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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 14 Dec, 2025
대전 창업 커뮤니티: 따뜻하지만 작다
목요일 밤 밋업목요일 저녁 7시. 유성구 한 카페. 대전 스타트업 밋업이다. 오늘 참석자는 15명. 이제 얼굴 다 안다. 3개월에 한 번씩 보니까. 옆 테이블 대표는 헬스케어. 건너편은 에듀테크. 나처럼 제조업 하는 사람은 둘. 다들 좋은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요즘 어때요?" "그럭저럭요. 대표님은?" "비슷해요." 이 대화가 편하다. 서울처럼 IR 모드 아니어도 된다. 누가 떡볶이 시켰다. 다들 나눠 먹는다. 이런 게 좋다. 근데. 떡볶이 먹으면서 드는 생각. '이 시간에 판교는 뭐 하고 있을까?'정보는 늦게 온다밋업에서 들은 이야기. "요즘 GPT 래퍼 투자 많이 받던데요." 아. 그거 두 달 전 트렌드다. 서울은 이미 지나갔다. 정보가 늦게 온다. 대전까지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VC 소식도 그렇다. "○○ 펀드 모집한대요." 알고 보면 이미 마감. 서울 지인한테 물어봤다. "그거 한 달 전에 끝났어." 속상하다. 정보 비대칭. 이게 진짜 문제다. 채팅방도 다르다. 서울 창업가 단톡방은 실시간. 새벽에도 메시지 올라온다. 대전 단톡방은 조용하다. 가끔 "다들 화이팅" 정도.서울 가는 날 회사에 말했다. "내일 서울 갑니다." 직원들 반응이 재밌다. "또요?" "이번 주에 벌써 두 번째예요." 미안하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서울 가는 날 일정표.9시 VC 미팅 11시 액셀러레이터 1시 점심 (예비 창업가) 3시 대기업 담당자 5시 커피챗5시 반에 대전 가는 KTX. 7시 반 도착. 사무실 들러서 9시까지. 이게 한 달에 6번. KTX 정기권 끊었다. 41만원. 회사 돈. 판교 영업 담당자가 말했다. "대표님, 서울에 거점 하나 더 두시죠." "돈이 어딨어." 실은 생각해봤다. 판교에 작은 오피스. 나랑 개발자 한 명. 근데 그럼 본사는? 대전 팀은? 다 서울 가고 싶어 할 텐데.작지만 진심인밋업 끝나고 몇 명 남았다. 근처 고깃집. 헬스케어 대표가 말했다. "저도 서울 갈까 고민했어요." "진짜요?" "근데 우리 회사 CTO가 대전 사람이라." 에듀테크 대표. "저는 부모님이 여기 계셔서." 다들 이유가 있다. 대전에 남은 이유. 누군가 물었다. "최 대표님은요?" "아내가 공무원이라." 다들 웃었다. "그게 최고죠." 이 사람들 좋다. 서로 부럽지 않은 척한다. 근데 속마음은 다 안다. 다들 서울 궁금하다. 판교 부럽다. VC 많은 곳. 개발자 많은 곳. 근데 여기 있다. 각자 이유로. 고기 먹으면서 나눈 정보. "○○ 과제 괜찮더라." "□□ 지원사업 한번 봐." "△△ 대기업 담당자 소개해줄게." 이런 거. 서울처럼 화려하진 않다. 근데 진심이다.돌아오는 KTX 밤 11시 KTX. 대전 가는 마지막 차. 서울 미팅 3개 끝. 피곤하다. 옆자리는 대학생. 취업 공부하나 봐. 나도 저랬지. 삼성 입사 준비. 서울이 꿈이었다. 지금은 반대로 간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핸드폰 봤다. 판교 지인이 올린 인스타. "스타트업 네트워킹 데이 🔥" 사진 속 사람들 100명은 넘어 보인다. 다들 명함 주고받는다. 댓글 봤다. "대전도 이런 거 있어요?" 누가 나한테 물어본 적 있다. 있다. 15명 규모로. 차이가 크다. 인정한다. 근데. 대전 15명은 진짜 친구가 된다. 서울 100명은 명함 친구. 이렇게 생각하면서 산다. 안 그러면 못 버틴다.다음 날 아침 출근했다. 직원들이 물어본다. "어제 어땠어요?" "그냥 그랬어." 사무실 창밖. 대전 풍경. 한적하다. 서울 같으면 지금쯤. 스타벅스는 만석. 길거리는 정장 입은 사람들. 여긴 조용하다. 그게 좋을 때도 있다. 집중된다. CTO가 말했다. "대표님, 다음 달 개발자 채용 어떻게 할까요?" "서울 연봉은 못 맞춰줘." "그럼 대전에서?" "그래." 또 대전이다. 계속 대전이다. 근데 뭐. 여기서 시작했으니까. 여기서 버텨본다. 밋업 단톡방에 메시지 왔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ㅎㅎ" "담에 또 봐요" 15명. 작다. 근데 따뜻하다. 그걸로 됐다. 지금은.작지만 진심이면 된다. 지금은.
- 09 Dec, 2025
지방 창업 지원 사업은 다 신청한다
월요일 아침, 또 공고가 떴다 출근하자마자 카톡이 왔다. 대전시 창업 지원 사업 공고. 올해 세 번째다. 커피 마시면서 공고문을 읽는다. 지원 대상, 지원 내용, 제출 서류. 다 똑같다. 사업계획서, 재무제표, 대표자 이력서. 작년에 쓴 거 복붙하면 된다. "또 신청하세요?" 부장이 물었다. "당연하지." 작년에 5개 신청해서 2개 붙었다. 올해는 7개 신청했다. 지금 3개 붙었고, 2개 대기, 2개 탈락. 확률 게임이다.대전시, 충남도, 중기부 내가 노리는 건 크게 세 갈래다. 대전시 사업은 규모가 작다. 3000만원~5000만원. 근데 붙기 쉽다. 대전 소재 기업이면 가점이 크다. 작년에 '대전형 스마트공장 실증' 5000만원 받았다. 충남도 사업은 중간이다. 5000만원~1억. 충남 제조업 특화 사업이 많다. 우리 같은 B2B SaaS는 딱이다. 올해 '충남 제조혁신 바우처' 8000만원 받았다. 중기부 사업은 크다. 1억~3억. 근데 전국 경쟁이라 어렵다. 서류 탈락이 대부분이다. 작년에 '딥테크 예비창업' 지원했다가 1차 탈락. 올해는 '창업도약패키지' 지원했다. 결과 대기 중이다. 셋 다 신청한다. 겹쳐도 상관없다. 어차피 협약 단계에서 조율하면 된다.서류는 다 비슷하다 사업계획서는 템플릿이 있다.사업 개요 (500자) 기술 및 제품 소개 (1000자) 시장 분석 (800자) 추진 계획 (1200자) 재무 계획 (표)작년 거 복사해서 쓴다. 숫자만 바꾼다. 매출 목표, 고용 인원, 투자 유치 계획. "이번엔 뭐가 다른데요?" 부장이 물었다. "글쎄. 사업명이 다르지." 진짜로 그렇다. '스마트공장 실증'이나 '제조혁신 바우처'나 '디지털전환 지원'이나 다 똑같다. 우리 솔루션 설치해주고, 데이터 모니터링하고, 리포트 뽑아주는 거다. 근데 이름이 다르다. 그래서 다 신청한다. 재무제표는 회계사무소에 맡긴다. 월 10만원. 작년부터 고정 비용이다. 사업 신청할 때마다 최신 버전 받는다. 대표자 이력서는 한 번 쓰면 끝이다. 삼성전자 8년, 창업 3년. 숫자만 업데이트한다. 추천서는 교수님한테 받는다. KAIST 산학협력 교수님. 작년에 한 번 부탁드렸더니 "앞으로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하셨다. 감사하다. 행정 업무가 늘어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신청하면 끝이 아니다. 발표 자료 만들어야 하고, 인터뷰 가야 하고, 현장 실사 받아야 한다. 작년에 5개 신청하니까 2개월 동안 발표만 4번 했다. 대전시청, 충남도청, 테크노파크, 창조경제혁신센터. 발표 자료도 다 다르다. 대전시는 15페이지 이내. 충남도는 20페이지 이내. 중기부는 30페이지. 템플릿도 다 달라서 매번 새로 만든다. "대표님, 이번 주 목요일 발표래요." 부장이 말했다. "어디?" "천안. 충남도 사업." "몇 시?" "오후 2시." KTX 표를 끊는다. 대전→천안. 40분. 1시 출발하면 된다. 목요일 아침엔 서울 미팅이 있다. 9시. 끝나고 천안 가면 딱이다. 이게 일상이다.붙으면 일이 더 많다 탈락하면 편하다. 이메일 한 통 오고 끝이다. "귀사의 사업계획서는 아쉽게도..." 복붙 문장. 붙으면 진짜 시작이다. 협약서 쓰고, 통장 만들고, 월별 보고서 쓰고, 정산 자료 제출하고. 1년 내내 한다. 작년에 받은 충남도 8000만원. 매달 보고서 쓴다. A4 5페이지. 이번 달 실적, 다음 달 계획, 예산 집행 내역. 매월 10일까지 제출. 대전시 5000만원은 분기별 보고다. 분기마다 현장 실사 온다. 담당자 2명. 사무실 둘러보고, 직원 인터뷰하고, 장비 확인하고. 2시간. 중기부 과제는 더 세다. 중간 점검, 최종 점검, 추적 점검. 3년 동안 계속 본다. 작년 과제가 올해도 점검 온다. "귀찮지 않아요?" 서울 투자사 대표가 물었다. "귀찮지." "그럼 왜 해요?" "돈 필요하니까." 현실이 그렇다. 우리 같은 초기 스타트업은 정부 과제 없으면 못 버틴다. 월 매출 600만원으로 직원 6명 월급 못 준다. 혹시 모를 기회 올해 신청한 사업 중에 '창업도약패키지'가 있다. 중기부 사업. 3억. 솔직히 기대 안 했다. 서울 쪽 유명한 스타트업들 다 지원한다. 우리 같은 지방 B2B는 경쟁력 없다. 근데 1차 통과했다. 40개 중에 10개. 우리가 들어갔다. "와, 진짜요?" 부장이 놀랐다. "응." 2차는 발표 심사다. 다음 달. 서울 가야 한다. 3억이면 개발자 2명 1년 데이터 분석 인력 1명. 제대로 된 제품 만들 수 있다. 대기업 PoC 넘어서 상용화 가능하다. 이런 기회가 올 줄 몰랐다. 만약 올해 신청 안 했으면? 이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다 신청한다. 귀찮아도. 확률이 낮아도. 혹시 모른다. 지방 스타트업의 자구책 서울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는다. 판교 지인은 작년에 시드 10억 받았다. 엔젤 투자자 소개받고, VC 미팅 잡고, 텀싯 받고. 3개월 만에 끝났다. 우리는? 1년 동안 VC 50군데 이메일 보냈다. 미팅 잡힌 곳 5군데. 2차까지 간 곳 1군데. 결과는 패스. "B2B 제조업은 저희 포트폴리오랑 안 맞아요." "지방 소재는 좀..." "팀이 대전에 있으면 관리가 어려워서요." 다 들었다. 그래서 정부 과제를 한다. 지방 기업에게는 이게 유일한 방법이다. 투자 못 받으면 정부 지원금. 매출 안 나오면 R&D 과제. 직원 못 뽑으면 고용 장려금. 창피한가? 아니다. 생존이다. 올해 들어온 돈 총 3억 2000만원. 정부 과제 2억 8000만원. 엔젤 투자 1억. 매출 4000만원. 정부 지원금 없으면 우리는 지금 없다. 월요일 점심, 공고 확인 점심 먹으면서 핸드폰을 본다. 대전시 공식 홈페이지. 충남도 창업 지원 센터. 중소벤처기업부 공고 페이지. 즐겨찾기 해놨다. 새 공고 2개 떴다. '대전형 AI 융합 지원 사업' 5000만원. '충남 수출 바우처' 1억. AI 융합은 우리랑 맞다. 수출 바우처는 애매하다. 근데 일단 저장한다. 오늘 저녁에 공고문 읽어본다. 내일 아침에 신청 여부 결정한다. 되면 이번 주 안에 서류 준비한다. 루틴이다. "또 신청하세요?" 부장이 웃으면서 물었다. "당연하지. 안 하면 바보지." 백반을 먹는다. 7000원. 이 동네는 밥값이 싸다. 서울은 1만 2000원 한다더라. 그것도 지방의 장점이다. 적어도 밥은 싸게 먹는다. 저녁 9시, 공고문 읽는 중 퇴근하고 집에 왔다. 아들이 자고 있다. 아내는 드라마 본다. 나는 노트북을 켠다. '대전형 AI 융합 지원 사업' 공고문. PDF 15페이지. 천천히 읽는다. 지원 대상: 대전 소재 3년 이내 스타트업. 우리 딱 3년차다. 지원 내용: AI 기술 융합 R&D 지원금 5000만원. 6개월 과제. 제출 서류: 사업계획서, 재무제표, 기술 설명서, 추진 일정. 신청 기간: 이번 주 금요일까지. "할 만한데." 혼잣말이 나온다. 기술 설명서만 새로 쓰면 된다. 우리 솔루션에 AI 모델 적용하는 계획. 이미 머릿속에 있다. 내일 오전에 2시간 쓰면 된다. 추진 일정은 템플릿 있다. 1개월 기획, 2개월 개발, 2개월 테스트, 1개월 정리. 복붙한다. 금요일까지 4일. 충분하다. 신청서를 저장한다. 폴더명은 '2025_대전AI융합_지원사업'. 작년 폴더 옆에 놓는다. 올해 12번째 신청이다.지방에서 스타트업 한다는 건 이런 거다. 투자 대신 과제, 네트워크 대신 공고. 귀찮아도 다 신청한다. 혹시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