다. 방법이 바뀔 뿐이다. 더 스마트해질 뿐이다. 그 중간에 우리가 있다. 현장과 기술을 연결하는. 현장 없는 기술은 뜬다. 기술 없는 현장은 죽는다. 둘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 사람이다. 기흥에서 배웠다. 창업해서 실천한다. 느리다. 맞다. 서울 스타트업들보다 느리다. 덜 화려하다. 근데 우리는 진짜다. 현장이 증명한다. 고객이 증명한다.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은. KTX 안에서 다음 주 또 서울 간다. VC 2곳 미팅. 정부 과제 발표. 저녁에는 제조 스타트업 모임. KTX 시간표 확인했다. 6시 반 첫차. 8시 반 도착. 미팅 9시. 노트북 챙긴다. 가는 길에 IR 자료 고친다. 어떻게 설명할까. 현장의 가치를. TAM 숫자 말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공장들이 보인다. 평택. 천안. 저기도 우리 고객될 곳들이다. 숫자로 설명 못 하는 시장. 현장 가봐야 아는 니즈. 그게 우리 강점이다. 투자자가 모르면 어쩔 수 없다. 고객은 안다. 그걸로 버틴다. 기흥 7년. 창업 3년. 앞으로 얼마나 더 갈까. 모른다. 근데 계속 간다. 현장을 아니까. 그게 내 무기니까.현장 아는 게 답이다. 느려도.
- 13 Dec, 2025
제조업 B2B SaaS라는 설명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엘리베이터 피치 30초 "무슨 일 하세요?" 명절 때마다 듣는다. 이번엔 고모부였다.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만들어요." "아, 공장 자동화?" "비슷한데요, 소프트웨어로..." "아 기계 만드시는구나." 아니다. 설명을 다시 시작한다. "제조업 B2B SaaS입니다." "...네?" 이 대화가 3년째 반복된다.왜 이렇게 어려운가 문제는 세 겹이다. 첫째, '제조업'. 사람들은 공장하면 기계를 떠올린다. 컨베이어 벨트, 용접, 조립. 소프트웨어는 안 떠올린다. 둘째, 'B2B'. 일반인은 B2C만 안다. 배달앱, 쇼핑몰, 게임. 기업 대상 소프트웨어는 존재감이 없다. 셋째, 'SaaS'. 이건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아 구독형이요?" 반만 맞다. 세 개를 합치면 난이도가 기하급수다. 제조업을 모르는 사람에게 B2B를 설명하고, B2B를 모르는 사람에게 SaaS를 설명한다. 30초 안에. 불가능하다.KTX에서의 연습 서울 가는 날이면 연습한다. 오늘은 마포에서 VC 미팅이 있다. 1시간 20분 동안 노트북을 켜고 피치덱을 본다. 첫 페이지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한다. "저희는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너무 딱딱하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추상적이다. "MES와 ERP를 연결해서..." 전문용어 폭격이다. 옆자리 할머니가 김밥을 드신다. 나는 노트북 화면만 본다. 설명 버전 7개를 만들었다. 제조업 종사자용, 비전공자용, VC용, 정부과제용, 가족용, 구직자용, 기자용. 버전마다 단어가 다르다. '설비 가동률'이 어떤 버전에선 '기계 사용 시간'이 된다. 'Real-time monitoring'이 '실시간 체크'가 된다. 천안아산역을 지난다. 아직도 첫 페이지다.대전 백반집에서 점심시간이다. 사무실 근처 '맛나식당'에 간다. 사장님이 물으신다. "요즘 일은 잘 되냐?" "그럭저럭요." "근디 니네 회사가 정확히 뭐 하는 디야?" 3년째 오는 단골집이다. 아직도 모르신다. "공장에서 쓰는 프로그램 만들어요." "아, 컴퓨터로 기계 돌리는 거?" "비슷한데요, 좀 다른..." "아이고 어렵다. 아무튼 잘 되이소." 된장찌개를 드신다. 나도 먹는다. 옆 테이블에서 대화가 들린다. "우리 아들이 카카오 다니는디." "오, 대단하다." 설명이 필요 없다. 카카오톡을 다들 쓰니까. 우리 직원이 "부럽네요"라고 한다. 나도 그렇다. IR 자료 37번째 버전 작년 11월, 판교 액셀러레이터 IR이었다. "3분 드립니다." 첫 슬라이드. "국내 제조업 시장규모 500조." 심사위원이 핸드폰을 본다. 두 번째 슬라이드. "스마트팩토리 보급률 12%." 한 명이 커피를 마신다. 세 번째 슬라이드. "저희 솔루션은..." "잠깐만요." 질문이 들어왔다. "그래서 정확히 뭘 파는 건가요?" 1분 30초가 지났다. 아직 제품 설명도 못 했다. "공장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모아서 분석하고..." "MES 같은 건가요?" "MES보다 가볍고, 설치가 쉽고..." "그럼 IoT?" "IoT도 포함되지만 본질은 SaaS..." 3분이 끝났다. 질문만 5개 받았다. 제품 시연은 못 했다. 복도에서 다른 팀 발표가 들렸다. "배달 음식 추천 앱입니다." 박수가 나왔다. 1분 만에 다들 이해했다. 채용 공고를 쓸 때 개발자를 구한다. 공고를 쓴다. "제조업 B2B SaaS 스타트업에서 백엔드 개발자를 모십니다." 지원이 없다. 일주일째다. 공고를 고친다.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하실 분을 찾습니다." 지원 1명. 경력 8년. 질문이 왔다. "제조 도메인 경험이 필수인가요?" 아니다. 근데 설명이 필요하다. 30분짜리 통화를 했다. 결국 지원을 취소했다. "제조업은 잘 모르겠네요." 다시 고친다.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 플랫폼 개발자 모집." 제조업을 뺐다. 지원이 3명 왔다. 면접을 봤다. 셋 다 물었다. "그래서 정확히 뭐 만드는 회사죠?" 설명했다. 한 명은 "음... 복잡하네요"라고 했다. 한 명은 "제조업 경험이 없어서요"라고 했다. 한 명은 합격했는데 서울 회사 오퍼를 받아서 거절했다. 판교 스타트업 채용공고를 본다. "OO페이 백엔드 개발자 모집." 지원자 120명. 부럽다. 아내와의 대화 저녁에 집에 온다. 아들이 잔다. 아내가 묻는다. "오늘 투자 미팅 어땠어?" "글쎄." "떨어진 거야?" "아직 몰라. 근데 설명하는 데만 20분 걸렸어." "그럼 제품 설명은 못 한 거네?" "응." 아내가 웃는다. "그러게 좀 쉬운 거 할 걸." 농담이다. 근데 반만 농담이다. "우리 동기가 배달앱 스타트업 다니는데, 투자 5억 받았대." "그래." "설명 필요 없잖아. 배달앱이면 다들 알지." "그렇지." "너도 그런 거 하지 그랬어." 아내는 공무원이다. 안정적이다. 나는 3년째 월급을 못 받았다. 대신 직원들 월급은 꼬박꼬박 준다. "제조업이 중요해. 한국 GDP의 28%야." "근데 사람들은 모르잖아." 맞는 말이다. 할 말이 없다. 엔지니어 시절이 그립다 삼성전자 기흥 공장에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땐 설명이 필요 없었다. "반도체 공정 엔지니어예요." "오, 삼성?" 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스타트업 대표예요." "오, 뭐 하는 데요?" 시작이다. 엔지니어 시절엔 내 일이 명확했다. 수율 개선, 불량률 감소, 공정 최적화. 숫자로 나왔다. 성과가 보였다. 지금은 다르다. '시장 교육'이라는 걸 해야 한다. 고객에게 우리 솔루션이 왜 필요한지 설명한다. 그 전에 스마트팩토리가 뭔지 설명한다. 그 전에 제조업 디지털 전환이 뭔지 설명한다. 3단계 설명이다. 피곤하다. 공장에선 문제가 명확했다. 라인이 멈추면 고친다. 불량이 나오면 원인을 찾는다. 지금은 문제부터 설명해야 한다. "왜 이게 문제인가요?" 중소기업 대표님들이 묻는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실시간 모니터링, 예지 보전. 단어가 낯설다. 공장 사장님들은 30년째 감으로 공장을 돌렸다. 잘 돌아갔다. 왜 바꿔야 하나. 설득이 필요하다.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세일즈다. 정부과제 제안서에서만 유일하게 설명이 쉬운 곳이 있다. 정부 R&D 과제 제안서다. "제조업 디지털 전환을 위한 클라우드 기반 통합 관제 시스템 개발." 심사위원들이 다 이해한다. 제조업 박사들이다. MES, ERP, POP, WMS. 약어를 써도 된다. 오히려 써야 한다. 전문성을 보여줘야 한다. 작년에 과제 하나 땄다. 2억. 2년 과제다. 제안서는 120페이지였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기술 스펙만 채웠다. 근데 이게 문제다. 정부 과제에만 통하는 언어다. 시장에선 안 통한다. 실제 고객사 미팅에 가면 다르다. "박사님, 저희는 그냥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만 보고 싶어요." 중소기업 생산관리 과장님이 말씀하신다. 제안서에 쓴 단어들이 부끄럽다. 'Digital Twin 기반 실시간 시뮬레이션.' 과장님은 "그냥 핸드폰으로 볼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두 개 언어를 쓴다. 정부용, 고객용. 피곤하다. 대전 스타트업 모임에서 월례 모임이 있다. 대전 스타트업 대표들 20명 정도 모인다. 자기소개 시간이다. 한 명씩 돌아간다. "안녕하세요, 교육 플랫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헬스케어 앱 만들어요." "배달 중개 플랫폼입니다." 다들 한 문장이다. 명확하다. 내 차례다. "제조업 B2B SaaS...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하고 있고요, 공장 데이터를..." 옆 사람이 "아 MES?"라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려다가 "비슷해요"라고 답한다. 설명하면 길다. 끝나고 네트워킹 시간이다. 교육 플랫폼 대표가 온다. "제조업이요? 어렵겠네요." "좀 그래요." "고객사는 어떻게 찾아요?" "발로 뛰어야죠. 공장 찾아가고." "우리는 그냥 페이스북 광고 돌리는데." "부럽네요." 헬스케어 앱 대표도 온다. "B2B는 매출 사이클이 길지 않아요?" "6개월에서 1년이요." "우리는 다운로드하면 바로 결제 들어오는데." "그렇겠네요."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한다. 나만 어려운 걸 하는 건가. PoC 설명하기 대기업 PoC가 진행 중이다. 3개월 무상 파일럿이다. 구매팀 과장님이 묻는다. "이거 끝나고 정식 계약하면 얼마예요?" "월 500만원입니다." "...비싸네요. 이게 정확히 뭘 해주는 건데요?" 다시 설명한다. 세 번째다. "설비별 가동률을 실시간으로 보여드리고, 비가동 사유를 분석하고, 예지 보전 알람을 주고..." "아 그러니까 기계 고장 나기 전에 알려준다는 거죠?" "맞습니다. 그리고..." "그럼 그렇게 말하지." 맞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설명하면 길다. 줄이면 오해가 생긴다. PoC 결과 보고서를 쓴다. 30페이지다. 그래프가 20개다. 가동률 개선 8%, 비가동 시간 감소 15%, 예측 정확도 92%. 숫자는 좋다. 근데 과장님이 묻는다. "이거 우리가 왜 500 주고 사야 해요? 지금도 공장 잘 돌아가는데." 대답이 막힌다. 잘 돌아가는 걸 더 잘 돌아가게 하는 게 우리 제품이다. 근데 '잘 돌아가는데 왜?'라는 질문엔 답이 어렵다. 결국 "ROI가 6개월이면 나옵니다"라고 한다. 숫자로 승부한다. 서울 사람들의 반응 판교에 영업 거점이 있다. 직원 1명이 상주한다. 주간 회의를 한다. 화상으로. "이번 주 미팅 5건 잡혔어요." "좋네. 어디어디?" "판교 스타트업 2곳, 강남 VC 1곳, 여의도 대기업 계열사 1곳." "반응은?" "음... 다들 '제조업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대전 오실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어려워하고." 서울 사람들은 대전을 멀게 느낀다. KTX로 1시간인데. 반대로 대전 고객사들은 서울 회사를 선호한다. "본사가 서울이에요?" 물어본다. "대전입니다." "아..." 어정쩡하다. 서울에선 지방 회사고, 지방에선 서울 회사가 아니다. 영업 직원이 말한다. "형, 차라리 본사를 판교로 옮기면 어때요?" "직원들 다 대전 사람인데." "그럼 법인만이라도." "투자 받으면 생각해볼게." 근데 솔직히 나도 대전이 좋다. 출퇴근 20분이다. 주차 걱정 없다. 아들 어린이집 픽업이 가능하다. 서울 가면 다 포기해야 한다. 트레이드오프다. 설명의 편의 vs 삶의 질. 아직은 후자를 택한다. 투자자들의 질문 IR할 때마다 받는 질문들이 있다. "TAM이 얼마죠?" "국내 제조업체 40만개, 그중 스마트팩토리 대상은..." "아니 그냥 숫자로요." "8000억 정도 됩니다." "근데 제조업은 보수적이지 않나요?" "그래서 저희가..." "도입 기간은?" "평균 3개월입니다." "길네요. B2C는 즉시인데." "B2B 특성상..." "경쟁사는?" "레거시 MES 업체들하고..." "차별점은?" "클라우드 기반이고, 설치가 쉽고..." "그래서 한 문장으로?" "...쉽고 빠른 스마트팩토리 솔루션입니다." "음." 미팅이 끝난다. 2주 뒤 답이 온다. "좋은 팀이지만 시장이 불확실해서 패스합니다." 시장이 불확실한 게 아니다. 설명이 어려운 거다. 이해가 어려운 거다. B2C 스타트업은 다르다. "배달앱인데 AI 추천 넣었어요." "오케이 5억." 이런 식이다. 부럽다. 그래도 하는 이유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작년 9월이었다. 투자 미팅 12곳에서 다 떨어졌다. 정부과제 심사도 탈락했다. 통장에 3000만원 남았다. 직원 월급 2달치였다. 아내한테 말했다. "접을까 봐." "진짜?" "설명하는 게 너무 힘들어." "그럼 어쩔 건데?" "취업하지 뭐." "삼성 돌아갈 거야?" "글쎄. 아니면 다른 스타트업." "그럼 거기선 설명 안 해도 돼?" "회사 설명은 안 해도 되지." "근데 너 일은 설명해야 하잖아." 맞는 말이었다. 어디 가도 설명은 해야 한다. 내 일을, 내 가치를. 그리고 생각했다. 어려운 게 나쁜 건 아니다. 어려우니까 진입장벽이 있다. 쉬우면 다들 한다. 제조업 B2B SaaS를 하는 스타트업이 적은 이유가 있다. 어렵다. 설명도 어렵고, 영업도 어렵고, 도입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한다. 다음 날 출근했다. 직원들한테 말했다. "IR 자료 다시 만들자. 이번엔 제조업 빼고." "그럼 뭐라고 해요?" "데이터 플랫폼. 산업 데이터." "그래도 결국 제조업 아니에요?" "나중에 말하면 돼." 꼼수다. 근데 먹힌다. 다음 IR에서 "오 데이터 플랫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관심이 생겼다. 설명 순서를 바꿨다. 문제 → 솔루션 → 시장. 기존은 시장 → 문제 → 솔루션이었다. 제조업을 나중에 말한다. 효과가 있었다. 한 VC가 "2차 미팅 하시죠"라고 했다. 3년차의 깨달음 이제 안다. B2B SaaS는 원래 설명이 어렵다. 제조업이라서가 아니다. B2B 자체가 그렇다. Salesforce도 처음엔 그랬다. "CRM이요? 그게 뭔데요?" 지금은 시가총액 200조다. Slack도 그랬다. "메신저 또 만들어요?" 지금은 다들 쓴다. 처음엔 다 어렵다. 설명이 필요하다. 시장 교육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도 그렇다. 지금은 '스마트팩토리'라는 단어도 설명해야 한다. 5년 뒤엔 아닐 거다. '제조업 B2B SaaS'라고 하면 "아 공장 소프트웨어요?"라고 바로 이해할 거다. 그때까지 버티면 된다. 어제 고객사에서 연락 왔다. 작년에 PoC 했던 곳이다. 계약하겠다고. 월 500만원. 2년 약정.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사장님이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대전에서 온 친구들, 제품 괜찮아?' 제가 설명 드렸죠. 한 시간." "감사합니다." "근데 있잖아요. 저도 처음엔 이해 못 했어요. 근데 써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좋은 거."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다만 다른 사람 설득하기는 어렵겠어요. 설명이 복잡해서." "...노력하겠습니다." 끊고 나서 웃었다. 고객도 설명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좋다. 쓰면 안다. 설명은 어려워도 제품은 좋다. 그걸로 됐다.설명은 여전히 어렵다. 근데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