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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PoC가 진행 중일 때의 불안감

대기업 PoC가 진행 중일 때의 불안감

PoC 67% 진행 중 대기업 구매팀에서 연락 왔다. "진행률 67%입니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모르겠다. 3개월 전 시작한 PoC다. H사 천안 공장. 우리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테스트 중. 목표는 불량률 15% 감소. 지금 12% 나왔다. 나쁘지 않다. 근데 마음이 안 놓인다. 구매팀 김 차장이 말했다. "다음 주 중간 보고 있습니다." 중간 보고. 임원들 앞에서. 우리는 못 간다. 담당자가 알아서 한다. 알아서 잘 해주겠지. 그렇게 믿어야 한다. 근데 믿어지지가 않는다.밤 11시에 김 차장한테 카톡 보냈다. "혹시 필요한 자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읽씹이다. 당연하다. 밤 11시인데. 새벽 2시에 답장 왔다. "괜찮습니다 ^^" 이모티콘 하나 더. 괜찮다는 게 뭐가 괜찮다는 건가. 잠이 안 온다. 3년 전 그 PoC 3년 전에도 비슷했다. 창업 첫해. L사 대전 공장. PoC 2개월 진행했다. 결과는 좋았다. 불량률 18% 줄었다. 담당 부장이 칭찬했다. "정말 좋네요." 악수했다. 명함 다시 받았다. 그리고 연락 끊겼다. 한 달 뒤 전화했다. "아, 최 대표님. 죄송한데 내부 사정이 좀..." 내부 사정. 예산. 우선순위. 타이밍. 결국 무산됐다. 2개월 인건비 800만원 날렸다. 정부 과제 돈으로 메웠다. 그때 배웠다. PoC 성공이 계약은 아니라는 걸.지금도 똑같다. 67% 진행률. 12% 불량 감소. 김 차장의 "괜찮습니다 ^^" 다 의미 없을 수 있다. 대기업의 시간 대기업은 느리다. 우리 기준으로 느리다. 김 차장이 말했다. "저희는 절차가 있어서요." 절차. 중간 보고. 최종 보고. 구매 위원회. 법무 검토. 계약서 작성. 날인. 최소 3개월이다. 김 차장 말로는. 근데 실제로는 더 걸린다. 작년에 K사 PoC 끝나고 계약까지 7개월 걸렸다. 계약금 3000만원. 그나마 감사했다. H사는 더 클 거다. 목표 계약금 8000만원. 3년 계약. 연 3억 매출. 근데 아직 PoC다. 67%다. 계약까지는 아직 멀다. 우리는 빠르다. 스타트업이니까. 결정도 빠르고 실행도 빠르다. 버그 고치는 데 하루면 된다. 대기업은 다르다. 버그 리포트 올리는 데 일주일. 검토하는 데 일주일. 수정 요청하는 데 일주일. 총 3주. 그 시간이 답답하다.김 차장한테 전화했다. "진행 상황 어떤가요?" 김 차장이 웃었다. "잘 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건 말 안 한다. 대기업 담당자는 구체적인 걸 싫어한다. 확정 안 된 걸 말하면 나중에 책임져야 하니까. 이해한다. 근데 답답하다. 월말 급여일 오늘은 25일. 급여일이다. 직원 6명 급여 총 2800만원. 4대보험 포함하면 3200만원. 이번 달 매출 600만원. 정부 과제비 1500만원 입금됐다. 총 2100만원. 1100만원 부족하다. 회사 통장에서 메운다. 통장 잔액 4700만원에서 3600만원 됐다. 다음 달은 더 빡빡하다. 정부 과제비 입금 없다. 매출은 600만원 예상. 3200만원 또 부족하다. H사 계약이 필요하다. 절실하게. 계약금 8000만원 들어오면 3개월은 버틴다. 추가 개발자 1명 뽑을 수 있다. 판교 영업 거점도 확장할 수 있다. 근데 아직 PoC다. 67%다. 사무실 막내가 물었다. "대표님, H사 언제 계약돼요?" 웃으면서 대답했다. "곧 되겠지." 확신은 없다. 판교 영업사원의 전화 판교에서 일하는 영업 최 대리가 전화했다. "대표님, S사 미팅 잡혔어요." S사. 또 대기업이다. "PoC 가능할까요?" 최 대리가 물었다. 가능하다. 당연히 가능하다. 근데 대답이 안 나왔다. H사 PoC 진행 중이다. 인력이 빠듯하다. 개발팀 4명 중 2명이 H사 붙어있다. S사까지 하면 3명 필요하다. 남는 인력이 1명이다. 그것도 신입이다. "일단 미팅 잡아." 그렇게 말했다. 최 대리가 좋아했다. "네! 다음 주 목요일이요." 끊고 나서 후회했다. H사도 불안한데 S사까지. 두 개 다 날릴 수도 있다. 근데 안 하면 기회가 없다. 지방 스타트업한테 대기업 PoC 기회가 얼마나 오는데. 다 잡아야 한다. 그게 우리 현실이다. CTO한테 말했다. "S사 PoC도 할 거 같아." CTO가 한숨 쉬었다. "인력이 없는데요." 알고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신입 교육 빨리 시켜." CTO가 고개 끄덕였다. 뭐라 안 한다. 3년 같이 버텼으니까. 아내의 질문 집에 왔다. 밤 10시. 아들은 잤다. 아내가 거실에 있었다. "오늘도 늦었네." 미안하다는 말 대신 "응" 했다. 아내가 물었다. "H사는 잘 돼가?" "잘 돼가." 거짓말은 아니다. 67%니까. 잘 되고는 있다. 근데 끝은 모른다. 아내가 말했다. "이번엔 꼭 됐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다. 정말로. "계약되면 좀 여유로워질까?" 아내가 물었다. 모르겠다. 솔직히 모르겠다. 계약되면 개발 들어간다. 일정 빡빡하다. 오히려 더 바빠질 거다. 근데 그 바쁨은 괜찮다. 돈 되는 바쁨이니까. 지금 바쁨은 불안한 바쁨이다. 결과가 안 보이는 바쁨. 아내한테 말 안 했다. 통장 잔고 얘기. 다음 달 급여 얘기. S사 PoC 얘기. 말하면 걱정한다. 아내도 일한다. 공무원이다. 안정적이다. 월급 250만원 꼬박꼬박 들어온다. 우리 집 생활비는 아내 월급으로 나간다. 내 월급은 거의 안 받는다. 월 150만원만 가져간다. 나머지는 회사에 둔다. 아내가 말했다. "너무 무리하지 마." 무리 안 하면 안 된다. 스타트업은 원래 무리다. "응, 알았어." 그렇게 대답했다. 김 차장의 메시지 다음 날 아침. 출근길 KTX에서. 김 차장한테 메시지 왔다. "대표님, 중간 보고 잘 끝났습니다. 임원들 반응 괜찮았어요." 심장이 뛰었다. 괜찮았다. 괜찮았다는 거다. "감사합니다! 혹시 어떤 의견 있으셨나요?" 바로 답장 보냈다. 읽씹이다. 10분 지났다. 20분 지났다. 대전역 도착했다. 답장 안 왔다. 사무실 도착했다. 답장 왔다. "몇 가지 보완 요청 있습니다. 오후에 통화할까요?" 보완 요청.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보완하면 계약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더 지켜보자는 건가. "네, 통화 가능합니다." 답장 보냈다. 오후 3시까지 기다렸다. 전화 안 왔다. 4시. 5시. 6시. 저녁 7시에 전화 왔다. "죄송합니다, 회의가 길어져서요." 김 차장이 말했다. "데이터 시각화 부분 좀 더 직관적으로 개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 충분히 가능하다. "언제까지 필요하신가요?" 물었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요." 일주일이다. 빡빡하지만 할 수 있다. "그리고요," 김 차장이 말을 이었다. "최종 보고는 다음 달 중순입니다. 그때 결정 날 거예요." 다음 달 중순. 3주 뒤다. 3주 더 기다려야 한다. 3주 동안 불안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김 차장이 웃었다. "화이팅하세요." 화이팅. 감사하다. 근데 화이팅으로 계약이 되는 건 아니다. 보완 작업 개발팀 모았다. "H사 보완 요청 들어왔다." 다들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데이터 시각화 개선. 일주일." CTO가 고개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신입 개발자가 물었다. "S사는요?" 아, S사. 다음 주 목요일 미팅. "S사는 일단 미팅만. 계약은 H사 다음." 우선순위를 정했다. H사가 먼저다. 67%까지 왔으니까. 근데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H사 안 되면 S사라도 해야 하는데. S사 미팅 망치면 둘 다 없는 거다. "S사 미팅 자료는 내가 만들게." 야근 각이다. 일주일 동안 매일 밤 11시까지 일했다. H사 보완 작업. S사 미팅 자료. 정부 과제 보고서. 금요일 저녁. H사한테 보완 결과 보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읽씹이다. 주말 동안 연락 없다. 월요일 아침. 김 차장한테 메시지 보냈다. "혹시 확인하셨나요?" 오후 3시에 답장 왔다. "네, 확인했습니다. 좋네요 ^^" 좋다는 거다. 좋다는 건 계약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S사 미팅 목요일. 판교. S사 본사. 최 대리랑 같이 갔다. 미팅룸 들어갔다. S사 구매팀 3명. 제조팀 2명. 총 5명. 우리는 2명이다. 밸런스가 안 맞는다. 근데 익숙하다. 늘 그랬다. 프레젠테이션 시작했다. 30분 발표. 질문 20분. "타사 대비 장점이 뭔가요?"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구축 기간은요?" "A/S는요?" 다 대답했다. 준비한 답변들이다. 마지막 질문. "PoC 진행 경험 있으신가요?" 있다. H사. K사. L사. "L사는 무산됐다고 들었는데요?" 알고 있었다. 업계가 좁다. "네, 내부 사정으로 무산됐습니다. 하지만 PoC 결과 자체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사실이다. 구매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미팅 끝났다. 1시간. 결과는 모른다. 나오면서 최 대리가 물었다. "어떤 거 같으세요?"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일단 기다려보자." 그렇게 말했다. KTX 타고 대전 가는 길. 핸드폰 봤다. 김 차장한테 메시지 없다. S사한테도 없다. 창밖 풍경 봤다. 논밭 지나간다. 시골 마을 지나간다. 지방이다. 서울이 아니다. 여기서 스타트업 한다는 게 이런 거다. 늘 불안하다. 늘 기다린다. 3주 뒤 H사 최종 보고 일주일 전. 김 차장한테 메시지 보냈다. "혹시 준비할 거 더 있을까요?" 답장 없다. 하루 지났다. 이틀 지났다. 사흘째 되는 날. 김 차장한테 전화했다. "네, 대표님." 목소리가 무겁다. "최종 보고 준비 어떤가요?" 물었다. 김 차장이 한숨 쉬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대표님, 죄송한데요..." 끝이다. 이 말 나오면 끝이다. "예산 문제가 좀 생겼어요." 예산. 예산 문제. "올해 말 예산 동결됐습니다. 내년으로 미뤄질 거 같아요." 내년. 미뤄진다. 취소는 아니다. "그럼 내년에는 가능한 건가요?" 물었다. 김 차장이 말했다. "아마도요. 근데 확답은 어렵습니다." 확답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네, 알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끊었다. 사무실 봤다. 직원들 퇴근했다. 나 혼자다. 시계 봤다. 밤 10시. 통장 잔고 확인했다. 3600만원. 다음 달 급여 3200만원. 남는 돈 400만원. 그다음 달은 어떻게 하지. S사한테 메시지 보냈다. "안녕하세요, 지난주 미팅 이후 검토 상황 어떠신가요?" 답장 안 올 거다. 알고 있다. 근데 보냈다. 집에 갔다. 아내는 자고 있었다. 아들 방 들어가서 얼굴 봤다. 잘 자고 있다. 다시 거실 나왔다. 노트북 켰다. 이력서 사이트 들어갔다. 개발자 구인공고 올렸다. "스마트팩토리 개발자 채용, 연봉 4500만원, 대전 본사" 올리고 나서 생각했다. 급여 줄 돈이 있나. 없다. 근데 올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늘 그랬으니까.67%는 100%가 아니다. 기다림은 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내일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