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스타트업이라는
- 27 Dec, 2025
'지방 스타트업'이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
오늘도 '대전의' IR 자료 검토 메일이 왔다. "대전의 스마트팩토리 스타트업 지방의..." 다시 왔다. 이 단어. 커피를 마셨다. 세 번째다. 창밖을 봤다. 유성구 테크노밸리. 나쁘지 않은데. 그런데 소개될 때마다 '대전'이 먼저 붙는다.작년 겨울 컨퍼런스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였다. "다음은 대전에서 오신 최지방 대표님입니다." 박수. 그리고 시선. '아, 지방에서 왔구나.' 피칭 10분. 기술력 설명 8분. 질의응답에서 첫 질문. "대전에 있으면 개발자 채용이 힘들지 않나요?" 기술 질문은 없었다. 솔루션 아키텍처는 안 궁금한 거다. 지역이 궁금한 거다. 대전이 문제인 거다. 숙소로 돌아오는 KTX 안. 노트북을 펼쳤다. 피칭 자료를 다시 봤다. 어디가 부족했나. 기술 설명이 약했나. 아니다. 기술은 괜찮았다. 문제는 첫 소개였다. '대전에서 온.'서울 VC 미팅 4개월 기록 1월. 강남역 VC. "지방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우리는 일반 트랙 지원했다. 2월. 판교 액셀러레이터. "대전에 계시면 네트워킹이..." 우리 고객사는 전국구다. 3월. 여의도 투자사. "서울 오실 계획은요?" 본사 이전 얘기가 아니었다. 4월. 을지로 VC. "지방 제조 스타트업 포트폴리오가..." 제조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방이 문제였다. 투자 제안은 없었다. 4개월간 하나도. KTX 정기권 48만원어치를 썼다. 미팅은 16번 했다. 결과는 0건이다. 집에 와서 아내한테 말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닌가 봐." 아내가 물었다. "그럼 뭐가 문제야?" 말하지 않았다. 대전이라고.실제 차이 개발자 채용 공고를 냈다. 3주간. 지원자 2명. 둘 다 경력 1년 미만. 같은 시기 판교 스타트업 공고. 우리보다 작은 회사. 지원자 47명. 경력 3년 이상 23명. 연봉 제시했다. 5500만원. "서울은 7000 받았는데요." 우리 자금은 3억이다. 7000 주면 월 운영비가 터진다. 결국 채용 실패. 대표가 개발했다. 나. 밤 11시까지 코딩. 주말도 코딩. 엔지니어 출신이라 가능했다. 근데 이게 맞나. 아침 8시 출근. 영업. 미팅. IR. 저녁 7시부터 개발. 밤 11시 퇴근. 집에 와서 씻고 누우면 12시. 아들이 자는 모습을 봤다. 이번 주도 같이 못 놀았다. 기술력은 있다. 고객사 만족도 높다. 그런데 성장은 느리다.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이 없다. 왜 없나. 서울이 아니라서. 정부 과제의 역설 대전에 있으면 좋은 게 하나 있다. 정부 과제. 대덕연구단지 덕분이다. 과제가 많다. 작년 과기부 R&D 2억. 올해 중기부 1.5억 신청 중. 매출 600만원. 과제 의존도 70%. 이게 건강한가. VC들이 본다. "정부 과제 비중이 높네요." 변명한다. "민간 매출 늘리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과제 없으면 문 닫는다. 대전이라서 과제를 받는다. 과제 받으니까 VC가 안 본다. VC 안 보니까 과제로 버틴다. 순환이다. 벗어날 수 없는. 동기가 물었다. 서울에서 SaaS 하는 친구. "Series A 받았다고?" "응. 50억." "매출은?" "월 3천." 우리보다 5배다. 근데 투자는 25배 받았다. 기술력 차이는 없다. 확신한다. 차이는 주소다. 서울 강남구. 우리는 대전 유성구. 꼬리표를 떼려는 시도들 회사 소개서를 바꿨다. Before: "대전 기반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After: "제조 데이터 인텔리전스 플랫폼" 지역을 뺐다. LinkedIn 프로필도 바꿨다. "Location: Daejeon" → "Location: South Korea" 넓게 썼다. IR 자료 첫 장. 회사 사진을 뺐다. 대전 건물이 보여서. 대신 고객사 로고를 넣었다. 서울 본사들. 효과는 미미했다. 어차피 미팅에서 묻는다. "본사가 어디세요?" "대전입니다." "아..." 이 "아..."에 모든 게 담겨 있다. 연민. 걱정. 그리고 거리두기. 기술력으로 말하기 고객사가 늘었다. 천천히. 경기도 화성 공장. 충남 아산 공장. 전북 군산 공장. 우리 솔루션 도입 후 불량률 23% 감소.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시간 75% 단축. 이게 실력이다. PoC 미팅. 대기업 스마트팩토리 담당 상무. "솔루션 괜찮네요. 근데 대전에 계시면..." 또 나왔다. 참았다가 말했다. "저희 기술팀 역량 보셔야죠. 지역이 중요한가요?" 상무가 웃었다. "그래도 서울이 가깝긴 해야죠." PoC는 통과했다. 그런데 본계약은 보류.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무엇을. 기술을 더 봐야 하나. 아니다. 우리가 버티는지 보는 거다. 지방 스타트업이 망하는 걸 많이 봤으니까. 신뢰의 문제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밤에 개발하면서 생각했다. 언제쯤 '대전의'를 떼고 소개될까. 언제쯤 기술로만 평가받을까. 서울 가지 않기로 결심 아내와 얘기했다. 3시간. "서울 가면 투자 받기 쉬울까?" "모르겠어. 근데 우리 삶은 힘들어지겠지." "그렇긴 해." 아내 공무원 경력 8년. 그만두면 다시 못 들어간다. 부모님 여기 계신다. 처가도 여기다. 아이 어린이집도 적응했다. 우리 삶의 뿌리가 여기 있다. 그걸 뽑고 서울 가면 뭐가 달라질까. 투자 확률 20% 올라간다 치자. 대신 삶의 질은 50% 떨어진다. 출퇴근 2시간. 집값 2배. 육아 도움 0. 계산이 안 맞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여기서 한다. 대전에서. '대전의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스타트업'으로 끝낸다. 지역 빼는 게 목표다. 실제로 가능한가 솔직히 모르겠다. 국내 유니콘 23개. 서울 21개. 경기 2개. 대전은 0개다. 충청권 전체가 0개. 통계가 말한다. 가능성 낮다고. 그런데 해외는 다르다. Zoom. 산호세. Atlassian. 시드니에서 시작. Shopify. 캐나다 오타와. 기술 기업이 꼭 실리콘밸리에만 있나. 아니다. 그럼 한국도 가능해야 맞다. 왜 안 되는가. 생태계 때문이다. 투자. 인재. 네트워크. 다 서울에 있다. 그걸 바꿀 수는 없다. 혼자서는. 그럼 어떻게 하나. 버티는 거다. 실력으로. 기술로 증명하는 거다. 고객사 늘리고. 매출 올리고. 이익 내고. 그러면 꼬리표는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대전의'가 아니라 '수익성 좋은'. '지방의'가 아니라 '기술력 있는'. 시간 문제다. 그렇게 믿는다. 오늘의 선택 아침 8시. 출근. 팀원들이 모였다. 6명. 대전 토박이 4명. 세종 1명. 청주 1명. 다들 서울 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 있다. 이유가 있어서. 개발자 김 대리. 전 네이버. "서울 출퇴근 2시간이 싫었어요." 영업 박 과장. 전 삼성. "애 키우기는 여기가 낫죠." 이들도 안다. 여기 있으면 연봉이 적다는 걸. 커리어 성장이 느리다는 걸. 그래도 남았다. 다른 가치가 있어서. 회의 시작. "이번 달 목표. 신규 고객 3곳. 가능하죠?" "해봅시다." 창밖을 봤다. 유성구 아침. 나쁘지 않다. 여기. 점심은 백반집. 7000원. 서울이면 만원이다. 작지만 실질적인 차이. 이런 게 쌓이면 버틸 수 있다. 언젠가 5년 후를 상상했다. IR 자료 첫 장. "제조 데이터 인텔리전스 선도 기업" 지역 언급 없다. 매출 100억. 영업이익 20억. 투자 안 받아도 된다. 자생 가능. 소개받는다. "스마트팩토리 분야 대표 스타트업 지방입니다." '대전의'가 없다. 필요 없으니까. 실력이 증명됐으니까. 이게 목표다. 현실적인가. 모르겠다. 가능한가. 해봐야 안다. 포기할 건가. 아니다. 여기서 한다. 끝까지. '지방 스타트업' 꼬리표. 떼는 방법은 하나다. 계속하는 것.KTX 안. 서울 가는 길. 오늘도 미팅이다. 그런데 다음 주부터는 고객사가 우리 사무실로 온다. 처음이다. 꼬리표가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