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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Dec, 2025
판교 스타트업 채용공고를 볼 때의 그 기분
판교 스타트업 채용공고를 볼 때의 그 기분 토요일 밤 11시 아이 재운 뒤 노트북을 켰다. 습관이다. 링크드인 타임라인에 또 올라왔다. 판교 핀테크 스타트업. 시리즈 B 유치 후 대규모 채용. 백엔드 개발자 연봉 8000만원부터 시작. "경력 3년 이상". 우리 회사 시니어 개발자 연봉이 5800만원이다. 스크롤을 내렸다. 더 있다. AI 스타트업. 연봉 7500만원. 스톡옵션 별도. 점심 제공. 도서 구매비 무제한. 경력 2년이면 지원 가능. 우리 회사는 점심 식대 6000원 지원한다. 근처 백반집이 7500원이라 본인 부담 1500원. 창을 닫았다. 다시 켰다. 자꾸 보게 된다.월요일 오전, 개발자 채용 회의 "이력서 5개 들어왔습니다." 인사 담당이 보고했다. 한 달간 올린 공고였다. 5개. 판교 같은 회사는 하루에 50개씩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한 달에 5개. 그것도 경력 미달이 3개. "연봉 협상 가능한가요?" 남은 2명 중 괜찮은 후보가 물었다. 전 카카오 개발자. 경력 4년. 희망 연봉 7200만원. "...최대 6000까지 가능합니다." 전화는 끊겼다. 정중한 거절 문자가 왔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뻔하다. 다른 곳 갔다. 당연히 더 주는 곳으로. 회의실 창밖으로 유성구 풍경이 보인다. 빌딩이 낮다. 하늘이 넓다. 판교는 빌딩이 빽빽하다. 스타트업이 빽빽하다. 돈이 빽빽하다. "다시 공고 올릴까요?" "...네. 올리세요."우리 개발자가 받는 제안 화요일 점심시간. 리드 개발자 민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잠깐 얘기 좀..." 식당 밖에서 섰다. 예상은 했다. "헤드헌터한테 연락 왔어요. 서울 쪽 회사. 연봉 8500 제시하더라고요." 민수 현재 연봉 5800만원. 우리 회사 최고다. 차이가 2700만원. 한 달에 225만원. 세후 150만원 정도 차이. "...어떻게 하실 건데요?" "아직 모르겠어요. 고민 중이에요. 대전 눌러살고 싶긴 한데... 차이가 너무 크네요." "최대한 맞춰보겠습니다." "아뇨, 대표님. 현실적으로 어려운 거 알아요. 저도 회사 사정 아니까." 민수는 창업 멤버다. 3년을 함께했다. 밤샘 개발도 함께했다. PoC 따낼 때 같이 울었다. 서울 회사는 민수를 3개월 알았다. 이력서로. "시간 드릴게요. 천천히 생각하세요." "죄송해요, 대표님." 사과할 일이 아닌데 사과한다. 내가 더 미안하다.숫자로 보는 격차 회사로 돌아와 엑셀을 켰다. 계산해봤다. 우리 회사 전체 인건비: 월 2800만원 (6명) 판교 평균 스타트업 개발자 1명: 월 650만원 우리는 6명 월급이 판교 개발자 4.3명분. 시리즈 A 유치 평균 금액: 서울: 35억원 지방: 8억원 4배 차이. VC 미팅 한 번 잡는 시간: 서울: 3일 대전: 3주 KTX 왕복 비용: 59,800원 한 달 서울 출장 8회: 478,400원 연간: 5,740,800원 이게 교통비만. 숙박비는 별도. 시간은 계산 불가. 엑셀을 닫았다. 숫자를 봐도 답은 없다. 수요일 밤, VC 콜드메일 투자 유치를 위해 메일을 쓴다. "안녕하세요. 대전 기반 제조업 SaaS 스타트업..." '대전 기반'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움찔한다. 설명이 필요한 단어. 핑계처럼 들리는 단어. "현재 대기업 PoC 진행 중이며..." "팀 구성은 삼성전자 출신..." "대전에서도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으며..." 마지막 문장이 거짓말 같다. 훌륭한 인재는 서울로 간다. 연봉이 다르니까. 당연하다. 메일을 20개 보냈다. 답장 올 확률 15%. 그중 실제 미팅까지 가는 확률 30%. 투자로 이어질 확률 5%. 서울 스타트업은? 같은 빌딩에 VC가 있다. 커피 한잔 하자고 한다.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우리는 KTX를 탄다. 새벽 6시 첫차. 미팅은 오후 2시. 8시간을 이동과 대기에 쓴다. 목요일, 채용 공고 수정 인사 담당이 물었다. "연봉 범위 좀 올릴까요? 6000까지 써놓으면..." "안 됩니다. 없는 돈 쓸 수 없어요." "그럼 다른 복지는요? 도서비라던가..."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요?" "월 10만원...?" 판교는 무제한이다. 우리는 월 10만원이 고민이다. "스톡옵션은 어떻게 어필할까요?" "...솔직히 말해서, 시리즈 A도 못 받은 회사 스톡옵션이 얼마나 매력적일까요?" 침묵. 현실을 인정하는 게 먼저다. 우리는 돈으로 이길 수 없다. "대신 이걸 강조하세요. 창업 멤버급 경험. 빠른 성장. 적은 인원이라 모든 걸 다 해볼 수 있다. 대전 생활비는 서울의 70%." "...네." 설득력 있나? 모르겠다. 안 통할 수도 있다. 그래도 쓸 수밖에. 금요일 저녁, 민수의 결정 민수가 말했다. "대표님, 결정했어요." 심장이 빨랐다. "남을게요." "...네?" "제안은 거절했어요. 생각해보니까, 돈만이 다는 아니더라고요. 서울 가면 출퇴근 2시간. 집값은 두 배. 애 어린이집도 다시 알아봐야 하고. 부모님도 여기 계시고." "민수씨..." "대신 조건 있어요. 연봉은 지금 그대로 받을게요. 근데 시리즈 A 받으면, 그때 스톡옵션 좀 더 주세요. 그리고 이번 연도 매출 목표 달성하면 인센티브." "당연히 해드리죠. 고맙습니다." "저도요. 여기서 더 해보고 싶어요. 솔직히." 악수했다. 손에 땀이 났다. 민수가 남은 이유를 분석했다. 가족. 생활비. 부모님. 합리적 이유들. 근데 진짜 이유는 다를 수도 있다. 정. 의리. 함께한 시간. 숫자로 환산 안 되는 것들. 판교 회사는 절대 이해 못 한다. 우리만 아는 가치. 토요일 오후, 가족과 시간 아들과 놀이터에 갔다. 미끄럼틀을 탄다. 웃는다. "아빠, 또!" 다시 태워준다. 10번째. 아내가 옆에 앉았다. "이번 주도 힘들었어?" "응. 민수가 서울 제안 받았었어." "그래? 어떻게 됐는데?" "남기로 했대." "...다행이다. 당신도 좀 쉬어.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쉬운 일이 아니야. 서울 애들은 돈이 쏟아지는데, 우린..." "근데 당신, 서울 가고 싶어?" "...아니. 솔직히 여기가 좋아. 근데 열등감이 들어. 같은 일 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나 싶고." "차이 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서울이 더 크잖아. 대신 우리는 이게 있잖아." 놀이터를 가리켰다. 한산하다. 서울은 대기 30분이라던데. "주말에 부모님도 자주 보고. 출퇴근도 20분이고. 저녁에 애 보고. 이런 거." 맞다. 맞는데. "그래도 가끔은..." "알아. 나도 가끔 서울 공무원 연봉 찾아봐. 300만원 더 받더라. 근데 안 가잖아. 이유가 있으니까." 아들이 뛰어왔다. "아빠! 그네!" 그네를 밀어줬다. 높이 올라간다. 웃음소리. 이게 연봉으로 환산되나. 안 된다. 일요일 밤, 다시 노트북 앞 내일은 월요일. 출근이다. 링크드인을 또 켰다. 습관이다. 판교 스타트업 채용 공고. 연봉 9000만원. 시리즈 C. 유니콘 꿈꾸는 회사. 부럽다. 솔직히. 엄청. 근데 우리도 간다. 더디지만. 다른 방식으로. 대전에서. 적은 돈으로. 그래도 가능한 방식으로. 채용 공고를 하나 더 올렸다. 연봉 5500만원. 솔직하게 썼다. "적은 돈입니다. 서울보다 못합니다. 대신 이런 게 있습니다. 빠른 성장. 핵심 경험. 창업 멤버급 대우. 대전에서의 삶." 올렸다. 누가 볼까. 모른다. 근데 해야 한다. 내일도 출근한다. KTX 정기권 끊었다. 다음 주 서울 VC 미팅 3개. 판교 연봉은 못 준다. 대신 다른 걸 준다. 뭘 주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른다. 근데 민수는 남았다. 이유가 있다. 그걸 믿는다.내일도 출근이다. 판교는 여전히 멀다. 연봉 격차는 여전하다. 근데 여기서 한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