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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에
- 03 Dec, 2025
판교에 1명, 대전에 5명: 원격팀의 외로움
판교에 1명, 대전에 5명: 원격팀의 외로움 판교에 사람을 뒀다. 6개월 전이다. 영업 잘한다고 해서 월 350만원 줬다. 근데 매주 서울 간다. 결국 나다.아침 5시 40분 KTX 오늘도 첫차다. 대전역 5시 40분. 판교 사무실 있는데 내가 간다. 민수(판교 담당)한테 맡기면 불안하다. "대표님이 직접 오신다니 영광입니다." 고객사 팀장이 그랬다. 지난주에. 민수가 먼저 갔다 온 미팅이었다. 결국 내가 다시 가야 했다. 계약서에 도장 안 찍었다. "좀 더 검토해보겠습니다." 민수 보고 듣고 머리 아팠다. 뭘 놓쳤을까. 계속 생각했다. 녹취록 달라고 했다. 없단다. "분위기 괜찮았어요. 거의 다 된 것 같았는데." 그 말만 들었다. 신뢰의 문제인가, 통제욕인가 민수는 나쁘지 않다. 영업 경력 8년. 전 직장 실적도 봤다. 괜찮았다. 근데 못 믿겠다. 솔직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민수가 그랬다. 첫 출근날. 좋았다. 기대했다. 한 달 지나니까 답답했다. 보고가 성의 없다. 미팅 결과 세 줄. "관심 있어 보였습니다." "다음 주 재논의 예정입니다." "견적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게 없다. 숫자가 없다. 누구 만났는지, 뭘 물어봤는지. 우리 솔루션 중 뭘 관심 있어 했는지. 결국 내가 물어본다. 카톡으로. "정확히 누구 만났어요?" "우리 제품 중 어떤 모듈 얘기했어요?" "예산 얼마나 잡혀 있대요?" 민수는 답이 늦다. 한 시간, 두 시간. "확인해보겠습니다" 자주 온다. 그럼 내가 빡친다. 미팅 때 왜 안 물었나.결국 가는 건 나다 고객사 미팅 10개 중 7개는 내가 간다. 민수가 먼저 가도 결국 내가 또 간다. "대표님이 한 번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민수가 그렇게 말한다. 그럼 간다. KTX 타고. 새벽에 일어나서 면도하고. 정장 입고 대전역 간다. 도착하면 9시 30분. 미팅 10시. 민수랑 커피 마시면서 브리핑 듣는다. "어제 통화했는데 분위기 좋았어요." 그 말 듣고 들어간다. 미팅 시작하면 안다. 바로 안다. 분위기 안 좋다. 민수 말이랑 다르다. 고객 표정이 시큰둥하다. "저희 공장 규모가 좀 큰 편인데요." "기존 시스템이랑 연동이 되나요?" "ROI가 얼마나 나올까요?" 질문이 쏟아진다. 제대로 된 질문. 민수는 못 대답한다. 나만 본다. 결국 내가 답한다. 2시간 동안. 나올 때 민수가 말한다. "오늘 대표님이 오시길 잘했네요." "제가 준비가 부족했나 봐요." 화는 안 낸다. 근데 속으로 생각한다. '다음에도 내가 가야겠네.' 대전 팀은 답답해한다 점심 먹으면서 개발팀이랑 통화한다. "형 또 서울 갔어?" 현우(CTO)가 묻는다. "응. 미팅 있어서." "민수 형 있잖아." "...같이 간 거야." 현우는 한숨 쉰다. 들린다. "우리 언제 판교 가봐요?" "고객사 궁금한데 맨날 형만 가." 미안하다. 근데 어쩔 수 없다. 고객 앞에서 개발자 데려가면 복잡해진다. "이거 개발 가능해요?" 물어본다. 현우는 솔직하다. 너무 솔직하다. "지금은 안 되는데 3개월 걸려요." 그 말 듣고 고객은 시든다. 영업은 애매하게 답해야 한다. "검토해보겠습니다" 정도로. 근데 개발자는 정확하게 말한다. 그래서 안 데려간다. 현우도, 다른 개발자도. 결국 혼자 간다. 아니면 민수랑. 리모트 팀의 착각 민수 뽑을 때 생각했다. '판교에 거점 생기면 다르겠지.' '서울 출장 안 가도 되겠지.' 완전히 착각이었다. 거점이 있어도 결국 대표가 간다. 고객은 대표를 원한다. "의사결정권자 좀 만나고 싶은데요." 결국 그 얘기 나온다. 민수한테 권한을 줬다. 계약 3000만원까지. 근데 못 쓴다. 한 번도. "대표님 확인받고 진행할게요." 민수가 매번 그런다. 권한을 줘도 안 쓴다. 책임지기 싫은 거다. 이해한다. 나도 직장인이었다. 알아. 근데 답답하다. 엄청 답답하다. 민수한테 화낼 수도 없다. 잘못한 거 없으니까.통제하고 싶은 이유 왜 이렇게 됐나. 생각해봤다. 민수를 못 믿어서? 아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다. 내가 불안해서다. 3년 만든 회사다. 직원 6명. 정부 과제 2억, 엔젤 1억. 이게 끝이다. 돈이. 한 건이라도 놓치면 안 된다. 월 매출 600만원. 인건비도 안 된다. 대기업 PoC 하나 따야 산다. 그러니까 못 놓는다. 통제가. 민수한테 맡기면 불안하다. '내가 갔으면 계약했을 텐데.' 그 생각이 자꾸 든다. 실제로 내가 가면 다르다. 계약률이 높다. 확실히. 민수 단독: 10개 중 2개. 내가 동행: 10개 중 5개. 이 숫자 아니까 못 놓는다. 민수한테 미안하다. 진짜. 근데 회사가 먼저다. 외로운 건 민수도 마찬가지 지난주 민수랑 술 먹었다. 판교 미팅 끝나고 저녁 먹었다. 판교 역 근처 고깃집. "형, 저 믿고 좀 맡겨주세요." 민수가 소주 두 잔 마시고 말했다. "맡기고 있잖아." "아니에요. 형이 다 챙기잖아요." "미팅 때마다 오시고."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니까. "형이 오시면 저는 투명인간이에요." "고객들 형만 봐요." "제가 뭐 하러 거기 있나 싶어요." 미안했다. 진짜로. 근데 바꿀 수가 없다. "판교 사무실도 외로워요." 민수가 또 말했다. "혼자 있으니까 회사 같지 않아요." "대전 팀은 맨날 같이 밥 먹잖아요." 그것도 맞는 말이다. 대전은 6명이 붙어 있다. 점심 같이 먹고, 저녁도 가끔. 회의할 때 화이트보드 앞에 모인다. 민수는 혼자다. 판교 오피스텔에. 화상회의로만 팀 본다. 주 1회 찍는 주간회의 때. "한 달에 한 번은 대전 오세요." 내가 말했다. "팀이랑 같이 일해야죠." 민수는 고개 끄덕였다. 근데 안 온다. 바쁘다고. 서울 미팅 많다고. 나도 이해한다. 왔다 갔다 피곤하다. KTX 4시간. 왕복 8시간. 업무 시간 다 날아간다. 대전 팀도, 민수도, 나도 결국 아무도 안 좋다. 대전 팀은 고객을 못 본다. 뭘 만드는지 감이 안 온다. "형이 서울 가서 뭐 했어?" 물어봐도 내 설명으로만 듣는다. 민수는 외롭다. 혼자다. 팀이라고 느끼지 못한다. 월급 받으러 다니는 것 같다고. 지난주에 그렇게 말했다. 나는? 나는 계속 움직인다. 대전-서울, 서울-대전. KTX 정기권 끊었다. 50만원짜리. 한 달에 15번 넘게 탄다. 집에는 늦게 들어간다. 아내는 잔다. 아이도. 노트북 켜고 민수한테 카톡 보낸다. "오늘 미팅 어떻게 됐어요?" 답 오기 전에 잠든다. 소파에서. 답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르겠다. 민수한테 다 맡긴다? 불안하다. 매출 떨어질까 봐. 민수를 대전으로? 싫다고 한다. 서울 떠날 생각 없다고. 내가 판교로? 아내가 싫어한다. 공무원 그만둘 수 없다고. 아이 유치원도 있다고. 그럼 계속 이렇게? 피곤하다. 올해만 KTX 200번 넘게 탔다. 역무원이 나 안다. 얼굴을. 지방 창업은 이런 거다. 서울에 거점 만들어도 결국 혼자 간다. 팀은 쪼개지고, 대표는 바빠지고. "서울로 이전 안 해요?" 투자자가 물어본다. 매번. "...검토 중입니다." 거짓말이다. 검토 안 한다. 못 간다. 가기 싫다. 솔직히. 근데 이렇게 계속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민수는 언젠가 나간다. 확실히. 외로운 사람은 떠난다. 대전 팀도 불만 쌓인다. "형만 좋은 거 다 해." 현우가 농담처럼 말한다. 근데 농담 아니다. 진심 섞였다.오늘도 판교 간다. 민수 단독 미팅 결과 안 좋았다. 내일 다시 가서 수습해야 한다. 새벽 첫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