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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원이

월 매출 600만원이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월 매출 600만원이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월 매출 600만원 오늘 VC랑 줌 미팅 했다. "매출 규모가 어떻게 되세요?" "월 600만원 정도요." 화면 너머로 느껴지는 미묘한 침묵. 2초? 3초? "아, 네. 성장률은요?" 질문이 바뀌었다.매출 600만원. 연 매출 7200만원. 제조업 B2B SaaS. 고객사 5곳. 이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스타트업 뉴스 속 숫자들 'OO 스타트업, 시리즈 A 100억 투자 유치' '창업 2년 만에 월 매출 10억 돌파' '연 매출 50억, 3년 만에 유니콘 예약' 기사 속 숫자들. 우리 매출의 16배. 166배. 833배. 계산기 두드리다가 껐다. 의미 없다.그들이 비정상인가. 우리가 비정상인가. 둘 다 정상이다. 둘 다 비정상이다.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걸 안다. 근데 자꾸 비교하게 된다. 우리 600만원의 의미 고객사 5곳. 월 평균 120만원씩 받는다. A사: 대전 금속 가공 중소기업, 월 150만원 B사: 천안 부품 제조, 월 100만원 C사: 청주 플라스틱, 월 80만원 D사: 아산 기계, 월 120만원 E사: 진천 자동차 부품, 월 150만원 각각의 사연이 있다. A사는 우리 첫 고객이다. 작년 9월에 PoC 시작했고. 올해 1월에 정식 계약했다. 대표님이 60대. "이거 진짜 되네요." 그 말 들었을 때. 돈보다 그게 좋았다.B사는 제일 까다롭다. 요구사항이 계속 늘어난다. "이 기능도 되나요?" "저것도 추가할 수 있어요?" 월 100만원에 커스터마이징 다 해준다. 우리가 바보인가. 근데 B사 피드백이 제일 좋다. 제품이 진짜 좋아지고 있다. 100만원이 아깝지 않다. 지금은. VC들이 보는 숫자 판교 VC 사무실. 지난주 목요일. "트랙션은 어느 정도세요?" "월 600만원입니다. 전월 대비 20% 성장하고 있고요." 심사역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눈빛이 다르다. '아, 아직 멀었구나.' 그런 느낌. "ARR이 얼마죠?" "7200만원입니다." "목표는요?" "올해 말까지 1억 2천." 또 미묘한 침묵. "시장 규모는 크신데, 성장 속도가..." 말을 흐린다. 번역: 너무 느리다. 그들이 보는 SaaS는 다르다. 월 매출 5억. 10억. 50억. B2C 구독 서비스. 글로벌 타겟. 빠른 성장. 우리는 B2B. 제조업. 느린 영업 사이클. 계약 하나에 3개월 걸린다. 공장 대표님 설득하고. 현장 테스트하고. 견적 조율하고. 3개월에 월 100만원. VC 관점에서는 답답할 거다. 나도 답답하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 동기가 하나 있다. 같이 삼성 다녔다. 걔는 서울에서 O2O 스타트업 했다. 작년에 시리즈 A 받았다. 30억. "요즘 어때?" "죽을 것 같아. 번아웃 왔어." 월 매출 8억. 직원 40명. 투자금 다 쓰고 시리즈 B 준비 중. "매출은 나는데 남는 게 없어." "마케팅비가 미쳤어." "다음 라운드 못 받으면 끝이야." 걔가 정상인가. 우리가 정상인가. 우리는 월 600만원이지만. 직원 6명 월급은 나간다. 사무실 임대료도 낸다. 정부 과제비가 있어서 가능하긴 하다. 그래도 망하진 않는다. 친구는 월 8억이지만. 언제 망할지 모른다. 투자 못 받으면 6개월. 어느 쪽이 건강한가. 모르겠다. IR 자료 만들 때 PPT 켠다. 매출 그래프 넣는다. 1월: 350만원 2월: 380만원 3월: 420만원 4월: 480만원 5월: 520만원 6월: 600만원 꾸준히 오르고 있다. 성장률로 보면 나쁘지 않다. 전월 대비 평균 15%. MoM 15%. 들리는 괜찮다. 근데 절댓값이 문제다. '월 600만원에서 15% 성장'과 '월 5억원에서 15% 성장'은 다르다. 투자자들은 후자를 원한다. 당연하다. 90만원 성장이랑 7500만원 성장이랑 다르다. '왜 우리 시장은 천천히 가는가' 이걸 설득해야 한다. "제조업 B2B는 계약이 길어요." "대신 이탈률이 낮습니다." "평균 계약 기간 3년이고요." "LTV가 높습니다." 사실이다. 근데 설득력이 약하다. 600만원이라는 숫자 앞에서는. 고객사 E사 대표님과 통화 오늘 오후 3시. E사 공장장님한테 전화 왔다. "대표님, 이번 달 추가 라인 붙이고 싶은데요." "월 50만원 더 내면 되죠?" 심장이 뛴다. "네, 가능합니다. 언제부터 하시게요?" "다음 주부터요. 생산량이 늘어서요." 600만원에서 650만원. 8.3% 성장. 전화 끊고 팀원들한테 말했다. "E사 확장한대!" 다들 좋아한다. 50만원이지만. 이게 우리한테는 크다. VC들은 이 감정을 모를 거다. 50억 스타트업이 50억 5천 된 것. 1% 성장. 우리는 8.3% 성장. 50만원이지만.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밤 11시, 집에서 아들 재운다. 아내가 묻는다. "오늘 미팅 어땠어?" "그냥 그래. 투자는 어렵대." "매출이 적어서?" "응." 아내가 잠깐 생각한다. "근데 우리 망하진 않잖아." "응, 안 망해." "그럼 됐다." 아내 말이 맞다. 망하진 않는다. 월 600만원. 연 7200만원. 적은 돈이다. 근데 우리 제품을 쓰는 공장이 5곳. 작년엔 0곳이었다. 내년엔 10곳 될 거다. 월 1200만원. 비정상적으로 빠르진 않지만. 정상적으로 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결국 답은 월 매출 600만원.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둘 다 맞다. VC 관점에서는 비정상이다. 투자하기엔 작다. 트랙션이 약하다. 성장이 느리다. 우리 관점에서는 정상이다. 작년보다 훨씬 나아졌다. 고객이 만족한다. 제품이 좋아지고 있다. 어제 KTX에서 생각했다. 서울 다녀오는 길. 또 투자 안 된다고 했다. 또 600만원이 작다고 했다. 근데 창밖 풍경이 좋았다. 지나가는 들판. 작은 마을들. 서울은 빠르다. 우리는 느리다. 빠른 게 항상 옳은 건 아니다. 느린 게 항상 틀린 건 아니다. 월 600만원은 시작이다. 끝이 아니라. 내년엔 1200만원. 내후년엔 2400만원. 5년 뒤엔 1억. 천천히 가도 된다. 망하지 않으면.오늘 매출 리포트 봤다. 650만원. 8.3% 올랐다. 느리지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