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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 투자 1억, 그 돈이 바닥나기까지

엔젤 투자 1억, 그 돈이 바닥나기까지

엔젤 투자 1억, 그 돈이 바닥나기까지 1억이 통장에 들어온 날 2년 전이다. 엔젤 투자금 1억. 통장에 찍힌 숫자 보고 멍했다. 9자리가 내 통장에. 처음이었다. 아내한테 캡처 보냈다. "왔어." 답장은 빨랐다. "축하해. 근데 조심해." 그날 밤 혼자 맥주 한 캔 마셨다. 계획 세웠다. 노트북에 엑셀 켜고 항목 적었다. 개발자 2명, 월 500만원씩. 1년이면 1억 2천. 안 된다. 다시 계산했다. 새벽 2시까지 숫자 만졌다. 결론은 명확했다. "1년 반이 한계다."쓰기 시작하면 빠르다 첫 달에 3천만원 나갔다. 개발자 2명 계약금. 각 500만원. 정부 과제 매칭금 1천만원. 사무실 보증금 600만원. 법인카드 만들고, 회계사무실 계약하고. "이게 맞나?" 생각했다. 근데 멈출 수 없었다. 두 번째 달. 급여 1천만원. 서버비 120만원. AWS 요금이 생각보다 높다. 개발 외주 300만원. UI/UX 디자이너 프리랜서. 세 번째 달. 전시회 부스비 400만원. 명함 못 뿌렸다. 관람객이 제조업 쪽이 아니었다. 마케팅 대행사 계약 500만원. 효과는 모르겠다. 통장 잔액 5,200만원. 6개월도 안 됐다.정부 과제가 숨통이다 R&D 과제 2억 받은 게 다행이다. 근데 이것도 장난 아니다. 매칭금 내야 하고, 정산 빡세고, 인건비 인정 비율 제한 있고. 개발자들 급여 일부만 과제비로 처리된다. 나머지는 자체 부담. 엔젤 투자금으로 메꾼다. 과제 담당자 전화 올 때마다 긴장한다. "서류 보완 필요합니다." 또 야근이다. 아내가 물었다. "정부 과제 없으면 어쩔 거야?" 대답 못 했다. 솔직히 모른다.서울 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KTX 정기권 끊었다. 한 달 35만원. 서울 미팅은 주 2회. VC 만나고, 잠재 고객 만나고, 네트워킹 행사 가고. 점심값, 커피값. 한 번 가면 10만원은 쓴다. 한 달이면 80만원. 판교 영업 거점 직원 한 명. 월급 350만원. 숙소 지원 50만원. 한 달 400만원이다. "서울 안 가면 안 되냐?" 스스로 물어봤다. 안 된다. 투자도, 고객도, 다 서울이다. 대전에서 버티는 게 비용 절감 맞나 싶다. 근데 서울 가면 사무실비가 3배다. 계산기 두드리다 머리 아프다. 개발자 뽑는 데 실패한 돈 채용 공고 3개월 돌렸다. 원티드, 점핏, 로켓펀치. 지원자 2명. 둘 다 최종 면접에서 거절했다. "서울 회사 제안 받았어요." "연봉 차이가 좀..." 할 말 없었다. 헤드헌터 써봤다. 수수료 연봉의 20%. 계약금 300만원 먼저 냈다. 결과는 제로. "대전은 풀이 없어요." 헤드헌터 말이다. 알고 있다. 결국 서울 개발자 주 3일 원격으로 계약했다. 월 600만원. 대전 시세보다 200만원 비싸다. 채용 실패에 쓴 돈만 500만원 넘는다. 시간은 계산 안 했다. 매출은 더디고 지출은 빠르다 월 매출 600만원. 고정비는 1,800만원. 개발자 4명 급여 1,500만원. 사무실비 120만원. 서버비 100만원. 기타 100만원. 매달 1,200만원 마이너스다. 엔젤 투자금으로 메꾼다. "언제 손익분기 맞춰요?" IR 때마다 받는 질문이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내년 3분기 목표입니다." 근데 내년 3분기까지 돈이 남아있을까. 엑셀 열어서 런웨이 계산했다. 지금 속도면 8개월이다. 8개월 후면 제로. 대기업 PoC 계약 성사되면 3천만원 들어온다. 그럼 10개월로 늘어난다. 그게 답일까. 아끼려 해도 아낄 데가 없다 사무실 옮길까 생각했다. 지금 보증금 600만원에 월 120만원. 작은 곳 찾아봤다. 80만원짜리. 근데 이사비 200만원. 인터넷 재설치 50만원. 명함 새로 찍어야 하고. 계산하면 6개월 손해다. 개발자 줄일까. 4명을 3명으로. 프로젝트 속도 느려진다. PoC 못 맞추면 3천만원 날린다. 못 줄인다. AWS 비용 줄일까. 서버 최적화 해봤다. 한 달에 10만원 아꼈다. 의미 없다. 내 급여는 이미 제로다. 아내 월급으로 산다. 미안하다. 점심값 아끼려고 도시락 싸온다. 한 달에 15만원 절약. 이게 무슨 의미냐. VC들은 관심이 없다 콜드메일 50통 보냈다. 답장 3통. 미팅 1건. "지방 스타트업은 좀..." 대놓고 말하진 않는다. 분위기로 안다. "대전에서도 잘하시네요." 칭찬 아니다. 놀라는 거다. IR 자료 100번 고쳤다. 투자 제안서 버전 15까지 갔다. 결과는 똑같다.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액셀러레이터 3곳 지원했다. 다 떨어졌다. "제조업 도메인 전문성이 부족해서요." 피드백이다. 정부 과제 성과로는 투자 못 받는다. "매출 트랙션 보여주세요." VC들 말이다. 트랙션 만들려면 돈 필요한데. 돈 받으려면 트랙션 필요하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통장 보는 게 무섭다 요즘 통장 잔액 확인 자주 한다. 하루에 5번. 3,200만원. 어제보다 80만원 줄었다. 급여일도 아닌데. AWS 자동결제였다. 계산기 두드린다. 3,200만원 나누기 1,200만원. 2.6개월. 석 달도 안 남았다. 새벽에 깬다. 통장 생각하면서. 아내는 모른다. 얘기 안 했다. 대기업 PoC 결과 나오는 게 다음 달 말이다. 성사되면 3천만원. 그럼 5개월 더 버틴다. 안 되면? 생각 안 하려고 한다. 근데 자꾸 생각난다. "다른 일 찾아볼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한다. 입 밖으로 안 냈다. 아직. 1억이 이렇게 없어지는구나 2년 전 통장에 9자리 찍혔을 때가 기억난다. "이 돈으로 3년은 버틴다."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쓰기 시작하면 빠르다. 급여, 서버비, 출장비, 채용 실패, 마케팅 실패, 전시회 실패. 실패에 쓴 돈이 제일 아깝다. 근데 안 쓸 수도 없었다. 뭐가 먹힐지 모르니까. 엔젤 투자자한테 연락 왔다. "진행 어때요?" 좋다고 했다. PoC 진행 중이라고. 거짓말은 아니다. "추가 투자 생각 있으세요?" 물어볼 뻔했다. 참았다. 아직 성과가 없다. 성과 내야 한다. 석 달 안에.런웨이가 보인다. 끝이 보인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