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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데
- 26 Dec, 2025
주말인데 노트북은 항상 켜져 있다
주말인데 노트북은 항상 켜져 있다 토요일 오전 10시 아들이 블록을 쌓는다. 나는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본다. "여보, 오늘 안 쉬어?" 아내가 묻는다. 세 번째다. 이번 달만. "응, 잠깐만 볼게." 거짓말이다. 잠깐이 아니다. 슬랙 알림 7개. 이메일 23개. 카톡 단톡방 99+. 금요일 밤 10시에 끊었다. 12시간 만에 이렇게 쌓인다.개발팀장 메시지. "대표님, 주말이지만 급한 게 있어서요." 영업팀. "월요일 미팅 전에 자료 검토 부탁드립니다." 투자사 메일. "IR 자료 보완 요청 드립니다." 다 급하다. 다 중요하다. 근데 다 주말에 온다. 언제부터였나 창업 초기엔 안 그랬다. 직원 2명일 때. 주말엔 진짜 쉬었다. 지금은 6명. 정부 과제 돌아간다. PoC 진행 중이다. 쉴 수 없다. 정확히는 쉬면 불안하다. "대표가 주말에 답 안 해요." 한 번 들었다. 직원한테. 그 뒤로 답한다. 주말에도. 악순환이다. 알지만 못 끊는다.아내는 공무원이다. 주말은 칼퇴다. 업무 연락 없다. 부럽다. 솔직히. "그냥 주말엔 꺼버려." 아내가 말한다. "그게 안 돼." "왜?" 설명할 수 없다. 스타트업은 원래 그렇다는 말은 핑계 같다. 온전한 주말 작년 설날. 3일간 노트북 안 켰다. 처가에 놀러 갔다. 시골이라 와이파이도 약했다. 처음엔 불안했다. 손이 떨렸다. 둘째 날엔 괜찮았다. 아들이랑 놀았다. 셋째 날엔 편했다. 이게 쉬는 거구나.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 노트북 켰다. 슬랙 201개. 이메일 89개. 3일치가 한꺼번에 밀려왔다.그날 밤 9시까지 답했다. "휴가 갔다 왔더니 일이 산더미네요 ㅎㅎ" 직원이 농담했다. 웃기지 않았다. 그 뒤론 설연휴에도 노트북 챙긴다. 서울 스타트업 대표들 판교 간다. 월 2회. 카페에서 다른 대표들 본다. 다들 노트북 켜놓고 있다. 주중인데도. "주말에도 일해요?" 물어봤다. 한 대표한테. "당연하죠. 주말이 더 집중 잘 돼요." 시리즈 A 받은 회사다. 부럽지 않았다. 똑같구나 싶었다. 대전이든 서울이든. 스타트업은 다 비슷하다. 주말은 없다. 정확히는 주말도 일한다. 직원들한테는 쉬라고 한다. 본인은 못 쉰다. 대표니까. 아내와의 대화 지난주 토요일 밤. "우리 다음 주 어디 갈까?" 아내가 물었다. "어디?" "여행. 아들 데리고." "음... 일정 봐야 할 것 같은데." "토요일이잖아." "응, 근데 PoC 마감이 그 주라서." 침묵. "매주 그래. 항상 일정 있어."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이니까. "미안해. 조금만 더 참아줘." "언제까지?" "시리즈 A 받으면..." 또 핑계다. 시리즈 A 받으면? 그땐 더 바쁠 거다. 아내도 안다. 나도 안다. 근데 다른 말을 못 하겠다. 월요일 아침 KTX 첫차. 대전역 새벽 5시 40분. 서울 미팅 3개 잡혔다. 주말에 메일 왔다. 일정 조율했다. 토요일 오후에. 아들이랑 놀이터 가면서. "아빠, 그네!" "응, 아빠 전화 좀만." "아빠!" "알았어, 전화 끊을게." VC 담당자였다. 미팅 잡혔다. 좋은 일이다. 근데 기쁘지 않다. 기차 안에서 자료 본다. 옆자리 아저씨도 노트북 친다. 다들 바쁘다. 주말도 일한다. 이게 정상인가. 정상이 뭔가. 답은 없다 온전한 주말. 언제 가능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엑싯하면? 그것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바쁠 수도 있다. 근데 확실한 건 있다. 지금 이 순간. 아들은 자란다. 주말마다 노트북 보는 아빠. 그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빠는 왜 항상 일해?" 언젠가 물을 것이다. 뭐라고 답할까. "아빠가 회사 대표라서." "대표는 쉬면 안 돼?" 할 말이 없다. 이번 주말 노트북을 끈다. 진짜로.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밤까지. 슬랙도 끈다. 이메일도 안 본다.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근데 해봐야 한다. 안 그러면 이대로다. 계속.주말이 주말이려면, 노트북을 꺼야 한다. 알지만 못 한다. 이번 주는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